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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함께하는 부처님공부

금강심론 읽기(6)

반야심경 여섯 번째 강의

 

“故知고지하라 般若波羅蜜多반야바라밀다

是大神呪시대신주

是大明呪시대명주

是無上呪시무상주

是無시무等等呪등등주

能除一切苦능제일체고

眞實不虛진실불허

로 說般若波羅密多呪반야바라밀다주일새

卽說呪曰즉설주왈

揭帝揭帝波羅揭帝波羅僧揭帝菩提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 아제 바라승 아제 보디 사바하


『원문』

流通分유통분 第三제삼


故知고지하라 般若波羅密多반야바라밀다가 是大神呪시대신주

로 알아라 般若波羅密多반야바라밀다가 究竟覺구경각까지 成就성취하는 妙不可思議묘불가사의의 大總相法門대총상법문이며


『풀이하여 읽음』

유통분流通分

* 오늘 마지막인 유통분입니다. 유통분은 후세에 길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경전의 결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故知하라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고지하라 반야바라밀다가 시대신주며

 그러므로 알아라,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가 부처님의 깨달음究竟覺까지 성취成就하는 묘하여 가히 생각할 수 없고不可思議 커서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는 법문大總相法門이며


덧붙이는 글

반야바라밀다 다시 말하면 반야바라밀 수행이 온갖 분별과 망상을 걷어내고 존재의 참모습을 깨닫는 수행이 부처님께서 얻으신 깨달음(구경각)까지 성취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는 법문이며,


*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 : 진여(眞如)의 실제 진여가 광대하여 모든 것을 포섭한 것을 대(大)라 하고, 일미평등(一味平等)하여 차별이 모양을 여읜 것을 총상(總相). 수행하는 이의 모범이 되는 것을 법(法) 관하는 지혜가 드나드는 것을 문(門)이라 한다.


『원문』

是大明呪시대명주

根塵識근진식의 諸惑제혹을 斷하고 寂滅적멸을 證하니 度無極도무극의 三明삼명과 六通육통이 生하는 大方便대방편이며


『풀이하여 읽음』

是大明呪며

시대명주며

인식과 인식대상과 인식주체根塵識의 모든 의혹을 끊고 적멸寂滅을 증득證得하니 미혹의 이 언덕에서 깨달음의 저 언덕에 이르는度無極 삼명三明 육통六通이 일어나는 큰 방편大方便이며


덧붙이는 글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맞고, 느끼며, 인식하는(인식(6근)과 인식대상(6진) 인식주체(6식) 모든 망상과 의혹을 소멸하고 미혹(중생․사바세계)의 이 언덕에서 열반(불보살․ 극락세계)의 저 언덕에 이르는 3명 6통이 일어나는 큰 방편이며, 방편은 수단을 말합니다.

우리가 흔한 말로 깨달았다 하면 이 삼명 6통이 되어야 합니다.


* 3명6통: 1. 신족통(神足通). 자유로이 원하는 곳에 나타날 수 있는 능력. 2. 천안통(天眼通). 미래의 상태를 간파하는 능력. 3. 천이통(天耳通). 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미세한 소리를 듣는 능력. 4. 타심통(他心通), 다른 이의 마음을 간파하는 능력. 5. 숙명통(宿明通). 자타(自他)의 과거세의 상태를 아는 능력. 6. 누진통(漏盡通), 번뇌를 제거하는 능력. 이 가운데 천안(天眼)∙숙명(宿明)∙누진(漏盡)의 셋을  삼명이라 합니다.


『원문』

是無上呪시무상주

八萬藏經팔만장경 讀破독파하고 千七百公案천칠백공안 立證입증함보다 勝한 法이며


『풀이하여 읽음』

是無上呪며

시무상주며

팔만장경八萬藏經을 처음부터 다 읽고 천칠백 공안公案을 입증立證함보다 수승한 법이며


『원문』

是無시무等等呪등등주

最上최상無比무비의 摠持총지


『풀이하여 읽음』

是無等等呪니

시무등등주니

가장 수승最上하여 비길 데無比 없는 총지總持


『원문』

能除一切苦능제일체고

以上이상 그대로의 解義해의修行수행이 堅固견고하면 多羅尼다라니神通藏신통장에 住할새 諸魔제마가 不侵불침이오


『풀이하여 읽음』

能除一切苦요

능제일체고요 

이와 같이 그대로의 뜻을 풀어 수행解義修行함이 견고堅固하면 다라니 신통장多羅尼神通藏에 머물러 모든 마가 침범하지 못함이요


덧붙이는 글

반야바라밀다와 반야바라밀다 주(呪)에 대한 찬탄입니다.

한문에 벼리 강(綱)자가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벼리는 그물코를 꿰어 놓은 줄인데 이 줄을 당기면 그물 전체가 당기여 지듯이 부처님 공부도 하나로 귀결지여야 합니다. 반야바라밀다란 사량(思量) 분별과 집착이 끊어진 평등한 완전한 지혜를 말하는데 부처님의 팔만사천법문도 쉽게 설명하면 결국은 다 분별과 집착을 버려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야바라밀다 주(呪), 진언(眞言)이지요. 이 반야바라밀다 진언(眞言)도 가장 수승하여 비교 것이 없다. 그대로 뜻을 이해하고 수행하면 수행이 흔들림 없이 견고하면 마장이 낄 틈이 없다 그런 말입니다.

 

총지(摠持)․다라니(多羅尼)․주(呪)․진언(眞言) 다 같은 말입니다.

총지(摠持)를 음역(音譯: 한자를 가지고 외국어의 음을 나타내는 일)한 것이 다라니입니다. 아함경에도 진언이 나오는데 역사는 꽤 깊은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진언이 주로 몸을 보호하는 주문으로 사용하였는데 후대에 발전한 것입니다. 보통 짧은 것(옴 치리, 옴마니 반메흠)은 주(呪) 또는 진언(眞言)이라 하고 긴 문장으로 된 것은 다라니(多羅尼)라고 합니다.


긴 진언도 생각보다 암기하기가 쉽습니다. 진언이 짧은 것이나 긴 것이나 장단점이 있는데 초심자가 몰입하는 데는 긴 것이 좋다 하는 생각이 드는데 티벳에서 선 수행들어가기 전에 백 절로 된 다라니 십 만 독과 오체투지 10만 번을 하고 선 수행에 들어간다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른 스님들이 다라니를 많이 하고 그 다음에 본격적인 선 수행을 하라고 하십니다.    


* 다라니(陀羅尼) : 총지(總持) 능지(能持) 능차(能遮)라 번역. 무량무변한 뜻을 지니고 있어, 모든 악한 법을 버리고 한량없이 좋은 법을 가지는 것. 보통 다라니라 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①지혜 혹은 삼매를 말한다. 이것은 말을 잊지 않고 뜻을 분별하며, 우주의 실상에 계합하여 수많은 법문을 보존하여 가지기 때문이다. ②진언(眞言) : 범문(梵文)을 번역하지 않고 음(音) 그대로 적어서 외우는 것. 이를 번역하지 않는 이유는, 원문의 전체 뜻에 한정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과, 밀어(蜜語)라 하여 다른 이에게 비밀히 하는 뜻이 있다. 이것을 외우는 사람은 한량없는 말을 들어도 잊지 아니하며, 끝없는 이치를 알아 학해(學解)를 돕고 모든 장애를 벗어나 한량없는 복덕을 얻는 등, 많은 공덕이 있으므로 다라니라 한다. 흔히 범문(梵文)의 짧은 귀절을 진언(眞言) 또는 주(呪)라 하고, 긴 구절로 된 것을 다라니 또는 대주(大呪)라 한다.


『원문』

眞實不虛진실불허

一切일체의 虛妄相허망상을 離한 實相실상의 智慧지혜


『풀이하여 읽음』

眞實不虛라

진실불허라

 일체의 허망한 모양虛妄相을 여읜 있는 그대로의 모습實相의 지혜智慧라.


덧붙이는 글

 “일체의 허망한 모양(虛妄相)을 여읜 있는 그대로의 모습(實相)의 지혜(智慧)라”.  이 말은 그대로 외워두시어야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더럽다 깨끗하다 많다 적다 상대적인 모든 분별을 소멸한 모습,  진실한 모습(실상:實相),  우리가 추구하는 참 지혜입니다.


『원문』

로 說般若波羅密多呪반야바라밀다주일새

로 이의 實相智실상지인 般若반야로써 到彼岸도피안하는 約法약법을 重說중설할새


『풀이하여 읽음』

故로 說般若波羅蜜多呪일새

고로 설반야바라밀다주일새

그러므로 실상지實相智인 반야般若로서 저 언덕에 이르는 가르침을 간략히 거듭 말할 새


『원문』

卽說呪曰즉설주왈

곧 般若波羅密多반야바라밀다의 話頭화두요 公案공안이라 이를 더욱 短縮단축하여 總括총괄하면


『풀이하여 읽음』

卽說呪曰

즉설주왈

곧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의 화두話頭요 공안公案이라 이를 더욱 단축短縮하여 총괄하면


덧붙이는 글

화두나 공안이나 다 타성일편(打成一片)을 말하는 것입니다 일체의 모든 사량 분별을 버리고 한 조각 언어로 도출 해나가는 것이 화두이며 공안입니다. 마치 대장간에서 쇠를 수없이 두들 기여서 한 조각 은장도를 만들듯이 말입니다.


『원문』

揭諦아제 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바라승 揭諦아제 菩提보디 沙婆訶사바하

揭諦아제 揭諦아제 波羅揭諦바라아제 波羅僧바라승 揭諦아제 菩提보디 沙婆訶사바하라시니 般若波羅密多呪반야바라밀다주 그대로 般若波羅密多반야바라밀다의 因이 되고 果가 됨을 了知요지할지니라


『풀이하여 읽음』

揭帝揭帝波羅揭帝波羅僧揭帝菩提娑婆訶

아제아제바라아제바라승아제보디사바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 사바하」라 하시니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주문이 그대로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의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됨을 깨달아 알지니라了知.


덧붙이는 글

요즘에는 진언도 번역을 하고 원음 가깝게 한다고 수정도 합니다. 그러나 진언은 옛 부터 번역을 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가 진언은 미묘하고 깊어서 생각 할 수없는 비밀어(秘密語)라 번역을 하면 본래의 의미를 손상 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진언이 가지고 있는 소리의 진동 그 자체에 밝은 기운 에너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절집에서 하는 말이 새로 법 만들지 말고 옛 것 잘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공부하는 것인데 옛 어른 스님 네들을 따라 갈 수가 있습니까?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보디 사바하”이 반야바라밀다 진언이 반야바라밀다의 원인이 되어서 이 진언(眞言)만 하면 반야(般若)의 지혜가 드러나서 고통의 이 언덕에서 열반(깨달음, 극락세계)의 저 언덕으로 간다는 뜻입니다.    



* 오종불번(五種不飜): 경을 한역 할 때에  음(音)으로만 쓰고 뜻을 번역하지 않는 데 5종의 유래가 있다. 1.비밀고(秘密故): 다라니의 말과 같이 미묘하고 깊어서 생각할 수없는 비밀어 2.다함고(多含故): 박가범(薄伽梵)과 같이  한말에 많은 뜻을 가진 말 3.차방무고(此方無故) 염부수 이름과 같이 이 땅에 상당한 물건이 없는 것 경우 4.순고고(順古故) 아뇩다라삼막삼보리 같이 고래(古來)로 흔히 음만 쓰고 번역하지 안이 하여도 여러 사람이 알 수 있는 것. 5. 존중고(尊重故): 반야를 지혜라 번역하는 경우같이 그 참뜻은 깊고 존중한 것이나 번역하면 도리어  그 뜻이 가벼워지는 경우.


『원문』

 蓋明心而개명심이 見性견성이오 見性견성 悟道오도일새 先修後悟선수후오란 修는 迷修미수요 先悟後修선오후수란 修는 悟修오수니 修法수법에 있언 講經강경이나 誦呪송주나 參禪참선이나 觀法관법이나 그의 方法방법은 多少다소 差異차이가 有하지만 迷․悟의 境은 一也일야요 證이란 身證신증이며 悟란 心悟심오일새 身證신증心悟심오를 證悟증오라 云하나니라


『풀이하여 읽음』

 대저 마음을 밝히어明心 성품을 봄見性이요, 성품을 보아見性 도를 깨닫기悟道때문에, 먼저 닦고 뒤에 깨닫는 수행先修後悟은 미혹한 수행迷修이요, 먼저 깨닫고 난 뒤에 닦는先悟後修 수행은 깨달은 수행悟修이니 수행법에 있어 경을 읽으나講經(또는 經을 講論하나) 주문을 외우나 참선參禪하거나 관법觀法을 하거나 그 외의 방법方法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미혹함과 깨달음의 경계는 하나요, 증이란 몸이 증득身證함이요, 깨달음이란 마음이 깨달음心悟 일새, 몸이 증득하고 마음이 깨침身證心悟을 증오證悟라 말 하니라.


덧붙이는 글

선수후오(先修後悟) 먼저 닦고 뒤에 깨닫는 수행, 우리가 무턱대고 수행을 하면서 막연히 깨닫겠지 하면 이것은 잘못하는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반듯이 선오후수(先悟後修) 먼저 깨닫고 난 뒤에 닦는 수행, 이치적으로 해오(解悟) 한 후에 수행하라는 것입니다.   


해오(解悟), 우리가 먼저 이치를 먼저 깨닫고 수행하여야 하는데 반야심경에서 전하는 해오(解悟)는 반야(般若)입니다.

대승의 수행덕목인 육바라밀의 마지막도 반야바라밀입니다 반야를 이루기 위해서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이 필요한 것입니다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스승, 어머니라고도 합니다. 반야를 얻어야 도(道)를 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증득(證得), 증오(證俉)하기 위한 방법론 수단 방편이 염불이다 진언이다 간경이다 참선이다 관법입니다. 방법론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수행법에 있어서 경계는 하나다 하신 것 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깨달음을 증오(證俉)하였다면 3명(明) 6통(通)이 되어야 온전한 깨달음 증오(證俉)입니다.


* 반야(般若): 혜(慧)∙명(明)∙지혜(智慧)라 번역. 대승 불교에서,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불법을 꿰뚫는 지혜. 온갖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참모습을 앎으로써 성불에 이르게 되는 마음의 작용을 이른다.


甲申갑신

碧山벽산閑人한인

1944년 봄 甲申 春.

한가로운 사람 벽산 지음 碧山閒人 撰


* 우리가 불법에 귀의 하는 이유가 망상과 집착에 벗어나 진정한 행복을 얻기 위함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절에 나오시더라도  부처님 법을 바로 배우시고 실천하시여야 삶이 윤택해지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를 재물이나 이름에 둔다면 잠시는 행복해 질 수 있지만 영원한 행복은 없습니다. 그러나 삶의 가치를 마음에다 둔다면 행복은 오래가는 것입니다. 망상과 집착을 벗어나는 길은 수행입니다 하나의 법을 선택하여 늘 정진하면서 눈앞에 일어나는 현상과 마음을 바로 보면서 마음을 가꾸어 나가는 것이 가장 손쉬운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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