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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0.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

9. 하나의 명호, 아미타불(阿彌陀佛)

9. 하나의 명호, 아미타불(阿彌陀佛)

 

 

수많은 부처님의 이름 가운데서도 “제경소찬(諸經所讚) 다재미타(多在彌陀)”라고 했습니다.

극락세계나 영혼의 세계에 대해 말한 모든 법문이나 경전가운데서 나무아미타불에 관한 법문이 제일 많다는 뜻입니다.

 

 

불교에는 보살들이 참 많습니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무수보살, 미륵보살… 불교에는 이렇게 보살이 너무 많으니까 어떤 사람들은 불교를 다신교(多神敎)라고 착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장보살, 문수보살 기타 등등 여러 가지 부처님의 명호가 있다 하더라도 본래는 모두가 다 하나의 자리입니다. 그 하나의 자리는 진여불성이라고 하는 자리, 바꿔서 말하면 법신불(法身佛)이라고 하는 자리입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단순히 불교에는 믿어야 할 부처님들이 많다고 생각해버리면 불교를 다신교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의 자리를 놓쳐버리면 그렇게 착각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그 하나의 자리를 왜 그렇게 수많은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 의문을 품습니다. 우리가 하다못해 금강산도 이름이 여러 가지입니다. 봄에는 빛나는 아침이슬이 마치 금강석과 같다고 하여 금강산이라고 부르고, 여름에는 봉우리마다 짙은 녹음을 볼 수 있다 하여 봉래산이라고 부르고,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을 나타내느라 풍악산이라고 부르고, 겨울에는 계곡과 바위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여 개골산이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산을 가지고 계절과 의미에 따라 이름을 달리 부르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이름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은 하나지만 그 하나의 자리가 품고 있는 공덕이 너무도 다양하고 무한하여 수많은 이름이 붙게 된 것입니다. 자비만 있고 지혜가 없다든가, 지혜만 있고 자비는 없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도 있고 지혜도 있고 각종 별스러운 공덕이 다 있기 때문에 하나의 개념으로는 표현을 다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비로운 쪽으로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고 지혜로운 쪽으로는 문수보살이라고 부르는 식으로 각각의 공덕을 인격화하여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사람처럼 김가가 따로 있고 박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인들은 부처님 사상이나 부처님 가르침은 모두가 다 하나의 도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법신(法身)이나 법성(法性)이나 진여(眞如)나 실상(實相)이나 실체(實體)나 중도(中道)나 모두가 다 같은 뜻입니다. 근기(根機)가 다른 만중생(萬衆生)을 제도하고자 이렇게도 표현하고 저렇게도 표현한 것이지, 각기 다른 것이 아닙니다.

 

바닷물에 비교하면 끝도 없이 광대무변한 바다는 바로 불성입니다. 그리고 바람에 따라 일어나는 파도는 근기가 다른 만 중생에 해당합니다. 파도나 바람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지만 바닷물의 성품은 조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우주는 불성이라고 하는 순수한 에너지, 순수한 생명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주라는 진여불성의 바다 위에서 작은 파도와 큰 거품이 제아무리 많이 있다 하더라도 그 근본은 다 똑같은 물입니다. 사바세계에서 사람이 되나 개가 되나 또는 지옥중생이 되나 모두가 다 불성으로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제법 거룩하니까 불성으로 되어 있지만, 지옥 중생이나 동물이나 식물 같은 것은 불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지만, 그런 구분은 인간적인 인식 범위에서 말한 것이지 근본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다 똑같이 불성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부처님을 부를 때 이렇게 부르든 저렇게 부르든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관세음보살을 불렀던 분에게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보다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게 더 좋다고 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사람에게 지장보살을 부르는 것이 더 공덕이 높다고 주장하면 곤란한 일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같은 불교 내에서도 누구는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누구는 나무아미타불을 외고 그렇게 다르게 부릅니다.

 

그런데 이왕이면 통일을 해서 부르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한 집안에서도 부모님은 불교를 믿고 아들은 가톨릭을 믿고 딸은 기독교를 믿는 세상인데, 누구에게나 신앙의 자유가 있으니까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한 집안에서 그렇게 뿔뿔이 다른 것을 믿으면 아무래도 갈등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니 기왕에 믿을 것이라면 가족이 같이 믿어야 종교 가지고 싸울 일도 없고 가족이 함께 기도 모시기도 좋습니다.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자가 나란히 앉아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처님을 부르는 것도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면 어떤 명칭으로 통일을 할 것이냐,

수많은 부처님 가운데서도 “제경소찬(諸經所讚) 다재미타(多在彌陀)”라고 했습니다. 극락세계나 영혼의 세계에 대해 말한 모든 법문이나 경전가운데서 나무아미타불에 관한 법문이 제일 많다는 뜻입니다. 이른바 본사(本師) 아미타불이라는 말입니다. 제아무리 부처님이 많이 나열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 근본은 다 아미타불입니다.

 

우리가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할 때 나무(南無)라는 것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다 바쳐서 귀의한다는 뜻입니다. 아미타불은 법신(法身)ㆍ보신(報身)ㆍ화신(化身)을 다 겸해 있습니다. 모든 존재의 근본 자리인 법신과, 그 근본에서 이루어진 모든 현상계와, 그 가운데 들어 있는 모든 공덕을 다 포함한 포괄적인 이름이 이른바 아미타불입니다. 법신ㆍ보신ㆍ화신을 다 포괄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나 안 보이는 세계나 모든 존재의 모든 공덕을 다 포괄한 통합적인 명호가 아미타불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모든 존재와 모든 명호를 다 포괄하는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참선을 하면서 묵묵하게 부처님한테 귀의할 때는 아미타불을 화두 삼아서 해도 좋습니다. 소리를 내서 할 때는 아미타불에 귀의한다는 뜻을 덧붙여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면 여섯 자가 되어 음률이 잘 들어맞습니다.

 

신라 때의 원효스님은 한국인들이 가장 숭배하는 스님입니다. 원효스님도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표주박을 목탁 대신 두들기며 나무아미타불을 줄기차게 불렀습니다. 의상대사도 마찬가지고, 그 뒤의 나옹스님이나 보조스님이나 서산대사나 모두 나무아미타불을 장도하신 분들입니다.

 

서산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마음을 곧 부처님 경계에 두고(心卽緣佛境界) 간절히 생각하는 것을 잊지 말고(憶持不忘) 입으로는 부처님 이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되(口則稱名佛號) 분명히 불러서 조금도 혼란스러움이 없게 하여(分明不亂) 부처님을 생각하는 마음과 입으로 소리를 낸 나무아미타불이 상응하게 하여(如是心口相應) 한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능히 없애리니(一念一聲則能滅) 80억겁 동안 우리가 지은 죄를 멸하고(八十億劫生死之罪) 80억겁의 무한한 공덕을 성취한다.(成就八十億劫殊勝功德)”고 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생각과 소리 한 번에 80억겁의 죄가 없어지고 거기에 더해 80억겁의 공덕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여러 명호를 가지고 염불을 하시던 분들이 억지로 바꿔서 부르셔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무어라고 불러도 그 자리가 그 자리입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 염불을 하실 분들은 법문을 통해 부처님께서 가장 많이 말씀하셨고 한국의 도인들도 가장 많이 말씀하셨고, 개념상 의미도 큰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나 문수보살이나 다 그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똑똑하고 재주 있는 사람들은 꼭 자기 식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그렇게만 하려고 합니다. 그냥 부처님 식대로 하고 정통 있는 도인들 식대로 하면 훨씬 쉬울 것인데 굳이 자기 식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고 고집합니다.

 

화두공안(話頭公案)이 나온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북송의 대혜종고스님이 나올 때까지는 화두공안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스님이 재주가 출중하다 보니 참선을 할 때는 꼭 화두공안을 들어야 한다는 규칙을 만들어 체계를 세워놓습니다. 그리고 화두공안이 중국에서 상당한 세력을 떨치면서 참선을 할 때는 꼭 화두공안을 들어야만 한다는 고집을 부립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도 아니고 그 후에 임제나 백장 같은 스님들께서 하신 말씀도 아닌데 그 법칙에 연연해서 스스로를 옭아맵니다. 우리는 그런 말에 일일이 현혹될 필요 없이 일심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됩니다.

 

한분이 그렇게 하고, 집안 식구도 모두 다 합심하여 아미타불 하나의 부처님 명호를 부르십시오. 명호의 통일이 중요합니다. 기독교를 믿는 집을 보면 하나님만 부르지 다른 님을 부를 일이 없습니다. 지금 기독교를 20억 수가 믿고 있는데 그게 다 신앙이 단순하고 소박해서 그렇습니다. 불교는 그 하나의 자리를 가리키는 데도 이름이 너무나 다양해서 복잡하니까 어렵게 생각합니다.

 

아미타불은 내 마음의 근본 생명인 동시에 바로 우주의 생명인 것이고, 우리가 종당에 필경에 돌아갈 고향인 극락세계의 교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저런 다른 이름보다도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로 통일해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