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4. 청화 큰스님 법문집/10.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

8. 모든 것이 불성입니다

8. 모든 것이 불성입니다 

 

불교를 믿을 때는 다양한 병균조차도 모두가 진여불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항시 생각해야 합니다.

진여불성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 화두공안이 있고 염불도 있는 것입니다. 진여불성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러 불자님들이 사흘이나 일주일이나 삼칠일이나 기도를 모십니다. 기도 모시면 어떤 병이라도 낫습니다. 사람들이 끔찍하게 생각하는 나병의 병균조차도 부처님 도리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불성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현미경을 가지고 인간의 제한된 시각으로 볼 때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나병의 균은 나병의 균대로 따로 있고 폐병의 균은 폐병의 균대로 따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깨달은 안목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나병의 균이나 폐병의 균이나 모두가 다 불성으로 되어있습니다.

 

따라서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것을 그냥 입으로 아무렇게나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존재의 근원인 불성 자리, 우주의 근본 순수한 그런 에너지인 불성 자리를 불성으로 표현해서 부르는 말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입니다. 불법을 생각할 때 인격적으로 생각하면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 인간 생명의 근본인 동시에 우주 모든 생명의 근본 자리인 불성은 하나의 생명입니다. 어떠한 제한도 없이 우주에 가득 찬 생명입니다. 불성은 그래서 어떠한 공간 속에도 다 들어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불성을 기(氣)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내가 아파서 누워있으니 여러 사람들이 와서 기를 넣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내 기는 내가 스스로 넣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사양을 했습니다.

 

우주에는 일종의 에너지, 기가 충만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것의 가장 순수한 상태가 이른바 불성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병균이라도 그 근본은 불성입니다. 불성이 어떻게 진동하고 어떻게 운동하는가, 또 불성이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나병의 균도 되고 폐병의 균도 되는 것입니다.

 

불교를 믿을 때는 다양한 병균조차도 모두가 진여불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항시 생각해야합니다. 진여불성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공부를 하기 위해서 화두공안이 있고 염불도 있는 것입니다. 진여불성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주를 근본바탕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불성뿐이라는 말입니다. 현상적으로, 상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내가 있고 네가 있고 우주의 두두물물이 천차만별로 있다 하더라도, 근본자리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진여불성뿐입니다.

 

진여불성 자리, 이 중요한 말만은 꼭 외워야 합니다. 자성(自性)이라고도 합니다. 견성오도는 반드시 자성을 통해야 된다고 했는데, 자성이란 말이나 불성이라는 말이나 같은 말입니다. 자성을 깨달으면 그것이 견성이고, 견성을 하면 바로 오도라, 도를 깨닫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모두 영생불멸한 고향자리에 들어가야만 영원히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사바세계에, 그 인생의 고해(苦海)속을 헤매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항상 고향 자리를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동경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실향민(失鄕民)과 같습니다. 고향을 잃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에 가기위해 애를 씁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고향자리를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러한 그리움이 깊을수록 고향에 한시라도 빨리 가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 노력만큼 우리는 고향 자리에 빨리 당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극락세계에 가려 하는 간절한 흠모심(欽慕心)이 필요하고, 그것이야말로 우리 마음의 소중한 힘이 됩니다.

 

『법화경(法華經)』에는 “심회연모(心懷戀慕) 갈앙어불(渴仰於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음으로 극락세계를 연모하고, 목이 마를 때 물을 찾듯이 간절히 부처님을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이들이 배가 고플 때 젖을 먹고 싶어서 보채듯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즉종선근(卽種善根)이라, 근성이 깊어짐과 동시에 고향 자리에 빨리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