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부처님 가르침은 다 반야심경(般若心經) 정도는 아시는 바와 같이 제법(諸法)이 공(空)이라, 제법은 일체(一切) 만유(萬有)를 다 가리키고 있습니다. 일체 만유가 다 공입니다.
우리 지구 땅덩어리라든가, 또는 그 은하(銀河) 세계의 - 은하세계도 끝도 갓도 없는 것인데 - 모두 무수 백억의 그런 각 별들이 모두가 다 텅텅 비어있단 말입니다. 그런 것들이 생겨날 때도 역시 그것도 물질이 물질을 낳은 것이 아니라, 『원래는 물질이 아닌 것인데 다만 우리 무명심(無明心)이 동(動)해서 잘 못 보아서 현상으로 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는 철학(哲學)도 공부를 하신 분들이 많이 계시리라고 믿습니다마는, 이른바 칸트 철학은 그야말로 굉장히 천재적(天才的)인 동시(同時)에 위대한 철학 아닙니까. 칸트 철학이 위대한 것은 무엇인고 하면은 우리 인식(認識)이 - 인식은 좋다, 궂다 느끼는 즉, 말하자면 마음의 관념(觀念) 작용(作用)아 아니겠습니까.
우리 인식이 객관적(客觀的)인 것이 아니고 우리 인식이라는 것이 저 밖에 있는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식주(認識主)인 내 주관(主觀)을 떠나서 인식이 성립(成立)될 수가 없단 말입니다. "모든 인식은 우리 주관에 의존해 있다." 이것이 칸트의 이른바 인식론(認識論)의 대요란 말입니다.
모든 인식(認識)은 자기(自己) 주관(主觀)에 의존(依存)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우리는 생각할 적에 '미운 놈 저놈 곧 죽이고 싶다.' 이럴 때가 더러 있겠습니다마는 이런 때도 그 대상(對象)이 내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관념(觀念)입니다. 물론 행동이 좋지 않아서 그런 나쁜 행동(行動)도 있겠습니다마는 아무튼 그런 나쁜 사람이라 하더라도 부처님께서 보시고 성자(聖者)가 보신다고 생각할 때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때는 그렇게 안봅니다. 곧 죽일 놈이라 하더라도 미울 수가 없습니다.
다만 본래는 부처님인데, 본래는 부처와 똑같은 하나의 그야말로 생명(生命) 존재인데, 다만 그 잘못 생각해서 그 버릇 때문에 나쁜 행동을 나한테 보이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 은혜(恩惠) 가운데도, 저는 가끔 이야기 합니다마는 은승창열(隱勝暢劣)이라! 숨을 은(隱)자, 수승할 승(勝)자, 좋은 점은 숨겨놓고서, 창열이라! 나타날 창(暢)자, 용열할 열(劣)자 말입니다. 좋은 것은 - 진여불성(眞如佛性)이라 하는 그야말로 참 조금도 간격도 없는 그러한 진여불성을 숨겨놓고서 그냥 나쁜 상(相)만, 못된 그런 현상(現象)만 우리한테 보인 은혜란 말입니다.
똑같은 부처는 부처인데 어느 것 하나도 부처 아닌 것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그때는 불법(佛法)이 성립(成立)이 못됩니다. 나도, 너도 어느 티끌 하나도 모두가 다 불법 가운데 다 포함되어 있단 말입니다. 따라서 나쁜 사람도 지금 곧 죽일 듯이 미운 사람도 역시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도 부처님 은혜란 말입니다.
즉, 말하자면 무슨 은혜인가?
그 불성이라 하는 그 소중한 영원(永遠)히 변치 않는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불구부정(不垢不淨)한 그러한 생명 자체는 숨겨 놓고서 우리한테 겉만, 겉의 상만 나쁘게 보인단 말입니다. 그런 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世上)에 감사(感謝)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바르게 판단하면 앞서 제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실상을, 실존을 우리가 느낀다고 생각할 때는 사실은 감사할 뿐입니다. 누구한테 따귀를 얻어맞아도 감사하고, 그러기에 정말로 참, 겸허한 사람들은 누가 얼굴에 침을 뱉어도 말입니다. 자기 손으로나 손수건으로나 침을 닦으려고 하지 않는단 말입니다. 어째서 그러는 것인가? 그 사람이 무안할까 보아서, 까닭 없이 애매하게 침을 뱉어도 말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냥 참기도 어렵겠지요.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닦지도 않는단 말입니다. 그 사람이 무안(無顔)할까 보아서, 그런 것도 역시 그렇게 하라고 시키면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현상만 생각할 때는 근본(根本) 뿌리를 생각하지 않고, 본래 성품(性品)을 생각하지 않고 현상만 생각할 때는, 곧 매 깨나 들고 - 한 대 맞으면 - 두, 세대를 때리고 싶겠지요. 부처님 제자라는 것은 어째서 부처님 제자인 것인가? 그런 형상만 밉고 곱고 그런 상만 안보고서 본 성품을 본단 말입니다. 성품을 볼 때는 우리 불자(佛子)가 일반 중생과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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