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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3. 수행자료

권수염불문(2)

권수염불문(2) 


♣ 제7장 염불이 능히 번뇌를 끊는다.


번뇌의 해가 심히 큰데 근본 번뇌와 지엽번뇌가 있다. 근본과 끝이 거듭 거듭하여 종류가 무량하다. 번뇌 두 글자를 잘못해석 하여 역경을 만나 마음이 평안하지 않는 것을 번뇌라 부르는데 실상은 번뇌 두 글자가 거칠고 미세한 미혹심의 합친 이름인데 탐심, 진심, 치심, 만심, 의심, 사심 이 여섯 가지 근본번뇌가 능히 일체 지엽 번뇌를 내는 것이니 해태심, 방일심, 혼침심, 산란심, 부끄러움이 없는 마음, 아첨하는 마음, 시기하는 마음은 모두 지엽번뇌로서 중생의 성품을 어지럽게 하므로 번뇌라 한다.


번뇌는 고통의 원인이 되고 생사는 고통의 과보가 되는 것이니 고통의 결과를 여일수가 없다. 모든 중생이 번뇌를 일으켜 여러 가지 업장을 짓고 업장으로 말미암아 생사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발심 염불하여 번뇌를 끊고 생사를 마칠 것이다. 번뇌는 중생 마음의 병이라 몸의 병은 의사가 고칠 수 있지만 이 번뇌 마음병은 의사와 약품도 효력을 볼 수 없고 다만 우리 부처님이 말씀하신 염불 법약이 능히 번뇌심병을 고치는 것이다. 번뇌가 비록 많으나 두 가지로 나누니 하나는 내라는 번뇌요, 둘째는 법이라는 번뇌다.


내라는 번뇌는 곧 일체 중생이 이 몸을 실제 나라고 몸을 삼고, 모든 법이 본래 내가 없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한다. 이 몸과 마음은 오음이 모여 된 것이라 어찌 실지로 내라는 것이 있을까 법집 번뇌라 하는 것은 일체중생이 세간에 모든 법을 잡아 실다운 법이라 하나 모든 법이 본래 실답지 못하여 공중의 꽃이나 꿈속의 경계와 같아서 실체가 없는 줄을 알지 못한다. 허공에는 본래 꽃이 없는데 눈병으로서 망령되게 복고 꿈 가운데 경계는 잠자는 자가 망령스럽게 보는 것이다. 무슨 실상이 있으리오. 세간의 모든 법도 이와 같은 것이다.


금강경에 무릇 모양 있는 것은 다 허망한 것이라 하셨다. 중생이 미혹하여 모든 법을 잡아 진실한 법이라고 하여 능히 법이 공한 진리를 장애한다. 이 두 가지 번뇌는 모두가 허망한 분별심에서 나는 것이니 만일 방편으로 다스리는 법이 없으면 이 번뇌를 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석가여래께서 중생의 근기를 보아 이 염불 법문을 설하시니 아미타불 명호를 생각하는 것은 한 생각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없애는 것이다.


망념이 없어지면 번뇌가 절로 끊어지는 것이니 일구 아미타불 명호는 금강당의 보배 칼과 같고 번뇌 망념은 도적과 같나니 도적이 올 때 보검을 들면 도적은 물러가는 것이다. 염불하는 법도 이와 같아서 탐심번뇌가 일어나거든 곧 일심으로 염불하면 탐심이 저절로 쉬고 진심과치심이 날 때도 모두 이와 같아서 오로지 염불하여 일심불란하면 일체번뇌가 깨끗이 없어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염불법문을 믿지 아니하고 염불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니 일구미타 명호는 가히 생각지도 못할 신력을 갖추어 능히 일체 번뇌 마음병을 다스려서 아가타약이 능히 중병을 치료함과 같은 것이다.


세간의 약도 특수한 효험이 있거늘 하물며 만덕이 갖춘 아미타불 명호를 염하여 큰 이익이 없겠는가? 내가 혹 역경을 당할 때에 마음의 번뇌가 생기면 경행하면서 염불하되 네 걸음에 한 소리씩 돌아다니면서 염불하면 점차 마음이 청량해져서 번뇌가 자연히 쉬고 또는 일이 많아서 마음이 요란하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때에도 또 전심으로 염불하면 곧 몸과 마음이 편안해 잠이 들고 또 경을 쓸 때 한자 쓰고 한번 염불하면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고 망상이 없어져서 오래 써도 괴로운 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자들에게 경을 쓰면서 염불하기를 가르쳤더니 그 말을 따라 수행하는 자가 많으며 이로 인하여 염불이 많이 선양되었다. 그러므로 전심으로 염불하여 끊어지지 않으면 마음은 비고 경계가 고요하여 자연히 번뇌가 나지 않는다. 혹 말하되 염불하여 서방에 나고자 하는 것은 극락세계 락을 탐하는 것이니 탐심은 근본 번뇌 중에 첫째 번뇌라 탐심을 제하지 못하고 어찌 염불이 번뇌를 끊는다하는가?


답하되 탐의 이름은 같으나 탐의 실체는 같지 않다. 세상 사람은 세상물질의 락을 탐하는 것이니 그 낙은 반드시 고통을 부르는 것이라. 이 탐은 곧 생사 근본이 되지만 이제 염불하여 왕생코자 하는 것은 극락의 락을 탐하는 것이니 그 락은 능히 고통을 여의는 것이다. 이 탐은 해탈법이 되나니 부처님께서 염불을 가르침은 바로 근기를 보아 가르치는 것이라 중생들이 빛, 소리, 냄새, 맛, 촉감의 다섯 가지를 탐착해서 생각 버리지 못하고 고통뿌리로 낙을 삼으므로 염불을 가르쳐 사바세계 고를 벗어나고 극락의 낙을 받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야 말로 진실한 낙이 아니겠는가.


내가 평소에 좋은 누각과 공원 좋은 나무를 보고 마음으로 부러운 마음이 나면 서방의 경치를 생각하여 빨리 염불하여 왕생하기를 발원하고 혹 묘한 소리를 들으면 곧 극락의 보배그물에서 나는 미묘한 소리로서 여러 가지 풍악소리와 같은 줄로 생각하고, 혹 좋은 냄새를 맡으면 곧 극락의 연꽃과 나무의 향기가 진동함을 생각하고, 혹 좋은 의식을 보면 극락의 옷을 생각하면 옷을 얻고 밥을 생각하면 밥을 얻게 되는 자연의 미묘함을 생각하고 그 육진 경계에 대하여도 극락세계 장엄을 생각하면 탐심이 절로 없어진다. 이제 사바세계와 극락세계의 수행을 비교해 보면 사바는 어렵고 극락은 쉽다.


대략 열 가지를 드는데 하나는 이 세계는 항상 부처님을 만나지 못하는 고가 있고 저 세계는 꽃이 피면 부처님을 보아 항상 친근한 락이 있다. 이는 이 세계는 불법을 듣기 어려운 고가 있고, 저 세계는 물과 새와 나무가 다 법문을 설하는 락이 있다. 삼은 이 세계는 악한 벗이 괴롭히는 고가 있고 저 세계는 상 선인이 모여 사는 락이 있다. 사는 이 세계는 부처님이 호념 하시어 마구니가 없는 락이 있다.


오는 이 세계는 윤회가 쉬지 않는 고가 있고 저 세계는 윤회를 벗어나 생사가 없는 락이 있다. 육은 이 세계는 삼악도를 면하기 어려운 고가 있고 저 세계는 길이 악도를 떠나 악도의 이름도 듣지 못하는 락이 있다. 칠은 이 세계는 여러 가지 수도를 장애하는 고가 있고 저 세계는 경영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수용하는 락이 있다. 저 세계는 수명이 부처님과 같이 한량없는 락이 있다.

구는 이 세계는 수행하다가 물러나는 고가 있고 저 세계는 정정취에 들어서 물러나지 않는 락이 있다. 십은 이 세계는 성불하기 어려운 고가 있고 저 세계는 일생보처에 올라 빨리 성불하는 락이 있다.


이렇게 보면 염불하여 왕생하기를 구하는 탐심은 크게 탐이 되는 것이니 곧 이 한 가지 탐심이 탐, 진, 치 등 일체번뇌의 마음병을 끊는 것이다. 사람마다 능히 왕생극락함을 탐구하면 즉 오욕 경계의 탐심이 나지 않을 것이니 비록 탐심이라는 이름은 같지만 실제로는 같은 탐으로 볼 수가 없다. 내가 일찍이 글을 지었는데 들어보라.


"백년 세월이 얼마나 되는가.

그대에게 일찍 아미타불 염함을 권하노니

사바오탁을 탐하지 말라

극락세계 연화대가 제일 좋으니라."


♣ 제 8장 염불이 빨리 생사를 벗어난다.


세상의 큰 고통은 생사보다 더함이 없으니 나면 몸이 있고 몸이 있으면 많은 고통이 생긴다. 노자 말씀에 "내게 큰 걱정이 있는 것은 내가 몸이 있는 까닭이다. 내가 만일 몸이 없으면 무슨 걱정이 있으리오." 했고, 부처님 말씀에 "몸이 곧 생사 고통의 결과라 무량겁으로 오면서 몸을 버리고 몸을 받을 적에 한량없이 많은 생사를 받아서 육도에 윤회하고 과보를 받고 얼굴을 고쳐 잠깐 났다가 잠깐 죽는 것을 벗어날 수 없었더니 이제 다행히 사람이 되었고 염불법문을 만났으니


용맹심으로 닦을 것이요. 이날저날 미루어서 일생을 허송하지 말지어다. 옛 스님 글에 "이 몸을 금생에 제도하지 못하면 다시 어느 생에 이 몸을 제도할것인가" 하셨다. 이 몸을 제도 하고자 하면 반드시 수행을 할 것인데 육도 중에 다른 길은 수행이 어렵고 오직 인도가 적합하다. 천도는 천당의 오욕 락이 수승함으로 락을 집착하여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니 마치 부귀한 사람이 수행을 즐겨하지 않음과 같다. 아수라도는 진심이 성해서 전쟁을 좋아하고 수행을 즐겨하지 않는다.


지옥도는 업장을 따라 받음으로 정신이 혼미하여 수행하지 못한다. 아귀도는 굶주리는 불이 치성하여 항상 음식만 생각하고 수행을 못한다. 축생도는 어리석어서 자고 먹을 줄만 알고 수행하지 못한다. 배상공 말에 "마음과 생각을 바로해서 깨닫는데 나아감은 오직 인도가 좋다"고 했다. 우리들은 이미 사람이 되었으니 만일 수행하지 못하면 생사를 어느 때에 마칠 것인가 생사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분단생사이니 범부가 육도를 윤회하는 생사이다.


중생이 각각 업을 따라 몸을 받아서 몸이 크고 작은 얼굴과 수명이 길고 짧은 분한이 있다. 둘은, 변역생사이니 삼계생사의 몸을 여위고 성불의 길에 들어가는 성자가 받는 삼계 밖의 몸이라 변역이란 말은 앞의 몸을 변해서 다른 몸을 취하는 것이다. 이런 성자는 무루대비원력이 있으므로 분단생사의 더러운 몸을 변해 미묘하고 무한한 몸을 받는 것이다. 삼계안의 중생들이 생사를 벗어나는데 세로 뛰어 넘기는 어렵고 가로 뛰어 넘는 것은 쉽다.


무엇을 세로 뛰어 넘는 것이라 하는고? 사람이 구차제정을 닦으려면 한 가지 정으로부터 한 가지 정에 들어가 차제로 올라 먼저 색계정을 닦는 것이니 초선은 이생희락정이요 이선은 정생희락정이요 삼선은 이희묘락정이요 사선은 사념청정정이요 다음에는 무색계정을 닦는 것이니 공무변처정과 식무변처정과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이다. 이 팔정은 세간의 누가 있는 선정이다.


제구 멸수상정을 얻지 못하면 능히 삼계생사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음 하나는 이 무루선정이니 이 아홉 가지 정을 순서로 들어가고 뛰어넘지 못함으로 구차제정이라고 한다. 중간에 무량한 세월을 지나서 구정을 완수해야 바야흐로 삼계를 세로 뛰어넘어 아라한과를 얻게 되는 것이다. 울두남불 선인이 비상비비상처 정을 닦아서 천복을 받다가 복이 다하여 떨어져서 비리의 몸을 받았다. 그러므로 삼계를 세로 뛰어 넘기가 어렵다하는 것이다.


무엇을 가로 생사를 뛰어 나는 것이라고 하는가? 염불하여 극락에 가는 것, 그것이다. 극락과 사바는 연화장세계 제십 삼층에 같이 있는데 연화장세계는 이십층으로 되어있다. 미타경에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를 지나 극락세계가 있다고 했으니 사바세계 중생이 염불공부가 성취되어 극락에 왕생하면 이것이 곧 가로 삼계를 뛰어나서 빨리 생사를 벗고 세 가지 불퇴를 증득하고 수명이 무량하니 이것이 최후의 몸이라 다시 생사를 받지 않지만 원력으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다른 세계에 가서 몸을 받기도 한다.


세로 삼계를 뛰어남은 개미가 높은 산에 오르는 것과 같고 가로 삼계를 뛰어남은 순한 바람에 배를 띄우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면 죽순 안에 벌레가 하나 났는데 죽순이 커서 대가 되어도 벌레는 대속에 있다.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만일 위로 나가려면 한마디를 뚫으면 또한 마디가 있고 또 여러 마디가 있어 아무리 뚫으려하나 힘이 약해서 끝까지 뚫지 못하고 결국 죽고 마는 것이니 이것은 중생이 구차제정을 세로 닦아 생사를 벗어나는데 비유한 것이요. 만일 벌레가 대껍질을 용맹스럽게 뚫으면 쉽게 밖으로 나올 수가 있다.


이것은 중생이 염불 법문을 닦아 가로 생사를 벗어나는데 비유 한 것이니 그 어렵고 쉬운 것이 천지 현격한 것이다. 염불법문이 빨리 생사를 벗어나지만 명이 마칠 때에 가장 큰 관문이 있다.

과연 평일에 신심과 원력이 깊고 간절하며 깨끗한 수행이 성취되어 일심불란을 얻으면 가히 미리 때가 되는 줄 알고 바른 생각이 들어나서 일체 경계와 인연에 걸림이 없어져서 그 왕생하는 것이 선정에 들어가는 것과 같으며 잠깐 동안 연꽃에 화생하여 세 가지 물러가지 않음을 증득하는 것이다.


만일 일심불란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도반들이 도우는 염불을 해서 정념을 도와줘야 왕생 할 수 있게 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임종 시에 여러 가지 일로서 마음을 요란하게 하여 정념을 잃어버리면 왕생을 못하게 되니 무릇 도반들과 집안 권속들은 이 이치를 잘 알아서 반드시 도우는 염불을 해야 한다.


재가 거사들은 평생에 염불하여 왕생을 원하였으면 집안일과 죽은 후에 여러 가지 일을 미리 권속에게 부탁하고 임종할 때는 일체 마음이 걸림이 없어야 한다. 애정으로 울고 슬픈 기색을 내어 병자의 마음을 요란케 말고 오직 염불만 도와 줄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틀림없이 왕생할 것이요. 이렇게 못하면 큰일을 그르치는 것이다.


♣ 제 9장 염불이 삼학을 구족한다.


염불에 네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실상염불이니 법신불을 생각하는 것이다. 법신은 정정하여 일체 법에 두루 하였으나 실로 형상이 없고 능히 생각하는 마음도 없고 또한 생각할 부처도 없이 능과 소를 같이 잊어버리고 마음과 부처님과 둘이 아니라 곧 마음이 부처요 부처가 곧 마음이라 생각 없이 생각 없이 생각하고 생각해도 생각이 없어서 맑게 항상 머무는 것이다.


둘째는 관상염불은 생략하고


셋째는 형상을 관하는 염불이니 즉 고요히 앉아 부처님의 형상을 관하는 것이다. 먼저 아미타불 미간 백호 상을 관하여 백호상 관이 성취되면 점차 부처님의 얼굴을 보고 다음에는 전신을 보아서 관이 성취되면 부처님의 상호장엄을 다 볼 수 있는 것이다.


넷째는 칭명염불이니 아미타경에 말씀하신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이다. 참구도 할 것 없고 관상도 할 것 없고 다만 일심으로 아미타불 명호를 불러 입으로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해서 마음과 입이 같이 되어야 하니 만일 입으로만 부르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하면 거두기 어렵고 마음은 생각하고 입은 소리 없어도 그것은 무방하다.


생각 생각이 서로 계속해서 끊이지 않으면 극락세계 칠보 못에 연꽃이 자라나서 날마다 광명이 더할 것이니 이것이 비록 정이 없는 중생이 발심 염불할 때에 서방에 있는 연꽃에 이름이 표시되었다가 임종 할 때 곧 그 연꽃 속에 화생하나니 이 연꽃은 곧 범부의 껍질을 벗는 신령한 궁전이요 지혜의 생명을 편안케하는 신기로운 집이다. 그러므로 다음날 정토의 연꽃이 피는 날이 사바세계에서 염불한 때인 줄 생각하라 한다.


내가 연전에 남경과 호남 호북을 다니면서 경을 설할 때에 밀종법사가 있어 밀종공부를 권하면서 소식을 할 필요가 없다하고 계율을 가지는 것은 소승을 행하는 것이요 대승은 상을 여윈 것 인데 무슨 계율을 가지고 범할 것이 있으며 부처님 계실 때도 비구에게 오정육을 먹으라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중생의 고기를 먹는 것은 곧 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라 한다. 이 말이 어느 경전에 나왔는지 알지 못하며 내가 알기로는 보살은 대자 대비심을 가졌으므로 일체 축생이 다 지각이 있어 나와 더불어 같은 몸이라 불성을 갖추었으니 어찌 차마 저것을 죽여 나의 구복을 채울 것이다.


만일 고기를 먹는 것이 저를 제도 하는 것일진대 일체중생을 평등히 제도할 것이다. 하필 도야지 양 닭 오리 고기만 먹어서 제도하고 지네와 전갈 구더기 종류는 먹어서 제도하지 않으며 또는 자기 권속은 어찌 먹어서 제도 하지 않는가. 이와 같은 삿된 말은 분명히 대중을 의혹시키고 육식을 탐하면서 계율을 파하고 자기도 죽이고 남에게도 죽이기를 가르쳐서 중생을 그르치고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예전 글에 "다생 겁래로 오면서 먹은 국물은 원수가 깊고 원한 풀기 어렵도다. 세상에 전쟁 나는 시절을 알고자 할진대 다만 도살장에 슬피 우는 소리를 들으라 하였다.


수행하는 다른 사람에게 살생을 경계하고 방생을 권하지 못할지언정 어찌 차마 고기를 먹어 다른 이로 하여금 살생케 하리오. 그것은 도무지 자비심이 없는 것이다. 진실히 수행하는 자는 사와 정과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고 인과를 깊이 믿으며 버리고 취함을 알 것이다 내가 평소에 다른 이에게 소식하고 염불하여 중생에 목숨 빚을 지지 말라 권하였는데 어떤 이는 말하기를 하늘이 만물을 내는 것은 사람을 위하는 것이니 일체 짐승은 사람에게 잡히어 먹히게 된 것이라 한다.


이 말은 참으로 삿되게 해석하여 많은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다. 만물이 진리법칙 가운데 나서 동물식물 광물 등이 각자가 스스로 난 것이요 남을 위해 난 것이 아니다. 일체 축생이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는 것은 사람과 다름이 없는데 만일 강한 자가 약자를 죽여 고기를 먹는 것은 반드시 큰 원수를 맺는 것이라 결정코 자기의 생명으로 빚을 갚아야 한다.


옛글에 "세상에 살육하는 시대를 면하고자 한다면 중생을 죽이지 않는데 에 있다" 고 하였다.

염불법문은 결정코 가벼이 볼 것이 아니다. 가장 간단하고 원만하고 미묘한 위없는 법문인 가위 대 다라니문 이라 할 수 있어 능히 일체 법을 거두고 무량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석가여래 사십구년 설법하신 것이 경, 율 , 론, 삼장에 지나지 않고 삼장에 말씀하신 것이 곧 계, 정, 혜, 삼 무루학이라.


경은 정학장이 되고 율은 계학장이 되고, 론은 혜학장이 되는데 일구 미타명호를 일심으로 생각하면 곧 계정혜 삼학을 구족 할 수 있으니 구 미묘함이 어떻다고 하겠는가. 염불이 어찌 계학을 갖추었다 하는가? 능엄경에 "마음을 잡는 것이 계가 되나니 계를 인연하여 정력이 생기고 정력을 인하여 지혜가 생기나니 이것이 곧 세 가지 무루학이다" 하셨다.


염불이 바로 마음잡는 법이니 중생이 제육의식 망상심이 생각에 육진경계를 반연해서 모두 산란한 것이니 저 망상이 색진을 반연할 때에 지어 모든 계율을 파하는 것이니 오진경계도 또한 이와 같다. 부처님이 중생에게 염불하라고 가르치신 것은 염불로서 망상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만일 망상이 색진을 대할 때에 곧 아미타불을 생각하며 깨끗한 생각이 계속하면 절로 색진 경계에 빠지지 않고 염불의 정념을 가지는 것이니 그 외에 오진경계도 이와 같아서 계율을 파하지 않는 것이다.


망심은 말과 같고 육진은 여섯 갈래의 말 가는 길과 같고 부처님 명호는 말고삐와 같고 염불하는 사람은 마부와 같나니 그 말이 여러 길로 달리고자 할 때 고삐를 잡아 돌리는 것이니 그 와같이 일심으로 염불하면 망념이 자연히 없어지는 것이다. 염불하는 마음이 생각 생각 부처님과 더불어 서로 응하면 모든 생각은 자연히 일어나지 아니하고 뜻이 깨끗하여 계율은 자연히 구족하는 것이다.


염불이 어찌 정학을 갖추었다 하는가? 미타경에 일일내지 칠일동안 부처님 명호를 불러 일심불란 한다 했으니 불란 하는 것이 곧 정이라. 일심이라는 것은 마음이 전일해서 잡념이 없음이요 불란이란 말은 맑고 고요해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과연 능히 염불하여 일심불란에 이르면 그 정력이 얼마만큼 되겠는가. 부처님이 염불을 많이 가르치신 것은 중생의 마음이 경계에 따라 변동하여 생각 생각에 분별이 나서 일어나고 꺼지는 것이 머물데 가없고 어지럽고 산란한 것이


끝이 없어서 눈이 빛깔을 볼 때에 좋으나 나쁘나 곧 따라가고 귀가 소리를 들을 때에 칭찬하든지 비방하든지 모두 소리를 따라가고 코로 냄새를 맡을 적에 향취가 나든지 악취가 나든지 모두 냄새를 따라가고 혀가 맛을 볼 때에 좋든지 나쁘든지 곧 맘ㅅ을 따라가고 몸이 촉감을 받을 때에 좋은 경계나 나쁜 경계에 모두 촉감을 뜻으로 여러 가지 법을 반연 할 때에 뜻이 맞든지 맞지 않든지 곧 법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 일심염불을 가르쳐서 중생으로 하여금 망념을 일으키지 않아 경계에 따라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만일 염불을 전일해서 마음이 바깥경계에 끄달리지 않고 깨끗한 생각이 계속하면 육근이 움직이지 아니하여 곧 삼매에 들어가는 것이다.


염불이 어찌 혜학을 갖추었다 하는가? 일체중생이 본래 부처라 부처의 지혜를 갖추었다. 석존께서 보리수밑에서 섣달 팔일 새벽에 샛별을 보시고 대도를 깨치시고 제번 탄식하시되 기이하도다 일체중생이 부처의 지혜덕상을 갖추었건만 다만 망상을 집착하여 능히 중득치 못한 것이니 만일 망상만 여이면 곧 스승없는 지혜와 자연의 지혜가 모두 나타날 것이라 하셨다. 석존께서 이런 이치를 아시고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의 지혜에 들어가게 하고저 사람으로 하여금 칭명 염불을 하도록 가르치신 것이니 이로써 망상을 여의고 지혜의 몸을 얻게되는 것이다.


중생이 비록 부처의 지혜를 갖추었으나 무명에 덮혀 망상 번뇌가 마음을 가려 본래 부처의 지혜는 나타나지 못하는 것이다. 마치 깨끗한 거울이 본래 밝지마는 때에 묻혀 광명이 날 수 없는 것과 같이 중생의 마음도 깨끗한 거울같으며 본래 갖춘 부처 지혜는 거울가운데 본래있는 광명과 같고 크고 작은 번뇌 망상은 거울의 때와 같은 것이니 거울의 때는 닦아야 깨끗해지고 마음의 번뇌는 염불하여야 없어지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염불을 가르치신 것은 곧 마음 거울을 닦아서 망상번뇌를 없애게한 것이니 다니고 머물고 않고 누울때에 일구 아미타미불을 여이지 않고 생각 생각이 끊이지 않으면 망상은 스스로 없어어져서 부처의 지혜가 자연히 생기는 것이다.


♣ 제10장 염불이 여러 근기를 포섭한다.


1. 출가한 사람이 염불하기 좋다.


이미 삭발하여 중이 되었으니 발심 수도해야 될 것이다. 은혜를 끊고 절에 들어와서 시주의 네 가지 공양을 받고 아무데도 걸림이 없으니 생사윤회의 괴로움을 생각하고 전심으로 염불하면 육근이 자연히 맑아질 것이다.


예를 들면 옛날에 국왕이 있어 외도는 고행하는데 비구의 청한함을 보고 염불하는 스님에게 묻기를 내가 보니 바라문은 고행 수도하는데 스님들은 다만 편안히 염불만 하고 있으니 어찌 서로 틀립니까? 스님이 답 왈 수도 하는 것은 몸에 괴롭고 괴롭지 않는데 있지 않고 생사심이 간절하냐. 간절하지 못하냐에 있는 것입니다. 스님 네는 비록 한가히 염불하는 것 같으나 생사를 벗어난다는 마음이 간절해서 육근을 막아 눈은 색을 보지 않고 귀는 소리를 듣지 않아 육근이 밖의 경계에 반연치 않습니다. 왕이 듣고 믿지 않았다.


스님이 그 뜻을 알고 왕에게 아뢰되 대왕은 내일에 궁녀들을 두 반으로 나누어서 한반은 동쪽 길가에 춤을 추게 하고 한반은 서쪽 길가 길가에 노래를 부르게 하고 사형수를 시켜 기름을 한 병 넣어 가지고 말하되 너의 죄는 당연히 죽을 것이나 네가 이 기름을 가지고 네거리로 가라하고 네 사람을 시켜 칼을 가지고 따라가면서 만일 기름이 기울어 흐르거든 곧 목을 베고 만일 기름이 흐르지 않으면 그의 죄를 풀어 고향에 보내주라고 하였다.


사형수가 생각하기를 오늘의 내 생명은 저 기름에 달렸다하고 정신을 집중하여 네거리를 지나갔는데 기름이 조금도 흐르지 않고 왕의 처소에 돌아오니 왕이 그 죄를 놓아 주었다. 스님이 왕에게 청하여 죄수에게 묻기를 네가 동쪽거리에서 무슨 아름다운 것을 보았는가? 대답하되 보지 못했습니다. 서쪽 거리에는 무슨 소리를 들었는가. 대답하기를 듣지 못했습니다.


왕이 성을 내어 가로되 나쁜 놈아 동쪽 거리에 궁녀의 춤추는 것과 서쪽 거리에 여자의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듣지 못했느냐? 대왕이여 내가 일심으로 기름병만 보았는데 어찌 다른 마음이 있으리오. 그러므로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왕이 스님의 말씀한 일심으로 염불하여 생사 해탈을 구하면 육근이 모두 거두어 진다는 말이 헛되지 않음을 깨달았다. 염불하는 사람이 생사심이 간절해야 참으로 염불인 이라 할 수 있다.


2. 여인도 염불하기 좋다.


여자의 몸을 받아 가정을 지키고 있으니 남자같이 바쁘고 괴로움이 없어서 염불 할 시간이 많고 또 여자는 부정한 월경과 생산의 고통이 있으므로 여신을 싫어하고 남자가 되고 져 하는 이도 있으니 이 사바세계는 여자가 변하여 남자 되기에는 진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세상을 수행하여야 되지만 만일 진심으로 염불하면 임종 시를 당하여 사바세계의 업은 녹아지고 정토인연이 깊어져서 연꽃에 화생하면 곧 바로 대장부의 몸을 얻어 수명이 무량하고 관음 세지 두 보살과 손을 잡고 같이 갈 것이니 어찌 쾌활하지 않을 것인가?


3. 총명한 사람도 염불하기 좋다.


총명한 이는 총명을 인하여 그릇됨이 많으니 다만 기묘한 것만 좋아하고 염불은 보통으로 생각하여 세상 지식만 구하고 진실한 염불에는 정신을 두지 않는다. 만일 총명한 재주를 불법에 돌려 정토 경전을 보고 염불 종지를 연구하면 칭명염불한 법이 제불의 호념과 조사의 권장이 되어 한 생각으로 많은 생각을 없애고 한 부처님을 의지 하여 깨끗한 마음을 증득하여 자성미타를 친견하고 유심정토에 날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으리오.


4. 어리석은 사람도 염불하기 좋다.


어리석으나 지혜 있으나 불성은 같은데 어리석은 이는 전생에 불법을 믿지 않아 의심이 많고 업이 중함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총명한 이는 일이 많아 염불하여도 일심되기가 어렵거니와 어리석은 이는 일이 적고 몸이 한가하여 염불하기가 좋다.


5. 부귀한 사람도 염불하기가 좋다.


생계에 걱정 없으니 염불에 전념할 수 있다. 또한 금생에 부귀한 것은 전생에 복을 지어 얻은 것이니 이 복을 수용하면서 발심 염불하면 현재와 장래에 큰 복락을 얻을 것이다.


6. 빈천한 사람도 염불하기가 좋다.


금생에 빈천한 것은 전생에 간탐하고 교만한 업을 인연하여 빈천 보를 받는 것이니 금생에 복업을 짓지 않으면 후생에는 이 보다 더 고통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 부끄러운 마음을 내어 착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업장이 녹아져서 현세에 복이 생기고 장래에 극락에 가는 것이다.


7. 노인도 염불하기가 좋다.


지는 해와 같이 앞날이 바쁘다. 줄어드는 물에 고기와 같으며 푸줏간에 가는 소와 같으니. 무슨 낙이 있으리오. 발심 염불하여 정토에 나야 할 것이다. 선도대사 글에 "피부는 점차로 닭 껍질과 같이 되고 터럭은 학 털이 되고 걸음걸이는 비틀 거린다. 가사 금옥이 집에 가득하여도 쇠잔과 노병은 면할 수 없고 천 가지의 낙이 있다 해도 무상은 결국 오고야 만다. 오직 빨리 수행하는 길이 있으니 다만 아미타불만 염하라" 했다.


8. 젊은 사람도 염불하기에 좋다.


몸이 건강하고 병 없을 때에 부지런히 염불하여야 한다. 아직 수행하기가 이르다고 말하지 말고 부지런히 염불하여 정토에 가는 양식을 준비하라. 봄에 푸른 버들을 잠깐 보았더니 잠깐 사이에 가을 국화가 누렇도다. 사람의 몸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쉬고, 좋은 때 만나기는 어렵고 가기는 쉽다. 늙어서 도 배운다고 이르지 말라 외로운 무덤은 젊어서 간사람 것이 더 많다.


9. 자식 있는 사람도 염불하기가 좋다.


옛말에 "곡식을 쌓아 주림을 방지하고 자식을 낳아 노인을 봉양한다." 했으니 이제 자식이 장대하여 가옥을 맡겼으니 만 가지 인연은 모두 놓아 버리고 일심으로 염불하여 정토에 나기를 구할 것이다. 자손은 자손의 복이 있으니 자손을 위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 자손이 만일 복이 있으면 부모의 유산이 없더라도 능히 스스로 성가 할 수 있지만 자손이 만약 복이 없으면 만금을 남겨 주더라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니 자손에 대해서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염불에만 전념하여 후생 길을 닦을 것이다.


10. 자식이 없는 사람도 염불하기 좋다.


자식이 있으면 여러 가지 부담이 많아서 몸과 마음이 바쁘지만 자식이 없어서 한가하고 여유가 많으니 부부간에 같이 염불하여 정토에 왕생하여 무생 법인을 얻고 성불하게 되면 시방중생이 모두 불자가 되는 것이니 어찌 장하지 않을까.


♣ 제11장 염불이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


법문이 한량없어서 대승 소승의 구별이 있는데 소승은 다만 자기만 이롭게 하나 대승은 다른 이를 이롭게 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다. 혹 묻되 염불하는 사람은 고통을 싫어하고 낙을 구하여 사바세계를 버리고 극락에 나고자 하나 이것은 다만 이를 위하여 중생을 제도함으로 삼악도의 고통도 두려워하지 아니하여 고와 락을 모두 없어지는 것이니 염불이 어찌 대승행이라고 하리오. 대답하되 만일 발심하여 염불하지 않고 중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이익도 주지 못하고 자기에게 손해만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식이 물에 빠졌는데 급한 마음으로 방편 없이 물에 들어가 건지려고 하는 것은 두 사람 다 빠져 죽게 되는 것이니 그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염불하여 정토에 나기를 구하는 자는 정토에 나서 무생법인을 얻어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와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니 마치 물에 빠진 자식을 구원하되 배나 작대기나 방편을 준비하여 건져주면 두 사람 다 안전한 바와 같은 것이다.


대개 대승을 닦으려고 하는 자는 발심은 쉬워도 물러나지 않는 것이 어렵다. 사리불이 과거 겁중에 큰마음을 내어 보살의 다른 이를 이롭게 하는 행을 닦더니 그때에 하는 사람이 시험코자 바라문으로 변화하여 와서 울거늘 보살이 묻기를 어찌 슬피 우느냐? 답 활 우리 어머님이 병이 났는데 의원이 말하기를 만 가지 약이 필요 없고 오직 도인의 눈동자를 삶어 먹어야 낫는다 하는데 구할 수가 없어 그럽니다.


보살이 생각하기를 부처님은 과거에 보시를 행할 적에 머리와 눈과 몸뚱이를 아끼지 아니하고 중생을 구원하였으니 나도 이제 큰마음을 내었으니 나의 눈을 보시 하리라 생각하고 말하기를 울지 마라 나의 눈을 줄 것이니 어머니의 약을 해드려라 하고 곧 손으로 오른쪽 눈을 빼어 주니 바라문이 또 시험하여 말하되 잘못되었습니다. 의사 말에 왼눈이라야 되고 오른 눈은 안 된다고 합니다. 보살이 생각하되 이미 보살심을 내었으니 더 인색할 것이 업다 생각하고 왼눈을 빼서 주니 바라문이 받아 가지고 냄새를 맡으면서 이 눈이 흉악한 냄새가 나니 어찌 야기 되리요하며 곧 눈알을 땅에 던져 버렸다.


보살이 마음이 움직여 중생은 제도하기가 어렵다 하고 탄식하는 바람에 큰 보리심을 잃어 버렸으니 이것은 무생법인을 얻지 못한 까닭이다. 만약 대승을 수행해서 중생을 제도 하려면 반드시 염불하여 정토에 나서 부처님을 뵈옵고 법문을 들어 무생법인을 얻은 후에 다시 티끌 세계로 다니면서 중생을 제도하여 같이 윤회를 벗어나고 같이 극락에 가는 것이니 이것이 참으로 대승의 이타행이며 보살의 환상회향이다.


만일 염불하지 않고 정토에 나지 않으면 비록 큰마음을 내어도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거늘 어찌 남을 구원할 수 있으리오. 오직 전심으로 염불해서 목숨 마칠 때 까지 하면 안으로 자기 염불의 힘을 얻고 밖으로 아미타불원력의 힘을 가피입어 두 힘이 합하면 결정코 왕생하여 부처님을 뵈옵고 법문을 들어 무생법인을 증득하며 그런 후에 사바세계에 돌아와서 육신통을 나투고 사섭법을 행하여 중생을 인도하여 함께 극락에 나서 자유로 왕래하며 큰 불사를 짓고 네 가지 은혜를 보답할 것이다.


0 네 가지 은혜


첫째,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다.


부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무량겁으로 오면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여 우리가 혼미할 때에는 부처님께서 잘 지도하시고 우리가 업을 지을 때는 부처님께서 불쌍히 생각하시고 악도에 빠졌을 때는 구제해 주시고 사람이 되었을 때는 정법을 일러 주셨으니 이 은덕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우리가 즐거이 염불 수행하여 자기를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여 정토 법문을 널리 펴 중생으로 하여금 삼계를 뛰어넘어 성불시키는 것이 참으로 부처님 은혜를 갚는 것이다. 예전 글에 이르되 가사 부처님을 이마에 이고 무량한 겁을 지내도록 몸을 자리를 삼아 대천세계를 돌아다녀도 만일 법을 전하여 중생을 제도하지 못하면 이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라 하셨다.


둘째, 부모 은혜를 갚는다.


슬프고 슬프도다. 아버지 어머니의 나를 낳으시면서 너무 고생하셨다. 은혜를 갚고자 하면 하늘도 다함이 없도다. 하셨다. 아버지는 나를 기르고 나를 가르칠 적에 어떠한 고통도 잊어버리고 나를 보배 같이 사랑하고 흉년에 곡식같이 귀하게 여기셨다. 어머님은 열 달을 태에 품고 삼년을 젖 먹이며 쓴 것을 삼키고 단것은 토하여 먹이며 마른자리 진자리 가려 뉘시고 부정한 것을 씻어주고 끝까지 돌보아 주셨으니 설사 법대로 하더라도 부모의 은혜를 다 갚지 못하는 것이니


반드시 정토에 왕생하여 무생법인을 증득하고 이 세상에 다시 돌아와 부모를 제도해 서방극락 정토에 왕생케 하여야 부모 은혜를 갚는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우리들이 무량겁으로 오면서 몸을 버리고 몸을 받을 적에 날 때마다 부모가 있어 혹 사람도 되고 혹 악도에 나서 권속의 인연을 알지 못하거니와 만일 정토에 왕생하여 육신통을 얻으면 홀로 금생 부모만 제도할 뿐 아니라 능히 다생부모를 모두 제도 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참으로 효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스승의 은혜를 갚는다.


부모는 나를 낳으시니 육신 부모가 되고 스승은 나를 가르치시니 법신 부모가 된다. 만일 스승이 없으면 나의 지식을 개발 할 수 없고 학문을 성취할 수 없는 것이니 스승의 은혜가 부모 은혜보다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은혜를 갚으려면 오직 정토에 나서 나와 남을 제도하여야 될 것이다. 저 구마라습 법사가 처음에 반두달다 법사를 스승으로 하여 소승을 배웠고 뒤에 소리야수마 법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대승을 배워 법성 이체를 알고 소승 배운 것이 그릇된 것을 깨달아


먼저 스승을 생각하고 스님을 찾아가 대승진리를 말씀하여 스님으로 하여금 깨달아 이익을 얻게 하였다. 이에 그 스님이 제자였던 구마라습 법사에게 도리어 스승이라고 절하거늘 구마라습이 감히 받지 아니하므로 그 스님이 말하기를 나는 너에게 소승을 가르친 스승이요 너는 나에게 대승을 가르친 스승이라 하였다. 구마라습법사 같은 스님은 가히 스승 은혜를 갚았다 할 수 있다.


넷째는, 중생의 은혜를 갚는다.


누가 묻되 중생들이 나에게 무슨 은혜가 있는가? 대답하되 농부에게 밥을 얻고 직녀에게 옷을 얻고 백가지 물건을 모두 남에게 얻어 수용하니 그 은혜가 많지 않은가? 또 말하기를 돈을 주어 사서 쓰는데 무슨 은혜라 하는가? 답하되 아무리 돈이 있어도 중생들의 노력이 없으면 어떻게 사서 쓸 수 있겠는가? 또는 일체 중생이 나와 관계가 없는 것 같으나 저 밭을 가는 소와 밤을 지키는 개도 나에게 다 은혜가 있는 것이니 마땅히 은혜를 갚아야 될 것이다.


정토에 나는 것이 자기를 제도한다 하나 실지는 모든 중생을 널리 제도해서 그 은혜를 갚는 것이다 만일 무루법신을 얻지 못하고 보살의 중생제도 하는 행을 배우고 자함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치 부서진 배로 사람을 건지는 것과 같이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고 도리어 빠져 죽는 것과 같은 것이니 정토에 가서 무생법인을 얻어서 시방 일체중생을 제도해야 참으로 중생의 은혜를 갚는 것이다.


♣ 제12장 염불이 불도를 성취한다.


염불은 극히 쉬운 것이요 불도는 이루기 어렵다. 경에 " 삼아승지겁을 지내면서 육도만행을 닦아서 바야흐로 성불한다" 하는데 어찌 염불로서 쉽게 성불하겠는가? 답하되 수행법문에 한꺼번과 점차가 있으니 점차는 삼아승지겁으로 수행하고 백겁으로 원인을 닦아야 바야흐로 성불하거니와 한꺼번에 한다는 것은 아승지겁을 지나지 않고 빨리 법신을 얻는 것이다.


염불은 곧바로 생사를 뛰어넘고 빨리 성불하는 원돈법문이다. 여러분이 다만 즐거이 염불하지 않음을 걱정하노라. 생사를 겁내지 않으면 성불하기 어려운 것이니 한평생을 부지런히 염불하면 결정코 불과를 얻을 것이다. 광명 성도대사 말씀에 "원하노니 모든 사람은 잘 생각하여 다니나 머물거나 앉거나 누우나 밤낮없이 부지런히 염불하여 목숨 마칠 때 까지 계속하면 이 목숨 마치자 곧 왕생하여 길이 함이 없는 락을 받고 필경 성불할 것이니 어찌 쾌활하지 않을까" 하셨다.


선도대사는 한평생 염불법문만 온전히 닦았는데 한번 염불하면 한광명이 입에서 나오고 백번 천 번 해도 광명이 계속 나왔다. 연종 사조 법조대사는 오대산 대성 죽림사에서 문수 보현 두 보살을 친견하였는데 두 보살께서 금색 팔을 펴서 사조 이마를 만지시고 머지않아 무살불도를 이룰 것이니 선남자 선여인들이 빨리 성불을 원하는 이는 염불보다 뛰어난 것이 없느니라." 하셨다.


염불하는 사람은 모든 부처님의 호념하심과 아미타불이 원력으로 거두어 주심을 입어 목숨이 마칠 때에 정토에 왕생하여 불퇴지에 올라 자유로 수행하여 바로 성불하는 것이다. 아미타경에 중생이 정토에 나는 자는 모두 물러가지 않는 자리에 오르고 그 중에 일생보처에 이른 이도 많다고 하셨다. 일생보처는 곧 보살의 가장 높은 지위로 곧 성불하실 분들이 있는 곳이다. 이것은 사실에 대해서 말한 것이요 만약 이치로서 말할진댄 염불 공부가 깊어져서 생각 없이 생각하고 생각하되 생각이 없어지면 마음과 부처가 원융하고 나와 남이 둘이 아니어서


한 생각이 서로 응하면 생각 생각이 모두 부처라 유심정토를 증득하고 자성미타를 친견하여 곧 성불하는 것이다. 누가 묻되 염불 왕생하는 것이 확실한가? 답하되 신원행 세 가지 자료만 구족하면 기필코 왕생 하느니라. 영명 선사 글에 닦아 만 명이 모두 극락에 간다. 참선만 하고 염불을 안 하면 열사람에 아홉은 미끄러진다" 하셨다. 왕생집에 출가나 재가한 사람이 염불하여 왕생한 자를 다 셀 수 없는데 임종할 때에 다 증험이 있다. 혹 미리 갈 때를 알고 혹 단정히 않아서 가고 혹 몸에 이상한 향기도 나고 혹 하늘풍악이 들리는 수도 있다 했으니 어찌 헛말이 있겠는가?


송나라 담주 땅에 황타철은 대장장이 직업을 하여 식구 네 사람이 은근히 생계를 유지해서 하루도 쉬지 못하고 심한 고생을 하였다. 항상 탄식하기를 전생에 복을 못 지어 금생에 고통을 받는다 하고 무슨 수행을 하고자 하나 수행방법을 알지 못하여 고심만 하였더니 하루는 한 스님이 그 집 앞을 지나는 것을 보고 집에 청해 와서 차를 대접하고 수행하는 방법을 물으니 스님의 말이 네가 내말을 믿지 않을까 두렵도다.


타철 이가 대답하되 대사님 가르침을 어찌 믿지 않겠습니까. 스님 말이 네가 고통을 떠나 락을 얻고자 하면 이 사바세계는 참된 낙은 없고 오직 아미타불 국토는 모든 고통은 없고 순전히 지극한 락만 있는 곳이다. 그 나라에 나고자 한다면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불러 생각이 끊이지 않으면 목숨이 마칠 때에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곧 그 나라에 왕생 하느니라. 바람 일으키는 기구를 당길 때에 한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고 밀 때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며 붉은 쇠를 꺼낼 때나 망치질 할 때에도 그 와같이 하고 망치질 안할 때도 염불하여 잠들기 전에는 염불생각을 놓치지 말고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아미타불과 함께 깨어나라.


이와 같이 만하면 틀림없이 임종 시에 극락에 왕생할 것이니 명심하라. 황타철이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해서 적극적으로 믿고 염불하며 철공 일을 겸해하였다. 옆에 사람들이 비웃기를 타철 이는 본래 고생하는 사람으로 다시 염불하는 고생을 더 붙였으니 이것은 혹 떼려다 혹을 더 붙인 것이라며 놀렸다. 타철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여러 날 염불하면서 더욱 신심을 내었다.


한번은 말하기를 이 염불법문은 진실로 나에게 유익하다 내가 평일에 화로 가에 있으면 그 뜨거운 고가 있고 붉은 쇠를 끌어내면 쓰라린 고통이 있더니 이제 염불하고는 완전히 뜨거운 줄도 알지 못하고 또는 괴로운 줄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더욱 정진하여 삼년을 지났는데 하루는 갈 때를 미리 알고 머리 깎고 목욕하고 옷 갈아입고 그 부인에게 이르기를 나는 오늘 우리 집에 간다.

부인 말이 당신 집이 어디 있습니까. 타철이 이르기를 이것은 우리 집이 아니고 우리 집은 서방에 있다하고 평소와 같이 화로에 쇠를 달구고 붉은 쇠를 꺼내면서 염불하고 게송을 말하되


" 정정당당히 망치질 하니 붉은 쇠가 단련되어 강철이 되도다. 태평이 멀지아니 하니 나는 서방정토로 가노라" 망치로 쇠를 치면서 나무아미타불 한소리를 크게 부르고 바로 서서 열반에 들었다. 소리가 나니 대중들이 그것을 보고 모드 놀래고 찬탄하였다. 이것으로 인하여 담주지방에 염불이 많이 흥왕 하였으니 이것이 미타접인 왕생의 상서가 아니겠는가.


능엄경 대세지보살 원통장에 "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을 염하면 현재나 다음에 반드시 부처님을 보아 부처님께 가기가 멀지않다" 하였다. 부처님께 가기가 멀지 않다는 구절은 염불하면 곧 성불한다는 뜻을 보인 것이다. 무엇을 현재 부처님을 본다고 하는고? 혹 진심으로 염불할 때에 아미타불과 극락세계를 보고 도 법문을 들었는데 나에게 경책하시기를 마땅히 스스로 수행하고 남까지 교화하여 염불정업을 닦으라 하심으로 서른여섯 살 부터 선과 염불을 같이 닦았으며 삼귀의계를 줄때나 혹 경전을 강설할 법회에 대중에게 발심 염불하여 정토에 나기를 원하라고


강력히 권하면서 말하기를 수행 중에는 염불이 가장 온당하니 마땅히 칭명염불로 정행을 삼고 여러 가지 착한 업을 도우는 행을 삼아서 정행과 도우는 행이 합해지면 마치 순한 바람을 만난에 돛대를 다는 것과 같은 것이니 정토에 왕생할 뿐 아니라 품위도 또한 높을 것이다.


혹 염불삼매를 이루면 정중에 부처님을 뵙는 것이니 저 연종 초조 혜원대사께서 여산 동림사에 계시면서 백련사를 모아 오로지 염불삼매를 닦으면서 삼십년을 삼문밖에 나가지 아니하고 정중에서 세 번 부처님을 뵈웠으나 묵묵히 말하지 아니했더니 당나라 이희 십이 년 칠월 그믐날 저녁에 반야대에서 공부하다가 아미타불의 몸이 허공에 가득하고 뚜렷한 광명중에 모든 화신 부처님을 관음세지 두 보살이 좌우에서 모시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또 물이 흐르며 광명이 열 네 갈래로 나누어 상하로 돌아 흐르면서 고와 공과 무상과 무아의 법문하심을 보았다.


부처님이 말씀 하시되 내가 본원력으로서 너를 와서 위로하노니 너는 칠일 후에 내 나라에 날것이라 하셨고 또 보니 백련사 원중 먼저 죽은 불타야사와 혜지 혜영 유민 등이 모두 아미타불 옆에 서 있으면서 말하되 스님은 일찍이 발심하셨는데 어찌 오시는 것이 늦었습니까. 한다. 이것은 모두 정중에서 부처님을 뵙는 증거다. 다음 팔월 칠일에 대중을 모아 고별하고 제자 법정과 혜보에게 이르기를 내가 이 산에 살면서 십일 년 중에 세 번 부처님을 뵈옵고 이제 다시 뵙었으니 내가 정토에 기필코 날 것이다.


곧 유서를 써놓고 단정히 앉아 열반하시니 진귀한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고 공중에서 음악소리가 들리더라. 제자들이 전신탑을 여산 서쪽 고개에 봉안하였다. 무엇을 다음에 부처님을 뵙는다 하는고? 만일 염불 공부가 성취되어 왕생할 때가 오면 명이 마칠 때에 아미타불께서 몸소 영접하심을 보는 것이니 다음에 부처님을 뵙는 것이다.


또 몸을 연꽃에 의탁해서 꽃이 피면 부처님을 뵈옵고 친히 부처님의 수기를 받고 무생법인을 증득하여 일생보처에 오르는 것이니 부처님만 뵈올 뿐만 아니라 또한 곧 성불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승한 법문은 생사의 업을 가로 끊고 빨리 깨닫는 언덕에 오르는 것이다. 누구나 고를 여의고 락을 얻으며 범부를 고쳐 성인이 되고자 하거든 마땅히 칭명염불의 일 법으로 유일한 위없는 법문을 삼아 종신토록 힘써 행할 지니라.


권수염불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