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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0.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

7. 몸과 마음이 무상하고 허망하다.

7. 몸과 마음이 무상하고 허망하다.

   

무상하고 허망한 몸뚱이와 마음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

자기 자신이고 인간 존재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참다운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불교는 무아(無我)의 도리, 즉 ‘내가 없다’는 도리입니다.

 

 

부처님 공부를 하는데 가장 방해가 무엇인가 하면 바로 “망아(忘我)”입니다. 참다운 자기를 모르고 자기를 망령되게 잘못 안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몸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산소나 수소나 탄소나 질소나 그런 모든 것들이 인연 따라서 결합된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또 무엇입니까? 우리가 감수(感受)하고 상상(想像)하고 의욕(意慾)하고 분별시비(分別是非)하는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현상적으로 나타나 있는 ‘나’라는 존재의 몸뚱이는 산소나 수소나 탄소 같은 원소가 인연 따라서 결합된 것이고, ‘나’라는 존재의 마음은 금생에 태어나서 느끼고 상상하고 의욕하고 분별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래면목은 마음이나 몸뚱이나 또는 어느 구석에 존재하는 하나의 티끌이나 모두가 다 불성 아닌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 성품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이 마음과 몸뚱이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허망한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그것을 ‘나’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잘못 알고 있는 나’ 망아(忘我)입니다.

 

사람들은 분명히 ‘나’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는 사람은 김 아무개고, 저 사람은 박 아무개다, 이렇게 구별을 짓고 분명히 따로따로 존재한다고 믿지만 불성의 차원에서 보면 마음과 몸뚱이라는 것은 사실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다고 잘못 생각하는 것이지 깊이 생각해보면 없는 것입니다.

 

그 망아에 얽혀 있는 한 우리는 도저히 풀려나올 수가 없습니다. 무상하고 허망한 몸뚱이와 마음이 결합되어 있는 것이 자기 자신이고 인간 존재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참다운 진리를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에 불교는 무아(無我)의 도리, 즉 ‘내가 없다’는 도리입니다. 무아를 모르면 불교를 모르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더라도 무아의 도리를 모르고서는 부처님에게 복이나 비는 정도밖에는 더 못 나갑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복이나 받고 한 세상 영화롭게 누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근원적인 영원한 행복을 보장하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을 받고 영원한 행복의 길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허망한 것을 허망하다고 분명히 봐야 합니다.

 

우리가 허망한 것을 허망하다고 바로 보는 것이 이른바 제법공(諸法空)입니다. 여러 불자님들이 외는 『반야심경(般若心經)』 도리가 바로 모든 것이 비어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귀중한 말씀입니다.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 우리가 제대로 보지 못하고 뒤바꿔서 거꾸로 본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을 따라 옳게 나아가지 못합니다. 거꾸로 뒤바꿔서 보지 않고 바로 볼 수 있어야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바로 본다는 것은 우리 몸뚱이나 허튼 생각들이 모두가 다 무상하고 허망하다는 것을, 우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중생들의 눈으로 보면 명명백백히 있다고 보일지라도 깨달은 분상(分上)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또 명명백백히 없습니다.

 

그렇기에 제법공입니다. 제법공이란 말은 우리 눈에 보이는 상이 모두가 다 비었다는 말씀입니다. 제법공을 모르고서는 불교를 알 수가 없습니다.

 

불교라는 것이 참으로 신묘하고 방대한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반야심경 한편만 바로 알면 그때는 다 알아버리는 것이 또 불교이고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상에 사로잡혀서 우리가 바른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데 그런 모든 상이 본래 허망하다는 것만 알아버리면 그때는 불교를 다 깨달아버립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이 또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본래 하나이고 본래 모두가 비어있다는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을 외고 화두공안(話頭公案)을 의심하는 것이 모두 좋은 공부입니다. 그런 공부를 하면서 우리 마음에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연결시켜야 하고, 이런 수행을 꾸준히 지속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마음이 힘이 생깁니다. 염불을 하든 화두를 잡든 열심히 공부를 해서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