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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함께하는 부처님공부

금강심론 읽기(3)

3번째 강의


* 우리가 부처님 공부를 지여가는 데는 대략적인 불교 철학을 인식하여야 경전을 보아도 쉽게 이해가 됩니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는 대략 두 가지로 분류가 됩니다.

하나는 타력적(他力的)인 종교로 대표적인 기독교 철학인데 신(神)과 인간의 관계입니다.

창조주가 있고 피조물이 있는 관계, 다시 말하면 인간은 신(神)이 될 수없는 것입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수직적 관계이며 신은 인간을 관리하기 위하여 신의 대리자(예언자),를 내세우는데 소위 구약시대의 모세,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고 서력으로 600년경에 나온 이슬람의 마호메트입니다. 모세나, 예수나 마호메트나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수행을 통하여 성자(聖者)가 된 것이 아니고 신의 간택에 의해서 종교의 창시자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자력적(自力的)인 종교인 불교가 대표적인데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고 또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부처가 될 수 있는 씨앗 즉 불성(佛性)이 있다는 철학입니다 부처와 중생간의 관계가 수평적인 관계입니다.

우리가 불자라는데 자부심을 같아도 좋습니다. 토인비는 21세기를 이끌고 나갈 종교 철학은 불교에 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현대사회의 환경문제라든지 빈부의 격차 폭력 전쟁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기독교의 믿는자와 믿자 않는자로 나누는 이분적(二分的) 철학가지고는 해결이 안되고 모든 생명을 하나로 생각하며 인과의 바탕을 둔 하나의 철학 불교가 가장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불교에 입문하면 대부분 관세음보살님이 위에서 내려 보시고 공을 들이면 도와주시겠지 하는 타력적 신앙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경전도 읽고 사유하고 법문도 듣고 부처님 공부를 지여나가면 결국은 관세음보살이 저 만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님을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물론 기독교에서도 영지파라 불리우는 부류들은 우리와 같이 하나님이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합니다. 또 불교에서도 순수한 정토신앙하시는 분들은 서방에 극락세계가 존재하고 아미타불의 가피로 극락왕생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전을 이해하고 공부하는 데는 중생과 마음과 부처를 하나로 보시여야 이해가 빨리 됩니다.     

 


반야심경의 약해(般若心經의 略解)

반야심경의 뜻을 간략히 밝히다


         서분序分 제 1第一


* 서분이란 경전의 본론 들어가기 전의 서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보통 경전을 서분(序分). 제일 중요한 본론에 해당하는 정종분(正宗分).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유통분(流通分)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원문』

(心經심경 懸吐현토)

三身삼신 四智사지에 萬德만덕을 具備구비한 一大人일대인의 大自在境대자재경


『풀이하여 읽음』

(심경心經에 토를 달다)


『원문』

觀自在의 菩薩이(관자재의 보살이)

관찰觀察하는 보살菩薩


『풀이하여 읽음』

觀自在의 菩薩이(관자재의 보살이)

세 가지 몸三身과 네 가지 지혜四智에 온갖 덕萬德을 갖춘 한 위대한 사람의 대자재한 경계大自在境를 관찰觀察하는 보살菩薩


덧붙이는 글

보통 번역은 관자재보살이 이렇게 읽는데 금타스님께서는 수행적 시각(視覺)에서 관자재 보살이라고 했습니다. 풀어서 읽으면 위 문장까지 넣어서  “삼신(三身)과 사지(四智)의 만덕(萬德)을 구비한 위대한 사람의 대자재한 경계를 관찰하는 보살이” 이렇게 읽게 됩니다.


삼신과 사지 그리고 온갖 공덕(만덕:萬德)은 중생이나 부처나 똑같이 갖추어진 마음 성품입니다 다만 중생은 업장에 가리여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고 깨달은 이는 온전히 삼신과 사지가 만덕이 온전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뒤에 보리방편문에 삼신(三身)을 관(觀)하는 수행과 일맥상통하게 되는데, 금타스님의 가르침은 중생이 본래 무량공덕을 갖춘 부처임을 관찰하고 염(念)하는 것이 성불의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삼신이라는 것은 법신(法身)․보신(報身)․화신(化身)입니다. 육조스님께서 삼신을 간결하게 설명하시기를


“청정(淸淨)법신(法身)은 네 성품이며 원만(圓滿)보신(報身)이란 너의 지혜이며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이란 너의 행(行)을 가리킨다. 자성(自性)이 삼신(三身)갖춤을 밝히면 사지(四智)를 이루리.”


다시 말하면 중생의 마음 깊숙이 있는 순수한 마음을 청정법신이라 하고 이 순수한 마음은 무량한 공덕이 있어서 원만보신이라 하는 것이고 인연과 업에 의해서 드러나는 것이 천백억 화신입니다.


불교가 가장 발달한 부분이 심리학과 물리학이라고 합니다.

절집에서의 심리학은 유식(唯識: 오직 마음)이라 하는데 유식이 완성된 것은 대략 서기 2백년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그 때에 마음을 8가지로 분석했습니다.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 그리고 육식(六識)․ 7식인 말나식(末那識)․ 8식 아뢰야식(阿賴耶識)입니다.

제8식 아뢰야식은 종자식이라고도 하는데 유식(唯識)에서는 제 8식이 윤회의 주체라고 합니다.


사지(四智) 즉 네 가지 지혜란

1.성소작지(成所作智)2. 묘관찰지(妙觀察智)3. 평등성지(平等性智)4. 대원경지(大圓鏡智)인데


다섯 번째 마음 즉 전오식(前五識:안.이.비.설.신)을 정화하여서 모든 것을 이미 이루었으며 모든 것을 성취하는 지혜 1. 성소작지(成所作智)를 얻으며 여섯 번째 마음 제육식을 정화하여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혼동하지 않고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는 분별의 지혜 2. 묘관찰지(妙觀察智)를 얻으며 일곱 번째 마음 말나식을 정화하여 어떠한 느낌에도 치우침이 없는 평등하게 하는 지혜 3. 평등성지(平等性智) 얻으며 여덟 번째 마음 아뢰야식를 정화하여 무엇이든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비출 수 있는 능력 거울 같은 지혜 4. 대원경지(大圓鏡智)얻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에서 삼신과 사지가 있지만 보살이라 부처다 하면 세 가지 몸과 네 가지 지혜가 온전히 드러난 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살(菩薩)이란 보리살타(菩提薩埵)의 줄임말입니다. 보리는 깨달음(覺)이라  번역하고 살타는 중생 다시 말하면 깨달은 사람 각(覺)유정(有情) 깨달은 생명이라도 합니다.

보살의 실천덕목이 육바라밀인데 한마디로 귀결 지으면 보리심(菩提心)입니다 대승에서는 육바라밀을 수행 덕목으로 하여 보살에 이르는 것이고 남방불교 소승에서는 팔정도로 수행 덕목으로 하여 아라한에 이르는 것으로 합니다.

아라한과 보살의 다른 점은 아라한은 번뇌를 모두 소멸하고 윤회를 벗어나지만 보살은 번뇌를 소멸하고 윤회를 벗어 날 수 있지만 중생들을 위하여 다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 법신(法身): 진여불성의 이체(理體)가 무변무량하고

              무색무형의 이불(理佛)을 말함.

* 보신(報身): 지혜 자비등 일체공덕을 원만구족한 불신(佛身)을 말함.

* 화신(化身): 응신(應身) 또는 응화신이라고도 말함. 법신과 보신의 불이(不二)의 묘체(妙體)에서 중생을 화도(化導)하기 위해여 종종(種種)으로 응현(應現)한 불신(佛身)을 말함. 소승적으로는 역사적인 석존을 의미하기도 하나 대승적으로는 일체(一切)만유(萬有)를 말함.

* 육바라밀: 보시․인욕․지계․정진․선정․지혜

* 팔정도: 정견(正見)․정사유(正思惟)․정어(正語)․정업(正業.바른행위)․정명(正命.바른생활)․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

* 관자재보살이나 관세음보살이나 다 같은 범어(산스끄리트) 아와로키떼스와라(Avalokitesvara)말하는 것입니다.

중국 진나라 때 구마라집(344-413)이라는 스님은 인도스님인데 중국에 와서 많은 경전을 번역하시였습니다. 그분은 중국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의역을 했다고 합니다. 그 분은 관세음보살이라 번역하였고 현장스님은 주로 직역을 했는데 현장스님은 관자재보살이라 했습니다.


       


『원문』

行深般若波羅蜜多時에(행심반야바라밀다시에)

深密심밀의 正智정지로써 彼岸피안에 到하는 法을 修行수행


『풀이하여 읽음』

行深般若波羅蜜多時에(행심반야바라밀다시에)

깊고 세밀한深密 바른 지혜正智로써 저 언덕彼岸에 이르는 가르침을 수행修行할 때에


덧붙이는 글

부처님 공부를 “깊고 세밀한深密 바른 지혜正智”을 가지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염불수행을 하던 간경 수행하던 수행이 깊어지면 깊고 치밀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계행이 저절로 갖추어져 나가게 되고 바른 지혜라는 것은 나의 수행이 일체중생들에게 이익이 되게 하겠다는 보리심 즉 이타심을 가지고 수행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병고(病苦)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저 언덕에 이르는 법을 수행 할 적에” 깨달음에 이르는 법,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법을 수행 할 적에

   

『원문』

照見五蘊皆空 하여(조견오온개공 하여)

먼저 妄情망정으로 임의 分別분별하든 色法색법인 色蘊색온과 心法심법인 受의 四蘊사온은 일즉히 假相가상假名가명으로서 名相명상이 本일새 五蘊오온의 皆空개공함을 照見조견하야


『풀이하여 읽음』

照見五蘊皆空 하여(조견오온개공 하여)

먼저 부질없는 생각妄情으로 마음대로 분별하던 색법色法인 물질무더기色蘊 마음의 법心法인 수(느낌)(知覺)(形成)(意識)의 네 가지 무더기四蘊 일찌기 거짓 모습假相, 거짓 이름假名으로서 이름과 모양이 본래 공일새 다섯 무더기五蘊가 다 공함을 비추어보아照見


덧붙이는 글

인간의 모든 고통은 나라는 아상(我相)에서 시작하는 것이며 나라는 생각으로 하는 행위는 다 거짓모습이요 거짓이름입니다. 나라는 것을 오온(五蘊) 다섯 무더기로 정리하였습니다. 온(蘊)자는 무더기로 번역합니다.

1.색(色): 몸뚱이 만질 수 있는 것.

2.수(受): 감정·감각과 같은 고통·쾌락의 감수(感受)작용.

3.상(想): 심상(心像)을 취하는 취상작용으로서

         표상 ·개념 등의 작용을 의미한다.

4.행(行): 수·상·식 이외의 모든 마음의 작용을 총칭하는 것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의지작용·잠재적 형성력을 의미한다.

5.식(識): 인식판단의 작용, 또는 인식주관으로서의 주체적인

         마음을 가리킨다.


색(色)은 손으로 만질 수있는 것 즉 몸뚱이 이며 남아지는 다 마음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다섯 무더기를 깊고 세밀하게 자세히 비추어 보니 모두가 공(空)하다는 것입니다. 범어 ‘수냐(śūnya)’의 번역인데 텅 비였다고도 합니다만 공(空)의 정확한 이해는 


 “모든 존재는 인(因:씨앗)과 연(緣:물과 온도.조건)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므로, 고정된 실체(實體)는 없으며, 연기(緣起)에 의하여 존재하는 연기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없고 또 홀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깨달은 분의 깊은 사유에서 나온 진리이며, 이것이 불교의 근간(根幹)이 되는 가르침이며 이것을 꼭 마음으로 느끼시어야 하며 모든 대상을 이런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모든 형상과 마음작용이 인연에 의해서 모였다가 흩어지는 거품과 같은 무상함에 화낼 일도 좋아할 일도 집착할 일도 없고 마음의 평정, 더 나아가 망상을 소멸하고 고해의 바다를 건너간다는 것입니다. 


『원문』

度一切苦厄이니(도일체고액이니)

의 四苦사고를 主로 한 一切일체苦厄고액의 苦海고해를 渡 하나니


『풀이하여 읽음』

度一切苦厄이니(도일체고액이니)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의 네 가지 고통을 주로 한 일체 고통과 액난의 고해 바다苦海를 넘나니


덧붙이는 글

“일체(一切)의 고액(苦厄)”을 모든 고통과 불행을 생(生)․로(老)․병(病)․사(死)로 정리하였습니다. 부처님도 생로병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처절한 자신과의 투쟁 끝에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四聖諦)를 깨닫고 마침내 무상정등각자(無上正等覺者)가 되었습니다.

 

흔히 절 집에서 생로병사를 해결하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저도 젊은 시절에는 잘 이해가 안 되였는데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하나씩 떠나니 아 죽고 사는 일이 큰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수행을 통하여 마음에 망상과 집착이 녹으면 녹은 만치 죽음에 자유로운 것이고 흔히 말하는 업(業:행위)이 두터우면 두터운 만치 떠날 적에 고생하고 가는 것입니다.


* 사성제(四聖諦): 네 개의 가장 훌륭한 네 개의 진리. 부처님의 교설로 고집멸도를 말한다. ⒧고제(苦諦):범부의 생존은 고(苦)라는 진리. ⑵집제(集諦): 범부의 여러 가지 진리는 결국은 번뇌 갈애(渴愛)라는 진리. ⑶멸제(滅諦): 갈애를 소멸하고  고를 소멸한 열반 해탈이 이상경이라는 진리의 ⑷도제(道諦): 고(苦)의 소멸하는 수행법은 팔정도 밖에 없음을 밝히는 것.    


* 공(空): 범어 ‘수냐(śūnya)’순야(舜若) ·순야다(舜若多) 등으로 음역(音譯)되는데, 3가지 의미로 쓰인다. 인도 수학에서 수냐는(śūnya)는 영(零)을 의미하는 말로, 없는 것, 비어 있는 것, 결핍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둘째 불교, 특히 대승불교(大乘佛敎)에서 반야사상(般若思想) 계통의 중심사상이 된 말이다.


즉, 모든 존재는 인연(因緣)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므로, 고정된 실체(實體)는 없으며, 연기(緣起)에 의하여 존재하는 연기적 존재에 불과하다는 것을 뜻한다. 셋째, 부정사(否定詞)로서 없다[無]는 의미로 사용될 때 이것은 존재 자체의 부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는 것은 자체(自體) ·실체 ·아체(我體) ·본체(本體)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나타낸다.


즉, 아(我)나 세계를 구성하는 것의 영구적 항존성을 인정하는 견해를 잘못된 것으로 부정한다. 말하자면 고정적 실체의 부정이다. 이러한 공(空)의 사상은 원시불교에서부터 있었으나 대승불교, 특히 용수(龍樹:Nāgārjuna)의 반야사상에서 핵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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