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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세상의 맑음과 흐림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세상의 맑음과 흐림

 


 이 세상에 살면서 “맑다, 흐리다.”하는 이야기는 많이도 합니다. “하늘이 맑다, 흐리다.”“오늘 마음이 맑다, 흐리다.”“앞날이 맑다, 흐리다.”등등의 모든 현상과 일에 맑음과 흐림을 말합니다. 맑고 흐림은 밝다 어둡다 와 같은 뜻으로 또는 깨끗함과 더러움의 뜻으로 함께 사용합니다.

 부처님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사바세계”라 하는데 이는 “오탁악세”“감인세계”의 뜻입니다. 오염되고 혼탁하며 깨끗지 못한 “예토”더러운 세상, 무던히도 견디고 참고 감내해야만 살아가는 세상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청정한 국토인 “정토세계”를 이상으로 합니다.

 20여 년 전인가, 우리나라에 “아더메치유”란 말이 많이 유행했습니다. 아니꼽고 더럽고 메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하다는 말의 첫 글자를 따온 말입니다. 이 세상이 험악하고 더러워 살기가 어렵다는 말이었습니다. 참으로 혼탁스러워 맑고 깨끗한 순수함이 귀한 세상입니다. 우리 마음과 몸도 어느덧 오염된 것이 많은데 그것도 모르고 그저 지내다가 어렸을 때 그렇게 청순했던 생각이 불현듯 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염된 번뇌 망상을 털고 본래청정심으로 돌아가려는 공부를 하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여러 꽃 중에 연꽃을 내세웁니다. 연꽃이 피어나는 곳은 흙탕물 속입니다. 진흙수렁에 뿌리를 내리고 피어나지만 줄기에도 연잎에도 그리고 꽃에도 더러운 물이 묻질 않습니다. 더러움 속에 깨끗함을 간직합니다.

 또 특성이 있습니다. 연꽃이 피어날 때는 물속에서도 수면에 떠서도 또 물 밖으로 나와서도 꽃을 피웁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중생을 연꽃에 비유합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오탁악세라 하여도 그 세상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중생이라도 “중생심이 연화심”이라 물들지 않는 본래청정심이 있는것입니다.

 경전에는 『묘법연화경』『대방광불 화엄경』등 혼탁 중에 청정을 기리는 오묘한 진리의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고등육지에 불생연화 번뇌니중에 내생보리”라는 경전 말씀이 있습니다. “맑고 깨끗한 우아하며 향기로운 연꽃이라 어찌 진흙수렁에 심으랴.”하고, 깊은 산 맑은 물에 심었더니 꽃이 피질 않듯이 “중생의 번뇌 망상 수렁 속에서 보리(깨달음)가 생기는 것이다.”는 말씀입니다.

 춘원 이광수씨가 쓴 소설 가운데 사명대사가 승과시험의 마지막인 면접시험을 보는데 시험관이 질문을 합니다. 능엄경의 말씀을 인용합니다. “청정본연컨대 운하흘 생산하대지리요?” 본래청정한 그대로인데 어째서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다고 하느냐? 합니다. 주저 없이 답을 합니다 “청정본연컨대 운하흘 생산하대지리요?” 본래청정한 그대로인데 어째서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다고 물어 보십니까? 말의 톤만 다릅니다. 그래서 뜻이 다릅니다.

 저의 스승이신 청화 큰스님께서 어느 날 말씀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평생동안 청정함만을 추구하셨는데 “자네는 청탁이 겸했네.” 무슨 말씀이셨는지 두고두고 떠오릅니다. 큰스님께서 나에게 써주신 휘호가 있습니다. “청정고준 도광회채”라 하였습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알아주시는구나’하고 기뻤습니다. “청정한 지조는 고산준령처럼 드높은데 그 빛을 감추고 있으나 그래도 그믐밤을 비추이는구나”하고 해석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얼마 뒤 문득 놀랐습니다. “청정고준 이대로 도광회채하라”였습니다. “드러내지 말라. 감추어진 빛이 그믐을 밝히듯 하라”였습니다. 참선 수행자들이 한철 공부하고 읽어보는 『반야심경』하고 두 철하고 읽어보는 『반야심경』하고 맛이 다르고 의미가 다르다고 합니다.

 요즈음 우리 금강선원에 불사가 막바지입니다. 백중 안에 끝내겠다고 일주문, 종각, 선방, 큰스님 부도탑비, 조경공사 등 많은 일이 한꺼번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날마다 작업복에 떨어진 밀짚모자 시멘트 묻은 신발로 하루를 보냅니다. 머리는 길고 수염도 길고 깨끗지 못한 모습, 향기롭지 못한 냄새, 시끄러운 공사판에서 질러대는 큰소리,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어느 신도가 와서 스님 같지 않다고 합니다.

 나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겉모습이나 일에 쫓기는 생활 속에  내 본연의 출가심이 흐려지진 않았는가? 명리를 생각하고 세상 속에 물들어 버리는가? 문득문득 초발심을 돌이켜 봅니다. 욕심인가? 원력인가? 사심인가? 공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