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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0.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가르침

12. 부처님 명호를 외자.

 

12. 부처님 명호를 외자.

 

 

부처님 명호를 외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한 성불의 길입니다.

우리가 본래 부처기 때문입니다.

꼭 부처님 명호를 놓치지 마시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잊지 말고 외우십시오.

 

 

우리 인간 세상의 불행의 뿌리를 뽑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진리에 따르는 길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따르지 않으면 몇 천 년 몇 만 년이 흘러도 불행은 끝나지 않습니다.

 

마음이 산란하다거나 머리가 아픈 것은 모두 우리 마음의 불안 때문에 옵니다. 몸뚱이는 마음의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마음이 긴장되면 소화도 되지 않고 화장실에서 볼일도 잘 보지 못합니다. 불안하면 속도 쓰리고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머리도 아픕니다. 이렇듯 우리 마음은 순간순간 우리 몸에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의 주인은 마음이고, 몸뚱이는 생명에 입혀지는 옷이나 같은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 마음의 자성을 깨닫는 방법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자성을 깨닫는 것은 절대로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자성을 깨닫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가장 쉬운 방법인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는 난행문(難行門)과 이행문(易行門), 즉 쉬운 문과 어려운 문이 있습니다.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것이 우리 자성을 깨닫는 제일 쉽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어째서 제일 쉽고 확실한 방법이냐 하면, 우리가 본래 부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래 부처기 때문에 부처님의 명호는 곧 자기의 참 이름입니다. 우리가 본래 부처기 때문에 부처님 자리가 바로 자기 자리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금생에 나와서 잘못 배우고 잘못 익힌 버릇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 버릇은 갑자기 깨기가 어렵습니다. 이 깨기 어려운 버릇을 중생이 깨기 위한 방법으로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것이 제일 쉽습니다.

 

우리의 옛날 할머니나 부모님들은 습관처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외웠습니다. 이렇게 부처님 명호를 외는 것은 너무 쉽기 때문에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것은 바로 부처님 그 자체, 진리의 당체(當體)를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동안 자기의 마음이 정화되고, 자기의 마음이 정화되면 또 우주도 정화됩니다. 우주가 정화되면 나 스스로도 또 그만큼 정화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 행동 하나하나가 다 우주와 더불어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금생에 익힌 나쁜 습관을 버리고 부처님한테로 가는 제일 쉬운 방법은 부처님 명호를 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못된 버릇이 깊어 그것을 깨기가 어렵기 때문에 부처님 공부도 그만큼 지속적으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공부하면 효험이 커지고 공덕이 축적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공덕의 창고와 같습니다. 자비나 지혜나 능력이나 행복이나 이런 것들이 모두 우리 마음 가운데 온전히 들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느끼는 공덕이나 지혜, 또는 공자가 갖고 있는 공덕이나 지혜가 우리 중생들에게도 빠짐없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개발을 못하고 있을 분입니다.

 

성자가 되는 것은 절대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내가 본래 가지고 있는 불성이니까 내 참 자성을 가리고 있는 나쁜 버릇만 거둬내면 됩니다. 조금 거둬내면 조금 거눠낸 만큼 행복해지고, 많이 거둬내면 많이 거둬낸 만큼 훨씬 더 충족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염불에 일념이 되면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이나 지장보살이나 문수보살을 부르는 것이 차이가 없습니다. 부처님 이름은 다 신통한 것인데 이른바 부처님의 총대명사가 나무아미타불입니다. 따라서 한 번 부르면 부른 만큼 우리에게 행복이 옵니다. 부처님께서 직접 지으신 부처님 명호는 우주의 생명을 다 담고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면 우주 생명과 상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명호부사의(名號不思議)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이름 자체가 불가사의합니다.

 

그 불가사의한 이름을 순수하게 하루 종일 왼다고 하면, 하루 종일 염불만 한다고 하면 얼마나 큰 공덕이 있겠습니까? 공부를 많이 하고 도인들의 말을 잘 따르는 큰스님들조차도 하루에 나무아미타불 5만송(訟), 10만송 씩 합니다.

 

우리한테 무슨 병이 있다고 생각할 때, 그 병은 우리 무지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 버릇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부처님 명호를 외워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면 웬만한 병은 다 물러갑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자기 스스로 무던히도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는데 어째서 이렇게 공덕이 오지 않는 것인지 의심하기도 합니다. 깊은 신앙심을 갖고 있는데 공덕이 오지 않는 것은 과거세의 지은 업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 분들은 염불을 한 번씩 할 때마다 과거세에 지은 업이 상쇄됩니다. 과거 업이 가벼운 분들은 금생에 공부를 조금 덜 성실하게 하더라도 더 빨리 마음이 좋아집니다.

 

한순간이라도 부처님 이름을 놓지 않기 위해서는 잠도 덜 자는 것이 좋습니다. 잠은 생명을 좀 먹는 망상입니다. 자는 동안은 결국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급적이면 잠을 적게 자고, 부처님 명호를 순간도 잊지 말고 외우십시오. 잠을 적게 잔다고 해도 우리 마음에 신심이 사무치면 절대로 건강에 해롭지 않습니다.

 

음식도 함부로 먹으면 안 됩니다. 음식은 하나의 물질이기 때문에 우리 몸에 들어오며 어느 정도까지는 영양이 되고 생명을 지속시켜 줍니다. 그러나 조금만 지나치면 소화도 잘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도 대단한 해를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음식을 함부로 먹지 말고 특히 할 수만 있다면 육식을 꼭 금절(禁絶)해야 합니다.

 

생명이 하나라고 생각할 때는 금생에 사람들이 먹고 있는 개고기나 소고기나 닭고기나 모두가 다 하나의 생명입니다. 개고기나 닭고기나 소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결국 숱한 윤회를 거쳐서 자기와 똑같은 형제, 더러는 자기 친구의 고기를 먹는 일입니다. 그러니 육식을 많이 하면 피가 오염됩니다. 피가 오염되면 몹쓸 병도 많이 생깁니다.

 

소승계율(小乘戒律)에서는 조건부로 육식을 금지했지만 대승경에서는 일체 육식을 다 금지했습니다. 소승에서 더러 고기를 먹기도 하는 것도 부처님이 육식을 용인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소승경에서는 중생들의 근기(根機)가 약하니까 지금까지 고기 먹던 버릇을 갑자기 끊으라고 하면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 삼정육(三淨肉)이나 구정육(九淨肉)같은 조건을 달아 육식을 허용한 것입니다.

 

이에 비해 대승경에서는 훨씬 더 근기가 수승하기 때문에 육식을 더욱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법화경이나 화엄경도 다 육식을 금했으니, 우리 중생은 부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라야 불교를 믿는다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잠도 적게 자고 육식은 끊으면서 부처님의 명호를 외워야 합니다. 부처님의 명호는 빛의 명호이고, 행복의 명호이고, 자비의 명호이고, 사랑의 명호입니다. 우주 생명의 대명사 그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입니다.

 

염불을 하면 몸도 가벼워지고 평소에 듣지 못하는 신묘한 우주의 소리(天上妙音)도 다 듣게 됩니다. 또, 더러는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하는 신선한 광명도 볼 수가 있습니다. 우주의 순수한 생명은 바로 빛이고 모든 존재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빛입니다. 하나의 빛이기 때문에 부처님 명호도 모두가 다 빛에 관한 이름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이란 것에는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 한도 끝도 없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하나의 광명입니다.

 

염불을 단 며칠만 하면 억지로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염불이 됩니다. 그러면서 공부가 익어지면 영원의 에너지 영원한 생명의 광명 가운데서 확신 넘치는 공부가 저절로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속으로는 염불을 하십시오. 염불은 소리를 내나 안 내나 다 좋으니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염불해서 금생에 꼭 성자가 되고 부처가 되십시오. 그렇게 하셔서 확실하고 쉬운 염불로 우리 생명이 돌아가야 할 본래의 그 자리를 꼭 닦아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해서 제일 쉽고 확실한 공부를 그러나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부처님 명호를 외는 것이 가장 쉽고 확실한 성불의 길입니다. 꼭 부처님 명호를 놓치지 마시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잊지 말고 외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