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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광전스님의 염불선 이야기

염불선이야기19-중국의 선⑦ 신수

염불선이야기19-중국의 선⑦ 신수


홍인의 수제자로서 <육조단경(六祖壇經)>에서 남돈북점(南頓北漸)의 북점으로 묘사되어 혜능과의 대결에서 패배자로 그려지는 대통신수(大通神秀)는 진류위씨(陳留尉氏)출신으로 속성은 이씨(李氏)이다. 젊어서 여러 학문을 두루 공부한 후 625년 출가했다. 그의 나이 46세에 쌍봉산의 홍인선사를 만나 제자가 되었다. 홍인은 주야(晝夜)로 수행에 몰두하는 신수를 두고 “동산(東山)의 법은 모두 신수에게 있다”고 하였다. 스승이 입적한 뒤 형주(荊州)의 옥천사에 머무르며 크게 교화를 펼쳤다. 그의 명성은 중원에까지 미쳐 701년 측천무후는 그를 낙양으로 불러 공양을 하였다.


그 후 측천무후, 중종, 예종 등 세 황제의 국사로서 양경(兩京: 장안과 낙양)에서 포교를 하다가 706년 낙양의 천보사에서 입적하였다. 그 때 그의 나이는 백 살이 넘는 고령이었다고 한다. 중종은 대통선사라는 시호를 주었고, 그의 덕을 현창하기 위해 형주에 도문사(度門寺)를 세웠다. 장렬이 지은 비문인 ‘당옥천대통선사비명병서’가 있고 그의 저술로는 <관심론>이 있다.

그의 선사상을 살펴보면 <능가사자기>에서 신수가 측천무후로부터 “누구의 종지를 전법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기주의 동산법문(東山法門)을 계승하였으며 <문수소설반야경(文殊所說般若經)>의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소의(所依)의 전고(典誥)로 삼는다.”고 답하는 것에서 도신에서 홍인으로 이어지는 일행삼매를 계승함을 알 수 있다.


또 그의 저서로 알려진 <관심론(觀心論)>에서 ‘발심하여 불도를 구하려 한다면, 어떤 법으로 수행해야 옳습니까?’라는 질문에 오직 관심의 일법(一法)이 있으니 이는 제법(諸法)을 총섭한 올바른 성요(省要)”라고 설한다. 이는 도신의 수일불이(守一不移), 홍인의 수심(守心)을 계승한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관조하는 관심(觀心)의 법문인 것이다.


또 <관심론>에 “묻기를 경(經)에 설한 바에 따라 지심(至心)으로 염불하면 반드시 서방정토에 왕생함을 얻는다고 했다. 이 일문(一門)으로도 마땅히 성불하는데 왜 관심(觀心)을 빌어 해탈을 구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저 염불은 마땅히 정념(正念)해야 한다. 요의(了義)를 정(正)이라 하고, 불요의(不了義)를 사(邪)라 한다. 정념하면 반드시 정토국에 왕생하는 것을 얻는다.”라고 대답하고, 이어서 “일체제법(一切諸法)은 오직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다. 만약 능히 마음을 깨치면 만행을 두루 갖춘다.…마음을 깨치는 수도는 성력(省力)으로 쉽게 이룬다. 마음을 깨치지 못하는 자는 닦는다고 해도 공만 들 뿐이지 아무런 이익이 없다. 때문에 알라. 모든 선악은 다 자심(自心)에서 비롯된다. 마음 밖에 따로 구한다면 끝내 얻을 법이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전법보기>에서는 “인(忍: 홍인), 여(如: 법여), 대통(大通: 신수) 때에는 법문을 크게 열어 근기를 가리지 않고 일제히 빠르게 불명(佛名)을 염(念)하도록 하였다”는 것으로 볼 때 신수 또한 도신과 홍인의 경우처럼 칭명염불과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인정하고는 있지만, 자성청정심을 관(觀)하고 지켜나가는 실상염불(實相念佛)인 염불선(念佛禪)을 통한 유심정토(唯心淨土)를 지향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