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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당 청화(淸華)큰스님/5. 청화 큰스님 수행처

8. 내장산 서래봉 벽련선원

 청화큰스님의 수행처를 찾아서 8


내장산 서래봉 벽련선원


사진 ․ 김동현/ 글 ․ 정진백


  가을은 온 누리를 충만케 하는 수확의 계절이다. 보람찬 결실의 상징성을 갖는다. 또한 여름내 무성했던 만물이 쇠락을 서두르면 우리네 영혼은 사뭇 고적하다. 만산홍엽滿山紅葉도 잠시, 눈물지는 나목裸木에 기대면 무상無常이 신속하고 생사生死가 큰 일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명징明澄한 얼굴로 깊어가는 가을, 마땅한 옛 스님의 시가 있다.


 조사의 뜻 온갖 풀끝에도 / 환히 드러나나니 // 그 풀끝아래서 / 바로 눈을 뜨시게 // 소양(雲門)의 삼매를 / 꼭 물어 무엇하리 // 금풍에 참모습 드러내어 / 가을이 눈에 가득차는 것을 // 가을이 눈에 가득차는 것은 / 이제 분별이 쉬었음인 듯 // 허리춤에 삼만 관의 / 돈을 동여매고 // 학에 걸터 앉아 / 양주 향해 오를까.


 祖意明明百草頭 草頭直下好開眸 韶陽三昧何須問 體露金風滿目秋 滿目秋了便休 腰纏三萬貫 騎鶴上揚州


 고려시대 보조지눌普照知訥선사의 법맥法脈을 이은 진각혜심眞覺慧諶선사의 게송이다. 일체현상一切現象속에 진리가 있으니 분별을 그치고 깨달아 유유자적하자는 의취意趣이리라. 기억건대 이 시의 핵심은 벽암록碧巖錄의 고창敲唱(고는 학인의 물음, 창은 스승의 대답)에 연원淵源하고 있다. 벽암록은 원오극근圓悟克勤선사께서 설두중현雪竇重顯선사의 송고백칙頌古百則에 수시垂示 평창評唱 착어着語를 더한 것이다. 지극한 성인의 명맥(至聖命脈)과 여러 조사님들의 대기(列祖大機)가 담겨 있는 종문宗門의 귀한 저작이다.


 한 스님이 운문스님께 여쭸다.

 “나무가 메마르고 잎새가 떨어질 때면 어떠합니까?”

 운문스님이 말씀하시기를

 “가을 바람에 참 모습이 다 드러났느니라.”

 擧僧問雲門 樹凋葉落時如何 雲門云 體露金風


이미 물음 속에 종지宗旨가 있어서 (問旣有宗)일까. 대답 역시 그러하다(答亦攸同). 옛 사람이 말하기를 모든 진리는 숨어 있지 않고 예나제나 항상 드러나 있다(古人道 法法不隱藏 古今常顯露)고 하였음인가. 실로 고준高峻한 경지, 오묘한 도리를 일러주는 정나라淨裸裸한 가르침이다.

 청화큰스님께서 수행하셨던 벽련암을 찾아 길을 재촉하는데 넓은 들판에 써늘한 회오리 바람이 어지럽다. 높고 먼 하늘에선 가랑비 추적추적 내리고(大野兮飆颯颯 長天兮疏雨濛濛).

 내장저수지를 지나 내장산 어귀에 들어서자 서래봉에서 불출봉, 망해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비구름에 휩싸여 비장秘藏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산 밖에서 볼 수 없는 빼어난 절경을 제 몸 안에 숨기고 있다는 내장산, 그 안에 과연 어떤 묘법妙法이 있을까.


 내장산은 가을에 더욱 빛나는 산이다. 산은 높지도 크지도 않다. 하지만 용립한 기암괴석과 가득한 단풍나무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가을 내장은 그 어느 산보다 수려하다. 그리고 내장산은 저 혼자 우뚝하지 않다. 서래봉 · 불출봉 · 까치봉 · 신선봉 · 연자봉 · 장군봉 등이 어깨를 낀 채 철옹성의 요새를 이룬 우애로운 형국이다. 또한 이웃하고 있는 백암산(백양사)과 한 몸이어서인지 예부터 호남의 오대 명산이자 조선팔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그래서일까.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제주에서 서울까지’ 한국의 산하를 걸어서 살펴본 한 외국인 기자가 있었다. 그는 훗날 기행문에다 백양사에서 순창 복흥, 추령秋嶺, 내장사에 이르는 풍광風光이 ‘한국의 길’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고 적어 놓았다.


 내장산(백암산 포함)국립공원은 전북 정읍시와 순창군 그리고 전남 장성군에 걸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영은산靈隱山이라 했다. 때문에 현재의 내장사 자리는 지난날의 영은사지靈隱寺址이고 내장사는 지금의 벽련암碧蓮庵자리에 있었다. 영은사(현재의 내장사)는 백제 무왕武王 때(서기 636년)에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했다. 당시에는 사우寺宇 오십동의 거찰巨刹이었다. 그 후 고려 숙종왕 때(1098년)에 행안선사幸安禪師가 전각당우殿閣堂宇를 새로 중창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 명종 때(1567) 희묵希默대사가 법당과 요사를 중수하고 당초의 영은산을 내장산으로 개칭하면서 내장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수난은 계속되어 임진왜란은 역사 이래 최대의 법난이었다. ‘임진왜란’ 뒤 인조 때(1639) 부용芙蓉대사가 내장사의 폐허에 사우를 중창하여 ‘천년도량’을 다시 세웠다.


 일천구백이십삼년(1923)에는 학명鶴鳴선사께서 주지로 계시면서 사세寺勢를 중흥시켰다. 학명선사께서는 일천팔백육십칠년(1867) 전남 영광군 불갑면 모악리에서 태어나셨다. 스무살 때인 일천팔백팔십칠년(1887) 불갑사佛甲寺에서 환송幻松스님을 은사로 득도得度, 금화金華스님을 계사로 수계하니 법명은 계종啓宗, 법호法號는 학명이시다. 일천팔백구십년(1890) 설유雪乳대강백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하고 십여년 동안 벽송사碧松寺, 선암사, 송광사 등 여러 곳의 선지식을 참방參訪하며 몇 개의 포단이 헐도록 참선 수행하였고 경 · 율 · 논 經律論 삼장을 널리 섭렵했다.


아울러 나라 밖 포교에도 진력하였으며 내소사 · 백양사 · 내장사의 주지 · 조실로서 선원을 중창하는 등 불사를 많이 해 사격寺格을 높였다. 특히 참선하는 대중 스님들과 함께 손수 수백경數百頃의 땅을 개간하였다. 스님께서는 반선반농半禪半農을 통한 사원경제의 자급자족을 실현하는 등 선구先驅의 종안宗眼을 발휘한 것이다. 또한 포행이나 울력, 참선 등을 하다가 삼매에 들면 꼿꼿하게 서서 이삼일씩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만해卍海 한용운 스님께서는 이러한 선지식의 수행력에 감탄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보냈다.


세상 밖에 천당은 적으나 / 사람 새에 지옥은 많은가요 / 장대 위에 꼿꼿이 선 채로 / 어이 한 걸음도 내딛지 않으시나요


 世外天堂少 人間地獄多 / 佇立竿頭勢 不進一步何


 내장사 일주문에 이르니 사람들이 마치 파도와 물결을 따라(隨波逐浪) 가을산과 하나된 채 천지를 덮으며(函蓋乾坤) 흘러가는 모습이다. 일주문에서 오른쪽 서래봉 가는 길로 향하였다. 서래봉 가는 길은 굴참나무 · 단풍나무 · 떡갈나무 · 소나무 등이 총총할 뿐 인파가 없어 여축없이 고즈넉한 ‘출세간’이다.

 벽련암은 서래봉西來峰(617m)의 중턱(330m)에 자리하고 있다. 청화큰스님께서 친히 쓰신 벽련선원碧蓮禪院 현판이 반갑다. 벽련암은 의자왕 이십년(660), 그러니까 백제가 무너지기 직전에 개산開山하였다. 원래는 내장사란 이름으로 일컬었다. 그러다가 영은사를 내장사로 바꿔 부르면서 이곳을 벽련암 또는 고내장古內藏으로 부르고 있다.


 누각 밑을 통하여 암자로 들어서니 운무雲霧속에 노니는 장군봉 · 연자봉 · 신선봉이 적선謫仙의 경지를 이루고 있다. 고원高遠하고 청아淸雅한 승경勝景이다. 또한 대웅전 뒤로는 서래봉이 있다. 서천축에서 오신 조사의 뜻이 가장 뛰어나다(西來祖意最堂堂) 하였던가. 불보살과 인연깊은 신령스러운 성소聖所로 다가왔다. 그래서 푸르른 산세山勢 속에 연꽃 한송이 (碧蓮庵)가 피어났을까. 벽련암은 청화큰스님의 스승이신 벽산당금타대화상碧山堂金陀大和尙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아름다운 청정도량이다.


 금타대화상께서는 일천팔백구십팔년(1898) 무술 윤삼월에 전북 고창군 무장茂長에서 태어나셨다. 속명은 김영대金寧大이며 자字는 성일性日이었다. 대화상께서 출가한 인연은 ‘3·1독립운동’과 관련하여 고창 문수사文殊寺에 피신하신 데서 그 단초端初를 찾을 수 있다. 그 곳에서 우연히 금강경을 득견得見하고 분연히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출가를 결심하신 것이다. 곧바로 장성 백양사 만암曼庵대종사를 은계사恩戒師로 득도得度하였다. 그 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생동안 설하신 교법敎法을 닦으시고 십팔년 동안이나 무자無字화두를 참구 정진하였으나 깨치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일천구백삼십구년(1939)동안거중 원각경 삼정관三淨觀의 청정윤법淸淨輪法으로 용맹정진하시어 정중定中에 보리방편문을 감득感得하고 견성오도見性悟道하셨다. 그뒤 대화상大和尙께서는 전북 부안 내소사 월명암月明庵에서의 일안거一安居를 제외하고는 정읍 내장사 벽련암과 백양사 운문암에서 문 밖을 나서지 않으신 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보임정진保任精進하심이 십수년이었다.


 금타대화상의 유법제자이신 청화큰스님께서는 일천구백팔십구년(1989)을 벽련암에서 지내셨다. 어쩌면, 간절한 비원이 있으셨으리. 그것은 아마 대화상의 깨침이 남달리 뛰어났으나 인연을 타지 못한 안타까움(師禪雖逸格惜緣不勝耳) 때문에 스승을 존중하는 큰 걸음(尊師之行) 이셨으리라. 찬탄하올 바로서 거룩한 스승과 훌륭한 제자(聖師賢弟子)의 보배로운 상속相續이 아닌가.

 운서주굉雲棲株宏(중국, 1535∼1615, 계율엄정강조 · 정토법문제창 · 방생권장)스님은 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에서 말씀하신다.


 옛날 제자들은 스승이 돌아가신 뒤에도 믿음을 굳게 지녔다. 요즈음 제자들은 스승이 살아계신데도 지조를 지키지 않고 바꾸어버린다. 무슨 까닭인가?

 처음 출가할 때 참스승 곁에 머물면서 생사를 걸려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다 한 때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은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란 눈앞의 이익을 보면 스승을 바꾸고, 나쁜 친구의 유혹에 영합하여 스승을 바꾸며, 스승의 올바른 가르침이 버거워도 스승을 바꾸어 버린다. 아아, 슬픈 일이다.

 古之爲弟子者師沒而信愈堅 今之爲弟子者師存而守已易所以者何 良繇最初出家 實非欲依止眞師 決擇生死蓋一時偶合而已 是以其心見利則易 逢惡友惑之則易 瞋其師之訓以正也則易 嗟乎悲哉


  요즈음 사람들은 명리를 탐하느라 예절과 의리를 버린다(今人嗜名利禮義)는 이야기다.

 다시, 운서주굉 스님은 말씀하신다.


눈 밝은 스승을 만난 수행자들이여,

 조급한 마음을 가지지 말 것을 바라노라.

 (遇明師者 幸毋以躁心乘之)


 서래선림西來禪林에 주석하시는 대우스님(전 조계종 포교원장)께 작별 인사를 드리자 말씀하신다. “청화 큰스님은 수행자들의 귀감이십니다. 그처럼 훌륭하신 선지식께서 짧은 기간이나마 벽련선원에 계셨다는 것은 큰 인연입니다. 감사하지요. 좋은 일 하시는데 어른 잘 모시고 위없는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전하세요. 불법포교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청화큰스님께서는 일천구백팔십구년(1989) 십일월 십삼일 벽련선원에서 동안거를 결제하시며 다음과 같은 법문法門을 들려주셨다.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고향이 없는 것처럼 비참한 것이 없습니다. 그 고향은 어디이며 고향을 분명히 아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사실 부처님 제자 외에는 자기 고향을 분명히 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을 믿는 분들은 모두가 다 고향의 소재, 고향이 어디있는가를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범부인 한에는 미처 고향에 당도를 못했습니다. 따라서 범부중생들은 모두가 다 고향 가기 위해서 헤매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이때, 뒤에는 참으로 희귀하고 아름다운 절벽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고 앞에도 먹산수 병풍 그림같은 그런 절경이 우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인간과 자연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인간의 번뇌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이 자연과 인간을 둘로 보는 것입니다. 자연과 인간은 절대로 둘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밑에서 성도하신 뒤에 먼저 하신 말씀이 초목국토실개성불草木國土悉皆成佛입니다. 풀이나 나무나 모두가 다 성불했단 말입니다. 이런 도리를 설파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 뿐입니다. 그 외의 어떤 종교든 인격을 완성한다, 또는 천당간다 하는 정도에 그칩니다. 사실 인간외에 유정물도 아닌 초목국토가 성불한다는 말씀은 부처님 법문외에는 없습니다. 초목국토까지 성불한다고 해야 이른바 대승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튼 성자가 못된 우리 중생들은 아직은 욕계나 색계나 무색계, 즉 삼계에서 헤매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고향못가서 서글퍼하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물을 떠난 고기는 파닥거리며 괴로워하다가 죽고 맙니다. 그와 똑같이 우주의 도리를 떠난, 진리를 떠난 중생들은 어디에서도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사회활동을 하면서 모두가 다 행복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진리를 떠난 중생들은 그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마음의 평화도 못찾습니다. 가정의 화목도 못찾습니다. 또는 지역 간이나 국가 간 또는 그 어떤 관계 간에도 행복과 평화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갈등이나 계층 간의 대립, 또는 사회적인 불안이 계속되는 것은 모두가 다 진리를 떠나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진리 가운데 부처님 진리는 최상의 진리입니다. 어째서 최상의 진리입니까? 부처님께서는 현상적인 문제와 실상적인 문제를, 체體와 용用 또는 성性과 상相을 모조리 다 통달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 외에 어떠한 것도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또는 원자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런 본바탕을 명확히 하지 않았습니다.   金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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