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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4. 고요한소리

사리뿟따 이야기(3)

명상수행자


보디삿따(깨달음을 이루기 전의 부처님)는 깨달음의 길을 찾아 출가했을 때, 처음에는 당대에 빼어난 명상가로 알려진 두 스승의 문하에 들어가 무색정(無色定)에서 가장 높은 두 단계인 무소유처정과 비상비비상처정을 증득하셨다(『중부』 26). 사리뿟따는 이와는 달리 처음에 자신의 성향으로 인해 자기나름의 구도의 길을 걸었다. 그는 초의식 영역에 숙달된 분의 문하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사변과 지적 분석에 탁월한 분의 문하로 들어갔었다. 또한 그가 법에 들어설 때도 명상삼매[定]의 길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과의 그물망으로 조건지어진 모든 현상과 그것을 뛰어넘어 조건지어지지 않은 상태에 대한 자발적이고 직입적인 통찰[慧]을 통해서였다. 그러한 사리뿟따였지만 일단 부처님의 제자가 되자 곧바로 명상삼매의 모든 단계를 통달하였고 이런 명상의 체험을 바탕으로 완전한 깨달음을 증득하였던 것이다.


사리뿟따가 예류과에서 아라한과로 향상해가는 과정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아누빠다경(『중부』 111)」에서 여러 가지 깨우쳐주는 말씀을 해주신다. 세존께서는 사리뿟따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두 주 동안 용맹정진하며 "모든 현상이 일어나는 대로 하나 하나 통찰해 나아갔다."고 밝히셨다. 사리뿟따는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의 사선정과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의 무색정, 그리고 인식과 느낌이 그치는 상수멸의 아홉 단계 선정을 순차적으로 증득하였다. 그는 내관법을 통해 알아차리기에는 너무도 미묘한 마지막 두 단계를 제외하고 선정의 단계마다 그 구성요소를 하나 하나 파악하고, 그것이 어떻게 일어나서 지속되다가 스러지는지를 관하였다. 그는 '좋아함도 없고, 싫어함도 없고, 의존하지 않고, 초연하고, 자유롭고, 독립하여 모든 장애를 다 끊은 마음으로' 머물다가 더 높은 단계의 선정을 닦은 후 종국에는 인식과 느낌이 그치는 상수멸에 들게 되었다.


그런데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사리뿟따가 실제로 아라한과를 증득했던 것은 그의 조카 디가나카 유행승(流行僧)에게 설법하고 계신 세존의 뒤에 서서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던 도중 일어난 일이었다. 그때 부처님 법문의 주제는 느낌을 파악하는데 관한 것이었다. 부처님께서는 육신의 성질을 설명하시며 디가나카에게 욕망과 애착과 육신에 대한 걱정이 끊어질 수 있도록 몸을 관하라고 이르셨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느낌을 관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 모든 느낌은 무상하고, 조건지어졌으며, 반연하여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해체되고, 스러지고, 사라지고, 끝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하셨다. 사리뿟따는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세존께서는 이런 것들을 직입적인 앎을 통해서 버리라고 말씀하시는구나. 그 분은 이런 것들을 직입적인 앎을 통해서 떨쳐버리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순간, 문득 궁극의 지혜가 일어나 마음은 애착에서 벗어나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사리뿟따는 『장로게』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하게 된 일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다.


세존이시며 깨달은 분이신 정등각자께서는


다른 이에게 설법하고 계셨다.


법을 설하시는 동안


나는 구극의 가르침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귀기울였다.


나의 귀기울임이 헛되지 않았으니


나는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졌도다.


― 『장로게』 995-996) ―


사리뿟따는 부처님 제자들 가운데 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는 단연 으뜸이었으나 아라한에게 흔히 따라오는 비상한 지력과 신통력을 얻으려고 다른 비구들처럼 애쓰지 않았다. 『장로게』에서 친구 목갈라나가 뛰어난 능력을 보이고 있는 다섯 가지 신통력에 대해 그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게송의 주석서는 사리뿟따가 신통력을 얻겠다는 서원을 세운 적은 없으나 상수제자라면 응당 갖추어야 하는 아라한과를 증득함과 동시에 그 능력이 '저절로' 생기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무애해도(Pa.tisambhidaamagga)』(2:212)에 나오는 「신통력에 관한 장」에도 사리뿟따가 '삼매에 의한 조정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되어 있다. 그 힘은 어떤 정상적 생리 과정이나 자연 현상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감흥어(Udaana)』(4:4)에는 이러한 능력의 신빙성을 뒷받침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 한 번은 사리뿟따가 까뽀따깐다라에서 목갈라나와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새로 깨끗이 삭발하고 보름 달밤에 밖에서 선정에 들어 있었다. 그때 어떤 고약한 악귀 하나가 그 위로 지나가다가 잔뜩 심술이 나서 내려와 존자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다. 그러나 아주 깊은 선정에 들어있던 그는 아픈 줄을 몰랐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그것을 보고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와 물었다. "벗이여, 별일 없소? 어디 아프거나 불편한 데는 없소?"


"난 별일 없소, 목갈라나여, 괜찮긴 한데 머리가 좀 아프군요." 사리뿟따가 대답했다.


목갈라나가 말했다. "참으로 놀랍군요, 사리뿟따여! 정말 훌륭하오! 그대의 신통력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하오! 방금 악귀 하나가 그대의 머리를 세게 내려쳤다오. 그 정도 힘이라면 코끼리도 쓰러뜨리고 산봉우리도 부수어 버렸을 거요. 그러나 사리뿟따 당신은 '난 별일 없소, 목갈라나여, 괜찮긴 한데 머리가 좀 아프군요.'라고 말할 뿐이구려."


그때 사리뿟따가 대답했다. "참으로 놀랍소, 목갈라나여! 정말 훌륭하오! 그대의 신통력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하오! 나는 못난 귀신 하나 못 보는데 무슨 악귀든 다 볼 수 있다니."


그러는 동안 세존께서는 천이(天耳)의 신통력으로 두 스님 사이의 대화를 들으시고 사리뿟따를 칭찬하는 '감흥된 말씀'을 하셨다.


그 마음이 바위처럼 흔들림 없고

애착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에 집착하지 않으며

화가 날 일에도 화를 내지 않으니

이렇게 마음이 다스려진 이에게

어찌 고통이 올 수 있으리!


가장 높은 목표에 확고히 다다르자, 사리뿟따에게 선정이란 더 높은 성취를 향한 수단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의 자연스러운 표현이었다. 「사리뿟따 상응」을 보면 아난다가 사리뿟따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여러 차례 물으니, 사리뿟따는 여러 단계의 선정에 들며 하루를 보낸다고 대답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단계에서건 '나'라는 개념으로부터는 완전히 자유롭다고 덧붙이고 있다. "나에게는 '나는 선정에 들어가고 있다거나 나는 선정에 들어있다거나 나는 선정에서 나오고 있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소."라고 말하고 있다(『상응부』 28: 1-9).


또 한 번은 아난다에게 온갖 익숙한 대상에 대해 생겨나는 식(識)을 일으키지 않는 특별한 선정상태에 어떻게 들 수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지·수·화·풍도, 수·상·행·식도, 이 세상에 관련된 모든 것과 이 세상 너머의 모든 것, 그 어떤 것을 대하여도 대상에 대한 인식이 일어나지 않더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전혀 아무런 인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열반은 생성과정[有]의 완전한 그침'이라는 것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인식이라고 했다(『증지부』 10:7).


이 심오한 경지는 바로 사리뿟따가 계속 수행해온 명상의 '공주처(空住處)'를 일컫는 것 같다. 「삔다빠따빠리숫디경(『중부』 151)」을 보면, 한 번은 부처님께서 사리뿟따의 모습이 유난히 맑고 밝은 것을 보시고 어떻게 그런 광휘를 지니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리뿟따는 공주처를 자주 수행하노라고 말씀드린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그것이 바로 대장부가 머물 자리라고 하시며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10) 주석서에서는 열반의 공(空) 측면에 집중함으로써 들게 되는 아라한과의 경지와 이 공주처를 같은 것으로 본다. 마하깟사빠 존자의 다음 게송에서도 드러나듯, 사리뿟따가 이 경지에 들어있을 때면 가장 높은 천상의 신들까지도 그를 경배하러 지상으로 내려왔었다고 한다.


힘있고 영광에 빛나는 수많은 천신들

범천 반열의 수만 천신들이

삼매에 들어있는 위대한 명상가

지혜로운 법장 사리뿟따에게

경배하려고 합장하고 서있네.

"경배드립니다, 오 더없이 빼어난 분이시여

경배드립니다, 오 지고한 분이시여

당신이 들어 머물고 계신 선정의 경지

그것이 어떠한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 『장로게』 1082-84 ―


사리뿟따는 선정 삼매[定]에 아주 능숙했는데, 이는 내관 명상[慧]을 통해 단련된 철저하고도 정확한 분석 능력과 잘 조화를 이룬 것이었다. 그는 부처님의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가장 빼어난 대지혜자였으며 지혜를 쓰는데 있어서도 그보다 나은 분은 오직 세존뿐이었다. 사리뿟따의 지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그의 자유자재한 사무애해(四無碍解)로서, 이것은 그가 수계한 직후 두 주 동안에 이루어낸 것이었다.


벗들이여, 내가 의(意)무애해와 법(法)무애해, 사(詞)무애해 그리고 변(辯)무애해를 하나도 빠짐 없고 빈틈없이얻어낸 것은 수계한 후 보름 동안이었습니다. 나는 이 사무애해를 여러 방식으로 설명하였고, 가르치고 알렸으며,확립하여 드러내었고, 말하여 밝혔습니다. 누구든 의심이나거나 불확실한 점을 내게 물으면 대답해 드리겠습니다.이미 이 경지를 모두 통달하신 스승님도 여기 계십니다.


― 『증지부』 4:170 ―


첫째, 의무애해는 교설의 요의, 즉 교설의 함축된 의미와 거기서 파생된 의미에 대한 분명한 직관력과 특정한 원인에서 생기는 결과에 대한 분명한 직관력을 말한다. 둘째, 법무애해는 교설 자체에 대한 개별적인 통찰과 불법의 총체적 구조 속에서 그 교설이 지니는 상호연관성에 대해 통찰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어떤 결과를 낳는 원인에 대해서도 통찰력을 갖게 해준다. 셋째, 사무애해는 언어와 문법과 어원을 능숙하게 이해하는 역량을 말한다. 넷째, 변무애해는 법을 설할 때에 다른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위의 세 가지 지혜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사리뿟따는 이상의 사무애해를 갖춤으로써 몸소 법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법을 가르치고 설명하는 데도 아주 뛰어났다. 그가 모든 면에서 그토록 다재다능하였기에, 부처님께서는 「아누빠다경(『중부』 111)」의 끝 부분에서 그를 가리켜 당신의 참다운 정신적 아들이요 법륜을 굴리는 일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보조자라고 말씀하신다.


고귀한 계행과 고귀한 삼매와 고귀한 지혜와 고귀한 해탈을 모두 통달하여 완성해낸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다면, 이는 마땅히 사리뿟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래의 참된 아들이 누구인지 찾는다면, 또 여래의 말씀에서 났고, 법에서 났으며, 법으로 이루어졌으며, 세간적 이익이 아닌 법을 상속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다면, 이는 마땅히 사리뿟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여래가 법륜을 굴렸던 것과 똑같이 여래를 좇아 수승한 법륜을 올바로 굴리는 자이다.


법륜을 굴리는 이


사리뿟따 존자의 설법과 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기록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버금가는 폭넓고 다양한 교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사리뿟따는 무궁무진한 불법의 소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해주는 독특한 방법을 알고 있었는데, 이는 지적으로 자극을 주고 실제적인 정진에도 영감을 불어넣는 그런 방법이었다. 상좌부 불교 전통에서는, 큰 중요성을 지닌 많은 경전을 지은 사람이 바로 사리뿟따라고 여기고 있으며, 비중 있는 삼대 주석서도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또 아비담마[論藏]의 결정판을 편집하는 데에도 그가 몸소 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제 이러한 그의 업적을 하나 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여러 가지 경


법을 설하는 자로서 사리뿟따가 가졌던 능력은 무엇보다도 『중부』에 있는 고전적인 두 편의 경,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중부』 28)」과 「정견(正見)경(『중부』 9)」에 잘 드러나고 있다.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은 정연한 논리적 구성을 갖춘 걸작이다. 코끼리의 발자국이 다른 모든 동물의 발자국을 다 포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성제는 모든 선법(善法)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사리뿟따는 먼저 표명하고 있다. 그는 이어서 세부적 분석을 위해 사성제 중의 고제(苦諦)를 택하여 개아(個我)의 구성 요소가 오온(五蘊)임을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는 물질적 형체, 느낌, 인식, 의지적 형성력, 의식[色受想行識]의 오온을 열거하고나서, 더욱 면밀하게 살피기 위하여 그 중에서 물질적 형체의 요소[色蘊]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는 이 색온을 다시, 네 가지 주요 요소[四大: 地水火風]와 그러한 사대로부터 형체를 갖추어 파생된 부차적 물질의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각각의 요소들이 안으로는 우리 자신의 몸을, 밖으로는 외부 세계를 번갈아 드나들며 모습을 드러낸다고 밝히고 있다. 내적 요소에 속하는 신체 부위와 기능을 열거하면서, 이런 내적 요소[人我]건 외적 요소[法我]건 그 모두가 결코 자아에 속하지도 않거니와 자아를 구성하지도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 요소들에 대해 이렇게 관함으로써 우리는 요소들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으며 육신에 대한 집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사리뿟따는 제아무리 거대한 외적 요소라 할지라도 자연의 엄청난 지각변동에 의해 결국은 파괴되고 말 운명이라는 것을 말하며 일체가 무상함을 밝히고 있다. 이런 점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갈애의 산물인 이 작은 몸뚱이를 '나'니 '내 것'이니 하고 여기는 미혹에 결코 다시는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법(諸法)을 이렇게 관할 수 있는 수행자라면 설혹 남에게서 욕설이나 험담이나 매질을 당하여도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평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마음속에 일어난 괴로운 느낌이 귀와 소리의 접촉에 의해 일어난 것이며 이것은 본질적으로 조건지어진 현상일 뿐이라는 점을 알아차린다. 그는 또한 그러한 모욕적인 경험의 모든 요소들, 즉 촉과 수상행식 따위는 모두 무상한 것임을 알아차린다. 여기에서 사리뿟따는 명상 수행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총체적 경험을 다섯 가지의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인 요소들[五蘊]로 분석해낼 수 있도록 자아의 정신적 구성 요소인 색을 제외한 자아의 네 정신적 요소[受想行識]를 유기적인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하면 그의 마음은 오로지 그 요소만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마침내 기운차게 되고 즐거워지고 굳건해지고 집중되어서, 만일에 매를 맞아 다치게 된다해도 '이 몸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다치게 마련인 속성을 본디부터 지닌 물건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존께서 설하신 「까까쭈빠마경(톱의 비유경, 『중부』 21)」을 떠올리며, 자기 생명마저도 돌보지 않고 인욕심으로 모든 고난을 견디어내라는 부처님의 훈계를 따르겠다고 결심하게 될 것이다.


수행자가 불법승을 항상 생각하고 있는데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없다면, 절박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삼보(三寶)를 염하는 데도 흔들림 없는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바로 그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을 잇고 있다. 반면에, 끈질긴 마음을 참을성 있게 지켜나갈 수 있는 수행자라면 그는 무량의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그 수행자는 많은 것을 이룬 셈이다."라고 말한다.


사리뿟따는 사대(四大)의 다른 세 가지 요소[水火風]에 대해서도 똑같은 분석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나서 우리의 육신과 신체 부분을 벽돌과 목재와 기와 따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구성요소를 떼어놓고는 독자성을 갖지 못하는 한 채의 집에다가 비유하고 있다. 또 이 경의 끝 부분에서는 우리의 의식이 여섯 감각기관을 통하여 조건지어진 채 발생한다는 점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섯 가지 감각의식의 발생에 기본적 조건이 되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감각대상도 사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다른 부차적 물질도 물질적 형체의 요소[色蘊]에 포함시킴으로써 색온에 대한 분석을 끝맺고 있다. 어떤 감각대상과 감각기관으로부터 일어나는 각각의 의식[識蘊]은 그에 관계된 느낌[受蘊]과 인식[想蘊]과 다양한 의지적 형성력[行蘊]을 수반함으로써 오온이 모두 상호관련되게 된다. 사리뿟따는 오온이 서로 의존하여 발생한다[緣而生]는 점을 밝히면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며,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보노라."라는 세존의 말씀을 인용하여 연기법을 소개하고 있다. 오온에 관련된 욕망과 습성과 집착은 고(苦)의 원인이다. 욕망과 습성과 집착을 제거하는 것은 고의 소멸이다. 그는 이 점을 이해한 수행자에 대하여 "이 정도까지만 해도 그 수행자는 많은 것을 이룬 셈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성제에 대한 설명을 마무르고 있다. 참으로 이 경은 숭고하고 장엄한 화음으로 끝을 맺고 있는 아름답게 어우러진 한 편의 명곡과도 같다.


사리뿟따의 또 다른 대표적인 경은 「정견(正見)경」으로서 이것은 교화방법론의 걸작이다. 이 경은 그 방대한 주석서에 나오는 것과 같은 한층 깊이 있고 자세한 설명을 위한 골격을 미리 마련해 놓고 있다. 주석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오부(五部)에 결집된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사성제가 32번이나 언급되고 아라한과가 32번이나 언급된 경은 이 「정견경」 말고는 없다." 사리뿟따는 이 경 속에 연기법에 대한 독창적인 해설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는 약간의 변용을 취하면서도 내용상 본받을 점이 대단히 많다. 그는 선업(善業)과 불선업(不善業)의 근본원인, 음식과 감각과 의지와 의식의 네 가지 자양분, 그리고 연기법의 열두 고리들을 모두 사성제를 예증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으며, 또 각각의 항목에 대해서도 충분히 조명해주고 있다. 그 결과 사성제를 보는 시각이 크게 고양되고 확장되고 심화되는 것이다. 이 경은 수세기에 걸쳐 오늘날까지 많은 불교 국가에서 교화의 목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사리뿟따의 또다른 경은 '적정심에 든 천신들'에게 설해졌다고 하는 「사마찟따 숫따」(『증지부』 2:35)」로서, 이 또한 아주 높이 숭상되어 오고 있다. 이 경은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의 세 가지 성과(聖果)를 얻은 수행자들이 더 받아야 할 재생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그들이 욕계나 색계나 무색계 중의 어느 곳에 다시 날 것인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경은 비록 아주 짧게 설해졌지만, 법을 들으려고 모여든 무수한 천신의 무리에게 엄청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때 무리 가운데 아라한과를 얻게 된 천신도 많았고, 예류과에 도달한 천신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 경은 사실상 천상계의 존재에게 설해져 예외적으로 광범위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몇 안되는 경 가운데 하나이다. 주석서 형식의 설명이 없고 대단히 간결하여 다소 불가해한 면이 없지 않으나, 오랜 세월 존중받으며 연구되어왔다. 마힌다 아라한이 스리랑카에 도착한 날 저녁에 설법한 것도 바로 이 경이었다. 또한 스리랑카의 유명한 연대기 「마하왕사」(14:34 이하)에는 무수한 천신이 이 경을 듣고서 법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 경을 그토록 존중하고 이 경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향상의 과정에 있는 수행자가 스스로 어떤 재생을 하게 될 것인지 판별해내는 데 이 경이 도움을 준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향상의 높은 단계에 놓여있는 천신들은 때로 자신이 처한 천상계의 지위를 최종 불변의 상태로 여기고서 오욕(五慾)의 감각적 세계[欲界]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여기지만,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 경에서 사리뿟따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지위를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경은 또한 올바른 길에 미처 들어서지도 못한 범부들에게까지도, 어떻게 정진해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값진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리뿟따의 또다른 두 편의 설법은 「상기띠 숫따 (等訟經)」와 「다숫따라 숫따 (十上經)」로서 『장부』의 마지막 두 경(33, 34)이다. 이 두 경은 많은 분량의 표제어를 1에서 10까지의 산술적 도식에 따라 분류해 놓은 교학 용어의 편집서이다. 그 편집이 10의 항목까지만 이루어진 이유는, 10의 수치를 넘어선 교학 용어들은 수적으로도 매우 드물고, 또한 그런 용어들은 두루 알려져 있어서 쉽게 기억해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기띠 숫따」는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설해졌으며, 경이 끝나자 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분명히 인가하고 계셨다.


「상기띠 숫따」가 교학 용어를 단지 1에서 10까지 산술적으로 배열해 놓고 있는 반면에, 「다숫따라 숫따」는 각각의 수치 항목을 분류함에 있어서 그 용어군의 실질적 의미를 엿볼 수 있게 하는 10가지 조목에 맞추어서 이를 분류해 놓고 있다. 그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成法] (2)계발해내야만 하는 것[修法] (3)충분히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覺法] (4)떨쳐버려야 하는 것[滅法] (5)퇴보를 의미하는 것[退法] (6)향상을 의미하는 것[增法] (7)꿰뚫어보기 어려운 것[難解法] (8)살려야 하는 것[生法] (9)체험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知法] (10)깨달아야만 하는 것[證法].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란 무엇인가? 선근(善根)에 대하여 주의깊음이 그것이니… 떨쳐버려야만 할 것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떠하다'하는 아만심이 그것이니…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요지부동의 심해탈(心解脫)이 그것이다.


이 경은 부처님 교화 시기 중 비교적 말년에 편집되었음이 분명하다. 그 때는 이미 방대한 분량의 교설이 성립되어 있었으며, 손쉽게 이용되기 위해서는 더 짜임새를 갖추어야 할 경들도 조심스럽게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불법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경문 선집들이 법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상기띠 숫따」는 마하위라라고도 알려져 있는 자이나교 지도자 니간타 나따뿟따가 죽은 직후에 설해졌다. 그가 죽자마자 자이나 교도들 사이에 일어난 의견 차이와 교리적 상위(相違)와 종파 분립에 관한 이야기가 이 경에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죽음이 사실상 이 경을 설하게 한 동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리뿟따는 자이나교의 내부 갈등이 표출되는 것을 보고 이를 불교도들에 대한 경책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말하기를, "이 경은 모든 대중이 이의 없이 화합하여 낭송하여야 한다. 이는 천신과 인간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고귀한 삶[梵行]이 오래 지속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석가들은 「상기띠 숫따」가 설해진 의도에 대해서, 불법이 본디 지닌 직절성(直截性, 바로 분별하여 아는 것)이라는 훌륭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화합의 향내음'이 교설에서 풍겨나도록 하려는 뜻에서 이 경이 설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사리뿟따는 「다숫따라 숫따」의 첫머리 게송에서 이 경을 설하는 목적을 밝히고 있다.


여기 다숫따라 경을 설하노니,

이는 열반을 얻기 위함이요

고를 멸하기 위함이요

윤회의 굴레에서 풀려나기 위함이다.


이 두 경은 정선된 교설에 대한 일종의 색인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수없이 많은 경문을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하는 비구들이 교설의 무수한 면면에 얼른 다가가서, 그것을 쉽게 기억해내고 소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사리뿟따가 법을 영원히 지켜내기 위해 마음 쏟았다는 점과 그의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서 법이 털끝만큼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내려올 수 있었다는 점을 위의 두 경은 놀랍도록 잘 드러내고 있다. 사리뿟따가 이 경들과 『닛데사(Niddesa)』 같은 몇몇 경들을 '경학의 보조수단'으로 삼게 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목적에서였던 것이다.


여러 가지 주석서


사리뿟따 존자가 경전에 대하여 했던 다른 법문들의 요약은 이 글의 끝에 싣도록 하고, 여기서는 그가 설했다고 전해지는 더 광범위한 주석서 성격의 경서들을 고찰해 보겠다.


우선 『닛데사』는 경장의 소부(小部)에 속해 있다. 이 경은 빠알리 삼장 가운데 유일하게 주석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마하닛데사』는 『숫따니빠따』의 앗타까왁가(詩의 장)의 주석이고, 『쭐라닛데사』는 「빠라야나왁가(피안의장)」와 「칵가위사나 숫따」에 대한 주석인데 역시 『숫따니빠따』에 들어있다.


앗타까왁가와 빠라야나왁가는 『숫따니빠따』의 마지막 두 장이며 빠알리 삼장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임에 틀림없다. 『감흥어』에 보면 소나 장로가 앗타까왁가를 암송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증지부』에는 난다마따라는 여성 재가신도가 빠라야나왁가를 낭송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두 장은 일찍부터 스님들과 재가신도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께서 『숫따니빠따』의 이 두 부분에 대해 설명해 주신 일이 다섯 번 이상이나 된다. 이 두 장이 높이 평가되어 왔다는 사실과 더불어 많은 고어들과 간결한 고문체로 구성되어있는 점을 보아 아주 초기에 이에 대한 주석이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나중에 경장에 포함되었음이 분명하다. 이 두 주석이 사리뿟따 존자에 의해서 설해졌다는 종래의 해석은 매우 타당성이 높다. 오늘날 빠알리 경전에서 발견되는 문장전체는 아니더라도 그 주석의 핵심내용은 사리뿟따 존자가 설한 것이 틀림없다. 『닛데사』가 어휘설명과 문맥해설, 부처님의 말씀에 준거한 인용문 그리고 많은 동의어를 사용한 용어 설명 등 적절한 언어 교육을 위한 자료까지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은 스님들의 체계적인 교육에 이 위대한 장로가 큰 관심을 가졌던 점과 잘 부합되는 것이다.


『마하닛데사』에는 앗타까왁가의 마지막 게송묶음인 「사리뿟따 숫따」에 대한 주석도 실려있는데, 이는 「테라빵하 숫따」라고도 불린다. 이 묶음의 첫머리는 부처님을 칭송하는 게송과 부처님께 드린 일련의 질문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석서는 이들을 사리뿟따가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묶음의 첫 연이 삼십삼천에서 아비담마를 설하고 돌아오시는 부처님을 노래하는 것이라고 『마하닛데사』에서 설명하고 있다. 「사리뿟따 숫따」의 그 다음 부분은 사리뿟따가 여쭌 질문과 이에 대한 답변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 답변은 부처님께서 해주신 것이 틀림없다.


『무애해도(Pa.tisambhidaamagga)』는 한결 수준 높은 불교 연구의 교본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 논서의 내용은 그 저자로 알려진 사리뿟따의 마음만큼이나 폭넓다.11) 이 책은 길고 짧은 30편의 논설로 이루어져 있다. 첫번째 논설은 장편으로서 지식(~naa.na)의 일흔 두 가지 유형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고 두번째는 잘못된 사변적 견해(di.t.thi)의 유형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이 두 편에는 사리뿟따 특유의 체계적이며 통찰력 있는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다른 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지식에 관한 장'에는 『무애해도』의 특징인 교학 용어가 많이 담겨 있다. 경장 가운데 오래된 부분에서 간단히 다루어진 용어와 교설을 이 장에서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며, 또한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자비관, 통찰력을 증진시키는 여러 가지 수행법 등 명상에 관한 것도 싣고 있는데 이것은 실수행에 대단히 큰 도움을 준다. 책의 중간 부분에 가면 주제가 다양하게 전개되어 지극히 아름다운 문장으로 여래의 위대한 자비심을 찬미하는 대목도 나온다. 이 논서의 주석인 「정법해설소(Saddhammappakaasinii)」를 쓴 마하나마 장로는 『무애해도』가 사리뿟따 장로의 저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면서 첫머리 게송에서 이 위대한 장로를 감동적으로 예찬하고 있다. 『무애해도』에서 사리뿟따에 관한 언급이 두 차례 있는데, 한 번은 '신통력에 관한 장'에서 '삼매에 의한 조정력'을 지닌 분으로 나오고, 또 한 번은 '위대한 지혜의 장'(2:196)에서 "사리뿟따만큼 지혜로운 분이라면 부처님의 지혜에 버금가는 사람이다."라고 나온다.


아비담마


이제 사리뿟따 존자가 부처님 가르침에 가장 중요한 공헌을 했다고 볼 수 있는 아비담마의 편찬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자. 『담마상가니(法集論)』 주석서인 『앗타살리니』에 따르면 부처님께서는 삼십삼천계에 임하셔서 온갖 천상계로부터 모여든 천신들에게 아비담마를 설하셨다. 이 모임의 상석에는 도솔천 천신으로 다시 태어난 당신의 어머니 마야 왕비도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그곳에서 아비담마를 설하시던 석 달 동안 날마다 잠깐씩 인간계로 돌아오셔서 탁발을 하시곤 했다. 천상계에서 막 설하신 아비담마 부분의 '방법(naya)'을 사리뿟따에게 전수하신 것도 바로 그 무렵이었다. 『앗타살리니』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부처님께서 분별지를 갖춘 상수제자에게 이렇게 방법을 전수하신 것은 마치 해변에 서서 손을 들어 대양을 가리키는 것과 같았다. 부처님께서 수백 수천가지 방편으로 설하신 가르침이 사리뿟따에게는 비로소 아주 분명하게 되었다."12) 그 이후 사리뿟따존자는 자신이 전수받은 것을 5백 제자에게 전해 주었다.


이어서 이런 말도 나온다. "아비담마의 본문순서는 사리뿟따가 정한 것이고, 『빳타나(發趣論)』의 순서 배열도 그가 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존자가 교리의 고유성을 손상함이 없이 순서를 정한 것은 법을 배우고 기억하고 연구하고 가르치기에 쉽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앗타살리니』에는 또한 사리뿟따가 아비담마 정본에 다음과 같은 기여를 했다고 써있다. (1)「아비담마마띠까」와 그에 이어지는 42대구(對句)로 된 「수딴따마띠까」, 이 둘은 일곱 논서의 서문 역할을 한다. 그 42 「수딴따」 대구는 『담마상가니』에 설명되어 있는데 이 또한 존자가 설한 것으로 보인다. (2)『담마상가니』의 네번째이자 마지막 부분인 아툿다라깐다 즉 '개요'. (3)아비담마의 낭송을 위한 배열[誦道]. (4)『발취론』의 수치항목 등.


「아누빠다숫따(『중부』 111)」에는 사리뿟따가 선정의 각 단계를 차례로 거쳐 나와 매 단계마다 일어나는 주된 정신적 현상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분석해낸 것에 대하여  부처님께서 언급하고 계시다. 이 분석은 『담마상가니』에 나오는 선정 의식에 관한 자세한 분석의 선구이자 초본으로 볼 수도 있다.


사리뿟따 존자가 법에 통달했고 해설도 능숙했던 것에 대하여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상응부』 12:32)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법의 진수를 아주 잘 통달하고 있으므로 내가 하루 종일 이렇게 묻고 저렇게 물어도 적절한 말로 막힘없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하룻밤 동안, 또는 하루낮 하룻밤 동안, 또는 이틀낮 이틀밤 동안, 심지어 이레낮 이레밤 동안 이렇게 묻고 저렇게 물어도 사리뿟따는 그만큼의 시간 동안 적절한 말로 막힘없이 설명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뿟따를 황태자에 비유하신 대목도 있다. ( 『증지부』 5:132)


비구들이여, 어느 전륜성왕13)의 맏아들이 만약 다섯 가지 덕을 모두 갖추고 있다면, 아버지가 굴리던 통치의 수레바퀴를 제대로 굴릴 것이다. 그래서 그 통치의 수레바퀴는 아무리 악의를 품은 사람이라도 뒤엎지 못할 것이다. 다섯 가지 덕이란 무엇인가? 전륜성왕의 맏아들은 무엇이 이로운 것인지를 알고, 무엇이 법인지를 알고, 무엇이 올바른 방도인지를 알고, 올바른 때를 알고, 그가 다스려야 할 백성을 아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도 이처럼 다섯 가지 덕을 갖추고 여래와 마찬가지로 수승한 법륜을 올바로 굴린다. 그래서 고행자나 비구, 신이나 브라만,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 법륜은 뒤엎지 못할 것이다. 그 다섯 가지 덕이란 무엇인가?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무엇이 이로운 것인지를 알고, 무엇이 불법인지를 알고, 무엇이 올바른 방도인지를 알고, 올바른 때를 알고, 그가 설법할 대중을 안다.


법의 스승으로서 누렸던 사리뿟따의 위대한 명성은 사후에도 존속되어 후대의 불자들 사이에서 하나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약 300년 후에 쓰여진 『밀린다왕문경』 마지막 구절에 잘 나타나 있다. 이 경에서 밀린다 왕은 나가세나 존자를 사리뿟따 존자와 비교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부처님 문하에서 법장이신 사리뿟따 존자를 제외하고는 그대만큼 질문에 잘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소."(『밀린다왕문경』 420)


부처님의 위대한 제자 사리뿟따는 그 주옥 같은 가르침으로 오늘날까지 명성을 드날리고 있으며 그의 가르침은 부처님 말씀과 나란히 가장 오래된 불교문헌에 소중하게 간직되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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