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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선은 동심, 불심의 세계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선은 동심, 불심의 세계

 


 요즈음 미주사회에서는 선禪에 대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명상이나, 마인드 콘트롤, 스트레스 해소법, 마음 다스리기, 비파사나 등등의 정신세계 문제가 큰 관심사입니다. 그것은 우리 일상생활 가운데 너무나 많은 스트레스 압박 피곤함으로 오는 정신적 부담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현대 과학문명 물질문명은 발달되어 모든 것이 편리해지고 용이하여 풍부해진 반면에 우리 마음은 자꾸 조급해지고 좁아들며 고갈되어가는 현상으로 부족감과 불만족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켰습니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정신문화의 성숙도 균형을 이룬다면 고민 갈등의 문제가 없을텐데 한쪽에 치우쳐 물질문명만 추구하는 세상이 되어서입니다.

 선은 인류사상 모든 문화의 근본인 최고의 정신문화세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의 근본 생명의 근원을 추구하고 지향하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선이란 무엇인가?

 “우리 본래마음을 찾는 것이요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

 선의 자세, 선의 종류, 선의 방법 등 어떻게 하는 것이 참다운 선인가?

 참선을 한다면 따라오는 부수적인 효과는 어떤 것인가?

 왜 참선을 해야되는 것인가? 등등의 참선에 관한 궁금점을 알아보고 생각해보고 그대로 실행해보고저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한국의 서산대사는 『선가귀감』에서 “교시불어요 선시불심이라”했습니다. 불교란 부처님의 말씀이요 선은 바로 부처님 마음이란 것입니다. 선은 바로 부처님의 마음세계에 계합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마음이란 무엇인가?

 불심은 모든 괴로움 생과사의 괴로움까지 떠난 아무런 근심걱정 번뇌망상이 없는 우리의 본래 청정한 마음입니다.

 바다에 비유하면 겉표면은 풍랑에 휩쓸리지만 바닷속 깊은 곳은 아무런 움직임 없는 태고의 정적 그대로 고요하고 평안한 것입니다. 이러한 불심을 또 동심에 비유합니다.

 동심에서는 세상이 어떻다해도 아무런 근심걱정 없이 천진난만한 순수한 마음의 세계입니다. 그래서 선을 철학적으로는 순수직관의 세계라고도 합니다.

 우리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차츰차츰 세상에 물들어갑니다. 커간다 배워간다 알아간다 하는 것이 사실은 세상의 물정을 알아가며 희로애락과 이해득실에 따라 세상살이에 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고 많이 배웠다 하면 살아가는 수단방법에 능숙해지며 자기가 알고 배우고 경험한 것에 갇히어 추리하고 추측하고 상상하며 본래의 순수한 동심은 사라지고 영악하고 꾀만 느는 사람으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걱정 번뇌망상이 커지고 업은 쌓여가고 험악한 생활에 얽매어 동심의 세계는 아득히 멀어집니다.

 우리는 가끔 어렸을때 생각을 떠올립니다. 꿈많고 희망에 부풀고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순수하고 순진했던 소년소녀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다투고 싸움하고 울다가 엄마의 한 말씀에 눈물자국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친구들과 웃으며 뛰어놀던 시절이 그립습니다.

 젖먹이 시절 배고프면 울고 배부르면 웃으며 졸리면 새근새근 잠들어 아무런 근심걱정 없던 천사같던 애기가 부럽습니다. 그래서 어떤 도인은 “도란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것이다.”고 까지 합니다.

 더 어려서 엄마 뱃속에 있을때 더 이전 ‘부모미생전의 본래면목’을 이야기합니다.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 너의 본래 생명의 근원은 무엇인가? 생명의 근원을 찾는 일입니다.

 그래서 선은 불심으로 계합되는 것이요 동심으로 돌아가는 영아행이요 순수직관 세계요 우리 본래마음을 찾는 것이요 생명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출처 : LA중앙일보


2005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