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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4. 고요한소리

우리는 어떤 과정을 통하여 다시 태여나는가(3)


11장  태어남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과 불교적 설명



물질과학은 생명 탄생을 눈에 보이는 것 즉 금생이라는 시간대에 한정시켜 물질에 준거하여서만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생물학자는 아버지의 정자세포와 어머니의 난자세포의 결합이 어린아이의 탄생을 가져오고 어린아이의 부모나 조상의 육체적·정신적 특성이 어린아이의 특성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정신적·심령적 요소에 대해서 침묵해온 생물학은 유전과 환경 두 가지만을 영향력있는 원인 요소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히 만족스런 설명인가. 같은 부모, 같은 환경에서 태어난 두 형제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어째서 한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약질이고, 다른 아이는 튼튼하고, 힘이 세며 건강할까? 같은 형제라도 출생시기가 다른만큼 어머니의 건강상태가 달랐다는 설명이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면 같은 유전, 같은 환경, 같은 시기에 태어난 쌍둥이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 두 사람 사이에 흔히 드러나는 육체적·정신적 차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태어날 때부터 배꼽이 서로 붙었던 저 유명한 태국의 쌍둥이 장(Chang)과 엉(Eng)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들 쌍둥이는 유전과 환경이 완전히 똑같았던 경우이다. 그들이 런던에 온 다음의 행동을 조사한 전문가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은 성질이 전혀 달라, 장은 알코올에 중독되어 있었고 엉은 금주주의자(禁酒主義者)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부모뿐 아니라 조상 중에 그런 성향을 나타낸 사람이 없는데도 종종 놀라운 신동들이 태어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런 신동의 경우를 유전과 환경만으로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생각있는 사람들이라면 유전과 환경 이외에도 어떤 작용요인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인간과 같은 극도로 복잡한 정신·물리학적 유기체가 부모의 정자세포, 난자세포라는 순전히 신체적 인자의 결합만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제3의 요인, 즉 심령적 요인이 끼여듦으로써만이 가능하다. 심지와 기름만으로는 등불이 켜질 수 없다. 어디로부턴가 불이 옮겨올 때, 심지와 기름의 작용은 불꽃을 내게 된다. 하나의 식물은 씨앗과 흙으로만 만들어진 산물이 아니다. 외부의 근원으로부터 다른 요소 즉 빛이 와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두 개의 순전히 물리적인 요소의 ― 부모의 정자와 난자 ― 결합은 마음과 물질의 결합인 태아를 형성할 가망이 없다. 정신·신체적 유기체, 태아를 낳기 위해서는 심령적 요소가 이 두 신체적 요소와 결합해야 한다.


다음으로 생물학은 태아의 성(性)이 결정되는 과정을 어떻게 설명하는가? 태아는 부모의 유전자라고 알려진 것으로부터 그 특징을 이어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 태아는 같은 비율의 모친과 부친의 염색체로 구성되며, 성은 염색체가 어떻게 결합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남성세포는 항상 하나의 X 염색체와 하나의 Y 염색체를 담고있다. 반면에 여성세포에는 항상 두 개의 X 염색체가 들어있다고 한다. 수태가 되는 순간 남성 정자세포는 여성 난자세포와 결합하여 완전히 새로운 세포가 형성되며 그것이 나중에 태아가 된다. X 염색체와 Y 염색체가 서로 결합하면 남성세포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어쩌다가는 서로 결합하여 여성세포가 되어버린다. 생물학은 이처럼 다르게 나타나는 결합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신체적 측면만 따져가지고는 결코 속시원한 원인 규명이 이뤄질 수 없다.


피츠버그 대학의 생물학 교수 피터 그레이가 편찬한 「생물학 백과사전」에는 `유전학'이라는 제목으로 꽤나 긴 논문이 실려있고 마지막 문단의 결론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있는 문장이 포함되어 있다.

 "유전자 활동을 설명한 그림의 상당 부분은 물론 가설에 지나지 않으며 상세히 밝혀져야 할 일로 남아있다."


에딘버러 대학의 동물 유전학 교수인 C. H. 워딩톤의 저서 「현대 세계를 위한 생물학」의 `성과 재생산' 장(章)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들어있다.

"이들 염색체들은 발생단계의 유기체 내에 생성되는 호르몬의 형태를 좌우한다. XX 구성을 갖는 생물은 여성 호르몬을 생산한다. 반면에 XY 염색체의 존재는 남성 호르몬을 유도한다. 이런 체계에서 남녀라는 기본 잠재성 가운데 어느 쪽이 나타나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차이점은 인간 신체 내 가장 신뢰할만한 메커니즘 중 한 작용에, 즉 배세포(胚細胞)가 형성되는 순간 두 쌍의 염색체가 분리하여 한 쌍을 이루는 작용에 달려있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그 메커니즘이 잘못 진행되는 수가 있다 (…) 인간 염색체를 조사하는 기법은 성염색체의 이상상태가 언제 확정되는지를 규명할 정도로 정교해지긴 했지만, 그것도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겨우 그 같은 이상을 탐색하는 작업의 초기 단계에 와 있을 뿐이다."


워딩톤 교수는 배세포가 형성될 때 염색체 쌍들이 분리되어 단일 염색체가 되는 것을 몸에서 일어나는 가장 확실한 메커니즘의 하나로 이야기하고 있으나 동시에 그 메커니즘이 잘못되는 일도 드물지 않음을 부득이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자 태아가 생겨야 마땅한 형태로 염색체가 바른 비율로 있는데도, 생겨난 것은 남성 태아가 아닌 일이 가끔 있었다. 또 이와 유사한 경우로, 때로는 어떤 여성 태아에 있어서 염색체 비율은 제대로인데도 유전적으로 다른 결과가 오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의대 교수 4인이 합동으로 출판한 「내과 의사 편람(Physician's Handbook)」(크룹, 쉬워쯔, 자웨쯔, 비글리에리 교수, 15쇄)의 `염색체적 성 결정' 장에서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장이 나온다. "아직은 염색체적 성과 유전자적 성을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워딩톤 교수의 저술에 부친 머리말에서, 한때 철학교수였던 사바팔리 라다크리슈난 주27) 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과학자는 진리의 충직한 종이다. 그는 자연의 세계를 다루기 때문에, 과학적 연구 노력 과정에서 인간정신의 역할을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우리가 속해있는 이 자연계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다면 그는 내면적 공허감, 불안감, 의식 분열로 고통받게 될 것이다. 인간은 단순한 객체, 즉 그저 여러 사물 가운데 있는 한 사물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의 주체이다. 이 주체성이 인정될 때 과학과 인간성 사이의 간격은 좁아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에 애니 베산트 여사 주28) 의 말을 인용해보자.

"현대과학이 점점 더 분명하게 증명하는 바는, 고등한 동물일수록 진화에 있어서 유전의 역할은 점점 줄어들고, 모든 정신적, 도덕적 자질들이 부모로부터 자손에게 유전되지 않으며, 자질이 높은 경우일수록 이런 사실은 더욱 분명하다는 것이다. 천재가 낳은 어린애가 때로는 얼뜨기이고, 평범한 부모들도 천재를 낳지 않는가."

―「고대의 지혜(Ancient Wisdom)」중에서


이와 관련하여 달케 주29) 가 이야기했던 것도 옮겨 볼 가치가 있다.

"`나'라는 존재 전체가 몽땅 부모로부터 왔다는 것이 과학 쪽의 주장이라면, 그것은 `나'라는 과정(I-process)이 한번도 불이 당겨진 적이 없고 부모, 조부모, 등등으로부터 여태까지 추진되어만 왔다는 것, 즉 한번도 타오른 적이 없고 굴러오기만 했다는 의미이다. 그럴 경우 이 움직임의 처음 시작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외부의 힘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한 모든 것에는 ― 간단히 말하여 모든 반작용에는 ― 시작의 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과학의 설명과는 대조적으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부모는 물질(육체) 즉 토대를 제공할 뿐이며, 이들 (토대가 제공하는) 가능성과 꼭 부합되는 나라는 과정의 일부가 붕괴되면서 방출하는 나라는 에너지(I-energy)가 이 모두를 불 밝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내가 부모로부터 태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샘이 산에서 발원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샘이 산에서 발원하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누구에게나 명명백백한 사실이지만 그러나 샘이 어디까지나 산에 대해 한낱 이방인 객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 쪽이 과학 쪽과는 달리 실상에 충실하며, 또 부처님의 말씀에 의지할 때에만 비로소 생명번식이라는 완전미궁 속의 기적이, 세상의 자질구레한 법칙들과


 조금도 모순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세상의 상황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The Buddha and his teachings)」에서 나라다 스님은 유전만으로는 대대로 존경할만한 조상이 태어났던 오랜 가계에 범죄자가 태어나는 일이나, 악행으로 이름 난 집안에 성자가 탄생하는 일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견해를 강력히 피력하면서 T. H. 파스칼 박사의 「재육화(再肉化, Reincarnation)」라는 책으로부터 다음 구절을 인용하였다.

"유전에 관한 문제에서 원생세포가 맡아하는 역할로 되돌아가 본다면, 거듭 말하거니와 육체적 세포 그 자체만으로는, 인간의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은 유전의 육체적 측면을 밝혀주기는 하되, 도덕성이나 지적 능력의 문제는 전과 다름없이 깜깜한 어둠 속에 남겨두고 있다. 만약 사람이 오로지 하나의 원생세포로만 만들어지는 존재라면, 우리는 한 개인에게서 그의 조상이나 부모에게 드러났던 자질들 외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찾아낼 생각을 못할 것이다. 그들이 갖춘 자질은 결코 부모가 가졌던 것 이상일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매우 존경받는 집안에서 범죄자가 나오는 것을 보기도 하고 사회에 전혀 쓸모없이 살아온 부모에게서 성자가 태어나는 것도 보지 않는가."


앞서 이야기한 대로 탄생에 관한 불교적 설명에 의하면,  부모의 정자와 난자 같은 순전히 신체만을 근원으로 하는 요소들은 마음과 몸[名色]의 결합체인 태아를 탄생시킬 수 없다. 인간은 정신-물리적 유기체이며, 그런 만큼 원인적 요소는 육체적인 것과 영적인 것 양쪽이어야 한다. 주30) 중부 , Ⅰ, 제38경의 「대애진경(大愛盡經, Mahaa Ta.nhaa Sa^nkhaya Sutta)」에서, 부처님은 부모의 결합이 이뤄지고 모친이 (임신하기에) 적절한 때에 있다는 조건 이외에도, (부처님께서) 간답바(gandhabba)라고 이름붙인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한다고 하셨다. `간답바'라는 단어는 글자 그대로 `이방인' 혹은 `멀리서 온 자'라는 뜻이다. 동사 `gacchati(가다)'의 동명사 `gantabba'가 변화한 것으로서 그것은 `가야만 할 사람'을 뜻한다. 이 의미는 어딘가에서 죽은 사람을 말하고 있으며, 부모적 요인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것은 임종자의 마지막 생각이 담고 있던 정신적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정신적 내용은 심령적으로 중요한 빠띠산디 윈냐나 즉 재연결의식을 초래하고 그 재연결의식은 부모의 정·난자와 결합하여 태아의 형성을 돕는다. 그것은 임종자로부터 배출된 에너지 잠재력이다. 은유적으로 말해서 `멀리서 온 자' 혹은 `가야 할 자' 즉 그가 있었던 곳으로부터 (어디론가) 가야 하는 자이다. `빠띠산디'는 재연결을 뜻한다. 이것은 임종자 마음의 마지막 의식과 태아의 첫번째 의식을 연결시키기 때문에 재연결의식이라고 불린다. 그러므로 두 형태의 의식 모두 같은 `아람마나(aaramma.na)', 생각의 대상, 즉 세 가지 강력한 죽음의 표시 중의 하나를 갖는다.


그리하여 이것이 새로운 정신적 대응부분, 새 나마(naama, 名)가 되는데, 그것은 새 어머니의 자궁에서 새로운 `루빠(ruupa, 色)' ― 새 육체적 대응부분, 즉 새로운 부모의 정자세포와 난자세포와의 연계 속에 새 태아, 새로운 인간 생명의 핵을 발생시킨다. 이 새로 태어난 인간 생명은 과거 인간 생명의 결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과거 생에 한 생각, 말, 행위(sa^nkhaara)들이 특정한 에너지 혹은 업력(業力)을 낳았고, 지난 생을 끝마치는 찰나 그 힘은 충분히 강력해져서 그 힘의 강도와 자질에 따라 `같은 것은 같은 것을 끌어 당긴다'(인력의 법칙)는 원칙과 또 다른 대법칙,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힘입어, 알맞은 장소에 새 삶을 위한 필요 조건들을 끌어당길 수 있었던 것이다. 탄생의 세번째 원인적 요소를 만드는 것은 이들 힘이다. 그것은 심령적 요인이며 심령적 차원에서 시간과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들 잠재적인 업 에너지가 인연있는 어머니의 자궁 내에 태아 형성에 맞는 조건을 만들기 위하여 생물학적 법칙과 함께 작용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냐나띨로까 스님의 논평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태아에게 잠재해 있는 성격적 특성과 성향 및 능력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 죽어가는 사람은 온 힘을 다해 삶에 매달리다가 죽는 찰나에 업력을 방출하는데 이 업력은 수태준비가 된 새 어머니의 자궁에 전광석화처럼 찾아든다." 주31)

그러므로 의식의 변화 과정은 다른 공간이나 차원에서라 할지라도 중단없이 계속되며, 한 생의 끝에서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은 본질적으로 한 생 동안 찰나찰나  일어나는 의식의 변화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12장  최면을 통한 전생기억


의식단계의 마음에 들어온 대소간의 모든 일이나 느낌, 욕망들에 대한 생각은 의식단계의 마음에서 사라져버리기 전 그들의 인상을 무의식에 남긴다는 이론은 최면과학을 연구 실습하는 심리학자들에 의해 의심의 여지없이 입증되기에 이르렀다. 이들 인상들은 모두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장소에 저장된다. 연령퇴행 최면이라는 방법에 의해, 오래 전에 잊혀진 중요한 사건은 물론이고 심지어 사소한 사건에 대한 기억조차도 무의식단계의 마음으로부터 재생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면술사들이 하는 일은 먼저 피험자에게서 잠을 유도해내는 것이다. 이런 수면상태에서 피술자는 어떤 문제가 주어지든 진실하게 대답하게 되는 것이다. 최면술자는 피험자에게 계속 말을 걸어서 피술자가 평상시와 같은 잠에 빠져들지 않도록 한다. 최면으로 유도된 수면은 정상적인 수면과는 다르다. 이런 종류의 잠을 최면적 수면 혹은 트랜스(trance)라 부른다. 피술자가 이런 상태가 되면 시술자는 피술자가 자기를 찾아온 현시점과 관련된 일에서부터 질문하기 시작하여 점점 과거로, 아주 어린 유아기에까지 되돌아가면서 그때그때 일어난 일들을 상기하도록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해 피술자는 진실하게 대답한다. 깨어난 다음 그는 그가 한 말이나 행한 행동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질문받은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대답한 것은 의식단계의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면에 유도되어 잠든 동안, 의식단계의 마음은 정지상태에 들고 무의식단계의 마음이 대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일들이 모두 생생하게 회상될 뿐 아니라, 더 흥미로운 것은 그 일들이 생생하게 다시 체험될 수도 있다. 최면으로 유도된 수면상태에서 잊었던 경험들을 생생하게 재체험할 수 있는 것은 의식단계의 마음이 이 상황에선 활동하지 않으므로 그동안 까맣게 잊었던 일들이나 그 일에 대해 경험했던 강력한 반응 등 모든 기억들을 무의식이 자유롭게 풀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태를 전문 용어로는 기억이상증진(hypermnesia)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잊혀진 사건이 두렵고 공포스러운 것이었다면, 일어난 일을 회상하는 동안 최면에 걸린 사람은 당시와 똑같은 두려움과 공포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 일이 그로 하여금 눈물을 쏟게 했던 비통한 사건이었다면, 피술자는 그 사건을 회상하면서 그때와 똑같이 진한 슬픔을 보이며 눈물까지도 쏟는다. 이런 일은 아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한번은 60세의 노인이 최면에 의해 그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서 공책에 무엇을 쓴 일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 사람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가 베낀 글 가운데 특히 기억나는 어떤 구절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적당한 때의 한 바늘이 아홉 바늘을 절약한다'고 베낀 것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연필과 종이를 주고 그 구절을 써보라고 했을 때, 그는 여전히 무의식상태에서 그 구절을 썼다. 그것은 어른의 능숙한 글씨가 아니고 어린아이의 서툴고 떨리는 글씨였다. 그러나 전혀 의식을 가지고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최면에서 깨어난 다음 피술자는 그가 한 말이나 행동을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마음은 두겹 즉 의식적인 것과 무의식적인 것으로 되어 있으며, 그런 사실은 최면 방법에 의해 얼마든지 입증되고 있다. 에딘버러 대학에서 행한 정신과학 강의에서 트로워드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최면학이 밝혀낸 위대한 진리는 사람의 마음이 이중적 구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누구나 최면 방법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잊어선 안될 점이다. 최면 암시에 대해 심하게 저항하는 성질을 타고나는 경우도 있다.


최면 방법은 이번 생애의 과거 기억을 회상하는 데만 국한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은 전생의 기억들을 회상시키는 데 성공했고 이에 관해 많은 기록을 남겨놓았다.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그들의 아주 어린 시절에 관한 기억을 말하도록 했을 때 최면 피술자들은 전생의 일들을 회상하곤 했는데, 후에 객관적으로 상세히 조사해본 결과 그들의 진술이 사실이었음이 밝혀지곤 하였다. 여기에서는 그러한 가운데 한 경우만을 소개하고자 하는데, 이는 기록에 남겨진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의 하나이다.


제네바 대학의 테오도르 플라우어노이 교수가 스위스 의 한 소녀에게 최면을 걸고 이번 생애동안 겪은 일들에 관해 물어본 다음, 가장 먼 옛적의 생애를 기억해내어 보도록 청했다. 그 소녀는 아랍 추장의 딸로 살았던 생애를 기억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 당시 자기 이름도 기억할 수 있다고 했다. 그녀가 말한 이름은 시만다니었다. 그녀는 전생에서 쓰던 대로 아랍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시브루카라는 이름의 인도 왕과 결혼한 사실도 기억했고 인도 춤에 관한 세밀한 지식도 보여주었다. 남편이 챤드라기리라는 요새를 건설한 것도 기억했다. 플라우어노이 교수는 고문서를 통해 이 말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이 사례에 대한 책을 썼다. 맥두걸 교수는 이 사례를 「비정상 심리학의 개요(An Outline of Abnormal Psychology)」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이와 유사한 수백 여 가지 사례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맥락으로 1950년에 출판되어 굉장한 선풍을 일으킨 책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나 서미나라가 저술한 「윤회의 비밀(Many Mansions)」로 7년 동안 10쇄를 찍어낸 책이다. 그것은 에드가 케이시 주32) 가 베푼 놀라운 치료의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에드가 케이시의 기법은 자신이 스스로 최면에 든 다음 그 상태에서 환자들의 전생을 보고 이번 생에서 고생하는 질병의 근원적 이유가 있을 때는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는 최면상태에서는 질병에 대한 처방을 하였으나, 깨어난 다음엔 그가 말한 내용을 기억하지 못했다. 환자나 환자 대신 누군가가 에드가 케이시에게 질문을 해야만 했으며 그러면 그가 답을 해주고 질병에 대한 처방을 해주었다. 이때 얻은 대답들을 모두 두 벌로 타자쳐서 한 벌은 환자에게, 또 한 벌은 기록 파일에 보관했다. 이들은 `리딩(reading, 전생판단)'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지금도 미국 버지니아비치에는 케이시 재단 소관으로 그런 종류의 리딩이 20000사례 이상 보존되어 있다.


13장  저절로 이루어지는 전생기억


한편 최면에 힘입지 않고도 어린아이가 자기 전생을 기억해내는 사례가 상당수 있다.

버지니아 대학 심리학 교수였던 이안 스티븐슨 박사는 「전생기억이라 주장하는 자료에서 가려낸 생명존속의 증거(The evidence for survival from claimed memories of former incarnation)」라는 소책자에서, 저절로 이루어진 전생기억 사례를 여러 편 다루었다. 이 책은 유명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교수를 기념하는 현상 논문으로 뽑혔다. 그는 쿠바, 인도, 프랑스, 시실리 등 여러 나라에서 수집된 사례들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 소책자의 2부에서 과거 생에 대한 기억재생이 혹시라도 사기행위나 종족적 기억, 초감각적 인식능력, 소급인식과 예지 능력 같은 경우로 달리 설명될 수 있는 게 아닐까를 알아보기 위해 증거를 분석하고 있다. 그는 영혼 전생(轉生, reincarnation)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는데, 이러한 사례들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설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후에 나온 그의 저서 「영혼 전생을 암시하는 스무 가지의 사례」에서 더 많은 자동적 기억재생 사례를 다루었다.


지난 생의 기억을 누구나 자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기억재생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만 가능하며 그것도 어린아이에게만 가능하다. 아직까지는 연구조사 수준이 어떤 경우에 그런 기억재생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말해줄 수 있는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거의 모든 자동적 기억재생의 경우 과거 생에 어떤 사고나 치명적인 질병으로 아주 어린 나이에 급작스럽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것이 관찰되었다. 또한 어린아이가 차차 자라남에 따라 전생에 대한 그의 기억이 희미해진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과거 생을 기억해낼 수 없는 다른 이유들도 있을 수 있다. 예를 들면, 만약 어떤 사람의 전생이 동물의 생애였다면, 동물의 마음은 사람의 마음 수준 만큼 계발되어 있지 못할 것이므로, 인간 마음처럼 분명하고 정확하게 인상을 간직할 수 없어 그의 과거를 전혀 생각해낼 수 없을 것이다. 최면 시술을 통한 퇴행도 이런 경우에는 도움이 될 수 없다.


특정한 방법의 명상 수행과정을 통해 마음이 극히 청정해진 경우 그 정신적 시계가 완전히 트이는 단계에 도달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과거 생을 기억하는 능력을 계발할 수 있다. 불교에서 `숙주수념지(宿住隨念智, pubbenivaasaanussati-~naa.na)'라 부르는 것이다. 이 단계는 물론 고도의 청정성을 전제로 하므로 제4선(四禪)의 경지에 도달하기 전에는 그러한 능력을 얻을 수 없다. 이와 같은 경지에 이르렀던 부처님과 아라한들은 자신의 전생뿐만 아니라 타인의 것도 볼 수 있었다.


다음 장은 자동적으로 전생을 기억한 네 개의 사례를 소개한 것이며 이에 관련된 세부사항들이 모두 조사를 거쳤고 또 틀림없음이 판명되었다.


14장  조사연구를 거친 몇 가지 재생사례


하나. 쁘라모드의 경우

쁘라모드는 1944년 10월 11일 인도 웃따르 쁘라데쉬의 비사울리에서 방키 랄 샤마 교수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돌 반쯤 지나자 그는 어머니에게 모라다바드에 밥할 줄 아는 자기 아내가 있으니 어머니는 요리하시지 말라고 말했다. 모라다바드는 비사울리에서 90마일이나 떨어진 도시였다. 그는 비스킷 과자에 대해 유난히 관심이 많아 누구든 비스킷을 사는 것을 보면 자기는 모라다바드에 큰 비스킷 공장이 있다고 말하곤 했다. 큰 상점에 데리고 가면 모라다바드에 있는 자기 가게가 훨씬 크다고 했다. 그곳에는 또 큰 소다수 공장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 그는 그의 이름이 빠라마난드이며 모한 랄이라는 형제가 있고, `모한 형제'라는 이름으로 그들 둘이서 운영하는 비스킷과 소다수 공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커드[응유(凝乳)]를 너무 많이 먹은 탓으로 위장병이 생겨 그 때문에 죽었다고도 했다.


쁘라모드의 부모는 아이가 전생에 관해서 하는 이러한 말들을 전혀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런데도 쁘라모드는 계속 그런 말들을 했고 때때로 그를 모라다바드로 데려다 달라고 졸랐다. 그러한 이야기가 `모한 형제'라는 상호로 소다수와 비스킷 공장을 소유하고 있는 모라다바드 집안 사람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집에서는 형제 중의 하나인 빠라마난드가 1943년 5월 9일에 죽었다. 그는 커드를 지나치게 먹은 결과 만성 위장병을 얻어 고생했으며 사인(死因)은 맹장염과 복막염이었다. 그 집 식구들이 들은 소문이 죽은 빠라마난드의 상황과 부합하므로, 주인 모한 랄이 친척들을 데리고, 죽은 빠라마난드라고 주장하는 쁘라모드를 보러 비사울리에 왔다. 그때 쁘라모드가 친척을 만나러 먼 시골에 가고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를 못 만났으나, 소년의 아버지 샤마 교수가 아들을 모라다바드로 데려가기로 약속하였다. 얼마 후에 아버지는 이 약속을 지켜 다섯 살난 소년을 모라다바드로 데리고 갔다. 두 사람은  기차를 타고 갔는데 철도역에서 내리는 즉시 쁘라모드는 모한 랄이 전생의 형제였음을 알아보고 그에게 달려가 정답게 끌어안았다. 철도역에서부터 모한 랄의 집까지는 소형 이륜마차인 `통가'로 갔다.


가는 도중 쁘라모드는 한 건물을 알아보고 전에는 시청이었다고 말했으며 그들의 가게가 거기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 했다. 그때 쁘라모드는 `시청(타운 홀)'이라는 영어를 썼는데 그 말이 그의 고향 비사울리에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도 그런 표현을 쓴 것이 눈길을 끌었다. 그들이 탄 통가는 쁘라모드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 일부러 가게 앞에서 서지 않고 지나칠 듯 해보였다. 쁘라모드는 즉시 이 곳이 그 가게라고 외치며 통가를 정지시키도록 했다. 마차가 멈추자 소년은 전에 살던 집이 여기라며 앞장서 집 쪽으로 길을 안내했다. 그리고 예배 장소로 마련된 외딴 방으로 들어가 경건한 자세로 잠시 머물렀다.


집에 들어가자 그는 전생의 자기 어머니를 알아보았다. 그는 전생의 부인을 알아보고 왜 이마에 `빈두'점을 달지 않았느냐고 캐물었다. 그는 전생의 딸과 두 아들과 몇몇 친척을 알아보았으나, (아버지였던) 그가 죽은 다음 모습이 크게 변한 그의 맏아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소다 공장에 들어섰을 때, 그는 기계가 작동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 실은 쁘라모드가 어떻게 하는지 보기 위해 물이 공급되는 연결 부위를 일부러 멈춘 것이었다. 그는 즉시 물 공급라인이 끊어져 기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을 알아내고 작업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설명해주어 곧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작업자들에게 이 같은 지시를 내렸던 아이는 그때 겨우 다섯 살배기였다!


쁘라모드는 이틀 동안 모라다바드에서 즐겁게 보내면서 여러 장소와 건물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허물없이 대했으며, 심지어 그에게 빚이 있는 모슬렘 채무자까지 알아보았다. 모슬렘 채무자를 보고 그는 `당신한테 준 돈을 되돌려 받아야겠다'.고 했다. 아이가 모라다바드를 너무 좋아하므로 비사울리 집으로 데리고 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마침내 아버지는 아이가 잠든 사이에 데리고 돌아갔다. 그 후 어느 날 그는 모라다바드를 다시 방문하려고 몰래 집에서 도망나와 비사울리 철도역까지 나갔으나 집으로 다시 끌려와 실패로 돌아갔다.


이 사례는 쁘라모드가 모라다바드를 방문한 지 몇 주 안되어 베나레스 대학의 아트레아 교수가 처음으로 조사하였다. 몇년 후 이 사례를 버지니아 대학 이안 스티븐슨 교수가 다시 조사하였는데, 그는 이 사례를 한번 더 조사하기 위해 재차 방문하였다. 이 사례에 대한 그의 설명은 기록된 증거의 분석 평가와 더불어 그의 책 「영혼 전생을 암시하는 스무 가지의 사례」에 들어 있다.


둘. 샨띠 데위의 사례

샨띠 데위는 1926년 델리에서 태어났다. 세 살 무렵부터 이 소녀는 델리에서 60마일 떨어진 무뜨라라는 마을에 살았던 전생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소녀는 전생의 이름이 룩디이며 옷가게를 하는 상인 카다르 낫 쵸비와 결혼했다는 것이었다. 또 사내아이를 낳고 열흘 뒤에 죽었다고 했다. 샨띠 데위가 계속 전생얘기를 해대므로 소녀의 부모가 혹시나 하고 카다르 낫 쵸비에게 편지를 띄웠는데, 놀랍게도 그가 답장을 보내왔다. 이 답장에서 그는 샨띠 데위의 말이 모두 옳다고 확인해주었다. 나중에 그는 친척을 시켜 이 소녀를 방문케하고 그 자신도 예고없이 그녀를 찾아갔다. 소녀는 그를 알아보았다. 그 후 바로 조사가 이루어졌고 그 소녀가 고향인 델리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리하여 그 소녀의 무뜨라 방문과 이에 따른 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무뜨라 역에 내리자, 샨띠 데위는 많은 군중 속에서 쵸비의 또 다른 친척을 알아보았다. 소녀를 태워가려고 준비해놓은 마차에 탈 때, 사람들은 소녀를 보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마부에게 지시해주라고 시켰다. 그러자 소녀는 쵸비네 집까지 가는 길을 곧장 가리켰으며 그 집은 페인트칠을 다시 한 다음이어서 겉모양이 달라졌는데도 소녀는 그 집을 알아냈다. 소녀는 쵸비의 아버지도 알아보았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람들이 집안의 구조와 가구 배치에 대해 여러 모로 소녀를 떠보았는데, 소녀의 대답은 하나도 틀림이 없었다. 소녀는 또한 모인 사람들 속에서 50여명 정도를 알아보았다. 쵸비의 집으로 가면서 소녀는 특별히 한 방을 지적하며 그 곳에 묻어둔 돈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곧 그 장소를 파헤쳤으나 돈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쵸비가 그 돈은 그녀가 죽은 다음 자신이 파냈다고 밝혔다. 이 사례는 1936년 델리의 국제 아리안 연합이 조사를 했고 이안 스티븐슨의 책 「전생기억이라 주장하는 자료에서 가려낸 생명존속의 증거」에 소개되어 있다.


셋. 냐나띨라께의 사례

냐나띨라께는 1956년 2월 14일 실론의 딸라와켈레에서 16마일 떨어진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다. 두어 살쯤 되면서부터 이 소녀는 전생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 마을 사람들이 딸라와켈레에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녀는 즉시 그 곳이 바로 전생의 부모가 살던 곳이라며 식구들 이름까지 댔다. 이 사례를 발굴한 데는 캔디의 H. S. 니상까 씨의 공로가 컸고 또 콜롬보 와지라라마의 삐야닷시 스님의 역할도 컸는데, 삐야닷시 스님은 니상까 씨와 함께 대단한 흥미를 갖고 열심히 이 사례를 추적했다. 그들은 소녀의 집을 방문하고, 수줍어하는 소녀를 잘 달래가며 소녀의 전생과 살던 집의 세부사항에 대해 물어보고 도움되는 정보를 많이 뽑아낼 수 있었다.


소녀가 전생에 살던 집은 딸라와켈레에 있는 차(茶) 가공 공장이었고 전생엔 남자아이로 여동생과 함께 기차를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가는 길에 긴 터널을 통과했다(모든 상황이 해튼에 있는 스리빠다 학교를 가리키고 있다). 소녀는 어느 날 동생과 함께 길에 서 있다가 여왕이 기차로 여행하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실제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1954년 실론을 방문하여 기차로 딸라와켈레를 통과한 일이 있었다).


삐야닷시 스님과 니상까 씨는 함께 냐나띨라께가 남자아이로 살다 죽었다는 집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들은 여러 군데로 여러 사람을 찾아다니며 문의해 봤다. 그들은 사망자 등기소를 찾아가 여러 시간 열람해보았으나 얻은 것이 없었다. 마침내 조사를 거드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냐나띨라께를 딸라와켈리로 데려갔다. 소녀는 그 마을에서 여러 건물을 알아맞히었지만 자기가 살던 옛집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 집은 그가 죽은 다음 헐어내버렸던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스리빠다 학교에 다니다가 12살의 나이로 1954년 11월 9일에 죽은 한 소년의 부모를 찾아냈다. 그 부모에게 문의해서 알아낸 소년의 전생의 세부사항들이 냐나띨라께가 자기 전생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과 일치됨은 물론이었다.


삐야닷시 스님을 의장으로 하는 조사단이 딸라와켈레 휴게소에서 공청회를 열어 많은 증인들을 조사했는데, 그들 중에는 띨라께라트나(죽은 소년)의 가족, 띨라께라트나를 가르쳤던 교사, 그리고 해튼에 있는 스리빠다 사립중학 교장이 포함되어 있었다. 많은 군중이 모인 이 회의에서 냐나띨라께는 처음으로 띨라께라트나의 어머니를 대면하였는데, 냐나띨라께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 다음 부드럽게 말하였다. "이 분이 딸라와켈레의 제 어머니입니다."


이안 스티븐슨 교수는 1961년 딸라와켈레를 방문, 이 사례에 대해 독자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의 설명은 기록된 증거의 분석 및 논평과 함께 「영혼 전생을 암시하는 스무 가지의 사례」에 나온다. 니상까 씨는 이 사례를 싱할리어(語)로 쓴 「다시 태어난 소녀」라는 책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넷. H. A. 위제이라뜨너의 경우

H. A. 위제이라뜨너는 1947년 1월 17일, 발랑고다에서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작은 마을 칼토타에서 H. A. 띨레께라뜨나 하미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그의 오른편 가슴 빗장뼈와 겨드랑이 사이 아래쪽에 뚜렷한 구멍이 있었다. 그의 오른쪽 손은 가늘게 여위었으며 오른손의 손가락은 정상 길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그는 세 살 때쯤부터 혼자 있을 때는 언제나 집 주위를 빙빙 돌며 혼자서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이 이상한 행동을 맨 처음 발견한 것은 그의 어머니였는데 그녀는 아들이 자기 손이 기형인 것은 전생에 아내를 칼로 찔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그는 툭하면 그의 오른손을 들여다보며 그런 말을 하곤 했다. 그의 아버지 띨레께라뜨나는 아들이 그런 소리를 못하게 하려고 애써 보았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런데 기묘한 것은 1928년에 라뜨란 하미라는 띨레께라뜨나 하미의 동생이 자기 처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에 처해진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위제이라뜨너가 말하는 그 전생의 상황과 살인혐의 내용이 라뜨란 하미의 일생 및 살인혐의 내용과 너무나 부합되었다.


전생을 살았다고 주장하는 위제이라뜨너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 맨 처음의 주요인물은 발랑고다에 머물던 아난다 마이뜨레야 장로 스님이었다. 그는 소년과 그 부모들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했다. 소년은 자기가 처형당했던 일과 그에 앞서 일어난 일들까지 상세히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전생에 사형당하기 전 그는 자기가 죽은 다음 다시 형 곁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도 했다. 띨레께라뜨나 하미는 살해된 여자의 친척들이 아이에게 복수할까 두려워 이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후에 프란시스 스토리 씨가 좀더 상세한 조사를 하게 되었고 이안 스티븐슨 교수도 실론에 왔을 때 이 문제를 추적하였다. 그는 라뜨란 하미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서류철을 조사한 결과 위제이라뜨너가 얘기하는 부부간의 불화원인이 사실과 부합된다는 확신을 상당한 정도로 갖게 되었다. 대법원 기록상에 나타나는 의학적인 증거는, 살해된 여인이, 여러 상처 가운데, 왼쪽 겨드랑이 바로 아래에, 폐에까지 이르는 깊이로 길이 2인치 반, 너비 1인치 반의 베어서 벌어진 상처가 있었음을 말해주었다. 기묘하게도 위제이라뜨너의 가슴에도 역시 뚜렷한 공동(空洞)이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그것이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이라는 사실이었다. 과연 그것은 그가 전생에 아내에게 가한 상해를 일깨우는 씻을 수 없는 저주일까. 아니면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 잔혹한 행위는 오른손으로 저질러졌었다. 지금 그의 오른손과 팔의 상태는 업보의 생생한 예라고 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 역시 우연일 뿐일까. 그러나 아무튼 소년이 그의 전생에 관해 아난다 마이뜨레야 장로 스님에게 한 설명은 소년의 부친이 마이뜨레야 장로 스님에게 한 설명이나 그 지역 주민이 알고 있는 것과 모두 부합되었다. 참고로 필자 스스로도 이 사례에 대해 독자적인 조사를 해보았다는 것을 언급해두는 바이다.


이 사례의 상세한 설명은 기록된 증거의 분석, 논평과 함께 이안 스티븐 교수의 책 「영혼 전생을 암시하는 스무 가지의 사례」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