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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선은 순수한 본래마음

【태호스님의 산사의 풍경소리】

   

  

  선은 순수한 본래마음


 

 우리는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면서 세상을 배우고 어른처럼 커나가는 것을 보며 자랑스레 생각 합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계산하도록 가르치고 요령을 알려주고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하게 해 이해타산적으로 꾀가 늘어가고 미움과 사랑이 극단적으로 되어가는 것을 봅니다. 결국 성장했다는 것이 한편으론 세상의 때가 자꾸 묻고 물들어 오염돼졌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선禪이란 순수한 본래마음을 말합니다.

 서산대사는 “선은 부처님 마음이요禪是佛心 교敎는 부처님 말씀敎是佛語”이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순수한 본래마음이 부처님 마음입니다. 그래서 선이란 부처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때 묻은 것을 다 털어버리면 본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 그 본래마음에서 흔들림 없고 변함이 없이 일정해지고 안정되어진 것을 선정禪定이라고 합니다.

 우리 엄마들이 애들을 어떻게 키울까? 서울에서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여섯 살 꼬마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기쁜 듯이 거리 구경을 하다가 어느 가게 쇼윈도 앞에서 그 안에 들어 있는 장난감을 보고 사달라고 조르며 떼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아이에게 여러 가지로 설명하면서 나중에 사주겠다고 타이르는데도 아이는 막무가내로 땅에 주저앉아 발을 비비며 울면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때 엄마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가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며 울음을 그치게 하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날 미국 영화를 보다가 똑같은 장면을 보았습니다. 미국아이도 똑같이 땅에 주저앉아 발을 비비며 떼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엄마는 아이를 그냥 놔두고 건물을 돌아가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는 얼마간 울다가 엄마가 안보이니까 그냥 일어나서 ‘엄마’하면서 엄마를 찾아갑니다. 그때 길모퉁이에 있던 엄마는 아이를 안아주고 아이는 안심한 듯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손을 잡고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장난감 때문에 엄마를 잃을 뻔 한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본래마음을 빼앗기기가 쉽습니다.

 불교를 공부한다는 것은 인생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정말 참된 나는 무엇인가? 참된 인생이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 그래서 우리는 지금 본래로 돌아가는 바라밀을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공부를 세 가지로 나누어 말할 때 삼학三學이라 합니다.

 삼학이란 계戒 정定 혜慧인데 이 셋은 따로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계로써 정이 생기고(이계생정以戒生定) 선정으로써 지혜가 생기는(이정생혜以定生慧) 것입니다.

 궁극적인 삶은 지혜로운 생활입니다. 참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선정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선정을 이루지 못하고 지혜롭다 하는 것은 일부분이요 옅은 지혜라 합니다. 또한 선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계戒가 없이는 안 된다는 상관관계의 말씀입니다.

 인간 존재로서의 의의와 가치관을 확립하여 널리 베풀고 지녀야할 도리에 어긋나지 않으며 참고 견디어내고 쉼 없이 나아가는 정진 등은 넓은 의미에서 계戒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변함없고 흔들림 없는 본래의 순수한 마음가짐을 이룬다면 선심禪心이 일정해지고 안정되어 선정禪定으로써 지혜가 발생됩니다.

 



출처 : LA중앙일보


2005년 10월 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