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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에 재미가 없으면 하기도 싫고 살맛도 나지 않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들이 하는 학교공부도 재미를 붙이지 못하면 하기 싫고 성과도 오르지 못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역시 가정에 재미를 붙이고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재미 있고, 그래서 직장에서도 하는 사업에도 사회생활에 어울림도 모두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선방에서 공부하는 스님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철(3개월) 결재를 하여 안거한 뒤 해재를 하게 되면 서로 묻는 말이 “이번 철에는 재미 좀 보셨소”합니다. “예, 재미 좀 보았습니다.”“별로 재미보지 못했습니다.”공부가 제대로 되었는지, 그래서 재미 붙이고 일념이 되었는지, 온갖 번뇌 망상으로 머리만 복잡해지고 산란심 때문에 일념이 되지 못하였는지? 서로 묻는 말입니다. 세상에서도 “정신일도 하사불성”이란 말이 격언처럼 쓰입니다. 정신을 한군데 집중하면 어떠한 일도 못 이룰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한군데 정신을 쏟고 일념이 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들이 동원됩니다. 그러나 정통적으로 선가의 가르침은 하나입니다. “방하착 하라” 모든 집착을 다 놓아버려라, “휴거흘거라”쉬고 또 쉬어버려라 “하심하라” 붙들린 마음들을 다 비워버려라 하는 말씀입니다.

 한결같은 이러한 가르침은 번잡스럽고 산란스러운 마음을 쉬고 비워라입니다. 인간의 심리는 복잡다단하여 한 생각이 일어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없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일렁거리던 생각의 파도는 가라앉고 모든 현상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보입니다. 진정 무념 무상 무심의 세계에서 뚜렷이 현상과 본질의 본체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겉 모습만 보지 말고 ‘본체를 여의지 않으면 바로 참다운 참선’이라고 청화큰스님께서는 누누이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큰스님의 법문을 하나도 군더더기가 없는 “본체법문”이요 “실상법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견해에 따라 각기 달리 이해합니다. 너무 어려워서 알아듣기 어렵다고도 하고 좀 더 쉽게 풀이하면 좋겠다고도 하고 큰스님에게나 어울리는 말씀이지 우리 속세에는 해당치 않는다고도 하며 그래도 조금은 심각하지만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고 하여 듣고 또 듣고 하니까 조금씩 나아진다고도 합니다.

 재미 붙이는 일도 각기 자기의 분상에 따라 다릅니다. 어디에나, 어느 일에다가 재미를 붙이고 살아갈 것인가? 가정에, 직장에, 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기도 하고, 돈버는 일에, 술에, 놀이에, 도박에 재미를 붙이기도 합니다.

 재미 붙이는 일에 따라 사회의 평가는 달라집니다. 재미 붙이는 것이 심해지면 미쳤다고 합니다. 주위의 아무것도 돌아보지 않고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는 것, 그래서 미치는 것입니다. 음악가는 음악에 미치고 예술가는 자기예술에 미칩니다.

 역사적으로 이름있는 모든 사람들이 한군데에 미쳐서 결국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다 재미 붙이고 어디에 미칠 것인가?

 지금 나는 재미가 있는가? 무엇에 재미 붙이고 미친듯이 살아가는가? 금강선원에 와서 선방이며 큰스님 부도탑비며 일주문, 종각의 상량을 마치고 날짜도 잊었다가 원고독촉을 받고나서야 이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을 해봅니다.

 출가입산한 뒤로 부모형제도 떠났고 일가친척이며 학교동문이며 모두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는데 어느 날 한 신도가 “다른 스님은 얼굴도 해맑고 근심걱정 없이 보이는데 스님은 어찌 얼굴이 거무티티 합니까 무슨 걱정이 많습니까?”합니다.

 “글쎄요 출가 전에는 우리집 한집 걱정뿐이었는데 절에서 살다보니 여러신도님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모른척 할 수도 없고 사실 걱정이 많습니다.”

 “혹시 몸이 안좋은지 간이 나쁘면 얼굴색이 변한다는데 검사 좀 해보십시오”

 끌려가듯 간 검사를 해보았더니 반은 이미 죽었다며 그렇게도 못 느꼈습니까?합니다. 그래도 이제 간염주사도 필요 없이 스스로 면역이 되어 잘되었다고 합니다. 간이 반이나 죽어가도록 잊어버리고 살아왔는데 요즘 또 스님은 “미쳤다.”고 말을 들었습니다.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미쳐서 사는 것 같습니다. 불사를 한다고 공사에만 미쳐서 주위 여러분들의 어려움도 돌보지 못하고 정말 미안할 뿐입니다.


 

 


출처 : LA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