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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대지에서 배우는 말씀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대지에서 배우는 말씀

 


 지난번에 공부에 재미 붙이고 삶에 재미 붙이고 나아가 미친 듯이 몰두하는 사람들의 이야길 썼습니다. 지금 나는 무엇에 재미 붙이고 미친 듯이 하는가?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위의 모든 것에 무심하면서 오직 한길로 가는 이 길이 진정한 나의 삶의 길인가? 다시 점검을 하고 다짐을 해 봅니다.

 한국에서 신문학운동의 선구자인 춘원 이광수씨가 쓴 글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물론 근래에 친일파로 몰리어 지조가 없었다고 비판도 받는 그는 기독교인이면서 불교를 알았고 사생활이 어떠 하였던 그가 쓴 글에서 그의 마음자리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불교의 육바라밀을 알면서 시를 지었습니다.

 “님에게 아까운 것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를 배웠노라”“님에게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계를 지킴)를 배웠노라”“님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저기서 나는 인욕을 배웠노라”“자나깨나 쉴새 없이 님을 그리워하고 님 곁으로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을 배웠노라”“천하에 하고많은 사람 중에 오직 님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을 배웠노라”“내가 님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님과 나와의 존재도 잊을 때에 거기서 나는 지혜를 배웠노라”“이제 알았노라. 님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투신 부처님이라고”우리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고 모든 것을 님과의 인연 속에 살아가고 도리어 기쁨도 슬픔도 님과 나와의 존재도 잊을 때에 참다운 지혜가 생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아주 잘 표현하였습니다.

 진정 몰아의 경지에서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나”라는 인식이 앞서면 나의 명예, 나의 체면, 그리고 나의 것, 나의 이익 등 개인주의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태어나 이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우리에게 나를 꺾고 나를 버리고 나를 굽히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무아, 무소유 정신을 그렇게도 강조하시던 청화 큰스님의 가르침이 새삼 무서운 경책이 됩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인생살이를 비유해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지었습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한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애타게 불러대다 천둥번개의 소용돌이와 무서리까지 맞아야하는 인생의 길목에서 뒤늦게나마 거울 앞에 선 나의 모습, 그렇게도 험난한 역경을 지내고 본 모습을 들여다보는 마음이 바로 공부의 과정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습은 수없는 가시밭길을 거치면서도 꿋꿋이 변함없는 한길을 가다보면 결국 꽃을 피우게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부처님은 믿음을 강조합니다. ‘신위도원 공덕모信爲道源 功德母’라, 믿음이 모든 길의 근원이요 모든 공덕을 낳게 하는 어머니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수행의 첫걸음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는 행은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십신十信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십지十地로 이루어지는 보살도의 과정입니다. 동양적인 표현은 남자를 하늘에 비유하여 건명乾命이라 하고 여자를 땅에 비유하여 곤명坤命이라 합니다. 맑은 하늘에 느닷없이 검은 구름이 끼고 천둥번개도 있습니다. 때로는 폭우가 되기도 하고 때론 가뭄에 단비가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지는 변함이 없습니다. 궂은 것 깨끗한 것 다 받아들이며 감싸고 아무리 더러운 오물도 삭혀서 생명을 키워내는 거름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이 함께 생명의 근원이 됩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나면 틀림없이 자작자수自作自受의 응보가 됩니다.

 『법구경』에 말씀이 있습니다. “선의 열매가 아직 익기 전에는 선한사람이 재앙을 만나기도 한다. 악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악한 사람이 좋은 결과를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선善의 열매가 익으면 선한과보가 돌아오고 악의 열매가 익으면 악한 과보를 피할 수 없나니”그래서 열매가 익기를 기다리는 인욕이 있어야 합니다. 눈앞의 결과보다 머얼리 내다볼 수 있는 안목으로 인연을 쌓아야겠습니다.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던 만해 한용운 스님께서 옥중에서 지으신 시 “님의 침묵”가운데“선사의 설법”이란 시가 있습니다. 마지막 구절에“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봐서 나와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드렸습니다.”진정 소중한 인연들을 더욱 가꾸고 아껴야겠습니다.


 

 


출처 : LA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