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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당 청화(淸華)큰스님/5. 청화 큰스님 수행처

9. 남해 금산 보리암

 청화큰스님의 수행처를 찾아서 9


남해 금산 보리암


사진 ․ 김동현/ 글 ․ 정진백



 바라보니, “아무런 걸림없이 흔쾌한(快哉何所依)” 겨울 하늘이 법운지(寒空法雲地)처럼 정갈하다. 그러한 까닭으로 정각淨覺선사께서는 능가사자기楞伽師資記의 머릿글에 “법신의 청정함이 허공과 같다(法身淸淨猶若虛空)”하였을까. 그리고 능가경(大乘入楞伽經) 에서는 “심성心性은 본래 청정하여 마치 맑기가 허공과 같다”하여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을 일깨우고 있을까. 유마경維摩經 또한, “보살이 정토를 얻으려면 마땅히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지닐 것이니 마음이 맑고 깨끗함에 따라 부처님의 나라가 맑고 깨끗해지는 것이다(若菩薩 欲得淨土 當淨其心 隨其心淨 則佛土淨)”고 강조하였을까. “깊은 마음이 청정하여져서 부처님의 지혜를 따르면 바로 부처님의 나라가 청정함을 볼 수 있다(深心淸淨 依佛智慧 則能見此 佛土淸淨)”고 약속하면서.

 

 그렇다. 마음은 스스로 청정한 까닭에 육조 혜능대사께서도 모름지기 자성의 삼신불三身佛을 확연히 보아야 함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기 육신의 청정한 법신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자기 육신의 천백억 화신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자기 육신의 원만한 보신부처님께 귀의합니다”를 세 번 부른다.

 육신의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법신불 · 화신불 · 보신불의 세 가지 성품의 부처님은 자성 가운데 있다. 세상 사람이 다 가지고 있지마는 스스로의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가지 성품의 부처님을 찾느라 스스로의 몸 가운데 있는 세 가지 성품의 부처님의 보지 못한다.

 그대들은 들으라. 그대들로 하여금 그대들 몸 가운데에 자성의 세 부처님이 있음을 보게 하리라. 이 세 가지 성품의 부처님은 자성에서 생기는 것이지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이름하여 청정한 법신부처님이라 하는가. 세상 사람들의 성품이 본래 깨끗하여 만가지의 법이 스스로의 성품에 따라 생겨난다. 그러므로 악한 일을 생각하면 바로 악을 행하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바로 착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스스로의 성품(自性) 가운데 있다. 마치 하늘이 맑고 해와 달도 늘 맑으나 구름이 덮으면 위는 밝아도 아래는 어두워지는 것과 같다. 그러다가 홀연히 바람이 불어 구름이 흩어지면 위아래가 함께 밝아져 만물이 모두 나타나는 것과 같다. 세상 사람들의 들떠 있는 성품도 저 하늘의 구름과 같은 것이다.

 선지식이여, 지智는 해와 같고 혜慧는 달과 같다. 지혜는 늘 밝지만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면 망념의 뜬구름이 스스로의 성품(自性)을 뒤덮어서 밝게 빛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지식을 만나서 진정한 가르침을 받고 스스로 미망迷妄을 없애면 안팎이 밝게 사무쳐 스스로의 성품에 만법이 다 나타난다. 견성한 도인도 이와 같은 바 이것을 청정한 법신 부처님이라 한다.

 

 於自色身歸依淸淨法身佛 於自色身歸依千百億化身佛 於自色身歸依圓滿報身佛 色身是舍宅 不可言歸向者 三身佛在 自性中 世人總有 爲自心迷 不見內性 外覓三身如來 不見自身中有三身佛 汝等聽設 令汝等於自身中見自性有三身佛 此三身佛 從自性生 不從外得

 何名淸淨法身佛 世人性本淸淨 萬法從自性生 思量一切惡事 卽生惡行 思量一切善事 卽生善行 如是諸法在自性中 如天常淸 日月常明 爲浮雲蓋覆 上明下暗 忽遇風吹雲散 上下俱明 萬象皆現 世人性常浮遊 如彼天雲 善知識 智如日 慧如月 智慧常明 於外著境 被自念浮雲蓋覆自性 不得明朗 若遇善知識 聞眞正法 自除迷妄 內外明徹 於自性中萬法皆現 見性之人 亦復如是 此名淸淨法身佛


 보리암菩提菴은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서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을 반려伴侶삼아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금산은 이름 그대로 마치 고운 비단을 깔아놓은 듯 산세가 빼어나다. 해발 육백팔십일미터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숨겨져 있는 경치가 상당하여 눈을 부시게 한다. 금산의 제일경第一景인 쌍홍문을 비롯하여 무려 삼십팔경이 특별한 모습을 떨치고 있음에. 그리고 비단 위에 꽃을 더함인가. 보리암이 고요히 도를 따르며 깨달음의 깊이를 더하여(道隨悟深) 일천사백여년의 역사를 이루어온 수행의 성지로서, 이 땅의 대표적인 관음기도처로서 그 이름을 빛내고 있다.

 

 상주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관세음보살상 앞에 서니 마음은 텅비고 경계는 고요하다(心空境寂). 뒤로는 산을 지고 앞으로는 바다를 토해 놓은 절경에 초연히 자리한 관세음보살상의 모습이 그지없이 자비롭다. 별안간 한 생각에 헐떡이는 마음 쉬어지고 안팎의 근진까지 훤히 뚫릴 것(瞥然一念狂心歇 內外根塵俱洞徹)같은 넓고 큰 도량(豁達大度)을 갖게 된다. 비할 바 없는 즐거움이 마음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관세음보살상 옆에 위치하고 있는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재 74호) 역시 예사롭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석탑은 김수로왕비 허태후許太后가 인도 월지국月之國에서 가져온 부처님 사리를 원효대사께서 이곳에 모셔 세웠다고 한다. 화강암으로 조성한 양식을 보이는데 단층기단 위에 형성한 일백육십오센티미터의 우아한 탑신에는 각층마다 우주偶柱가 새겨져 있고 상륜부上輪部에는 귀한 구슬 모양의 보주寶珠가 남아 있다. 또한 불가사의한 것은 이곳에 나침반을 놓으면 자침이 동서남북을 가리키지 못하고 헛돈다는 것이다. 석탑의 경이로움일까. 명당의 조화造化일까.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이었다. 원효대사께서 신라 문무왕 때(서기 663년)에 보광사를 창건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그 보광산의 이름이 금산으로 바뀐 것은 ‘이씨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에 의해서다. 보광산에서 관음기도를 올린 이성계가 마침내 자신의 의도대로 ‘조선’을 개국하고 그 기도에 대한 보답으로 산을 온통 비단으로 덮겠다고 기약한 데서 기인한다.

 보리암은 원효대사께서 세우신 보광사의 부속 암자다. 보광사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다행히 남아있는 보리암은 자연과 수행이 융합하는 완미完美로운 모습으로 조화롭다. 거대한 바위들의 위의威儀가 당당하고 소나무 대나무의 상도常度역시 청청靑靑하다. 여기에 더하여 기세좋게 쏟아지는 광명도 무량無量하여 온갖 청정해를 장엄하고 있다 (無量光明恒熾然 種種莊嚴淸淨海). 그래서 영원히 시들지 않는 마음을 깨닫고자 하거든 우주만물의 처지를 보라 (欲識常住不凋心 向萬物變遷處識)하였을까. “끊어버릴 것도 매일 것도 없이 그대로 걸림없이 제 뜻대로 사는 사람을 일러 해탈인이라고 한다 (不斷不造 任運自在 名爲解脫人)” 면 수행자는 성품상 산천을 좋아하고 주로 바위 골짜기에 머물러(性好山泉 多處巖壑) 즐거이 좌선습송(坐禪習誦) 하지 않았으랴. 그 때문인지 얼마전까지만 해도 보리암을 찾아 공부하면 저절로 도道가 증장됐다니 가히 선지식들의 수행처가 아닐 수 없다.

 

 원효대사 역시 위없는 진리를 깨치어 중생구제衆生救濟와 불교생활화를 위해 나라 안을 두루 다녔다.

 여지승람與地勝覽에 의하면 곳곳에 발자취를 남겼고 특히 경치 좋고 풍격風格높은 산을 모두 다녔다 (勝地名山 盡皆遊憩). 그리하여 원효대사의 이름이 붙었거나 원효대사께서 직접 창건하신 절이 지금까지도 도처到處에 남아있다.

 보리암을 창건한 원효대사는 삼국전쟁 시대에 태어나 그 속에서 대부분의 생애를 보낸 ‘통불교通佛敎의 건설자’라 할 수 있다. 원효대사한테는 불교가 있을 뿐 종파는 없었다. 최남선은 “원효를 만나서 조선불교는 단일 교리에 의한 최후의 완성을 실현하게 되었다. 각파 그대로를 말미암아 구극일원究極一源을 붙들어서 전일적專一的불교를 표현하려 함이 원효의 지의旨意였다. 원효가 있어서 여기 일승적 불교가 있다고 할 것이며 원효가 있어 조선 불교에 빛이 있고, 조선 불교가 있어서 동방 불교에 의의가 있다”고 원효대사의 지위를 조명한 바 있다.

 

실로 원효대사의 지식은 일월日月과 같고, 인천人天을 통관通貫하였으며 일종일판一宗一判에 국집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원효대사는 동방의 새벽별(曙星)로서 그 빛은 천고의 암흑을 깨뜨렸고 그의 깃발은 오늘도 중생의 앞길을 가리키고 있다.

 삼국유사(권4, 元曉不羈)에 의하면, 원효대사께서는 신라 진평왕(617년)때에 압량군押梁郡 남쪽 불지촌佛地村 율곡栗谷의 사라수裟羅樹 아래서 태어났다. 원효대사는 나면서부터 총명하고 남보다 뛰어나서 스승을 따라 배우지 않았다(生而穎異 學不從師). 원효대사가 탄생한 마을 이름을 불지촌이라 하고, 절 이름을 초개사初開寺라 하고 스스로 원효라 한 것은 모두 불교를 처음으로 빛나게 했다는 뜻이다.

 원효대사의 수학修學에 대해서 송고승전宋高僧傳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았으되 다니는 곳이 일정하지 않았다(隨師稟業遊處無恒)”고 서술하고 있다. 원효대사께서 낭지朗智 · 혜공惠空 · 보덕普德대사 등을 역방歷訪하여 연구 · 수련하였다는 기록들이 산견散見되고 있다. 또한 의상義湘대사와 당나라에 들어가 공부할 뜻을 세우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나라로 가던 길에서 일기日氣가 순조롭지 않아 고분古墳에서 은신하다가 홀연히 맹성猛省하여,

 

 “지난 밤 잘 적에는 토감이라 생각하여 편안하였는데 오늘 밤은 귀신이 있는 곳이라 생각하니 무섭도다. 바로 알지니라. 마음이 생기는 까닭에 갖가지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는 까닭에 감실과 무덤이 둘이 아니로구나”하고 탄식하였다. 이어서 “삼계는 오로지 마음뿐이요, 만법도 오로지 식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거늘 어찌 달리 구할 것이 있으랴.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으리라(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 我不入唐)” 결단하고 발길을 돌렸다.

 여기서 주목할 바는 원효대사의 오도悟道 내용이다. ‘삼계유심三界唯心’의 문구는 원효대사가 주석註釋했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까닭에 일체법은 거울 속의 형상과 같아서 실체는 얻을 수가 없다. 오로지 마음 뿐 허망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마음이 생기면 갖가지의 법이 생기고 마음이 없어지면 갖가지의 법도 없어지기 때문이다(是故一切法 如鏡中像 無體可得 唯心虛妄 以生心則 種種法生以滅則種種法滅故).


 마침내, 원효대사께서는 유심唯心을 돈오頓悟한 후 무량법계無量法界의 극의極意를 통달하고 순수한 민족불교를 독창한 것이다.

 

 진리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불보살들께서는 법을 구할 때 몸을 몸으로 여기지 않고 목숨을 목숨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모든 부처님의 완전한 깨달음은 여러 겁劫을 수행한 것이다. 숱한 시간과 공간을 지나면서 닦은 고행과 보시, 인욕과 중생에 대한 무조건의 헌신으로써 심법心法의 세계世界에 통달하게 된 것이다.

 청화큰스님께서는 어떻게 그 마음을 청정히 하여 심오하고 깊은 진리의 문을 여셨을까. 어떻게 한 순간의 망념을 모두 소멸(一刹那間妄念俱滅)하여 이른바 영혼을 씻어 낸 큰 기쁨(消魂大悅)의 차별없는 경계(無差別境界)에 진입하셨을까.

 청화큰스님께서는 일천구백육십팔년 무렵 보리암에서 수행 정진하셨다. 청화큰스님께서는 애오라지 마음자리를 깨닫고자 (悟明心地) 궁벽한 시골을 찾아 산림에 즐거이 머물며 적정을 구하는 데 뜻을 두고 (樂住山林 志求寂靜) 스스로를 숨기셨다. 당시만해도 보리암은 깨달음의 바른 안목 (正法眼)을 얻기에 희유한 관문이었다. 때문에 바깥 경계를 쉬기에 좋은 한가한 바닷가를 찾아와 머무르신 (閑來居海上)것이 아닐까.


 청화큰스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마명대사의 대승기신론에 심진여시대총상법문지체야心眞如是大總相法門之體也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 바탕인 진여, 이것이 바로 모든 만법의 기본적인 본체란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어디까지나 본체를 여의지 않습니다. 본체를 여의지 않는 것이 대총상법문입니다. 이른바 진여불성의 본체입니다.

 육조단경에서도 말씀하셨습니다마는, 우리 마음이 바로 우리 자성인데, 우리 자성 가운데 우리 마음의 본체가 바로 청정법신비로자나불淸淨法身毘盧遮那佛입니다. 우리 마음의 본체가 바로 법신불이란 말입니다. 우리 마음의 본체에 포함되어 있는 모든 덕성, 지혜공덕이 바로 원만보신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입니다.

 

 법신과 보신을 근거로 해서 모양을 나투고 또는 변화하는 그러한 차원에서, 이것이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입니다. 즉 우리 마음 가운데에 법신과 보신과 화신 삼신이 원만히 갖추어 들어 있습니다.

 우리의 본래 마음은 이 우주와 더불어 둘이 아닌, 우리 생명과 더불어 둘이 아닌 그 법신을 온전히 다 갖추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그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의 부처님, 청정법신이 그대로 우리 마음의 본성품입니다. 그 자리에서 지혜 · 자비 · 능력 · 행복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성, 우리의 본성이 지금 이대로 원만구족한 진여불성인 것입니다.    金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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