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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마음의 고향

큰 스님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서(1)

* 마음의 고향 제24집에서

 

큰 스님의 숨은 이야기를 찾아서(1)


청화 큰스님의 검소한 삶과 수행


보영 스님(정광사) 구술


 큰스님께서 남미륵암에 계실 때 한겨울에 진보살님과 함께 친견하러 갔다. 조그만 방에서 수행하고 계셨는데, 부엌에 들어가 보니 밥을 해 드시는지 안 해 드시는지 모를 정도로 티끌 하나 없이 깨끗했다. 조그마한 판자 두 개가 있어 여쭈어 보았다. 밥 챙겨서 방에까지 들어올 필요 없이 부엌에서 그냥 드실 때, 하나는 깔고 앉는 것이고 하나는 밥상이라고 하셨다. 반찬이라곤 콩장과 김, 깨소금과 단무지가 다였다.


 큰스님은 도인이시기도 했지만, 문학적 소질이나 예술적 감각도 대단하셨다. 그래서 어디를 가시든지 무언가를 남기셨다. 예를 들어 아름다운 나무를 가꾸시거나 연못을 만드시곤 했다. 진불암, 상원암 등에 있는 한반도 모양을 한 연못도 스님이 직접 만드신 것이다. 무안 해운사에서 큰 스님 모시고 어머님과 같이 살았을 때다. 그때 내가 열 살 쯤 되었을 것이다. 큰스님은 날마다 탁발하러 나가셨다. 어느 날 초저녁 큰스님 마중을 나갔다. 한 2킬로쯤 걸어갔을 때 큰스님이 걸어오고 계셨다. 큰스님 손을 잡고 절로 돌아오고 있을 때, 하늘에는 초승달이 떠 있었다. 큰스님이 그 달을 보시고 말씀하시기를 “저 달이 꼭 아름다운 여인 눈썹 같지?” 하시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 언제나 표현을 참 아름답게 하셨다. 언제나 큰스님과 같이 갈 때는 손을 잡아주시고, 추운 날 걸어갈 때는 조그마한 나를 큰스님 두루마기 속에 넣어 감싸주셨다.


 큰스님께서 무안 혜운사에 계실 때다. 절 짓느라 진 빚을 갚으시려고 탁발을 다니시느라 고무신 뒤축이 갈라지자 손수 철사로 꿰매어 신고 다니셨다. 한번은 탁발을 다니시다 금산사에 들르셨는데, 철사에 발이 상해 피가 나는 것이었다. 진불암에 계실 때에는 한번 찾아뵈니 겨울에 삼베옷을 입고 계셨다. 이상해서 여쭈어보니, 남들에게 옷을 다 주어버리고 그 옷밖에 없다고 하셨다.


 백장암에 계실 때는 근처에 토굴을 짓고 수행하셨다. 돈이 없어 토굴을 얼마나 허름하게 지었는지 여름에 비가 많이 왔을 때 찾아뵈니 지붕이 줄줄 새어 방이 물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큰스님께선 물이 들어찬 그 방에 나무토막을 놓고 앉아 계셨다. 대중처소로 가시면 되련만, 시간낭비 하지 않고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시려고 그렇게 옹색함을 무릅쓰고 토굴에 계시는 것이었다.


 백장암에 계실 때 회갑을 맞이하셨다. 신도들이 회갑을 쇠어 드리려고 모여들어 이것저것 준비하는 기색이 보이자, 기어이 안 쇠시겠다며 절 밖으로 나가 버리셨다. 할 수 없이 우리끼리 회갑을 쇠었다. 다음날에야 절에 돌아오셨기에 어디 다녀오시냐고 여쭈어 보니, 부산에 가서 바닷가에 앉아있다 왔다고 하셨다. 그 추운 겨울에 말이다. 그렇게 검소하신 어른 밑에서 살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남에게는 보시해도 나를 위해선 못 쓰고 산다. 큰스님을 보고 배웠기에 검소하게 살 수 밖에 없다.

 큰스님은 작설차 한 잔 안 하셨다. 뭐 하러 시간 낭비하며 차를 늘어놓고 홀짝홀짝 마시느냐고 하셨다. 커피는 드셨다. 시간 들이지 않고 바로 마실 수 있으니까. 그렇게까지 철저하게 시간을 아껴가며 공부하셨다. 부산에 있는 한 보살님이 수백만원짜리 다구를 드리자 바로 나에게 줘버리셨다.


큰스님께서 벽송사에 계실 때다. 추운 겨울에 두텁게 쌓인 눈 속에 푹푹 빠지며 걸어서 찾아갔다. 하도 춥고 배고파 도중에 우동을 사 먹고 갔다. 친견하는데, 큰스님 눈에서 얼마나 빛이 나던지 쳐다보기가 어려웠다. 내가 우동을 먹은 게 얼마나 죄스러운지 큰스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 가 없었다. 큰방에서 같이 참선하시던 스님들 말씀을 들어보니, 연로하신 분들은 방을 하나씩 드리는데도 큰스님께선 큰방에 바랑 하나를 두고 대중과 함께 계신다고 했다. 그런데 취침 시간에는 대중들이 불편할까봐 일단 함께 누우셨다가 다들 잠이 들면 혼자 조용히 일어나 가부좌하고 계속 참선하신다고 했다. 그렇게 용맹정진하시니 모두들 존경할 수밖에 없다.


이 기록은2011년 1월23일 정광사에서 보영스님의 구술을채록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채록자 정의행, 최진호, 주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