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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0.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

11. 자성(自性)의 본질

11. 자성(自性)의 본질

 

 

 

 

자성(自性)ㆍ불성(佛性)을 깨닫는 것은 사실은 가장 쉬운 일입니다.

가장 쉬운 것을 잘 못 배우고, 잘못 느끼고 습관을 잘못 들여 어렵게 느껴지는 것뿐입니다.

자성이 우리를 남겨놓고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자성은 어느 한순간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부처님 법문 가운데 『화엄경(華嚴經) - 문수보살품(文殊菩薩品)』에 “신시보장제일법(信是寶藏第一法)”이라는 법문이 있습니다. 바른 믿음은 이 세상에가 가장 훌륭한 보배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바른 믿음이 부족하고 바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에 행동도 바르게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무지를 극복하고 바르게 믿어야 행동도 거기에 따라 순수하고 거룩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의 근본 성품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도 대부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교양이 있고 많은 수행을 했다 하더라도 인간성의 순수한 성품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범부 중생의 일반적인 보습입니다. 자기의 근본 성품, 즉 자성(自性)은 성자가 되어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성은 우리 인간성의 본래면목,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인간성의 순수한 자리입니다. 자성은 금생에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세나 현재나 미래에도 영원히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자성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습니다. 무시이래(無始以來)라, 과거에 시작함이 없기 때문에 비롯함이 없습니다. 무사무종(無始無終)이라, 시작도 끝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성의 본질입니다.

 

그러면 자성은 인간에게는 인간성의 본질이요 본래면목이지만, 다른 동물이나 일반 무생물들은 어떨지 의문을 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인간성의 본질인 자성은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무생물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본질인 동시에 실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절실한 것은 자성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성을 깨달으면 성자고, 깨닫지 못하면 범부 중생입니다.

 

자성이 이와 같이 소중하고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도리라고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은 너무나 어려운 길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성인들이야 업장이 가볍거나 업장을 소멸시킨 분들이고 수많은 전생을 거치며 많이 수행을 해서 금생에 성인이 된 것이지, 나 같은 사람이야 그렇게 될 수 없을 거라고 미리 포기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성의 본래 자리인 자성ㆍ불성을 깨닫는 것은 사실은 가장 쉬운 것입니다. 가장 쉬운 것을 잘못 배우고 잘못 느끼고 습관을 잘못 들여 어렵게 느껴지는 것뿐입니다. 자성이 우리를 남겨놓고 어디로 도망가는 것이 아니고, 자성은 어느 한순간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생명 자체가 바로 자성이고 불성이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가 되찾고 깨달아야 할 것이 불성인 동시에 자성입니다.

 

지장보상ㆍ나무아미타불ㆍ대세지보살 등, 수많은 보살님들의 이름도 많고 부처님 명호 많습니다. 우리가 내내 불러대는 그 보살님들이나 부처님 명호의 실상이 바로 우리 자성인 동시에 우주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성을 너무 소홀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내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소홀이 하는 것입니다.

 

조주스님 같은 분은 사람들이 자성을 추구하며 공부하는 것을 보고 “소를 탄 사람이 소를 찾고 있는 격”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본성이 자성입니다. 불성이나 자성이나 우리를 떠나 있는 것이 아닌데, 중생들은 잘못알고 불성이나 본래면목은 내 안이 아니라, 저 멀리 어딘가 먼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성이 저 피안이나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고 멀리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자성이 바로 불성이고 법성이며, 또 그 자리는 바로 생명 자체기 때문에 그 자리는 내 생명인 동시에 우주 생명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일은 밥 먹고 결혼하는 것보다 먼저 진리를 구하는 일입니다. 자성을 공부하면 일상생활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승화ㆍ장엄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 불경에도 나와 있듯이 자성이 내 성품이고, 우주의 성품이고 도리기 때문에, 자성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요긴한 일입니다.

 

자성ㆍ불성이라 하는 것은 이른바 만공덕의 자리입니다. 지혜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행복으로 보나, 어떤 자리보다 완벽한 것이 자성ㆍ불성 자리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근본성품을 향해 한걸음씩 나아갈수록 더 행복해지고 더 지혜로워지고 건강도 훨씬 좋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우주가 하나의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하나의 생명이 아닌 즉, 일원적(一元的)인 것이 아닌 이원적ㆍ삼원적인 말들은 모두가 진리가 아닙니다. 일원적인 진리를 알게 되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마치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처럼 뜨거운 화로에 들어간 눈이 금세 녹아버리는 것처럼 녹아서 사라집니다.

 

우주가 오직 하나의 생명인 것이고, 하나의 생명은 만덕(萬德)을 갖춘 자리입니다. 부처님이나 불교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다고 해도 불성ㆍ자성은 물듦이 없습니다. 도리어 학문을 많이 알고 이것저것 따지게 되면 자성을 성취하는 것에 더 소홀해지고 자성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명심(無明心)을, 무지한 마음을 떠나야 합니다. 학문을 많이 알지 못한다고 해서 무지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더라도 일원적인 우주의 생명, 내 생명의 본체를 모르면 무지한 것입니다. 무지ㆍ무명은 자신의 행복이나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만 고집하면 무명 때문에 또 다시 윤회의 길로 들어갑니다. 개나 소나 돼지나 그런 것도 본질적으로는 사람과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전생에 지은 업의 차이 때문에 잠시 개의 명을 받고, 소의 명을 받는 것이지 그 근본은 사람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옥 중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다생(多生)에 지은 업장만 녹이면 또 구제받을 수 있습니다.

 

우주가 하나의 생명이라고 생각하면 너와 내가 본래 둘이 아니고 성품으로 본다면 모두가 하나입니다. 우리가 모두 하나의 자리인 것을 안다면,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소홀히 대하는 이기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주의 도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성인들은 우리와 크게 다른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인들은 단지 우주의 도리 그대로 사는 분들입니다. 그리고 그 우주의 도리란 자성ㆍ불성을 떠나지 않고, 자성ㆍ불성의 도리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