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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28-수증론⑤ - 행해상응(行解相應)

염불선이야기28-수증론⑤ - 행해상응(行解相應)


부처님 말씀을 볼 때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돌아서서 일상의 현실로 돌아오면 여전히 좋은 것을 보면 욕심도 나고, 남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화가 나는 상황에 맞닥칠 때면 부처님 말씀을 잘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만, 부처님 말씀을 우리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 구현하는 것은 얼마나 더 어려운 일인지 누구나 공감이 갈 것이다. 혹자는 수행을 한다고 해서 나무나 바위 같은 무정물(無情物)이 되는 것이 아니니, 중생의 욕심과 진심은 당연한 것이고 수행자는 거기에 집착하지 않으면 된다는 ‘무애행(無碍行)의 논리’를 내세우기도 하고, 혹자는 수행이 덜 된 탓이라며 수행의 부족함을 질책하기도 한다.


중국의 공자는 <논어>의 위정편에서 “나이 일흔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하여도 법도를 넘어서거나 어긋나지 않았다”는 말로 자신의 경험을 술회하였다. 이 말은 그의 나이가 칠순에 이르러서야 종심(從心), 즉 마음이 시키는 대로, 혹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여도 어떤 규율이나 법도. 제도. 원리 등을 벗어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우리사회의 윤리나 도덕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지켜야할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불교의 계율 또한 중생의 한계성을 벗어나기 위해 중생의 몸과 입과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 나갈 것인지에 대한 불교적 윤리도덕의 규범인 것이다.


초심자는 억지로 계(戒)를 지키지만 수행이 성숙해지면 나중에는 마음에서 저절로 계율에 어긋나는 욕구가 생기지 않아 공자의 말처럼 마음대로 행해도 계율에 어긋남이 없게 되는 것이다. 만약 오랜 세월을 수행해도 수행자의 내면의 변화가 없다면 수행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행해(行解)가 상응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알고 닦기 위해서는 행해가 상응해야 한다. 즉 닦아서 나아가는 행(行)과 교리를 이해하는 해(解)가 상응하여 일치되어야 바른 수행이 되는 것이다.


중국선종의 초조 달마대사는 ‘조사(祖師)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라는 질문에 ‘불심(佛心)을 사무쳐 깨달아 행해(行解)가 상응(相應)한 이가 바로 조사(祖師)’라고 답하고 있다. 이 말은 마음을 깨우쳐 앎(知)과 행동(行)이 합일(合一)되는 수행자라야 조사로 불릴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참된 스승을 만나기 어려운 시대에 우리는 자신의 공부를 어떻게 점검할 것인가? 스스로를 살펴 내 마음에 욕심이 얼마나 줄었는지 보면 될 것이다. 또 바른 스승을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가? 행해가 상응되는 이라면 스승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