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모두가 다 마음이라
불교를 심종(心宗)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마음에 달렸다고 보는 것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출가수행자는 수행론에 대해 재가 불자님들보다 훨씬 더 깊은 관심을 두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몇 십 년 또는 평생 동안 수행론하고 씨름을 하다 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수행을 해도 수행론이 자기 마음에 안 맞거나 적성에 안 맞으면 결국 노이무공(勞而無功)입니다. 헛된 수고만하고 성과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런 것이 비단 출가 수행자에게 해당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재가 수행자라 하더라도 사업도 운영하고 애들도 가르치고 하는 와중에 공부를 해야 합니다. 재가 수행자도 마찬가지로 수행론이 자기 적성에 안 맞으면 역시 싫증이 나서 오랫동안 수행을 못합니다.
이렇듯 중요한 수행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불교에서는 인간성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불교를 심종(心宗)이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마음에 달렸다고 보는 것으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유물론(唯物論)이냐 유심론(唯心論)이냐 하는 문제는 인간의 역사상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주의나 북한의 주체사상 같은 것은 유물론을 기초로 성립된 것입니다. 유물론이란, 인간성이 물질 즉 몸뚱이의 반사(反射)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물론은 마음의 독립적인 영역이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유물론을 가지고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울 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 우리 몸뚱이라는 물질의 반사에 불과하다면 마음이 그렇게 존엄하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우려면 기본적으로 유물론 체제를 부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에 비해 불교는 유심론의 입장에 서 있습니다. 철학적인 술어로 이야기하면 구체적 유심론입니다.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라, 모두가 다 마음으로 되어 있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말하면 눈에 보이는 물질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우선 부정하기부터 합니다. 내 몸도 물질이고, 저 들에 보이는 풀 한 포기나 날아다니는 새나, 자동차나 공장이나 세상의 과학 문명이 다 물질로 된 것인데 어떻게 모두가 다 마음일 것인가?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대개 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오랫동안 수행을 했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는 것들이 우선 물질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오로지 마음이라는 만법유심(萬法唯心)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불교를 심종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모두가 마음뿐이라는 것이 불교의 대전제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네 마음, 내 마음’이라 하는 상대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우주의 본바탕으로서의 마음, 쉽게 말하면 성령(聖靈) 기운을 말하는 것입니다. 질료(質料)가 아닌, 공간성과 시간성과 인과율(因果律)에 얽매이지 않은, 즉 시공과 인과율을 초월하는 하나의 영체(靈體)를 가리켜서 마음이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 유심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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