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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4. 고요한소리

사리뿟따 이야기(1)

열 넷


사리뿟따 이야기

               출처: 고요한 소리 http://www.calmvoice.org


Saariputta

The Marshal of the Dhamma


 냐나뽀니까 스님 지음

이  준   승    옮김


 (The Wheel Publication No.90∼92)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차  례


들어가는 말 …… 5

법을 찾아서 …… 7

   초년기 … 7

   숙세의 서원 … 19

   『본생경』에 나타난 사리뿟따 … 23

인간 사리뿟따 …… 28

   상수제자 … 28

   도움을 주는 이 … 36

   성냄이 없는 이 … 41

   친구와 친척들 … 48

   명상수행자 … 57

법륜을 굴리는 이 …… 64

   여러 가지 경 … 64

   아비담마 … 74

피안을 향하여 …… 77

   마지막 빚을 갚다 … 77

   쭌다경 … 88

   욱까첼라경 … 93

사리뿟따와 관련된 경 …… 95

덧붙이는 말: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의 사리에 관한 기록 … 108

주해


들어가는 말


스리랑카의 절에 가면 부처님상 양옆에 두 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나한상은 한쪽 어깨에 가사를 걸친 편단 우견(偏袒右肩) 차림으로 두 손을 합장하고 공경하는 자세로 서있다. 그들의 발치에서는 신심 깊은 신도들이 바친 꽃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두 분 나한이 누구냐 하면,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Saariputta, 舍利弗,舍利子)와 마하목갈라나(Mahaa-Moggallaana, 目連 目건連)이다. 사리뿟따는 부처님 오른편에, 목갈라나는 왼편에 서있는데 그것은 바로 두 분이 생전에 차지했던 자리인 것이다.


19세기 중엽 산치 대탑이 발굴되었을 때 두 개의 석재 사리함이 들어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북쪽의 사리함에는 마하목갈라나의 사리가, 남쪽의 사리함에는 사리뿟따의 사리가 모셔져 있었다. 역사가 2천년 이상 인간 삶의 무상한 드라마를 연출하며 흐르는 동안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함께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이 일어났다 스러지고, 고대 그리스의 영화는 이미 아득한 추억으로 변한 지 오래고, 새로운 종교들이 세력을 다투면서 심지어는 검붉은 피와 불로 지구를 물들이다가 종국에는 테베나 바빌론의 전설이나 매한가지가 되고 말았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보지도 못한 세대들이 태어났다 사라져 가는 동안 상업주의의 물결은 문명의 거대한 중심축을 서서히 동양으로부터 서양으로 옮겨놓고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에 아랑곳없이 성스러운 두 제자의 유골은 고스란히 보존되어왔고, 정작 그들을 낳아준 고향 땅에서는 잊혀졌지만 두 분에 대한 기억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파된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소중히 간직되어 왔다. 그리고 두 분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에는 구전으로, 나중에는 그 어떤 종교의 성전보다 훨씬 방대하고 상세한 삼장(三藏)의 기록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상좌부 불교국가에서는 이 두 분이 부처님 다음으로 가장 존경을 받고 있다. 불교 역사에서 부처님의 존함만큼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분들의 이름이다. 그들의 생애를 둘러싸고 그토록 많은 전설들이 생겨났다면, 이는 두 분에 대한 존경심이 극진하다보니 세월과 더불어 자연스레 생겨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분들이 그토록 높이 존경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처님 직계 제자들만큼 스승을 지극히 섬기며 참된 길을 걸었던 예가 과연 다른 종교에도 있었던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여러분은 그런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그 지혜의 깊이나 넓이, 해탈의 교리를 가르치는 능력 등에서 수승하기가 부처님 다음이던 사문 사리뿟따의 이야기이다. 삼장에는 그분의 전 생애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곳은 없다. 그러나 경전과 주석서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그분에 관한 토막이야기들을 모아 볼 수 있으며 그 중에는 꽤 중요한 이야기들도 있다. 그분의 삶은 부처님의 생애나 교화사업과 매우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서 때로는 보조자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몇몇 대목에서는 그분이 교사이자 본받아야 할 귀감으로서, 친근하고 사려 깊은 도반으로서, 손아래 비구들의 이로움을 지켜주는 보호자로서, 스승의 교의를 충실하게 담는 저장고로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법의 장군[法將]으로 불리게까지 되었던 것이다. 그분은 과연 예사로운 장군이 아니었다.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내와 성실함이 비길 데 없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겸손하고 고결하며, 자신에게 베풀어진 조그만 친절도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하며 마음속에 간직하는 그런 장군이었다. 그분은 아라한들, 일체의 번뇌망상을 여읜 성자들 가운데서도, 밤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별 가운데 환히 빛나는 보름달 같은 존재였다.


이제 심오한 지성과 숭고한 인간성을 지녔고 위대한 스승의 참제자였던 이 분의 이야기를 심혈을 기울여 써보려 한다. 완벽한 품격을 지녔고 가장 높은 경지까지 자신을 끌어올려 완전히 해탈한 분의 이야기, 그런 분이 도반들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고 처신했던가하는 이야기가 이 불충분한 기록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전해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인간이 어떤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가'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통해서 믿음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전기는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고 최상의 보답을 받는 셈이 될 것이다.

법을 찾아서


초년기


이 이야기는 인도의 라자가하(王舍城)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빠띠사와 꼴리따라는 두 브라만 마을에서 시작된다. 때는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기 몇년 전이었다. 우빠띠사 마을1)에 사는 브라만의 아내 루빠사리(Ruupasari)라는 여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다. 같은 날 꼴리따 마을에 사는 목갈리(Moggalli)라는 브라만 여인도 아기를 갖게 되었다. 이 두 집안은 7대에 걸쳐서 우의를 맺어 서로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태기가 보이는 날부터 양가의 식구들은 장차 어머니가 될 이 두 부인을 정성껏 보살폈고 10개월 후 같은 날에 두 여인은 아들을 낳았다. 이름짓는 날이 되자 루빠사리의 아들은 우빠띠사라고 이름지었다. 이것은 그 집안이 마을에서 가장 권세 높은 집이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목갈리의 아들은 꼴리따라고 이름지었다.


이 두 소년은 자라면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모든 분야에 걸쳐서 많은 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하였다. 두 청년을 따르는 브라만 젊은이들이 각각 5백 명이나 되어서 강이나 공원으로 운동이나 휴식을 하러 갈 때면 우빠띠사는 5백 대의 가마를 대동하곤 했고 꼴리따도 5백 대의 마차와 함께 가곤 했다.


당시 라자가하에서는 매년 열리는 산마루 축제[山頂祭]가 벌어졌다. 이 두 청년은 둘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축제를 관람하였다. 우스운 장면에는 함께 웃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에는 함께 흥분했다. 돈을 써가며 다른 구경거리도 보았다. 이런 식으로 두 청년은 이틀 동안 축제를 즐겼다. 그러나 사흘째가 되자 전에 없던 생각이 그들의 마음속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어, 더 이상 웃을 수도 흥을 느낄 수도 없게 되었다. 놀이와 춤을 구경하며 앉아있을 때 문득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한다는 무서운 생각이 그들의 마음에 떠올랐던 것이다. 일단 이런 참담한 생각에 사로잡히자 그들의 태도는 전과 같을 수 없었다. 암울한 기분은 점차 떨쳐낼 수 없는 의문이 되어 두 사람에게 뚜렷이 부각되었다.


'도대체 여기서 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이 사람들 모두 100살도 되기 전에 죽어버릴 것이다. 정작 해야 할 일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가르침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두 청년은 셋째 날의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줄곧 그곳에 앉아있었다. 꼴리따는 의기소침하여 생각에 잠겨있는 우빠띠사에게 물었다.


"왜 그러지, 우빠띠사? 자네는 요 며칠 전처럼 즐거워 보이지도 않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아. 뭔가 근심스러운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꼴리따, 이런 허황된 구경거리를 보고있는 게 전혀 이로울 것이 없는 것 같아. 쓸데없는 짓이란 말이야. 이런 축제에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나서야만 하겠어. 그런데 꼴리따, 자네도 역시 뭔가 불만스러운 것 같군."


"나 역시 자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네."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음을 알게 된 우빠띠사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좋은 생각을 한 것 같아. 하지만 구원을 찾기 위한 길은 한 가지밖에 없어.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는 것이지. 그런데 어느 문하에서 수행생활을 해야 할까?"


그 당시 라자가하에는 산자야(Sa~njaya)라는 유행승(遊行僧, paribbaajaka)이 한 무리의 제자를 이끌고 있었다. 그의 문하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우빠띠사와 꼴리따는 각자 거느리던 5백 명의 브라만 청년들을 이끌고 산자야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이 제자가 된 후 산자야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후원도 풍족해졌다. 얼마되지 않아 산자야의 가르침을 완전히 익히게 된 두 친구는 스승에게 이렇게 물었다.


"스승님의 가르침은 이것이 전부입니까, 아니면 더 있습니까?"


"이것이 전부라네. 그대들은 내가 아는 것을 모두 다 배웠어."


이 대답을 듣자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그의 밑에서 수행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구원의 가르침을 찾아 출가를 했으나 이 스승의 밑에서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인도는 광활하다. 크고 작은 수많은 마을과 도시를 찾아다니면 우리가 찾고있는 가르침을 주실 스승을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현명한 수도자나 브라만이 어디 있다는 소식을 듣기만 하면 두 청년은 언제나 그리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그랬지만 남들이 던지는 질문에는 막힘 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이 두 사람은 막상 자신들이 품고 있는 의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인도 전역을 다 둘러본 후에 이들은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누구든지 먼저 불사(不死)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반드시 상대방에게 알려주기로 약속했다. 이는 형제와 같은 깊은 우애로 맺어진 두 청년 사이의 맹세였다.


이런 결의를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존이신 부처님께서 라자가하로 오시게 되었다. 그 시기는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고 첫 번째 우안거를 마치신 직후, 길떠나 가르침을 베푸실 때였다. 성불하시기 전에 빔비사라 왕에게 깨달음을 얻게 되면 라자가하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려고 나서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가야를 떠나 설법을 펴시며 라자가하로 오셨고 빔비사라 왕이 바친 죽림정사(Ve.luvana)에 거처를 정하셨다.


부처님께서 해탈의 가르침을 세상에 펴기 위해 여러 곳으로 보내신 최초의 아라한 61명 중에는 앗사지라는 장로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기 전에 함께 있었던 다섯 수행자 중의 한 사람이자 옛 도반이었고, 세존께서 정등각을 얻으신 후에 첫 제자가 된 다섯 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아침 우빠띠사는 라자가하에서 평온한 모습으로 발우를 손에 들고 탁발을 위해 집집마다 돌고있는 앗사지를 보게 되었다. 앗사지의 고결하고도 평온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은 우빠띠사는 생각에 잠겼다. '내 평생 저와 같은 수도자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저분은 필시 아라한이거나 아니면 아라한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분임이 분명하다. 저분에게로 가서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지금 저분은 탁발하러 가는 길이니 가서 질문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구하는 자가 하는 법도대로 나도 저분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장로 앗사지가 탁발을 마치고 공양을 하기 위하여 조용한 곳을 찾고있을 때 우빠띠사는 자기가 들고 다니던 방석을 놓아 자리를 마련하고 장로에게 권했다. 장로가 거기에 앉아서 공양을 마치자 우빠띠사는 자기 물통에서 물을 따라주었다. 이렇듯 우빠띠사는 앗사지에게 스승에 대한 제자로서의 예의를 깎듯이 갖추었다.


두 사람이 예절에 맞게 인사를 공손하게 나누고 난 후, 우빠띠사는 말을 꺼냈다.


"벗이여, 당신께서는 참으로 평온해 보입니다. 안색도 맑고 밝아 보이고요. 당신께서는 어느 분의 문하에 출가하셨습니까? 스승은 누구이며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계신지요?"


"벗이여, 사꺄(Saakya)족의 후예로서 그 가문으로부터 출가한 위대한 수행자가 한 분 계십니다. 나는 세존이신 그 분의 문하로 출가하였으며, 그 성스러운 분이 바로 나의 스승이시고 나는 그 분의 진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라고 앗사지는 말했다.


"당신의 스승께서는 무엇을 가르치시며 무엇을 설하시는지요?"


이런 질문을 받자 앗사지는 생각에 잠겼다. '이런 방랑하는 사문들은 흔히 부처님의 가르침에 반대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이 청년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나는 수행의 길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출가한 지도 얼마 안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가르침과 수행을 접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그래서 진리[法, Dhamma]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에 우빠띠사는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저는 우빠띠사라고 합니다. 다만 얼마라도 당신의 법력이 미치는 한 알려 주십시오. 온갖 수단을 다하여 그 의미를 깨우치는 것은 저의 몫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게송으로 덧붙여 말했다.


 말씀해 주실 것이 많건 적건

    알고싶은 건 그 속에 담긴 뜻 그것입니다.

   오직 소망은 그 의미를 아는 것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랍니다.


 이에 대하여 장로 앗사지는 게송으로 답하였다.


 원인이 있어 생겨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여래께선 그 원인을 일러 주셨나니,

    또 이 모든 것들이 멸한다는 것, 그것까지도.

    대사문께서는 이렇게 설하셨습니다.2)


이 게송의 처음 두 구절을 듣고서 우빠띠사는 번뇌를 벗어나 불법에 대한 흠없는 통찰을 이룸으로써 불사의 첫걸음인 예류향에 들었고, 마지막 두 구절을 들을 때는 이미 예류과를 이루었다.


그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여기서 해탈의 방법을 찾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는 장로에게 말했다. "존자시여, 진리에 대해 더이상 상세히 설명해 주실 것 없습니다. 이것으로 족합니다. 그런데 큰 스승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지금 죽림정사에 계십니다."


"그러면 존자시여, 먼저 가십시오. 제게는 진리를 만나면 같이 나누기로 약속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알려 당신이 가신 길을 따라 함께 큰 스승님 앞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나서 우빠띠사는 그의 발아래 경배를 하고 유랑수행자들이 머물고 있는 숲으로 돌아갔다.


꼴리따는 가까이 오는 친구의 모습을 보자 곧바로 알아차렸다. '오늘 내 친구의 모습이 사뭇 달라 보인다. 그가 불사의 경지를 찾은 게 틀림없구나!'


그래서 그 일에 대해 물어보자 우빠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네, 친구여, 불사의 경지를 찾았다네!" 그리고나서 장로 앗사지를 만났던 일에 관해 모두 이야기해주고 자신이 들은 게송을 읊어주었다. 게송이 끝났을 때 꼴리따 역시 예류과를 성취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벗이여, 큰 스승님께서는 어디 계신가?"


"지금 죽림정사에 머무신다고 나의 스승 앗사지 장로가 말씀하셨다네."


"우빠띠사, 그렇다면 우리 그리로 가서 큰 스승님을 만나보세." 라고 꼴리따가 말했다.


그러나 늘 스승을 존경하는 사람이었던 사리뿟따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 우선 우리를 가르치시던 유행승 산자야에게 가서 불사의 길을 찾았음을 알려야 하네. 그분이 이 사실을 납득한다면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를 믿으니까 함께 큰 스승님을 뵈러 갈 것이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면 그분도 도(道)와 과(果)를 성취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두 친구는 산자야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습니다! 그분의 법은 잘 설해져 있으며 그분을 따르는 승가는 바른 도를 지키고 있으니 우리와 함께 큰 스승님을 뵈러 가십시다."


"그대들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하며 산자야는 그들과 함께 가기를 거절했다. 오히려 그 두 사람에게 자기 집단의 공동지도자가 되어준다면 크나큰 이익과 명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심을 굽히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끝끝내 제자의 위치에 머물더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스승께서는 갈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산자야는 생각했다. '저들은 아는 것이 많으니 내가 뭐라고 말해도 듣지 않겠군.'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들은 가도 좋지만 난 못 가네."


"어찌하여 못 가십니까, 스승님?"


"나는 많은 사람들의 스승이 아닌가. 내가 지금 다시 제자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되면, 이는 마치 큰 물통이 조그만 물병으로 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이제 와서 누구의 제자로 살아갈 수는 없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스승이시여!"하고 그들이 간청했다.


"그냥 내버려두게,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가도 좋지만 나는 못 가네."


"스승이시여,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로 구름처럼 모여들어 무리를 이루고 향과 꽃으로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분에게 가야 합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되려고 그러십니까?"


이 말에 산자야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이 사람들아, 이 세상에 현명한 사람이 많은 것 같은가,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 많은 것 같은가?"


"어리석은 사람은 많지만 현명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보게들,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명한 자들은 현명한 수행자 고따마에게 갈 것이고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은 나에게 올 테지. 자, 이제 자네들이나 가보게. 나는 가지 않겠네."


그래서 두 친구는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스승이시여, 언젠가는 당신이 실수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떠난 후 산자야의 제자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 그의 사원은 거의 텅 비어 버렸다. 텅 빈 사원을 둘러보던 산자야는 뜨거운 피를 토했다. 그의 제자들 중의 5백 명이 우빠띠사와 꼴리따를 따라갔으나 그 중에 2백5십 명은 산자야에게 되돌아갔다. 나머지 2백5십 명과 더불어 두 친구는 본디 자기들을 따르던 이들을 이끌고 죽림정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부처님은 사부대중3)에 둘러싸여 법을 설하고 계셨다. 이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기 오고있는 두 사람 우빠띠사와 꼴리따는 장차 나의 뛰어난 한 쌍의 제자가 될 것이다."


두 친구는 부처님 가까이 다가가서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한 후에 한 쪽에 앉았다. 자리를 잡은 후 이렇게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거두시어 세존의 문하에 출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구족계를 받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들이여. 불법은 참으로 잘 설해졌도다. 고(苦)를 멸하기 위해 청정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라!" 이 말씀만으로 부처님께서는 두 존자를 받아들이셨다.


그리고나서 부처님께서 듣는 이들의 근기(根機)를 고려하시면서 설법을 계속하시자 우빠띠사와 꼴리따를 제외하고 거기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아라한과를 성취하였다. 하지만 두 친구는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도과(道果)를 더 높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수제자로서 세존을 받들어야 할 두 사람의 타고난 숙명을 따르기 위해선 더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 친구가 부처님의 승단에 들어간 이후로는 경전이나 주석서에서 그들을 칭하여, 우빠띠사를 사리뿟따로, 꼴리따를 마하목갈라나로 부르고 있다.


목갈라나 존자는 집중적인 수행을 하기 위해 마가다국의 깔라왈라뿟따(Kallavaalaputta) 마을에 가서 탁발하며 지냈다. 그가 수계한지 7일째 되는 날, 맹렬히 정진하고 있던 중 피로와 혼침이 엄습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독려로 피로를 물리치고, 스승이 설명해주시는 '요소에 대한 관법[界業處, dhaatu kamma.t.thaana]'을 듣고 있는 동안 세 단계의 높은 도(일래향·불환향·아라한향)를 성취함으로써 완벽한 수제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편 사리뿟따 존자는 계속 스승 곁에 머물고 있었다. 스승의 처소 근처 멧돼지굴(sukarakhata-le.na)이라는 토굴에 기거하며 라자가하에 가서 탁발을 했다. 그가 입문한지 보름이 지났을 때 세존은 사리뿟따의 조카인 유행승 디가나카에게 설법을 해주셨다.4) 그때 사리뿟따는 부처님의 뒤에 서서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었다. 마치 남을 위해 마련한 음식을 나누어 먹듯이 스승의 법문을 주의 깊게 음미하며 귀기울이고 있던 사리뿟따는 마침내 불제자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에 도달하여 아라한과와 사무애해5)를 한꺼번에 성취했다. 그리고 그의 조카는 법문이 끝났을 때 예류과에 들었다.


더러는 이런 의문을 가질는지 모르겠다. "사리뿟따는 대단히 지혜로운 분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런 그가 어찌 목갈라나보다 늦게 아라한과를 성취했을까?" 주석서에는 그만큼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다. 가난한 사람이 어디든 가려한다면 당장에 길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왕이 떠나려면 엄청난 준비를 해야 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와 같이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그날 땅거미가 질 무렵, 부처님께서는 모든 제자를 불러모아서 새로 입문한 두 장로에게 상수제자의 지위를 내리셨다. 이에 대해 비구들 몇이 불만스러운 마음을 품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승께서는 상수제자의 자리를 먼저 입문한 제자들, 말하자면 오비구들에게 주셨어야 했어. 아니면 야사(Yasa)가 이끄는 55명의 비구들에게, 그도 아니면 30여 밧다왁기야(bhaddavaggiya, 吉祥)의 무리에게, 아니면 깟사빠(Kassapa) 3형제들에게 주셨어야 했어. 그런데 스승께서는 이 모든 훌륭한 장로들을 제쳐놓고 가장 늦게 입문한 이들에게 주셨단 말이야."


부처님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물으신 다음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나는 어떤 제자도 편애하지 않고 각자 서원한 대로 성취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서 안냐 꼰단냐(Añña Ko.n.dañña)는 전생에 한 번의 수확기 동안에 아홉 번이나 공양을 올렸는데, 그때 그는 수제자가 되고자 서원하지 않았다. 그의 서원은 누구보다 먼저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고 결국 그리 되었다. 그러나 여러 겁(劫) 전 아노마닷시(Anomadassii) 부처님 때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상수제자가 되고자 원을 세웠다. 이제 그 서원이 성취될 조건이 무르익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들이 서원했던 바를 성취토록 한 것이지 편애심에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


숙세의 서원


위의 부처님 말씀은 불교 사상의 근본적인 교의를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즉 현재의 우리 모습과 우리 생의 운명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육체적 탄생으로 시작되는 금생이라는 짧은 기간에 우리가 무엇을 의도하고 무엇을 행했는가의 결과만이 아니라, 무시(無始) 이래의 윤회과정 속에 쌓이고 쌓인 과거 경험세계의 깊은 연원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수제자 사리뿟따의 이야기도 당연히 머나먼 옛날에 시작된 것이며 그 내막은 전설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져 온 것이다. 전설이긴 하지만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빚어낸 허구가 결코 아닌 것이다. 오히려 그런 전설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로 축소 환원시키기엔 너무나 심원하고 보편적인 원칙들을 웅변으로 서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런 큰 원칙들은, 설화적 사실들을 신성한 원형으로, 그리고 다시 그 원형을 종교적 이상으로 바꿀 때 비로소 적절한 의미전달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특별한 이야기는 수만 겁의 과거 속으로 엄청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에 사리뿟따 존자가 될 존재는 부유한 브라만 가정에 태어나 사라다(Sarada)라고 불린다. 동시에 미래의 목갈라나도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 시리왓다나(Sirivaddhana)라고 불린다. 두 가정은 서로 잘 알아 두 소년은 함께 놀고 가까운 친구가 된다.


사라다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굉장히 많은 유산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머지않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운명을 고독 속에 곰곰이 생각해 본 후에 그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해탈의 길을 찾아서 출가할 결심을 한다. 사라다는 친구 시리왓다나에게 가서 구도의 길에 함께 동참할 것을 청한다. 그러자 아직도 세속의 일에 너무 강하게 집착하고 있던 시리왓다나는 거절한다. 하지만 사라다는 그 결심이 확고했다. 그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집을 떠나 덥수룩한 머리로 고행의 삶을 살아간다. 별 어려움없이 곧바로 그는 세간에서 명상으로 이룰 수 있는 모든 것과 신통력을 통달했고 한 무리의 제자를 거느리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그의 수행처는 많은 고행자 무리의 거처가 되었다.


그 때에 아노마닷시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다. 그 분은 고따마 부처님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열 여덟 번째가 되는 부처님이시다. 어느 날 아노마닷시 부처님은 선정에서 깨어나 세상을 향해 '지혜의 그물'을 펼치시어 고행자 사라다와 그의 일행을 보셨다. 이 집단을 찾아가는 것이 많은 존재들에게 크게 유익하리라는 것을 아시고는 당신의 제자들을 뒤로하시고 그들의 수행처를 찾아 길 떠나셨다. 사라다는 그 방문객의 육신에서 고귀한 상호(相好)를 보고 즉시 그 분이 정각을 이루신 분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공손히 그 분에게 상석을 권하고 그의 제자들이 탁발해온 음식으로 공양을 올렸다.


그러는 동안 부처님의 제자들이 그 수행처로 모여들었다. 두 상수제자 니사바와 아노마가 이끄는 그 제자들은 모든 번뇌를 벗어난 10만 명의 아라한이었다. 고행자 사라다는 부처님을 공경하여, 꽃으로 장식된 넓은 차양을 펴들고 세존의 뒤에 서 있었다. 세존께서는 인식[想]과 느낌[受] 그리고 다른 정신작용들이 완전히 멈춘 선정의 상태인 멸진정(滅盡定, nirodhasamaapatti)에 드셨다. 세존께서는 일주일 내내 입정해 계셨고, 그 동안 사라다는 꽃으로 장식된 차양을 높이 펼쳐들고 서있었다.


일주일이 지나 멸진정에서 깨어나신 부처님께서는 두 상수제자에게 고행자의 무리를 위해 이야기해 주도록 이르셨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세존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을 끝내시자 사라다 이외의 모든 고행제자들은 아라한과를 성취하였고 부처님께 당신의 승단에 받아주십사고 청했다. 그러나 사라다는 아라한과는 물론 다른 어떤 과도 성취하지 못하였다. 그가 상수제자 니사바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니사바의 훌륭한 거동을 보고는 내세에 부처님의 첫번째 상수제자가 되고자하는 서원을 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모임이 끝나자 사라다는 아노마닷시 부처님께 다가가서 발아래 경배하고 이렇게 말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일주일 내내 존경심으로 당신의 머리 위에 꽃의 차양을 받쳐드린 공덕이 있다면 신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도, 대범천의 지위도, 그 어떤 보답도 아니고 다만 미래에 정등각자의 상수제자가 되기를 서원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그의 서원이 이루어지겠는가를 생각하셨다. 그리고 내세에로 지혜를 펼치시어 그것이 이루어질 것을 아셨다. 그래서 사라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대의 서원은 헛되지 않으리라. 수만 겁의 엄청난 시간이 흐른 미래에 고따마라는 이름의 부처가 세간에 출현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사리뿟따라는 이름으로 그 분의 상수제자인 법장이 될 것이다."


부처님이 떠난 후 사라다는 그의 친구 시리왓다나에게 가서 고따마 부처님의 두번째 상수제자가 되겠다는 서원을 하라고 재촉하였다. 이에 시리왓다나는 공양 장소를 성대하게 짓도록 하였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세존과 비구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올렸다. 시리왓다나는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일주일 내내 공양을 올렸다. 이 잔치 말미에 모든 비구들에게 훌륭한 승복을 올린 후에 이렇게 말씀드렸다. "저는 이 공덕의 힘을 빌어 벗 사라다가 첫번째 상수제자가 되기로 한 바로 그 부처님의 두번째 상수제자가 되고자 합니다." 세존께서 미래를 내다보시고 이 서원이 이루어질 것을 알게 되셨다. 그리고 시리왓다나에게 그가 고따마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될 것이고 목갈라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신통력 있는 비구가 될 것임을 예언하셨다.


두 친구는 저마다 수기(授記)를 받고 난 후에, 각자의 영역에서 선행에 전심전력하였다. 시리왓다나는 재가자로서 승가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돌보았고 다양한 자비행을 베풀었다. 사라다는 고행승으로서 그의 명상생활을 계속하였다. 두 사람이 죽어서 시리왓다나는 욕계천에 다시 태어났고, 사라다는 범주처(梵住處, brahmavihaara)에 숙달하여 범천의 세계에 다시 태어났다.



『본생경』에 나타난 사리뿟따


이 두 사람의 그 이후 행적에 관해서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생사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 이 두 친구의 행로는 그들보다 훨씬 이전, 과거 스물 네 번째 부처님의 발아래 엎드려 최고의 부처가 되기를 서원했던 한 인물의 행로와 여러 차례 교차되고 있다. 이분이 바로 우리 시대의 깨달은 분, 고따마 붓다가 되신 보디삿따[菩薩, Bodhisatta, 깨달음을 이루기 전의 부처님]이다. 『본생경』은 보디삿따의 550번의 전생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사리뿟따는 아난다와 비교한다면 몰라도 부처님의 그 어느 제자보다 자주 등장하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리뿟따와 관계되는 몇 가지 전생담만을 살펴보겠다. 재생의 과정은 존재의 영역사이에 구분 없이 순환되는 것이어서 축생계로부터 인간계와 천상계로, 또 천상계에서 인간계나 축생계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는 까닭에 사리뿟따와 보디삿따의 특별한 인연은 세세생생 다양하게 펼쳐지게 된다. 이제부터 이 두 분의 이러한 인연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엮어보기로 한다.


보디삿따와 사리뿟따는 과거생에서 동물로 태어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언젠가 보디삿따가 우두머리 수사슴이었을 때, 자기 두 아들에게 지도자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가르쳤다. 한 아들(사리뿟따)은 아버지의 충고를 충실히 따라 제 무리를 훌륭히 이끌었고 다른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일축하고 제 고집대로만 하여 자기 무리를 재난으로 이끌었다. 그는 나중에 부처님의 질투심 많은 사촌 데와닷따로 태어나게 된다(『본생경』 11). 또 보디삿따가 왕궁의 거위였을 때는 두 아들(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이 태양을 앞질러 보겠다고 날다가 지쳐서 떨어지려 하자 보디삿따가 구해주었다(476). 그리고 보디삿따가 자고새로 태어났을 때 그는 친구인 원숭이(사리뿟따)와 코끼리(목갈라나)보다 앞선 자로서 이 두 친구의 선생이면서 지도자였는데 이 사실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몸 받는 생에서의 관계를 알려주는 징후가 된다(37). 「토끼전생담」(316)에서도 보디삿따는 지혜로운 산토끼로 태어나 다시 지도자가 되었는데 원숭이(사리뿟따), 자칼(목갈라나) 그리고 수달(아난다)에게 계율과 자비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신들의 왕인 삭까(제석천)가 그의 뜻이 얼마나 굳은지 시험하기 위해서 굶주린 브라만으로 변신하여 나타나자 그 산토끼는 그의 먹을거리가 되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들었다.



이 미래의 두 상수제자는 여러 번 보디삿따의 생명을 구해주기도 하였다. 보디삿따가 사슴이었을 때 덫에 걸린 일이 있었는데 동무였던 딱따구리(사리뿟따)와 거북이(목갈라나)는 덫을 부수고 그를 구해낸다. 그때 거북이가 사냥꾼(데와닷따)에게 잡히지만 사슴과 딱따구리가 그를 구해내는 데 성공한다(206). 그러나 보디삿따가 매번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어서 『본생경』에는 비극적인 운명의 이야기도 있다. 어떤 생에서는 그분께서 젊은 브라만 청년들에게 베다를 가르치는 자고새였을 때 사악한 고행자(데와닷따)가 그를 잡아먹는다(438). 사자(사리뿟따)와 호랑이(목갈라나)가 친구인 자고새를 만나러 왔다가 그 고행자의 수염에 붙어있는 깃털을 보고는 그가 극악한 짓을 했음을 알게 된다. 사자는 자비를 베풀고자 했으나 호랑이는 그 고행자를 갈가리 찢어서 시체를 구덩이에 던져버렸다. 이 사건에서도 두 제자의 기질이 상당히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사리뿟따는 사자처럼 힘이 세면서도 너그럽고 온화했던 반면, 목갈라나는 마지막 생에서는 결국 깨달은 비구답게 해칠 줄 모르는 존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호랑이 기상을 갖추고 있다.


『본생경』의 다른 곳에서는 보디삿따와 사리뿟따 둘 중의 한쪽이 인간이고 다른 쪽은 동물인 적도 있고 시혜자와 수혜자로서의 처지가 서로 뒤바뀐 적도 있다. 사리뿟따가 전사였을 때 보디삿따는 그의 군마였다(23). 보디삿따가 흰 코끼리로 태어나 베나레스 왕(사리뿟따)을 훌륭히 모시기도 하였다(122). 보디삿따는 자고새였고 사리뿟따는 그를 가르치는 현명한 고행자였던 적도 있다(277). 또 다른 생에서는 보디삿따가 사람이고 사리뿟따는 동물인 적도 있다. 예를 들어 은둔수행을 하던 보디삿따가 사악한 왕자(데와닷따)와 세 마리의 동물을 급류에서 구해낸 이야기도 있다. 그 동물들은 뱀(사리뿟따), 쥐(목갈라나), 앵무새(아난다)였는데, 감사의 표시로 숨겨둔 보물을 은둔자에게 드리려 하자 질투심 많은 왕자는 그를 제거하려 한다(73).


장차 중생제도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이들은 천상에 몸을 받아 나기도 한다. 한번은 보디삿따가 제석천이었을 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각각 달의 신인 짠다와 해의 신인 수리야였다. 그들은 몇몇 다른 신들과 함께 악명 높은 구두쇠를 찾아가 베풀 줄 아는 삶을 살도록 교화한다(450). 보디삿따가 이들 미래의 제자를 이롭게 한 적이 더 많지만, 때로는 사리뿟따가 보디삿따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들이 반신(半神)인 뱀 나가(naaga)의 두 왕자로 태어났을 때 잔인한 브라만이 보디삿따를 잡아 구경꾼들 앞에서 요술을 부리게 한다. 형이었던 사리뿟따는 그를 찾아 나서서 이런 굴욕적인 삶으로부터 구해준다(543). 보디삿따가 덕성스러운 왕자 마하빠두마였을 때 계모가 그를 유혹한 적이 있었다. 이를 거절하자 계모는 그를 중상 모략하였고, 부왕은 그를 절벽에서 내던지게 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산신령이었던 사리뿟따가 그를 받아 안전하게 구해 준다(472).


『본생경』을 보면 보디삿따와 사리뿟따는 인간으로 태어난 적이 훨씬 더 많았다. 이야기마다 보디삿따는 예외 없이 최고의 덕과 지혜를 드러내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거기서 사리뿟따는 그분의 친구, 제자, 아들, 동생으로 나타나며 그분에게 도움을 드리고 있다. 어떤 생에서는 보디삿따가 왕이었고 사리뿟따는 마차를 끄는 시종이었다(151). 그들이 길에서 상대국의 왕(아난다)이 타고 가는 마차와 마주쳤을 때 사리뿟따와 상대국 왕의 시종(목갈라나)은 자기들이 모시는 왕의 장점을 서로 비교하게 된다. 목갈라나는 사리뿟따의 주인이 더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 왕은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어 다스리는데, 사리뿟따가 모시는 왕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감명 깊은 「인욕전생담」(313)에서 인욕을 설하는 성자인 보디삿따는 사악한 깔라부 왕(데와닷따)에게서 온갖 모욕과 고문을 당한다. 깔라부 왕이 보디삿따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해 사지를 찢었을 때 장군인 사리뿟따는 보디삿따의 찢긴 몸을 싸매주면서 제발 복수심은 갖지 마시라고 간청한다.


『본생경』의 좀더 긴 이야기에서는 보디삿따가 출가수행자의 길을 가게되면 사리뿟따도 그 구도행에 동참하는 일이 잦다. 두 사람의 기질에 그런 식의 출가 성향이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마지막 생에서도 출가를 하고 난 후에야 영적인 완성을 이루었던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보디삿따가 사제의 아들인 핫티빨라였을 때 그 나라의 왕에게 후사가 없자 왕위를 계승할 상속자로 지명된다. 그러나 세속 삶의 위험을 알아차린 그가 고행자가 되기로 결심하자 세 아우가 뒤를 따르는데 그 중 큰 동생이 미래의 사리뿟따였다(509). 「인드리야 전생담」(423)에서 보디삿따는 일곱 명의 상수제자를 거느린 고행자였다. 그 중에 연장자(사리뿟따)를 포함한 여섯 명은 결국 자신의 은둔처를 마련하려고 모두 떠나게 된다. 그러나 아누싯사(아난다)만은 그 분의 시봉자로 남는다. 이는 부처님과 아난다가 마지막 생애에서 맺을 관계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세속을 떠나려는 보디삿따의 결정을 사리뿟따가 항상 따랐던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왕이었던 보디삿따가 고행자의 삶을 결심했을 때 그의 맏아들(사리뿟따)과 막내아들(라훌라)이 그 계획을 포기하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그는 아들에 대한 애착을 극복하려고 내심 갈등을 겪는다(525). 또 다른 생에서는 보디삿따의 출가 결심이 흔들리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나라다라는 고행자였던 사리뿟따가 신통력으로 모습을 나타내어 그 결심을 확고히 하도록 힘을 북돋워준다(539).


업의 풍랑에 시달리면서 이 두 거룩한 존재는 재생의 윤회 속에 세세생생 이렇게 떠돌며 살았다. 그러나 무지한 중생과는 달리 그들의 방랑은 목적 없는 것도 아니었고 방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먼 과거에 세웠던 서원에 의해서 인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십바라밀을 행하고 계행을 완성하고 동료애와 상호신뢰를 더욱 더 결속시키면서 그들은 수없이 많은 생을 보낸 후에야 그토록 오랫동안 갈구해 온 목적을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2천5백년 전에 인도 중부에서 마지막 생을 받아 나셨을 때 한 분은 천상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신 고따마 부처님으로, 다른 한 분은 가장 뛰어난 제자인 법장 사리뿟따 존자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