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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마음 다스리기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마음 다스리기

 

지난번에 호흡에 관한 이야기를 알아보았습니다. 하여간 이 세상에는 단전호흡법이다, 복식호흡법이다, 태식법이다 등의 여러 가지 호흡법을 설명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제일 중요한 것은 억지로 하지 않고 자연스레 숨을 쉬는 것입니다. 단전 호흡이든 복식 호흡이든 태식법이든 말은 다르지만 모두 어린아이 그것도 태중의 아기호흡을 설명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생각해 봅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가 의식적으로 또는 억지로 숨을 쉬겠습니까? 그래서 의도하지 않고 자연스레 숨쉬는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 또 무슨 정보나 지식을 가지고 일부러 어떤 방법을 택하여 의식적으로 해보려는 것입니다.

한 가지 의학계에서 연구한 결과는 들이마시는 숨보다 내뿜는 숨이 길면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불가에서는 출장식出長息이라 하여 숨을 길게 내뿜는 것입니다. 소리가 나오는 것은 숨을 내뿜을 때입니다. 염불하는 소리나 노래하는 가수나 얼마나 긴소리로 합니까? 소리가 길어지면 그 다음 들이마시는 숨은 저절로 짧은 순간에 이루어 집니다.

우리는 생명체이기에 산소를 들이마시는 것이 본능적입니다. 그래서 코로만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전신으로 모든 피부에서 산소를 보충합니다. 그러면 피부호흡 전신호흡이 됩니다. 요즈음 화장품을 선전하면서 광고문구에 “피부가 숨을 쉬어요”하는 문구를 보고 많이 발전하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식止息의 문은 숨을 그치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각을 그치는 숨이라는 뜻으로 생각하면 쉽겠습니다. 같이 연결되는 말씀입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조심법입니다. 마음에 따라 자세도 이루어지고 호흡도 가다듬어지기 때문에 가장 근원이 마음입니다. 숨을 그친다는 것은 결국 우리 마음 가운데 산란스럽고 번잡스러운 추리 추측 상상 등 일체 망념 번뇌망상을 그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생각을 그치고 마음을 다스릴 것인가?

작년에 떼를 쓰는 어린아이의 이야기를 쓴 일이 있습니다. 자기가 갖고 싶은 장난감에 마음을 뺏긴 어린애의 마음을 어떻게 돌릴 것인가?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일본에서는 마음 다스리는 공부에 회심廻心이라는 용어를 많이 씁니다. 마음을 돌이켜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질 않습니다. 잊어야지 하면 할수록 더욱더 떠올려지고 하나를 생각하면 그에 따라 꼬리를 물고 실타래처럼 끊임없이 연상이 됩니다.

나이가 든 분들은 과거의 추억이나 회상에 잠기어 옛날생각에 젖어들기 쉽고 젊은이들은 앞날의 희망과 불안 초조에 잠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공부에서는 모두가 금기사항입니다. ‘과거심도 불가득이요 미래심도 불가득’이라, 지난 세월은 이미 흘러갔고 돌아올 앞날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있지도 않은 시간과 생각에 잠기어 현재 순간 찰나를 놓치는구나 합니다.

육조 혜능대사는 ‘도수통류인데 하이각체리요’라고 말씀하십니다. 도道란 모름지기 서로 통하여 흐름인데 어찌하여 도리어 체하게 하는가? 우리는 지난 세월이나 경험에 너무나 집착합니다. 그리고 돌아올 미래에도 너무나 생각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어도 못 잊는다고 합니다. 좋은 일이었던 원한에 사무쳤던 죽어서까지 가지고 간다는 것은 얼마나 강한 집착입니까? 놓기 어려운 집착을 버리고 무착無着 무념無念 무심無心이 된다면 바로 도인입니다. 어떻게 해야 모든 애착과 집착을 털고 본래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주 간단히 가르칩니다. “내버려 둬라”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시골로 피난을 갔었는데 아버님께서 옆 마을에 심부름을 보내면서 급히 다녀오라 하셨습니다. 가는 길에 냇가에서 애들이 재미있게 노는 모습을 보고 같이 놀다보니까 해가 기울어 버리고 그때서야 심부름생각이 나서 큰일났구나! 이미 많은 시간이 흘러버렸는데 어찌하나! 부랴부랴 집으로 갔는데 집에 계시던 어머님이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꾸중도 없고 야단도 안치고 사흘 동안을 지내는데 나는 가시방석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어머님께 차라리 야단치고 때려주시라고 울면서 매달렸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아껴주시던 부모님의 무관심이 아주 무서운 큰 벌이었습니다.

그 뒤 출가하여 불교공부를 하면서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할까? 궁금하였는데 드디어 발견하였습니다. 열반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난존자가 열반에 드시는 부처님께 여쭙니다. ‘성질이 강강하여 고집이 세고 말을 안 듣는 제자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잘 타일러 이해를 시켜라.”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두 번 세 번 타일러라.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내버려 둬라. 스스로 마음이 돌아서야 한다.”

이것이 ‘범단지법’이요 ‘묵빈대치’의 법입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쓰는 아이에게, 어느 것에 유혹당해 마음 뺏긴 상태에, 집착하여 못 벗어날 때, 마음을 돌리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불교수행의 요체는 ‘방하착’하라 ‘휴거흘거’라 ‘마음을 비워라.’ ‘모두 놓아버러라.’ ‘쉬어라’ ‘그쳐라’입니다. 우리에게 매달린 생각, 원망이나 회한이나 애착이나 모든 번뇌 망상을 놓아라 쉬어라입니다. 그런데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입니다. 그러다가 문득 ‘이것이 아니구나.’하고 마음이 돌아설 때를 깨침이라 합니다.

 

출처 : LA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