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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23-왜 염불선인가?

염불선이야기23-왜 염불선인가?

 

요즈음 세속이나 절집안 할 것 없이 교육문제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예전 같으면 IQ라는 지적인 능력을 측정하고 개발시키는 것이 주된 관심사였다면, 언젠가 부터는 EQ라는 감성지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감성교육이니 감성경영이라는 용어가 생기고 오히려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더 많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이렇게 사람에게 지성과 감성은 인간을 형성하는 두 가지의 큰 요소이다.

 

어릴 적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온 이야기로 기억된다. ‘큰 바위 얼굴’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로 ‘어니스트’라는 이름의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산골마을에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는데 그 마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마을 앞산에 큰 바위가 사람의 얼굴모양으로 생겼는데, 언젠가는 그 마을에 그 바위얼굴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위대한 사람이 태어난다는 이야기였다. 소년은 매일같이 그 바위얼굴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가 커서 그 분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나도 그 분을 닮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되어 고향에 돌아온 소년이 자신의 얼굴이 고향의 큰 바위 얼굴과 닮아있음을 발견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수행을 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말과 행동이 부처님처럼 닮아가고자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이 때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부처님에 대해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부처님을 감성적으로 그리워하며 그 분을 닮고자 노력하는 것이 참된 염불이요 염불선이다.

염불선이 다른 선법(禪法)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부처님을 생명으로 인식하고 감성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가령 우리가 어머니나 고향이라는 단어를 한 번 머리에 떠 올려 보자. 보통은 아련한 그리움과 함께 우리의 마음이 편안해짐과 유연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중생의 마음을 바꾸게 하고 감동하게 하는 것은 논리적인 지적 이해가 아니라 감성이다. 이렇듯 우리 중생의 지적인 측면과 정서적인 측면을 모두 활용해 수행하는 것이 염불선의 특징적인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흡사 자동차를 이용해 비유하자면 부처님에 대한 지적인 이해는 자동차의 핸들의 역할과 같고 부처님에 대한 감성적인 그리움은 자동차의 엔진의 역할과 같아서, 차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놓여 있어도 엔진이 힘을 내지 않으면 한발도 나갈 수 없고, 반대로 차의 방향이 엉뚱한 방향으로 놓여 있다면 엔진이 힘을 내면 낼수록 오히려 원하는 방향과는 더 멀어지는 결과를 초래하듯이, 부처님에 대한 바른 이해와 부처님을 그리워하고 닮아가려는 노력은 수레의 두 바퀴처럼 균형을 이뤄야만 효율적인 수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부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부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 그리워하고 닮아가려는 노력이 바로 염불이요, 염불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