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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당 청화(淸華)큰스님/5. 청화 큰스님 수행처

5. 무안 혜운사

 청화큰스님의 수행처를 찾아서


무안 혜운사


사진 ․ 김동현/ 글 ․ 정진백


  “아수라阿修羅의 늪에서, 오만 번뇌의 진탕에서, 무슨, 저런 꽃이 피지요? 칠흑 어둠을 먹고, 스스로를 불사른 듯 화안히, 피어오른, 꽃”, 연꽃은 못 속의 진흙과 흙탕물에서 자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결에 씻겨도 요염하지 않은채(出淤泥而不染 濯淸蓮而不妖) 아름답게 피어나 미묘한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연꽃의 성품이 불성과 불교의 가르침에 들어맞아 청淸, 정淨, 향香, 결潔의 상징으로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연꽃의 봉오리는 청정淸淨을, 활짝 핀 꽃은 성불成佛을, 연밥이 드러난 꽃은 진리를 뜻한다.

 그래서일까 불가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에는 연꽃(蓮)이 들어간 말이 많다. 부처님과 보살님들이 앉아 있는 자리를 연화좌蓮華座라 부르고 극락정토의 성중聖衆들이 연화지蓮花池에 모여 법을듣는 것을 연화회蓮花會라 하였다. 또한 스님들께서 입는 가사를 연화의蓮花衣라 하고 두 손을 합치는 행법을 연화합장이라 한다. 이것은 모두 번뇌와 고통과 탐욕으로 뒤덮여 있는 사바세계의 티끌에 물들지 않고 고결함과 청정함을 지키는 불보살의 공덕을 연꽃에 비유한 것이다.

 

 한편, 청정과 광명이 충만되어 있는 이상적인 불국토를 이름하여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 한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세계이며 한량없는 공덕과 광대장엄을 갖춘 불국토이다. 이 세계에는 큰 연화가 있고 그 가운데 일체의 국토와 일체의 사물을 모두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연화장세계라 한다. 그 세계에 대해서 화엄경에서는 노사나불의 서원과 수행에 의하여 현출된 이상적이 세계가 이 세계라고 보았다. 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의 깊은 진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경전 가운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 있는데 경의 이름에 대하여 중국 송나라 때 계환戒環 (開元蓮寺) 스님이 주석한 내용을 소개하면 이렇다.


 실상묘법을 방편으로 연화에 비유하시니 안으로는 일심을 가르치시고 밖으로는 일만 경계에 회통하심이로다. 꽃과 동시에 곧 열매가 맺고 더러운 곳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깨끗하니 이것은 연꽃의 실상이요 중생과 부처가 근본이 있어 윤회를 거듭해도 달라지지 아니하나니 이것은 마음과 경계의 가지가지 종류를 모두 법이라 이르셨도다. 정묘하고 거칠음이 하나로부터 이루어지고 범부와 성인이 근본은 같음이로다. 모든 사리에 어긋남이 없고 일마다 참답고 진실하여 글이나 말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고 사량과 분별로서는 도저히 알지못한다 이러므로 이를 이름하여 묘라 하셨도다. 중생이 육도六度 윤회를 면치 못함도 이것을 알지 못한 까닭이요 부처님들이 닦아 증득하셨다는 것도 또한 이것이로다. 저 팔만법장과 무수 방편이 모두 이것을 알리고자 하심이로다. 이른바 묘법은 추를 버리고 묘를 취한 것이 아니고 추에서 곧 묘를 나타내심이요

 

 이른바 일승법一乘法은 삼승법三乘法을 떠나서 일승법을 설한 것이 아니라 삼승법을 모아 일승법에 돌리신 것이로다. 추에서 곧 묘를 나타내심은 연꽃이 더러운 곳에서도 항상 깨끗함과 같고 삼승법을 모아 일승법에 돌리신 것은 꽃과 동시에 열매가 맺는것과 같아서 법과 비유가 나란히 나타나고 이름과 실상이 같이 나타나는 연고로 이름을 묘법연화라 하셨도다. 지와 행이 둘이 온전하여야 묘를 나투게 된다.

 이른바 부처님의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이 한 제목에 다 밝히셨도다.


 청화淸華큰스님. 모든 중생이 청정한 자성自性을 간직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맑고 향기로운 연꽃에 다름아니다. 더욱이 큰 스님께서 태어나신 곳이 전남 무안군 운남雲南면 연리(蓮里, 연꽃마을)이니 “꽃망울 속에 새로운 우주가 열리는 파동波動”은 저 태고太古 적에 벌써 점지되었음인가. 전하는 말로는 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걸어갈 때 떼어놓은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청화큰스님께서는 일천구백이십삼년 십일월 육일(음력) 아버지 강대봉姜大奉 공과 어머니 박양녀朴良女 여사 사이에서 태어나셨다. 속세에서 불리어진 큰스님의 함자는 강호성姜虎成이시다.

 ‘청화淸華’라는 법명은 스승이신 금타대화상金陀大和尙한테서 받으셨다. 청화큰스님께서는 보통학교를 졸업하시고 일본으로 건너가 고학으로 중등과정을 마치시고 귀국하셔서는 광주사범학교에서 수학하셨다. 이후 운남초등학교 교사로서 후학들을 가르치시다가 고향친구인 배태우 선생등과 함께 뜻을 모아 청운중학교靑雲中學校(현재의 망운중학교)를 세워 후진양성에 진력하셨다.

 청화큰스님은 청년시대를 현실을 변혁하고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활동과정으로 규정하고 사회역사적 존재로서 치열하게 운신運身하셨다. 때는 바야흐로 해방공간이었다. 잘 알다시피 조국과 민족의 분단은 우리 민족의 자율적인 선택이 아니라 국제적 냉전체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강요된 굴레였다. 제국주의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미국 중심의 입장과 세계혁명전선을 최대화하려는 소련 중심의 입장이 맞물려 삼팔선을 경계로 남과 북이 갈라선 것이다. 이 무렵 청화큰스님께서는 극심한 좌우익의 갈등을 체험하며 사회역사적 존재로서 ‘수승殊勝의 지혜’를 찾아 ‘솔선의 실천’을 역사役事하셨다. 사회적 관계를 떠나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사회적 성격을 띠지 않는 인간사회의 문제도 있을 수 없지 않는가.

 

 청화큰스님은 무안지역의 청년지도자로서 사회가 끊임없이 운동 발전하는 큰 흐름 속에서 정치사상적 관계, 정신문화 및 도덕적 관계 등과 연결되어 높은 신망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해방정국의 사회경제구성체는 복잡한 성격을 띠고 있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간의 모순은 말할 것도 없고 민족 내부의 대립과 계급간의 갈등이 중층화하여 긴장된 분위기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사회 성격의 운명공동체에서 살아야 하는 지인至人의 자존과 권리는 무주無住일 수밖에.

 

 일천구백사십칠년, 청화큰스님께서는 집안의 재종아우(강춘원 스님)을 따라 공부하기 좋다는 곳을 찾아 역사적 여로에 올랐다. 백양사 운문암이었다. 여기서 금타대화상을 친견한 순간, 미련없이 출가를 결행하였다. 처음부터 본분종사本分宗師를 만나 반야般若의 영단靈丹을 받은 것일까. 뜻을 세운 장부로서 본분사를 향하여서 자취를 숨기고 명예도 버린 채 공부길에 들어섰다(若是有志丈夫 正好向者裡 晦跡韜光 潛行密用). 당당한 경지에서 오고 가며 머무름에 무애자재하면 이 몸의 인연이 다하는 날 틀림없이 원하는 결과를 얻을 것으로 확신하였다. 때문에 살아오는 동안의 고락苦樂에서 벗어나 사해일가四海一家의 지복至福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 산의 마음으로 결심한 것이다. 산중에는 함께 불도를 닦는 도반들이 많아 참선과 염불을 하며 스스로 무리를 이루었고(山中多法侶 禪誦自爲群) 흰구름 깊은 산속에 함께 은거할 뜻을 가졌다(共有白雲心). 생로병사를 제거하는 이치를 알고자 한다면 오직 불생불멸의 진리를 배우는 길 뿐이지 않겠는가(欲知除老病 惟有學無生).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나는 출가하기 전에 대단히 행복하고 화려한 생활을 했다. 세 개의 궁궐에서 최고급 옷을 입고 진수성찬을 즐겼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나는 그와 같은 본능적인 삶을 살아가면서 생각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도 늙어가는 몸이고 늙음을 피할 수도 없으면서 늙은 사람을 보면 정작 자신의 일을 잊어버리고 싫어한다. 생각하면 나 역시 늙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늙어서 쇠약해진 사람들을 보고 싫어하는 것은 나로서는 옳은 일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생각했을 때 나의 청춘에 대한 교만은 산산이 부서져버렸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계속해서 질병과 죽음의 고통에 관해 명상하면서 “본능적인 것들에 지배된다면 어떻게 완전한 자유인 니르바나를 깨달을 것인가”를 고뇌하였다. 그리하여 “아직 젊어 칠흑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생의 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가족의 통곡을 뒤로 한 채 출가 사문沙門이 되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는 가족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인류 전체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만약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없었더라면 부처님께서는 세상에 나지 않으셨을 터이니 결국 무병無病과 무노無老와 무사無死를 구求하여 출가하신 것이다. 세속적인 삶은 그 자체가 제한된 속박이고 투쟁의 연속이다. 그러나 청춘과 건강과 생존의 세 가지 교만을 경계한 출가자의 구도행求道行은 공활한 하늘과 같다. 풍진 세상에 살면서 청정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지난至難한 일이다.


 청화큰스님께서는 스승 금타대화상 문하에서 정통선과 원통불법의 요체를 공부하면서 하루 한 끼 공양과 눕지 않는 수행법으로 가행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후 금타대화상께서 열반하신 후 제방에서 정진하시다가 향리鄕里와 멀지 않은 곳에 처소를 정하셨다. 무안반도의 기가 응결되어 있는 대박산에 손수 토굴을 지어 혹독한 고행으로 사생결단에 돌입하신 것이다. 토굴의 사방공간이 겨우 사람 몸 하나 들어갈 수 있었다니 거룩한 고행이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구도자로서 번뇌를 제거하고 생을 정화하기 위한 고독한 선택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오랫동안의 고통스러운 금욕상태에서 마군魔軍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의 육체가 소모되어갈 때 나의 마음은 더욱더 맑아질 것이다. 나의 선정, 지혜 그리고 집중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극한적인 고통을 겪으면서도 욕망을 바라지 않는다. 존재의 순수함을 지킬 것이다. 감각적 욕망, 성스러운 삶에 대한 혐오, 굶주림과 목마름, 갈망, 게으름과 지둔한 것, 두려움, 의심, 비방과 고집, 칭찬과 명예를 얻어 나쁜 명성을 얻는 것, 자신을 칭찬하면서 남을 비난하는 것, 이것이 사악한 자의 무리(魔軍)들이다. 비겁한 자는 그 적을 이겨낼 수 없다. 그러나 극복한 자는 행복을 얻게 되리라. 마군은 나를 밀어낼 수가 없다. 신들과 이 세상이 정복하지 못한 마군을 나의 지혜로 파괴해버릴 것이다.


청화큰스님께서는 6년여의 치열한 고행기간동안 오직 자신의 노력과 지혜에 의지해서 참선정진하였다.

 혜능慧能선사께서는 『육조단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 몸에서 떠나지 않고 그 안에 계시는 청정한 법신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내 몸 안에서 떠나지 않고 그 안에 계시면서 천백억이라는 무수한 모습으로 변화하시는 화신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내 몸을 떠나지 않고 그 안에 계시면서 복덕지혜가 원만하신 보신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이상을 세 번 부른다. 육신은 가옥이다. 이런 것에는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법신불 화신불 보신불은 자기 본성 속에 잇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자기 마음을 잃고 헤매고 있기 때문에, 자기 본성 속에 있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밖을 향하여 삼신의 부처님을 찾으면서, 자기 속에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의 부처님이 계심을 알지 못하고 있다. 내 말을 잘 들어보면 여러분 몸 속에 자기 마음으로서의 삼세불이 있음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이 삼세불은 여러분의 본디의 본성에서 생기는 것이지, 몸 밖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일컬어 청정 법신이라 하는가? 누구 할 것 없이 본성은 본디부터 청정하며 모든 존재는 이 본성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자기 본성의 공덕을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실천하는 것, 이것이 진실한 귀의다. 피부와 살덩이는 육체며, 육체는 가옥이기 때문에, 거기 대하여 귀의라고는 하지 않는다. 만약 본성에 구비된 삼신을 깨닫는다면 당장에 자성의 중대한 의미를 아는 것으로 된다.


 혜운사慧雲寺를 나서는데 서훈 주지스님, 보현스님, 승조거사와의 정리定離가 그지없이 허허롭다. 머리숙여 절하고 바라보니 수행의 세월 속에 맑아진 화안和顔과 희로애락의 번뇌가 씻기어진 자태가 적막하고 청정한 도량과 하나되어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한다. 출가 수행자의 본분, 중생을 위해 회향回向되어야 할 목표, 모든 곳에 한량없이 계시는 거룩한 청화큰스님의 가르침…어디 그뿐이랴.

 미라래빠의 십만송十萬頌은 말한다.


오, 스승이시여,/정견과 수행과 정행의 사표師表이시여!/은총을 내리시어/언제나 진아에 머물게 하소서.//정견과 수행과 정행, 그리고 성취에는/세 가지 요점이 있음을 알아야 하리.//

 삼라만상 우주 자체는/마음속에 있고/마음의 본질(一心)은/잡을 수 없고 생각할 수 없는/

 투명한 깨달음의 세계이니/이것이 바로 정견의 요점.//방황하는 사념은/법신法身에서 녹아지고/명정하게 깨어 있음은/항상 지복이도다./노력 없이, 행함 없이 명상할지니/이것이 바로 수행의 요점.//무위자연無爲自然의 행위에서/열 가지 덕(十德)은 절로 나오고/열 가지 악(十惡)은 정화되네./바로잡음에도 제거함에도/밝게 빛나는 공성空性은 변치 않나니/이것이 바로 정행의 요점.//성취해야 할 열반도 없고/떠나야 할 윤회도 없나니/진아를 참답게 아는 자는 붓다 자신이 되도다./이것이 바로 위대한 성취의 요점이네.//많은 행위가 소용없나니/

 본래갖춘 대지혜(本生智)를 알면/생의 목적은 성취되네.//진리를 수행하는 모든 이들에게/이 가르침은 보석과 같나니/이를 깊이 생각하고/가슴속에 소중히 간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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