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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당 청화(淸華)큰스님/5. 청화 큰스님 수행처

2. 두륜산 상원암․진불암

 청화큰스님의 수행처를 찾아서


두륜산 상원암․진불암


사진 ․ 김동현/ 글 ․ 정진백


해남가는 길, 각별하게 인연깊은 선각先覺들이 들뜬 길손의 무명無明을 경이롭게 밝히고 있다. 옛글에 “지혜있는 사람은 등불같아서, 어둠속의 세상을 밝혀 주나니, 눈 밝은 사람이 장님을 인도하듯, 어리석은 세상 사람 바르게 지도하네(智者喩明燈 闇者從得燭 示導世間人 如目將無目)”하였다. 도저到底한 동양사학의 지존至尊인 고 민두기閔斗基(전 서울대 교수 ․ 동양사)선생, 민중시民衆詩의 가열한 절창을 토파吐破한 고 김남주金南柱시인, 그리고 고원高遠한 이상을 역동적으로 추진하였던 고 윤기남尹基南 선생의 현철賢哲이 한데 어우러져서 여린 가슴에 다사로운 법우法雨를 흩뿌려준다. 만해 스님이었던가.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진다”고 하였다. 연연불망戀戀不忘으로 한 깊은 길손의 마음은 암연黯然히 수수롭다.

 

 두륜산 대둔사로 접어드니 푸른 산빛이나 울창한 수림, 시냇물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특히 계곡을 끼고 십리나 이어지는 나무와 숲은 치솟아오르는 적송 ․ 참나무 ․ 단풍나무 ․ 느티나무 ․ 편백 ․ 삼나무 ․ 배롱나무 ․ 동백 등이 장엄하게 뻗어 기운생동하고 있다. 나무들은 몇백년, 몇십년의 수령을 가졌건만 교목喬木으로서 여전히 싱싱하고 넉넉하다. 희귀한 승경勝景이다. 선기禪氣가 가득하다. 그래서 자연은 그 자체가 법신法身이며 청정신淸淨身일까. 소동파蘇東坡의 시는 말한다.


 시냇물 소리가 곧 광장설인데

 산빛이 어찌 청정신이 아니랴.

 溪聲卽是廣長舌

 山色豈無淸淨身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九林里 장춘동長春洞, 두륜산 대둔사와 상원암 ․ 진불암은 거기에 깊이 들어앉아 있다.

 중국 곤륜산崑崙山 줄기가 한반도로 흘러 백두대간을 이루고 남쪽 땅끝까지 계속 뻗어내려와 마지막으로 몸을 부린 산이라 하여 백두의 두頭, 곤륜의 륜崙을 따서 두륜산頭崙山이라 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지명을 강제로 표기하면서 두륜산頭崙山은 두륜산頭輪山으로 바뀌었고 대둔사 역시 대흥사大興寺로 변경되었다. 두륜산 대둔사 頭崙山 大芚寺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은 1993년, 최근이다.

 

 대둔사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은 청허당淸虛堂 서산 대사西山大師의 부촉咐囑 때문이었다. 서산 대사는 묘향산 원적암에서 입적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유언하기를 당신의 의발衣鉢을 두륜산에 두라 하였다. 왜 구태여 남쪽 바닷가 외진 곳을 택하였을까. 이유가 있었다. 서산 대사는 “두륜산은 모든 것이다. 잘될 만한 곳이다. 북으로 월출산이 이어져 있고 동의 천관산과 서의 선운산이 홀연히 마주 솟아 있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골짜기는 깊고 그윽하니 이곳은 삼재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요, 만세토록 파괴됨이 없는 곳이며 종통의 소귀처이다.(三災不入之處 萬古不毁之處 宗統所歸之處)”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서산 대사의 간곡한 배려로 인하여 대둔사는 크게 일어났다. 주지하듯 서산 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선은 부처의 마음이요, 교는 부처의 말씀이다(禪是佛心 敎是佛語)”라고 밝히며 선교일치 ․ 선교통합을 전개하였다. 아울러 서산대사는 “마명馬鳴과 용수龍樹가 다 높은 조사이면서 염불왕생을 권장하였는데, 내가 무엇이기에 염불을 안할까 보냐”라고 간절히 염불을 권면하였다.

 다시, 서산대사는 말한다.

 

 “염불은 입으로 부를 때는 송誦이라 하고 마음으로 할 때는 염念이라 한다. 다만 송에 그치고 염을 잃어버리면 도道에는 무익하다. 나무아미타불 여섯자는 윤회를 벗어나게 하는 결정적인 지름길이다. 마음으로는 부처님의 경계에 연緣하여 늘 잊지않고 생각하며, 입으로는 부처님의 명호를 불러 흐트러지지 않으면 마음과 입이 하나되어 서로 응하면, 진정한 염불이 된다.

 (念佛者 在口曰誦 在心曰念 於道無益 南無阿彌陀佛六字 定出輪廻之捷徑也 心則緣佛境界憶持不忘 口則稱佛名號 分明不亂 如是心口相應 名曰念佛)”


 대둔사는 서산 대사의 유지를 받들어 조선시대의 배불정책 아래서도 열세분의 대종사大宗師와 대강사大講師를 배출하여 회통불교會通佛敎의 대도량으로서 진면모를 드날렸다. 그 가운데서도 선과 교와 염불을 불교수행의 요체로 삼은 연담유일蓮潭有一 아암혜장兒庵惠藏 초의의순艸衣意恂 대사를 손꼽을 수 있다. 이분들은 각각이 채제공蔡濟恭 정약용丁若鏞 김정희金正喜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들과 상교相交하면서 조선후기 사상의 근대적 맹아萌芽를 배양하였다. 특히 초의 대사는 두륜산 뒤편에 일지암을 짓고 전선專禪 일변도로 흐르고 있는 시대사조에 반反해, 제법불이諸法不二를 강조하며 정진하였다. 또한 수행에 전심전력하면서도 종교와 승속을 초월하여 자재한 가운데 모든 것을 부처님의 본지本旨에 계합契合토록 하였다. 조선시대 불교계가 온갖 시련을 당하는 정치사회적 압제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소동파처럼 종횡무진한 교류를 통해 사상과 행동의 대자유를 구가하면서 불우한 인재들에게 ‘자비보살’의 용맹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참으로 청조淸操한 선지식이다.

 

 서산 대사의 영정이 모셔진 표충사를 옆으로 끼고 오르니 진불암眞佛庵이 산중턱에 자리잡고 있다. 수백년이 넘은 은행나무 아래서 오랜 동안의 습기를 덜고 들어서니 경내가 한가하다 못해 고적하다. 응진당에 올라 부처님을 참배하고 향적당 요사 등을 둘러보아도 인기척이 없다. 잊혀진 ‘역사’처럼.

 만화원오萬化圓悟 영곡영우靈谷永愚 영파성규影波聖奎 운담정일雲潭鼎馹 아함혜장兒庵惠藏 등의 역대 큰스님들과 청화淸華큰스님께서 선정에 드신 수행 성지라는 기록하나 없다. 허허롭다. 특히 이곳은 청화큰스님께서 사십대의 왕양한 수행자로서 손수 등짐을 지어 개증축하실 만큼 불연佛緣이 깊은 수행처이다. 상기想起되는 일화가 있다. 이십대의 장사 행자가 큰스님과 똑같은 등짐을 지고 오르막길을 가는데 잼 걸음으로 뒤쫓아도 미치지 못하였다. 청화 큰스님께서는 축지법을 쓰시는지 그 괴력은 수수께끼였다고 한다. 또 하나, 일화가 있다. 어느날 큰스님께서 제자들에게 “어이, 어서 열반종을 울리게. 저 해남 앞바다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나에게 그들을 살릴 힘이 없네”하셨다. 며칠후 소식을 접하니 해남 마산연 연구리 선창에서 탄 승선객 수십명이 희생되었다는 것 아닌가.

 

 발길을 돌려 찾아간 상원암은 진불암에서 약 오백미터 남쪽에 자리잡은 암자이다. 주지 왕인스님은 출타중이셨지만, 공양주 보살께서 반가이 맞아주었다.

 기록으로 보아 상원암은 십팔세기초에 화악대사華嶽大師가 중건하였는데 그 이전에도 누각을 갖춘 큰 암자였다. 그것은 화악 대사의 입문入門에 나타나고 있다.

 화악대사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접하지 못한 채 농기구를 팔거나 품팔이꾼을 전전하였다. 어느날, 대둔사 상원암에서 취여삼우醉如三愚 대사의 화엄종지에 대한 강론을 들었다. 그때 홀연히 깨달은 바 있어 누각 위에 올라가 배움을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취여삼우 대사 밑에서 불도를 닦아 크게 깨쳤다.

 

 이후 상원은 대둔사의 대종사와 대강사들이 수행정진하면서 법석法席을 펴던 장소로 선풍을 드날렸다. 취여삼우 대사를 비롯하여 월저도안月渚道安 화악문신華嶽文信 설암추붕雪巖秋鵬 벽하대우碧霞大愚 설봉회정雪峯懷淨 상월새봉霜月璽封 호암체정虎巖體淨 연담유일 대사 등의 대종사와 만화원오 연해광열燕海廣悅 완호윤우玩虎尹佑 등의 대강사들이 거처하면서 법석을 개설했다고 하니, 당시 상원의 규모와 사세를 짐작할만 하다.

 그후 오랜 기간 폐찰로 그 터만 남아 있던 상원을, 큰절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토굴에서만 공부하시던 청화 큰스님께서 묵언 정진하시며 손수 현재의 건물을 지으셨다.

 여기 상원암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는 바, 지금도 청화큰스님의 사무친 수행의 여향餘香을 피우고 있다. 연못 안에 한반도 지도를 담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해방공간 ․ 한국전쟁을 온몸으로 겪으신 청화큰스님의 조국통일에 대한 지극하고 애절한 발원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큰스님께서는 이곳에서 하루 한 끼마저 거의 안 드시고 가행정진하시매, 대중들은 가까이 나서서 뵙울수록 목불인견의 참상앞에 우러러 눈물 지으며, 광대장엄한 모습에 망연히 가슴만 졸이었다 한다. 큰스님께서 행하신 이러한 백척간두에서의 걸음걸음은, 경책을 넘어 무량한 공덕이 되어 지금까지 일파만파一波萬波로 사무치고 있다. 감히 권하노니, 상원암 ․ 진불암을 찾으면, 티끌세상의 외로움이 걷히고 슬픔이 걷히고 마침내 한 생각에 사랑이 열리고 어쩌면 능도고해能渡苦海의 항로에서 새로운 하늘 또한 만나지 않을까 싶다.

 옛글은 말한다.


 정각을 이루사 견줄 이 없으시고

 온갖 세간법에 물들지 않으사

 온갖 지혜의 힘 갖추어 두려움 없으시니

 스승도 깨달음도 모두 다 초월하셨네.


 自獲正覺最無等

 一染世間一切法

 具一切智力無畏

 自然無師亦無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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