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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24-수증론① 깨달음(悟)이란?

염불선이야기24-수증론① 깨달음(悟)이란?


혼자 마시는 차는 신령스럽고 서넛이 마시는 차는 멋스럽다 했던가. 요즈음은 혼자서 차를 마실 여유가 종종 있어 행복하다. 차를 마시기 위해 주전자에 상온의 물을 넣어 불 위에 올려놓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물이 끓어오른다. 주전자 뚜껑이 덜거덕거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의 수행이 물을 끓이는 것과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수행은 깨달음을 목표로 한다. 그럼 깨달음의 내용은 무엇일까? 초기불교의 사성제(四聖諦)는 고통을 소멸하기 위한 수행을 도성제(道聖諦)라 이름하고, 수행의 결과로 얻어지는 열반의 상태인 멸성제(滅聖諦)를 깨닫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대승불교 특히 선종에서 깨달음의 내용은 ‘내 마음이 본래 부처’임을 깨닫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러 경론(經論)을 살펴보면 깨달음에도 여러 단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깨달음은 크게 해오(解悟)와 증오(證俉)로 나눌 수 있고 증오도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해오는 이치로는 막힘이 없이 정견(正見)을 확립한 단계이지만 여전히 중생으로서 삼독심(三毒心)을 여의지 못한 단계로, 우리가 여행을 떠날 때 여행가이드북을 보고 여행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경험은 없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증오는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중생의 한계성을 극복한 성인의 지위에 입문하는 깨달음에 해당된다. 이 경계는 성인(聖人)의 지위로서 선가(禪家)에서 흔히 말하는 초견성(初見性)을 말한다. 그러나 과거 숙세(宿世)의 습기(習氣), 즉 과거 전생의 습관성은 아직 극복되지 못했음으로 깨달음에 의지한 수행을 더 필요로 한다.


두 번째는 구경각(究境覺), 즉 부처님의 깨달음에 해당되는 증오를 말하며 수행의 완성을 의미한다. 마치 어린아이가 처음 태어났을 때 모든 신체기관이 어른과 같이 갖추어져 있지만 그 힘이 충실하지 못해 세월이 지나야 어른이 되는 것과 같다. 이렇게 깨달음을 해오와 증오로 먼저 분류하고, 증오를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성인의 입문(入門)을 의미하는 깨달음과, 구경각에서의 수행의 완성을 의미하는 깨달음으로 다시 분류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얼음과 물과 수증기의 관계를 생각해 보자. 얼음과 물과 수증기는 똑같이 수소원자 2개와 산소원자 1개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얼음은 물이 섭씨 0도 이하에서 고체화된 상태를 말하며, 수증기는 물이 섭씨 100도에서 기화된 상태를 말한다. 바꿔 말하면 중생과 부처는 얼음과 물처럼 동일한 존재이지만, 존재의 형식만 다르게 보일 뿐이다. 10도의 물이 가열되어 80도 90도에 이르게 되고 100도에서 수증기로 기화되는 것을 볼 때, 온도가 1도씩 올라가지만 겉으로 보이는 물의 존재 형식의 차이가 없는 것은 점수(漸修)로 이해할 수 있고, 100도에서 물이 수증기로 기화하는 것은 돈오(頓悟) 내지는 돈수(頓修)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굳이 깨달음의 종류와 그 정의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이것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수행과 깨달음의 선후(先後)문제, 그리고 돈점(頓漸)문제에 대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