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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0.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

6. 견성오도, 어렵지만 가장 쉬운 길

6. 견성오도, 어렵지만 가장 쉬운 길

 

 

 

 

금생에 먹고사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성자들만 갈 수 있다는 견성오도라는 길을 갈 것인가?

이렇게 아득한 마음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한테 가는 길이, 부처가 되는 길이 제일 쉬운 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신묘하고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가르침입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목표만 내놓고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무시한 가르침은 아닙니다.

 

우리가 돌아가야 할 영원의 고향 극락세계, 그토록 소중한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법문이 8만4천 가지, 이른바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입니다. 참선을 하는 것이나 주문을 외는 것이나 염불을 하는 것이나 모두가 다 극락세계에 가기 위한 법문입니다.

 

극락세계는 우리 마음이 열려갑니다. 자기의 마음을 깨닫고 자기 본래의 성품을 깨우치는 견성오도의 단계에 이르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단계가 되어야 비로소 극락세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불성을 공부하여 자기의 성품을 보고(見性), 진리에 이르는 길을 깨우치는(悟道) 것이야 말로 극락세계로 가는 길입니다.

 

견성오도를 하면 부처님의 길을 가고 부처님을 닮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불교인들이 과연 부처님의 뜻을 따라 부처님을 닮아가고 있냐 하면 그렇지가 못합니다.

 

인도의 성웅(聖雄) 간디는 “나는 그리스도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천을 싫어한다.”고 말했습니다. 간디가 저런 이야기를 한 것은 예수를 사모하고 따르는 크리스천이 정작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처럼 훌륭한 사람을 따르면 그를 섬기는 사람들도 예수의 말이나 행동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욕심은 욕심대로 부리고 성질은 성질대로 부린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기독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간디가 지금 불교인들을 본다면 나는 부처님은 좋아하지만 불교인들은 싫어한다고 말을 할 것입니다. 물론 부처님을 닮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견성도로를 해야 하니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길이라고해서 가지 않겠다고 포기하는 것은 불교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견성오도의 문제는 불교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견성오도는 쉽지 않지만 결국은 어느 누구나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견성오도를 하지 않고서는 우리 마음이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본래 성품은 불성이기 때문에 불성과 오로지 하나가 되는 자리에 있지 않고서는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견성오도의 경지에 도달해야만 마음의 불안과 혼란을 다 불식시키고 정말로 행복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정말로 오랜 나그네 길입니다. 태어나고 죽어가면서 과거 전생에도 수없이 많은 생을 되풀이해왔으며, 미래에도 무수한 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극락세계에 가지 못하면 윤회를 통해 무수한 생을 다시 되풀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닦은 대로 뱅뱅 돕니다. 행동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의식에 남아 있다가 그것이 업보가 되어가지고 우리 생을 결정합니다. 눈 생김 하나하나, 코 생김 하나하나 모두가 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지금 업보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윤회는 무섭고 싫은 일이지만 그것도 하나의 진리입니다. 부처님 같으신 분은 백겁장엄(百劫莊嚴)입니다. 부처님은 100겁이라고 하는 측정조차 할 수 없는 무한한 시간 동안 자기 몸을 호랑이한테 바치기도 하고, 부처님 법을 듣기위해서 몇 번이나 목숨을 바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무수한 생을 거듭하며 어렵고 고된 일을 행한 결과 만덕존상(萬德尊像) 32상(相) 80수형호(隨形好)라 일컫는 존귀하고 장엄한 상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에 비해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라는 것은 어떻습니까? 화를 내고 남을 멸시하고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자기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거울로 보면 압니다. 자신의 몸을 금덩어리 같이 아끼지만, 찌푸릴 때의 자기 얼굴이라는 것은 추하기 그지없습니다.

 

거듭되는 윤회의 길에, 인생이라는 오랜 여행길에 나를 이끌고 지지해줄 스승이 없다면 적막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지만, 우리 곁에는 다행이도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스승, 예수 같은 스승, 공자 같은 스승이 많습니다. 불교에서 한국의 스승님들만 봐도 원효대사, 의상대사, 대각국사, 보조국사, 서산대사… 그런 훌륭한 스승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스승들이 큰 노력 없이 쉽게 견성오도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과거 전생에도 무수생(無數生) 동안 닦아 내려오셨고, 부처님께서도 금생에 사람 몸 받아서 6년 고행을 했습니다. 위대한 스승들도 이럴진대 우리 같은 일반 중생들이 쉽고 편하게 견성오도라 하는 인생의 진면목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도 어렵고 저것도 귀찮고, 그래서 ‘그렁저렁 한 세상 살아도 되지 않겠는가?’라고 대충대충 넘긴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피한다고 해도 나중에는 아무 때 가도 갈 길입니다. 내생에 가도 가야 할 길이고, 또 그 다음 생에도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러니 어렵고 귀찮게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금생에 먹고 사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성자들만 갈 수 있다는 견성오도라는 길을 갈 것인가?’ 이렇게 아득한 마음을 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한테 가는 길이, 부처가 되는 길이 제일 쉬운 길입니다. 부처님에게 가는 길만이 사람 마음의 불안을 씻어버릴 수 있고, 부처님에게 가는 길만이 사람들끼리 화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사람 사이의 일뿐만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는 둘이 아니기 때문에 부처가 되는 길만이, 부처님한테 가는 길만이 각 종교와 참다운 화해를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에게 가는 길로 인도하는 일의 공덕은 한없이 높습니다.

 

자녀교육을 시킬 때도 그렇습니다. 부모는 자녀가 돈 많이 벌고, 공부 잘 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기를 바라며 과외도 시키고 유학도 보내고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부처님에게 가는 길을 몸소 실천하여 자녀의 모범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님에게 하는 효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곁에서 모시지 못하고 용돈도 넉넉하게 드리지 못하는 처지라고 하더라도, 부처님을 위해서 부처님한테로 가는 길을 역설하고 권고했다면 그 효성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영생의 길로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것이나 부처님한테 가는 길속에는 모든 문제의 모든 해결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가 되는 길이 가장 쉬운 것입니다.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합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고 생각할 때는 우선 자기마음도 불편하고 자기 몸도 불편합니다. 남을 미워하면 자기도 그만큼 힘듭니다. 그러나 다 풀어버리면 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으로 깊이 부처님 공부를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