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부처님 법(法)은 무가정(無假定)의 원리(原理)입니다.
이것저것 다 들어 있습니다. 과학(科學)도 가장 참 과학이고, 철학(哲學)도 가장 참 철학이고, 종교(宗敎)도 가장 참 종교입니다. 따라서 참선(參禪)공부할 때는 먼저 신(信)이 앞서야 합니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화두(話頭)를 의심(疑心)하면 참선이고, 화두를 의심하지 않으면 참선이 아니라고 합니다.
본체(本體)를 본, 법성(法性)자리를 아는 사람의 말이 아닙니다. 본체가 여기 있고, 저기 있고 하겠습니까? 진여불성(眞如佛性)이 여기 있고, 저기 있다고 생각할 때는 진여불성이 아닙니다. 우주는 진여불성, 불교는 진여불성 일원론(一元論)입니다. 우주(宇宙)는 불심(佛心)뿐입니다. 불심 이외 다른 것이 있지 않습니다. 진여불성(眞如佛性)이 연기법(緣起法) 따라서, 법계연기(法界緣起) 따라서 우주가 이루어지고 사람이 생겨나고 다른 것이 이루어지곤 합니다.
따라서 물질이 아닌 우주의 정기(精氣)인 진여불성이 우주가 되고 무엇이 되고 했기 때문에 설사 상(相)으로 해서 사람 같은 상을 나투든, 산(山)같은 모양으로 있건 그런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산 그대로 바로 불성이고 사람 바로 그대로 불성입니다. 그러기에 심즉시불(心卽是佛)이요, 또는 본래성불(本來成佛)이요, 보조국사(普照國師) 어록(語錄)의 돈오(頓悟)에서도 본래시불(本來是佛)이라고 하였습니다. 본래 바로 부처라는 것은 사람만이 바로 부처란 말이 아닙니다.
어떠한 것 당체(當體), 책상(冊床)이면 책상 모두가 다 그대로 부처입니다.
다만 중생(衆生)이 못 볼 뿐입니다. 중생이 못 본다 하더라도 석가모니(釋迦牟尼)를 위시한 무수한 성자(聖者)들이 다 사실대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을 먼저 믿어야 됩니다. 그러기에 참선도 먼저 신(信)이 앞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흐리멍덩한 눈으로 해서 안 보인다 하더라도 분명히 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 따르면 우주 이대로 진여불성이요, 이대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요, 이대로 광명(光明)이 충만한 광명의 세계요, 이대로 극락세계(極樂世界)입니다.
우리 마음의 식(識)이 맑은 정도에 따라서 맑은 식이 사는 색계(色界)도 있고, 무색계(無色界)도 있습니다. 가장 맑아서 천지우주의 본래적인 진여불성과 같은, 맑은 식이 사는 세계가 극락세계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마음이 참말로 맑아서 한 점도 티가 없다고 생각할 때는 이 자리에서 바로 극락의 행복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보조국사 어록에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본래시불(本來是佛), 즉 본래 부처이니 무루지성(無漏智性) 본자구족(本自具足), 즉 때 묻지 않은 청정무비(淸淨無比)한 지성(知性)을 원래 갖추고 있으니까 심즉시불(心卽是佛), 즉 마음이 바로 부처요, 심작시불(心作是佛), 즉 마음으로 부처를 이룬단 말입니다. 상(相)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것은 허망(虛妄)한 것이지만 본 성품(本性品)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이대로 석가모니의 지혜(智慧)요, 예수의 지혜요, 공자의 지혜요, 무량(無量)의 지혜를 우리가 갖추고 있습니다.
마음 열어버려서 자타(自他)가 없고, 천지 우주에 참말로 있는 것은 공간성(空間性)도 시간성(時間性)도 인과율(因果律)도 초월(超越)한 진여불성(眞如佛性)뿐이라고 생각해야 비로소 참선(參禪)하는 마음의 준비가 됩니다.
염불(念佛)을 하던 주문(呪文)을 하던 그런 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염불이나 주문이나 명상(暝想)이나 모두가 부처님 공부는 다 마음 열고 하는 공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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