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무념무상’으로 마음 다스리기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무념무상’으로 마음 다스리기

 


 마음 다스리기에 중요한 것이 “내버려둬라”라고 보았습니다. 모든 애착과 집착을 놓아버리는 일, “방하착”하라 “휴거흘거”라 “마음을 비워라”“모두 놓아 버려라”등의 말씀이 모든 선사들의 가르침입니다. 무념무심이 바로 도인의 마음입니다. 무념수심이란 아무런 찌꺼기도 없이 흔적도 없이 맑고 깨끗한 청정심입니다.

 청화큰스님께서 후인들에게 간절히 가르쳐 주시는 법문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가르침은 순선시대의 법문입니다.

 “제법이 공空임을 각하면 심은 스스로 무념해진다. 염기하면 각하라.”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이 공임을 깨달으면 마음은 스스로 무념해진다. 생각이 일어나면 깨달아라.

 “공空임을 각하면 즉 무이다. 수행의 묘문은 다만 여기에 있을 뿐이다.”공임을 깨달으면 곧바로 무이다. 수행의 미묘한 문은 다만 여기에 있을 뿐이다.

 “고로 갖추이 만행을 수한다 하더라도 오직 무념을 종宗으로 할뿐이다.” 그러기에 갖추어 모든 수행을 닦는다 하더라도 오직 무념만이 궁극이요 제일일 뿐이다.

 “다만 무념의 지智를 득 할 때만 애오의 정은 자연히 담박해지고 비지悲智는 자연히 증명增明하고 죄업은 자연히 단제되고 공행功行은 자연히 증진한다.” 다만 무념의 지혜를 얻을 때만 애착과 증오의 감정은 자연히 담박해지고 자비의 지혜는 자연히 더욱 밝아지고 죄업은 자연히 소멸되고 공덕의 행은 자연히 증진한다.

 “이에 제상이 상이 아님을 료하면 자연히 무수의 수로써 번뇌 진시 생사즉절하고 생멸멸이 해서 적조 현전하고 응용 무궁하다 이를 명하여 불佛이라 한다.” 이에 모든 현상이 본래 현상이 아님을 깨달아 마치면 자연히 닦음이 없는 수행으로써 번뇌가 다할 때 생사가 곧 끝나고 생멸이 없어져버려서 고요히 본래모습이 들어나고 응용이 한이 없다. 이를 이름하여 부처라 한다는 최상승 법문의 요지입니다.

 무념무상이 되면 이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 번뇌는 사라지고 애착하고 미워하는 감정도 담박해져 죄업도 소멸되고 지혜와 공덕은 자연히 증진되는데,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는데, 또한 떠나야 할 생각도 없이 되는데… 참으로 무념무상이 되기가 어렵습니다.

 요즈음 생각이 불쑥불쑥 많아질 때가 있습니다. 금강선원에 와서 불사를 시작한지 어언 7년, 이제 회향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부처님께, 중생에게 지은 빚이 끝나지 않았는가? 1차 불사도 막바지 마무리 단계인데 이렇게도 힘이 드는가? 빨리빨리 불사를 끝내려 함이 조급한 것인가?

 어떤 분은 ‘스님이 쓰신 글대로 사시면 될 텐데 왜 그리 서두르십니까? 설법과 행동이 다릅니다.’하고 질책도 합니다. 심지어 ‘스님은 인간도 아닙니다.’합니다. 무엇에 미쳐서 일까? 애착과 미움의 번뇌가 남아있는 것인가? 이 글을 쓰면서도 다시 돌이켜 봅니다. 내 마음이 순수하게 불사를 위한 것인가? 혹이라도 사심어린 집착이 있는 것인가? 그렇게도 망념이 일다가 또 일에 부딪히면 잊어 버립니다. 그저 하루하루 해나갈 일 생각뿐입니다.

 같이 사는 분들께 자주 말합니다. 내일 떠나더라도,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자는 말을 생각합니다. 도량정리를 하다보면 옮겨 심는 나무가 많이 있습니다. 정성스레 물도 주고 가꾼다 해도 잎이 누렇게 죽어갑니다. 그래도 행여나 하고 기다리다 보면 새싹이 돋아납니다. 그냥 뽑아 버리지 않고 놔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집에 강아지들이 가끔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반갑습니다. 이러한 마음도 망념일 것인가? 어렵고 힘든 행을 이겨나가자고 다짐해 봅니다. 무념이라 하여 될 대로 되라고 방치해버리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사견, 사심이 없는 생각이 무념일 것입니다. 또 날이 밝았습니다. 일을 하러 나가야하겠습니다.

 

 



출처 : LA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