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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죽비 소리가 그립다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죽비 소리가 그립다

 

 

 어제는 죽비소리가 그립다고 산사를 찾아와 밤에도 새벽에도 기도정진하신 노부부가 계셨습니다.

칠순, 팔순이 넘으신 노보살님들이 함께 정진하시는 모습에서 요즈음 연말을 맞이하는 세상의 모습을 함께 봅니다. 여기 저기 송년 모임으로 다른 때보다 더욱 분주하다 합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려는 즈음, 지난 세월에 대한 회포도 많고 정리해야할 것도 많고 또 준비해야할 일도 많아 분주한 것도 사실입니다.

큰스님께서 자주 일러주시는 게송이 있습니다.

“미고 삼계성迷故三界城 오고시방공悟故十方空 본래 무동서本來無東西 하처 유남북何處 有南北”어리석어 미혹하면 이 세상이 불난 집이나, 깨닫고 나니 온 세상이 툭 터져 텅텅 비었네, 본래 동과 서가 따로 없는데, 남과 북이 어드메에 있으리요.

분주함이나 한적함이나 모두 마음가짐에 달려 있습니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 네가 잘했다 내가 잘했다고 시비고하를 따지는 것은 불난 집에서 뛰쳐나올 생각은 못하고 불길에 휩싸이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우리 인생을 독화살에 맞은 것에도 비유하십니다. 이 독화살이 어디서 날라 왔나 누가 쏘았나 무슨 독이 묻었나 하고 따지는 동안에 독은 온몸에 퍼져 죽고 만다. 어서 빨리 독화살을 뽑아라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지혜로워라 하십니다. 죽비소리가 그리운 때입니다. 죽비는 경책을 울립니다. 혼침에서 깨어나게 하고 번뇌망상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인공 본심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에도 말씀하십니다. “과거심도 불가득이요 미래심도 불가득이라.” 이미 흘러간 과거의 추억과 회한에 젖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미래의 꿈과 불안에 젖어 현재 순간 찰나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 범부중생입니다. 현재 당처 순간 찰나를 놓치지 말라고 경책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범부중생이기에 지난 세월을 자꾸 뒤돌아 봅니다.

이곳 산사에서도 한해가 저물면서 못다한 일들이 많아서 애닯고 안타까움이 한없습니다. 일주문, 종각등을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잘지어 놓고 아직 기와를 올리지 못하였는데 우기는 닥쳐와 비가 오기 시작하니 나무가 뒤틀리고 썩어질 것이 걱정입니다.

그러나 인연따라 이루어지리니 인연에 맡기자고 생각하며 죄송한 마음을 법회에서 이야기 하였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가 돌아오기는 인연 성숙에 맡기자 그러면서도 부족하였음과 모자랐음에 가슴이 여밉니다.

큰스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며 남기신 말씀이 다시금 떠올라 되뇌어봅니다. 이 세상에 살며 입은 은혜는 한없이 많습니다. 부모님 은혜, 세상의 은혜, 조상의 은혜, 조국의 은혜, 내 생명을 지켜준 만물의 은혜, 부처님 법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은혜, 스승님의 은혜, 시주의 은혜 끝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은혜에 보답함은 손톱만큼도 안됩니다. 다만 더욱더 정진하고 베풀지 못하였음이 한이 됩니다. 이런 저런 상념 속에서도 다시금 공부를 챙기자고 다짐을 하였는데 뜻밖에도 소식이 왔습니다. 죽비소리가 그립다던 노부부의 마음에도 통하였던지, 인연이 성숙되었음인지 큰 시주를 하시겠답니다. 비 맞는 건물이 안타까워 기와를 올리고 마무리 하자고 하십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간절한 기도에 응답이 되었습니다. 한해가 저물어가고 새해를 맞이하려는 즈음 더욱더 밝아지려는 세상과 믿음 깊은 불자님들의 앞날에 부처님광명이 드리워지길 지극히 지극히 빕니다.

 

 

출처 : LA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