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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날마다 좋은 날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날마다 좋은 날

 

 

 한해가 가고 또 새해가 오면 여러 가지 상념들이 많습니다. 지난해는 어떠했고 또 돌아올 해는 어떠 할까? 참선 화두공부의 교본이라 할 수 있는 벽암록과 선문염송에 말씀이 있습니다. 운문雲門큰스님이 계셨는데 하루는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15일 이전의 일은 그대들에게 묻지 않거니와 15일 이후의 일을 한마디 일러보라”하고는 스스로 말하되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이니라 날이면 날마다가 좋은 날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두를 통달하고 모두를 비워버린 분상에서는 오늘이 어떻고 내일이 어떻고가 없습니다. 날마다가 좋은 날입니다. 그러나 시비를 가리고 분별계량하면 따져지는 것이 끝이 없습니다. 끊임없는 번뇌망상, 근심걱정, 불안초조가 이어집니다. 모두를 인연에 맡기고 나면 홀가분해집니다.

저도 금강선원에 와서 산지 7년이 되었습니다. 임기 4년이 지나고도 오실 후임스님이 없어 몇 년간 더 지냈는데 그래도 할 일이 많은데 못다한 일들이 너무 많아 마음만 무겁습니다.

마침 이번에 후임스님이 오셔서 인수인계를 상의하고 있습니다.

(수연행隨緣行이라, 인연 따르자고) 마음이 한결 홀가분 하면서도 다 마치지 못한 불사 때문에 미련이 남습니다. 후임스님이 하던 공사까지는 봐 주시라고 해서 그러자고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실상 그렇질 못했습니다. 같은 벽암록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사 경잠스님의 게송입니다.

“백척간두 좌저인百尺竿頭 座底人 수연득입 미위진雖然得入 未爲眞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시방세계 시전신十方世界 是全身”백척간두 꼭대기에 주저 앉은 사람아 비록 도에 드나 참다움은 못 되나니, 백척간두 그곳에서 한걸음 더 내딛어야 시방세계 그대로 부처님의 온몸일세.

공부나 삶이 백척간두 꼭대기까지 갔으니 이미 상당히 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거기까지 갔다 해도 거기서 머물러 버린 사람, 백척간두에 올라가서 거기에 걸려버린 사람은 비록 깨달았다 하더라도 아직 참다운 것은 못된다는 말입니다.

공부를 해서 어느 정도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로서 다 끝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백척간두에서 오히려 한발 더 내딛어야 한다. 그래야 시방세계가 바로 참다운 자기요, 부처의 장엄법신이라는 게송입니다.

‘백척간두 진일보’여기서 해석이 구구해집니다. 마지막 끝까지 갔는데 한걸음 더 나가란 것은 공부나 수행이나 성과나 모든 것에서 벗어나라는 해석과 뒤로 한걸음 돌이켜 중생을 보살피라는 해석입니다. 어떻든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자만하지 말고 모든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첫걸음을 살펴 볼 것입니다.

‘초발심으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우리 불가에서도 일고 있습니다. 처음마음, 소년소녀시절의 순박하고 진실 되었던 마음들을 돌이켜 봅니다. 날이면 날마다 웃음 꽃피는 밝고 빛나는 하루하루가 되어지길 기대합니다.

 

 

출처 : LA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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