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안을 향하여
마지막 빚을 갚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는 부처님께서 무여열반에 드신 해에 이르렀다. 세존께서는 웨살리 근처의 마을 벨루와가마에서 우기를 보내시고 안거가 끝나자 그곳을 떠나 몇몇 군데 들러서 사왓티의 기원정사로 돌아오셨다.
그곳에서 지혜 제일 사리뿟따 장로는 세존께 예를 올리고 나서 그의 거처로 갔다. 장로는 제자들이 절을 하고 나간 후에 거처를 말끔히 청소하고 나서 가죽방석을 깔았다. 그리고 발을 씻고는 결가부좌로 앉아 아라한과의 선정에 들었다.
사리뿟따는 미리 정해놓은 시간에 선정에서 깨어나 이런 생각을 했다. '정등각자들이 먼저 무여열반에 드는 것일까, 아니면 그분들의 상수제자들이 먼저 무여열반에 드는 것일까?' 그리고는 상수제자들이 먼저 무여열반에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헤아려 보고 남은 기운이 이제 단 일주일을 지탱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디서 무여열반에 들게 될 것인가?'하고 살피던 중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라훌라는 삼십삼천의 천신들 사이에서 무여열반에 들었고, 안냐 꼰단냐 장로는 히말라야의 찻단따 호수에서 무여열반에 들었다. 그러면 나는 어디에서 최후를 맞게 될 것인가?'
이것을 거듭 생각하는 동안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자식 일곱이 다 아라한이 되었는데도 부처님도 불법도 승가도 믿지 않으신다. 그 믿음을 얻을 만한 근기를 갖추고 계신 걸까, 아닐까?'
그는 이를 관하여 보고 어머니가 예류도에 들 수 있는 조건들을 갖추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곤 이런 의문이 들었다. '어머니는 누구의 가르침을 받아 진리의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인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사리뿟따 자신의 법문을 통해서만 어머니가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또 이런 생각을 하였다. '만약 내가 이 일에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할 것이다. "사리뿟따는 그리도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예를 들어 고요한 마음의 천신들에게 설법하던 날만 해도 수많은 천신들이 아라한과를 얻었고, 더 많은 천신들은 예류, 일래, 불환도를 증득했었다. 또 다른 때에 그 분이 삼보에 귀의하면 얼마나 즐거운지를 말씀해주시자 그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류과에 들었고 수많은 집안이 천상계에 다시 태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자기 어머니는 정견(正見)으로 인도하지 못하다니!"라고 하겠지. 그러니 나는 어머니를 사견으로부터 해방시켜드리고 내가 태어났던 바로 그 방에서 무여열반에 들어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정하고 그는 '오늘 당장 세존께 허락을 받고 날라까로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시자인 쭌다 장로를 불러서 이렇게 말했다. '쭌다여, 내가 날라까로 가고자 하니 우리 5백 비구들에게 의발을 갖추어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해주오.' 쭌다 장로는 시키는 대로 행하였다.
비구들은 그들이 묵던 곳을 정돈하고 의발을 들고서 사리뿟따 장로에게로 왔다. 장로 또한 자신의 침소를 정돈하고 낮에 일보던 곳을 비질하였다. 그리고는 문 앞에 서서 그곳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이 곳을 보는 것도 이제 마지막이로구나.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으리니.'
그리고는 오백 비구들과 함께 세존께 가서 경배한 후 이렇게 말하였다. "정각자이시며 일체지자이신 세존이시여, 허락하여 주소서. 제가 무여열반에 들 때가 되었나이다. 이제 목숨이 다하였습니다."
세상의 주인이시여, 위대한 대각세존이시여!
저는 곧 이 삶에서 풀려납니다.
다시는 오고 감이 없으리니
세존을 우러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제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레만 지나면 짐 다 벗고
이 몸을 누이게 될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들어주소서! 세존이시여, 허락하소서!
마침내 제가 열반할 때가 되었나이다.
이제 저는 삶의 의지를 놓았습니다.
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만일 세존께서 "무여열반에 들어도 좋다."고 대답하셨다면 외도들은 그분께서 죽음을 예찬하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고, 만일 "무여열반에 들지 말라."고 대답하셨다면 윤회의 굴레가 지속되는 것을 예찬하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기에, 이를 아신 세존께서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어디에서 무여열반에 들려 하느냐?"하고 물으셨다는 것이다.
사리뿟따는 "마가다국 날라까 마을의 제가 태어났던 방에서 열반에 들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시의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바를 행하여라. 하지만 승단의 형제들은 그대 같은 비구를 만날 기회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법을 설하여 주어라."
이에 장로는 자신의 놀라운 법력을 다 드러내는 설법을 하였다. 불법의 가장 높은 경지로 올라갔다가 세간적 진리의 경지로 내려오고, 다시 오르기도 하고 또 내려오며 온갖 직설과 비유를 구사하여 법을 설하였다. 설법을 마치고 그는 세존 앞에 엎드려 경배했다. 세존의 다리를 부여안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저는 세존 앞에 엎드려 경배할 수 있기까지 무량겁에 걸쳐 십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아왔습니다. 제 간절한 소망은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는 만날 일도 스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제 그 두텁던 인연도 다하였습니다. 저는 곧 늙음도 죽음도 없이 평화롭고 복되고 번뇌없이 안온한 곳, 수만의 부처께서 들어가셨던 그곳, 열반으로 들어갑니다. 저의 말이나 행동이 세존을 기쁘게 해드리지 못한 점이 있다면, 세존이시여, 용서하소서! 이제 가야 할 시간입니다."
언젠가도 부처님께서는 이에 대답하신 적이 있었다. "사리뿟따여, 그대의 말이나 행동에 꾸짖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대는 크고 넓고 밝은 지혜를 갖추었으며, 빠르고 예리하게 통찰하는 지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상응부』 8:7)
이번에도 세존께서는 똑같이 대답하셨다. "사리뿟따여, 그대의 청을 듣겠노라. 하지만 그대의 말 한마디 몸가짐 하나 거슬린 적이 없었다. 사리뿟따여, 이제 그대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여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세존께서 상수제자를 꾸짖는 것처럼 보이는 몇몇 경우에도 실은 제자가 탐탁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나 어떤 문제에 대한 새로운 대처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세존의 허락을 받고, 사리뿟따가 엎드려 절하고 일어서자 대지가 포효하며 온 천지가 바다에 이르기까지 한 번 크게 진동했다. 그것은 마치 대지가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메루 산 주변 이 첩첩의 산과 거대한 히말라야 산맥을 떠받치고 있는 나로서도 오늘 이처럼 쌓인 엄청난 덕은 감당할 수가 없구나!" 그리고는 크나큰 우레가 하늘을 갈라놓았고 먹장 같은 구름이 나타나더니 큰비가 쏟아져 내렸다.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을 하셨다. '이제 법장을 떠나보내야겠다.' 그리고는 법상에서 일어나 당신께서 거처하시는 향실(香室)로 가서 보좌 위에 서셨다. 사리뿟따는 향실을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면서 동서남북에 절하며 이런 생각을 하였다. '제가 아노마닷시 부처님 발아래 무릎꿇어 스승님 만나기를 서원한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 수십만 겁 전이었습니다. 그 서원이 이루어져 저는 드디어 스승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그때 만나 처음 뵈었고, 이제 마지막으로 뵈옵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는 뵈올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두 손을 합장한 채 세존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뒷걸음으로 그곳을 떠났다. 그러자 그것을 못내 참을 수 없어 대지는 또 한 번 바닷가까지 전율했다.
그때 세존께서는 주위에 둘러서 있던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가보도록 해라. 그대들의 사형을 따라가보도록 해라." 그 말씀에 사부대중이 바로 기원정사를 떠났고 그곳에는 세존께서 홀로 남아 계시게 되었다. 또한 그 소식을 들은 사왓티의 시민들도 향과 꽃을 받쳐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시를 빠져나갔다. 그들은 슬픔의 표시로 머리카락을 적시고 울며 탄식하며 장로의 뒤를 따라갔다.
그러자 사리뿟따는 "이 길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길입니다."하고 타이르며 그들에게 돌아갈 것을 요청했다. 그를 따라오던 비구들에게도 말했다. "여러분들도 이제 돌아가십시오. 스승님 모시기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렇듯 모두 되돌려 보내고 나서 그는 자신의 제자들만 데리고 길을 떠났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여전히 장로의 뒤를 따르며 이렇게 한탄했다. "전에는 장로님께서 먼길을 떠나시곤 했지만 늘 돌아오셨지.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길을 떠나시는 거야!"
장로는 "벗들이여, 깊이 생각해보시오! 형성되고 조건지어진 모든 것은 진정 스러지기 마련입니다."하며 그들을 되돌려보냈다.
이 일주일의 여정 동안에 사리뿟따는 하룻밤을 지내면서 묵을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드디어 고향인 날라까 마을에 도착한 저녁 무렵 그는 마을 어귀에 있는 벵골 보리수나무 근처에 멈추어 섰다. 마침 그때 장로의 조카인 우빠레와따가 마을 밖으로 나갔다가 그곳에서 사리뿟따를 보았다. 그는 장로에게로 가서 예를 올리고 그대로 서 있었다.
장로가 그에게 물었다. "할머니께서는 집에 계시던가?"
"네, 계십니다. 장로님."
"그러면 가서 우리가 왔다고 알려드리게. 그리고 만일 할머니께서 우리가 어찌 왔느냐고 물으시거든 이 마을에 하루 묵을 테니 내가 태어났던 방을 쓸 수 있게 해주시고 5백 비구들이 머물 처소도 마련해 주십사고 전해주게."
우빠레와따는 할머니에게 가서 말했다.
"할머니, 삼촌께서 오셨습니다."
"지금 어디 있더냐?"
"마을 어귀에 계십니다."
"혼자더냐, 아니면 누구 함께 온 사람들이 있더냐?"
"삼촌께서는 5백 명의 비구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어찌 왔다더냐?"하고 묻자 그는 장로가 시킨대로 말씀드렸다. 그러자 사리뿟따의 어머니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얘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처소를 마련하라는 걸까? 젊어서 비구가 되더니 이제 늙은 나이에 속인으로 되돌아오겠다는 걸까?'
그러나 어머니는 장로를 위해선 그가 태어났던 방을, 비구들을 위해서는 따로 처소를 마련하였고 횃불을 밝히고 나서 장로를 부르러 보냈다.
사리뿟따는 비구들을 데리고 생가의 안뜰을 지나 자신이 태어났던 방으로 들어갔다. 자리를 잡고 앉은 후, 비구들에게는 그들의 처소로 가도록 했다. 비구들이 물러간 후 곧 장로는 심한 설사병이 엄습해서 큰 고통을 느꼈다. 양동이가 번갈아 몇 차례나 들어오고 나가고 했다. 어머니는 '내 아들의 조짐이 좋지 않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자기방 문기둥에 기대어 서 있었다.
그럴 즈음 사천왕들이 "법장께서는 지금 어디 계실까?"라며 서로 물었다고 경에 써있다.14) 그들이 살펴보니 법장께서 최후의 숨을 거두려고 날라까의 태어났던 방 침대에 누워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 마지막으로 그 분을 뵈러가세."
사천왕은 그 방에 도착하여 장로님께 예를 올리고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장로가 물었다.
"우리는 사천왕입니다, 존자님."
"어떻게 오셨습니까?"
"병석에 계신 존자님을 돌보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실 것 없습니다. 여기도 돌보는 사람이 있으니 여러분들은 돌아가도록 하시지오."라고 사리뿟따가 말했다.
그들이 떠난 뒤, 천신의 왕인 삭까[帝釋]가 같은 뜻으로 찾아 왔고, 그 다음에는 브라만[梵天]의 왕인 마하브라마[大梵天]도 왔다. 존자는 전과 같이 모두를 되돌려보냈다.
이처럼 천상계의 존재들이 왔다가 가는 모습을 보며 브라만 여인인 어머니는 '내 아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떠나는 저들이 누구란 말인가?'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어머니는 장로가 있는 방의 문께로 가서 쭌다 장로에게 존자의 건강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쭌다 장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우바이 노부인께서 오셨습니다."고 말하며 어머니의 질문을 그대로 전했다.
"어떻게 이런 시간에 오셨습니까?" 사리뿟따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보시게, 그대를 보러 왔다네. 그런데 제일 먼저 왔던 이들은 누구였소?"
"사천왕들이었습니다, 우빠시까여."
"그렇다면 그대가 그들보다 더 훌륭하단 말이오?"
"그들은 말하자면 절을 지키는 시자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 스승님이 금생에 태어나신 후, 그들은 칼을 들고 스승님을 호위하고 있답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왔던 이는 누구였소?"
"천신들의 왕인 삭까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대가 천신의 왕보다 더 훌륭하단 말이오?"
"그는 비구의 의발을 들고 따르는 사미와 같은 존재지요. 우리 스승님이 삼십삼천에서 돌아오셨을 때 삭까왕이 스승님의 의발을 들고 스승님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답니다."
"그럼 삭까왕이 돌아간 후에 그 뒤로 왔던 이는 누구였소, 방안이 온통 빛으로 환해지던데."
"우바이여, 그건 당신의 주인이자 스승인 마하브라마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들이여, 그대가 나의 주인이신 마하브라마보다 더 훌륭하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우바이여. 우리 스승님께서 태어나신 날에 네 명의 마하브라마가 그 위대하신 분을 황금의 그물로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브라만 여인은 이렇게 생각했다. '내 아들의 권세가 이 정도라면 내 아들의 스승이자 주인이신 분의 위력은 얼마나 크단 말인가?'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갑자기 그 여인의 마음에 환희심과 기쁨이 일어 온몸을 가득 차 올랐다.
그 때 장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어머니에게 환희심과 기쁨이 일었으니 지금이 불법을 설해드릴 시간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우바이여,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내 아들의 덕성이 그 정도일진대 그 스승님의 덕성은 어떨 것인가 생각하고 있었지요."
"나의 스승님이 태어나셨을 때, 그 분이 세속의 삶을 포기하고 위대한 출가를 하셨을 때, 그 분이 성도를 하셨을 때, 그리고 초전법륜을 굴리셨을 때, 이 모든 때마다 수없이 많은 세계가 전율하고 진동했습니다. 계행, 선정, 지혜, 해탈, 그리고 해탈지견에 있어서 그 분에 필적할만한 이는 없습니다." 그리고나서 "참으로 세존은 이런 분이시니(Iti pi so bhagavaa…),"라고 경배를 올리는 구절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렇듯 그는 어머니에게 부처님의 덕성을 근거로 불법을 설명해드렸다. 사랑하는 아들이 해주는 법문이 끝나자 이 브라만 여인은 예류과에 확고히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 사랑하는 우빠띠사여, 왜 이제야 말해주는가요? 불사의 감로 지혜를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내게 말해주지 않았던가요?"
이제 존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이제 나는 어머니인 브라만 여인 루빠사리에게 나를 키워준 보답을 하였다. 이제 된 것 같다.' 그리고는 "우바이여, 이제 물러가십시오."라는 말로 어머니를 돌려보냈다. 어머니가 물러간 후 "쭌다야, 지금 시각이 얼마나 되었느냐?"하고 물었다.
"존자님, 이른 새벽입니다."
"비구들을 모두 모이도록 해라."
비구들이 모이자 존자는 쭌다에게 말했다. "쭌다야, 나를 일으켜 앉혀다오." 쭌다는 그대로 했다.
그러자 존자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형제들이여, 나는 44년 동안 여러분과 함께 지냈고 여러분과 행각도 함께 하였소. 이제까지 내가 말이나 행동으로 여러분을 불쾌하게 한 적이 있다면 용서해주시오."
비구들이 대답했다. "존자님, 비록 저희들이 존자님의 뒤를 그림자처럼 따랐지만 존자님께서 저희들을 불쾌하게 하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존자님, 도리어 저희들이 잘못했다면 용서해주소서."
그리고나서 존자는 넓은 가사로 몸을 감싸고 얼굴도 덮고 나서 오른쪽을 아래로 하고 누웠다. 그리고는 부처님께서 무여열반에 드시게 될 때 하실 방식으로 선정에 들었다. 즉 순차적으로 아홉 단계의 선정에 들었다가 다음에는 역순으로 아홉 단계의 선정에 들었다. 그후에 다시 초선에서 순차적으로 제4선에 이르렀을 바로 그때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의 윗머리가 나타났고 그 순간 사리뿟따 존자는 무여열반에 완전히 들었다. 그날이 깟띠까 달의 보름날이었는데 이는 양력으로 시월과 십일월에 해당하는 달이다.
브라만 노부인은 자기 방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들은 좀 나은가? 말소리가 끊겼네.' 노부인은 일어나 장로의 방으로 가서 아들의 두 다리를 주물러 주었다. 그러다가 장로가 죽은 것을 알고 그의 발아래 쓰러져 큰 소리로 한탄하였다.
"아, 사랑하는 아들이여! 그대의 덕성을 예전에 미처 몰랐었구나. 뭘 몰라서 수백의 비구들을 환대하지도 시주하지도 못해 좋은 복을 짓지 못했구나! 또 절도 하나 짓지 못했으니 그 복도 못 쌓았구나!" 노부인은 해가 떠오를 때까지 이렇게 탄식하였다.
해가 뜨자 노부인은 사람을 시켜 금은 세공인을 불러와 보물창고를 열도록 하고는 황금 몇 주머니를 큰 저울에 가득 달도록 했다. 그 황금을 금은 세공인에게 주어 장례용 장엄구를 준비하라고 시켰다. 기둥과 아치를 세우고 마을 한가운데에 좋은 목재로 정자를 짓도록 했다. 정자 중앙에는 박공이 장식된 커다란 구조물이 세워졌고 그 둘레에는 아치와 기둥이 모두 금으로 장식된 난간이 둘러쳐졌다. 그런 다음 인간과 천신들이 함께 하는 성스러운 장례식이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한 주일 내내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고 난 후 향기나는 갖가지의 나무를 쌓아 화장용 장작더미를 만들었다. 그 위에 사리뿟따 존자의 주검을 올려놓고서 향기나는 나무뿌리 몇 묶음으로 불을 지폈다. 밤이 새도록 화장은 계속되었고 대중들은 불법에 대한 여러 법문을 들었다. 그런 후에 아누룻다 장로가 다 타고 남은 불꽃을 향기나는 물로 껐다. 쭌다 장로가 유골을 주워모아서 거름망에 담았다.
그리고 나서 쭌다 장로는 생각을 했다. '나는 더이상 여기서 지체해선 안되겠다. 우리 큰 형님이시며 법장이신 사리뿟따 존자께서 입적하신 것을 정등각자께 말씀드려야겠다.' 그는 유골을 담은 천과 사리뿟따의 의발을 들고서 사왓티로 떠났다. 묵어야할 곳에서 하룻밤씩만 머물며 여정을 서둘렀다.
이상의 이야기는 「사리뿟따 상응」의 「쭌다경」 주석서에 쓰여있는 줄거리와 「대반열반경」의 주석서에 실린 같은 내용의 몇 대목을 덧붙인 것이다. 대화 부분은 「쭌다경(『상응부』47:13)」에서 따왔다.
쭌다경
한 번은 세존께서 사왓티에 있는 아나타삔디까의 기원정사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마가다국의 날라까 마을에서 병으로 고통받으며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쭌다 사미가 시봉하고 있었다.
사리뿟따는 바로 그 병으로 숨을 거두게 되었다. 그러자 쭌다 사미는 존자의 발우와 가사를 가지고 사위성의 기원정사로 갔다. 그는 아난다 존자에게 다가가 절을 올린 뒤 한쪽 옆에 앉아 말하였다.
"존자시여, 사리뿟따 존자께서 입적하셨습니다. 여기 발우와 가사가 있습니다."
"벗, 쭌다여, 이런 일이라면 세존을 찾아뵈어야 합니다. 우리 가서 세존을 뵙도록 합시다. 세존을 뵙고 이 일을 말씀드려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
그들은 세존을 뵈러 길을 나섰다. 기원정사에 도착한 뒤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쪽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나서 아난다 존자가 말씀을 올렸다.
"세존이시여, 쭌다 사미가 제게 말하기를 사리뿟따 존자가 돌아가셔서 그의 발우와 가사를 가져왔노라고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말에 온몸에 맥이 쭉 빠져버렸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가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정신이 아득해지고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아난다야, 어찌 이러느냐? 사리뿟따가 세상을 떠나면서 너의 계행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을 가져가기라도 했다는 말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가 세상을 떠나면서 저의 계행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지견을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존이시여, 사리뿟따 존자는 저를 일깨워주고 격려해주고 기쁘게 해주고 법을 설하는데 지칠 줄 모르는 조언자이자 스승이고 교화자였으며, 자신을 따르는 비구들에게는 도움을 주는 이였습니다. 우리는 사리뿟따가 법을 가르침에 있어서 얼마나 활력과 즐거움과 도움을 주었는지를 잊을 수 없습니다."
"아난다야, 사람은 누구나 가깝고 사랑스러운 것과 언젠가는 헤어져야만하고 갈라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내가 이미 가르치지 않았더냐? 태어나서 존재를 이루고 합성되었기에 언젠가는 해체되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은 정녕코 있을 수 없다. 아난다야, 마치 거목에서 큼직한 가지가 떨어져나가는 것과 같이 사리뿟따도 이제 이 크고 건실한 비구 승단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아난다야, 태어나서 존재를 이루고 합성되었기에 언젠가는 해체되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은 정녕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아난다야, 밖에서 귀의처를 찾지 말고 네 자신이 섬이 되어라. 네 스스로가 네 자신의 귀의처가 되어라. 다른 귀의처를 찾지 말고 불법을 너의 섬으로 삼고, 불법을 너의 귀의처로 삼아라."
주석서에는 이러한 해설이 나온다. 세존께서는 손을 내밀어 유골이 담긴 천을 들어 손바닥 위에 놓으시고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얼마 전에 열반에 드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청했던 비구의 조개빛깔의 유골이다. 수만 겁의 무량한 세월동안 십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아온 사람, 이것이 바로 그 비구이다. 내가 초전법륜을 굴리는 데 있어서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 이것이 그 비구이다. 늘 내 옆자리를 지켰던 사람, 이것이 그 비구이다. 지혜를 펴는 데 있어서 우주법계를 망라하여 나 말고는 그 누구보다도 수승했던 사람, 이것이 그 비구이다. 위대한 지혜를 가졌던 자 그가 이 비구이고, 넓은 지혜와 밝은 지혜와 민첩한 지혜, 꿰뚫어보는 지혜를 가졌던 자가 이 비구이다. 이 비구는 바라는 것 없이 만족할 줄 알았으며 은둔하기를 좋아하고 어울려 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정진력이 넘쳐났으며, 동료비구들을 계도하여 나쁜 일을 그만두도록 하는 자였다. 5백 전생 동안의 공덕으로 얻어놓은 엄청난 재산을 버리고서 집을 떠나 출가하여 지냈던 사람, 이것이 그 비구이다. 나의 문하에서 대지와 같은 인욕심을 지녔던 사람, 이것이 바로 그 비구이다. 뿔을 잘라내버린 황소처럼 남을 해칠 줄 모르는 이, 이것이 바로 그 비구이다. 의지가지 없는 아이처럼 겸허한 마음을 지닌 사람, 이것이 바로 그 비구이다.
비구들이여, 여기 이 유골을 보아라. 위대한 지혜, 넓고 밝고 민첩하고 예리하고 꿰뚫어보는 지혜를 지녔던 사람의 유골을. 바라는 것 없이 만족할 줄 알았으며 은둔하기를 좋아하고 어울려 다니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정진력이 넘쳐났던 그, 동료 비구들을 계도하여 나쁜 일을 그만두도록 한 그, 여기 그의 유골을 보아라.
그리고 나서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위대한 제자를 칭송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5백 생 동안 출가하여
가슴속에 지녔던 즐거움을 털어버리고
모든 감관을 잘 다스려
격정에서 벗어났던 사람,
열반에 든 사리뿟따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대지처럼 인욕심이 강하여
자기 마음을 완전히 조복시켰고
자비롭고 다정하며 고요하고 냉철하여
거대한 대지처럼 굳건했던 그 사람,
열반에 든 사리뿟따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의지가지 없는 아이처럼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한 손에 발우를 든 채 마을에 들어가
이 집 저 집 유유히 갈 길 가던 사람,
사리뿟따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으니
열반에 든 사리뿟따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마을에서건 숲속에서건 그 무엇도 해치지 않고
뿔 잘라낸 황소처럼 살아가던 사람,
자신을 완전히 조복시켰던 그 사람,
사리뿟따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으니
열반에 든 사리뿟따에게 경의를 표하노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사리뿟따 존자의 덕을 칭송하시고 유골을 보존할 사리탑을 짓도록 당부하셨다.
그후 아난다에게 라자가하로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아난다가 비구들에게 알렸고,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들과 함께 라자가하로 길을 떠나셨다. 그곳에 도착하셨을 때에는 이미 마하목갈라나 존자도 세상을 떠난 후였다. 이번에도 세존께서는 목갈라나의 유골을 들어보이시고 사리탑을 세우도록 당부하셨다.
그런 뒤 세존께서는 라자가하를 떠나 갠지스 강을 향해 먼 길을 가셔서 욱까쩰라에 도착하였다. 갠지스 강둑으로 나아가신 세존께서는 따라온 비구들과 함께 앉으시고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의 무여열반에 관한 「욱까쩰라경(『상응부』 47:14)」을 설하셨다.
욱까쩰라경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열반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왓지 지방의 욱까쩰라 마을의 갠지스 강가에 머물고 계셨다. 세존께서는 말없이 모여있는 비구들을 둘러보시고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비구들이여, 이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입적하고 나니 이 자리가 정말 텅 빈 것 같구나. 내 곁에 회중이 없어서도 아니고,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머물 곳이 걱정되어서도 아니다.
과거에 오셨던 성스러운 이, 정등각자, 깨달은 이들 모두 여래처럼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같은 한 쌍의 훌륭한 상수제자들을 거느렸다. 미래에 오실 성스러운 이, 정등각자, 깨달은 이들도 또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같은 한 쌍의 훌륭한 상수제자들을 거느리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 상수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에 어긋남 없이 행동하고, 스승의 조언에 그대로 따르는 것을 보면 참으로 경이롭고 놀랍도다. 그들이 사부대중에게 귀히 여겨지고 사랑받고 존경받고 추앙받는 것을 보면, 비구들이여, 참으로 경이롭고 놀랍도다. 그 상수제자들이 입적했을 때에 정각자에게 슬픔도 없고 비탄도 없는 것을 보면 참으로 경이롭고 놀랍도다. 태어나서, 존재를 이루고, 합성되었기에 언젠가는 해체되어야만 하는 것, 그것이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런 일은 정녕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구들이여, 밖에서 귀의처를 찾지 말고, 그대들 자신이 섬이 되어라. 그대들 스스로가 자신의 귀의처가 되어라. 다른 귀의처를 찾지 말고, 불법을 그대들 섬으로 삼고, 불법을 그대들 귀의처로 삼아라."
*****
부처님의 상수제자이자 사랑받는 법장이 될 젊은이 우빠띠사의 이야기는 이 심오하고도 감명 깊은 설법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 설법은 부처님께서 무여열반에 드실 때까지 거듭거듭 강조하신 가르침이어서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사리뿟따 존자는 양력 시월과 십일월에 걸쳐있는 깟띠까 달 보름날에 입적하였다. 보름 후 초승달이 떠오르는 날에 목갈라나도 입적하였다.15) 그로부터 반년 후에 부처님께서 무여열반에 드셨다고 전해진다.
이 위대한 세 분의 상서로운 만남은 천신과 인간에게 그리도 고마운 축복이 되었는데, 이러한 만남이 순전히 우연한 일이었을까? 우리는 그 답을 『밀린다왕문경』에 나오는 나가세나 존자의 말에서 알 수 있겠다. "폐하, 사리뿟따 존자는 수천 수만 생 동안 보디삿따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촌, 형, 아들, 조카, 그리고 친구였습니다."16)
이리하여 지루한 윤회의 바퀴도 마침내 멈추었다. 이 세 분은 윤회 속에서 적시에 서로 인연을 맺었던 것이다. 덧없이 흘러갈 뿐인 시간, 그 시간의 차원에서 초시간적 차원으로 접어들게 되었고, 생사의 윤회를 넘어서 불사의 경지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생에서 그분들은 이 세상을 밝게 비추는 광명의 등불을 밝히셨다. 이 등불이 영원히 빛나기를!
사리뿟따와 관련된 경17)
사리뿟따 존자가 설했다고 알려져 있는 경은 간단한 도덕률에서부터 심오한 교설의 요지와 선정 수행에 이르기까지 고귀한 삶[梵行]과 관련되는 폭넓은 주제를 망라하고 있다. 아래에 각각의 주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진 목록을 싣기로 한다. 경장에서 이들이 배열되어 있는 순서는 설법의 시간적 선후관계에 따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교화 시기 중 어떤 때에 있었던 일인지를 알 수 있는 특정 사건이 거론되고 있는 경도 더러 있다. 「아나타삔디까경」이 바로 그런 경우로서, 이 경은 훌륭한 재가불자 아나타삔디까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설해진 것이다.
중부(Majjhima Nikaaya)
제3경: 『법의 상속자경[法相續經, 담마다야다 숫따]』
부처님께서 '법의 상속자'와 '세속의 상속자'에 관해 설법하시고 향실로 들어가신 후에, 사리뿟따는 세존께서 독거에 드셨을 때 수행자가 취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관해서 비구들에게 설해 주었다. 또 비구는 세속적인 것을 떨치고 수행에 전념해야 하며, 스승이 놓아버리라고 지적해준 점들을 놓아버려야 하며, 절제할 줄 알고 홀로 있기를 좋아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열 여섯 가지 마음속 번뇌의 해악(중부 7 참조)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그 번뇌를 제거할 수 있는 중도적 처방이 바로 팔정도라고 결론지어 말하고 있다.
제5경: 『흠없음경[無垢經, 아낭가나 숫따]』
사람을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과오를 저지르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 둘째는 과오가 있으나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 셋째는 과오가 없으며 이를 아는 사람, 넷째는 과오가 없으나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이 그것이다. 첫째가 둘째보다 낫고 셋째가 넷째보다 낫다고 말하면서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 경은 도덕적 진보와 정신적 향상을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제9경: 『올바른 견해의 경[正見經, 삼마딧티 숫따]』. 본문 67-69쪽 요약 참조.
제28경: 『긴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大象跡喩經, 마하핫티빠도빠마 숫따]. 본문 64-67쪽 요약 참조.
제43경: 『긴 문답경[大有明經, 마하웨달라 숫따]』
무애해를 가장 잘 갖춘 것으로 알려진 마하꼬띠따 존자의 몇 가지 질문에 대해서 사리뿟따 장로가 답변하고 있다. 장로는 그의 수준 높은 질문에 걸맞게 명료하고도 심오한 답변으로 응하고 있다. 이 문답에는 교학 용어에 대한 분석적 검토, 지혜와 정견이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선정의 오묘한 측면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제69경: 『굴릿사니에게 설한 경[瞿尼師經, 굴릿사니 숫따]』
숲 속에 머무는 비구가 지켜야만 할 품행과 불법 수행에 관한 것이다.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질문을 받고서 장로는 도시나 마을 근처에서 지내는 비구들도 똑같은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제97경: 『다난자니에게 설한 경[陀然經, 다난자니 숫따]』
사리뿟따는 다난자니라는 브라만에게 설명하기를, 재가 수행자가 계행을 지키지 못하고서도 이 일 저 일 세속의 책임을 다하며 살다보니 그랬노라고 변명을 해서는 안되며, 그런 이유로 내생에 받을 고통스러운 업보가 면제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훗날 다난자니는 임종할 무렵에 장로에게 자기를 한번 방문해 주십사고 부탁했다. 그래서 사리뿟따는 숨을 거두고 있는 다난자니에게 자비희사의 4범주처를 닦아서 범천으로 향할 것을 설해 주었다. 그 일을 두고 부처님께서는 장로가 다난자니를 더 높은 수준의 깨달음으로 이끌어주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 은근히 나무라신 적이 있다. (본문 38-39쪽 참조)
제114경: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경[應習不應習經, 세위땁바아세위땁바 숫따]』
비구들이 실천해야 할 것, 수행해야 할 것, 사용해야 할 것과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부처님께서 간단히 지적하신 것을 사리뿟따가 소상히 설명해주고 있다. 이것은 신구의(身口意) 삼업에 대한 설명으로서 마음가짐과 견해, 여섯 가지 감각 대상[六境]과 비구의 일용품에 관한 것이다.
제143경: 『아나타삔디까에게 설한 경[敎給孤獨經, 아나타삔디꼬와다 숫따]』
사리뿟따는 임종을 맞고 있는 아나타삔디까를 찾아가서 여섯 감각기관으로부터 시작하여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마음속에 집착을 품지 말라고 충고한다. "거사여, 그대는 이렇게 스스로를 다스려야 합니다. '나는 눈에 매달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식은 눈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거사여, 그대는 이렇게 스스로를 다스려야 합니다." 이와 더불어 다른 다섯 가지 감각기관[六處]과 여섯 가지 감각대상[六境], 여섯 가지 식[六識], 여섯 가지 촉[六觸], 촉에서 생겨나는 여섯 가지 느낌[六觸受], 여섯 가지 요소[六大: 地水火風空識], 오온(五蘊: 色受想行識), 사무색계(四無色界: 空無邊處, 識無邊處, 無所有處, 非想非非想處)의 각각의 항목에 대해서도 그는 같은 문구를 사용해 낱낱이 일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세계와 모든 다른 세계로부터 벗어날 것[出離]과,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대상으로부터 벗어날 것, 마음이 접촉하고 탐색하고 추구하는 모든 대상으로부터 벗어날 것을 말하면서 설법을 끝맺고 있다. 요컨대 출리 수행은 감관작용 - 죽어가는 사람은 거기에 온통 마음이 얽매이게 마련인데 - 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차원의 경험 영역에 이르기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광범위한 영역까지를 망라하여 그토록 강인한 어조로 되풀이해서 출리 수행을 독려하는 이 설법은 정녕 숨져가는 불자에게 가슴 깊이 울리는 감화와 고요하고 자유롭고 환희에 찬 감격을 안겨 주었으리라. 이는 역량있는 스승이었던 사리뿟따가 의도한 바였음이 분명하다. 경에 보면, 아나타삔디까는 그때까지 들어보았던 어떤 설법보다 심오한 이 법문을 듣고 그 숭고함에 감동하여 눈물을 흘렸다고 씌어있다. 이 예만 보아도 사리뿟따의 설법이 얼마나 큰 감화력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아나타삔디까는 곧 숨을 거두어 도솔천의 천신으로 다시 태어났다.
장부(Diigha Nikaaya)
제28경: 『신심을 고취하는 경[自我歡喜經, 삼빠사다니야 숫따]』
부처님 계신 자리에서 사리뿟따가 부처님의 공덕을 잘 드러내어 찬미한 것으로서 불법의 위없음(無上)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이를 보면 사리뿟따가 부처님을 진심으로 신뢰하고 가지고 있었으며 그 신뢰감은 정당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의 첫 부분은 대반열반경에도 실려있다.
제33경: 『교설의 낭송[等訟經, 상기띠 숫따]』 (69∼70쪽 참조).
제34경: 『십상법을 설한 경[十上經, 다숫따라 숫따』 (69∼70쪽 참조).
증지부(Anguttara Nikaaya)
제2:35경: 『사마찟따경[平等心經.]』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에 대한 경으로서, 그들 앞에 아직도 남아있는 재생이 어떤 요인에 의해 결정될 것인가를 설하고 있다(68∼69쪽 참조).
제3:21경: 성자(ariyapuggala)를 또 다른 방법으로 분류하여, 육신으로 증명한 이[身證者, kaayasakkhi], 정견을 얻은 이[得見者, di.t.thippatta], 그리고 신심으로 해탈한 이[信解脫者, saddhaavimutta]로 나누고 있다.
제4:79경: 사리뿟따는 부처님에게 왜 어떤 사람은 사업에 실패하고 어떤 사람은 사업에 성공하며 어떤 사람은 기대한 것보다 사업이 더 발전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부처님께서는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비구들을 위한 보시의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그 이유 중의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제4:158경: 마음의 선근이 상실되었는지 유지되고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네 가지에 관한 경이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음 네 가지 성질을 찾을 수 있다면 우리는 선근을 잃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이를 퇴행이라고 부르셨다. 이 네 가지란 탐욕이 무성한 것, 증오가 무성한 것, 미혹이 무성한 것, 그리고 혜(慧)를 닦는 여러 가지 심오한 주제에 대해 지식과 지혜가 결여된 것을 말한다. 반면에 자신의 마음속에서 다음의 네 가지 성질을 찾을 수 있다면 선근을 잃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는데, 부처님께서는 이를 향상이라고 부르셨다. 이 네 가지란 탐욕이 줄어든 것, 증오가 줄어든 것, 미혹이 줄어든 것, 그리고 혜를 닦는 여러 가지 심오한 주제에 대해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는 것을 말한다.
제4:167-168경: 향상의 도상에 있는 네 가지 성과(聖果)에 대해 말하고 있다.
제4:172경: 부처님께서 개별적 존재(attabhava, 我有)의 네 가지 형태에 대해 간단히 말씀하셨던 것을 사리뿟따가 다시 소상히 설명하고 나서 한 가지 질문을 덧붙이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에 관해서는 사리뿟따가 나중에 「사마찟따 숫따(평등심경)」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4:173경: 사리뿟따는 수계한 지 2주만에 아라한과를 이루었을 때 사무애해(pa.tisambhidaa-~naa.na)를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부처님께 이를 인가해 주십사고 청한다.
제4:174경: 분별망상이 미칠 수 없는 것에 관하여 마하꼬띠따 존자와 토론하고 있다. 사리뿟따는 이렇게 말한다. "벗이여, 촉처[觸處, phassaayatana]의 여섯 바탕인 육처(六處)의 작용이 미치는 곳까지는 분별망상(papa~nca, 妄分別)의 세계가 펼쳐진다. 그리고 분별망상의 세계가 펼쳐지는 한 육처의 작용이 미친다. 촉의 여섯 바탕인 육처가 완전히 사라지고 끊어져야만 분별망상의 세계도 적멸하여 고요해지게 된다."
제4:175경: 고를 멸하기 위해서는 앎과 올바른 행위(vijjaacara.naa)가 겸비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제4:179경: 금생에 열반을 성취하는 까닭과 그러지 못하는 까닭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
제5:165경: 사람들이 왜 질문을 하게 되는가를 다섯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우둔함과 어리석음 때문에, 둘째 사악한 의도나 탐욕심 때문에, 셋째 알고 싶은 욕망으로, 넷째 업신여기는 마음에서, 다섯째 '상대방이 내 질문에 올바르게 답변한다면 좋은 일이고, 그러지 못하면 내가 올바른 답변을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라고 말한다.
제5:167경: 동료 비구를 견책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
제6:14-15경: 비구가 좋은 죽음 또는 나쁜 죽음을 맞게 되는 원인에 관한 것이다.
제6:41경: 신통력을 가진 비구는 마음만 먹으면 아름드리 나무둥치를 지(地)로도, 수(水)로도, 화(火)로도, 풍(風)으로도 볼 수 있으며, 그것은 그 모든 요소가 나무에 들어있음을 알기 때문이라고 사리뿟따는 설명하고 있다.
제7:66경: 존중과 경의에 관한 것이다. 사리뿟따는 불선업을 극복하고 선업을 계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불·법·승에 대한 존경, 또 수행, 선정, 정근, 온화함과 공경심에 대한 존중을 꼽고 있다. 이들 각각의 항목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항목에 대해 전제조건이 된다고 말한다.
제9:6경: 사람, 가사, 시주물, 숙소, 마을, 도시, 국가 등에 관하여 알아두어야 할 두 가지 사항이다. 우리가 그 사람을 사귀어야 할 것인가 사귀지 말아야 할 것인가, 그 가사, 시주물, 숙소를 사용해야 할 것인가 사용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그 마을, 도시, 국가에서 살아야 할 것인가 살지 말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제9:11경: 다른 비구로부터 누명을 썼을 때 부처님 계신 자리에서 터뜨린 사리뿟따의 '사자후'이다. 아홉 가지 비유를 통해서 자신이 분노로부터 자유롭다는 점과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있고 남을 해치는 일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41∼49쪽 참조).
제9:13경: 고귀한 삶의 목적에 관하여 마하꼬띠따와 논의하고 있다.
제9:14경: 사리뿟따는 사밋디 존자에게 법의 정수에 관해 질문하고서 그의 답변에 수긍하고 있다.
제9:26경: 이 경은 사리뿟따가 심지어 자기를 적대하는 사람들에 대해서조차도 공정함을 잃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데와닷따의 한 추종자가 자기 스승이 한 말이라고 하면서 꾸며냈음직해 보이는 말을 전하자, 사리뿟따는 그 말을 바로잡아 준다. 나중에 사리뿟따는 그 비구에게 그 어떤 매혹적인 감각 인상에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충분히 계발된 굳건한 마음에 대하여 설해주고 있다.
제9:34경: 열반에 관한 경으로서, 열반은 느낌을 넘어선 행복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제10:7경: 사리뿟따가 그의 선정 수행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선정에 들었을 때 자신에게는 '열반은 형성과정의 종식이다.'하는 유일한 인식만이 남아 있었노라고 말한다. 37쪽 참조.
제10:65경: 재생은 고통(고)이요 재생이 없으면 행복(낙)이다.
제10:66경: 부처님의 가르침과 수행을 통하여 기쁨을 누리는 것은 행복(낙)이고, 거기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고통(고)이다.
제10:67-68경: 선근을 함양하는 데 있어서의 향상과 퇴행의 원인에 관하여 설하고 있다.
제10:90경: 번뇌에서 벗어난 아라한이 과위를(깨달음을) 얻었다고 주장할 수 있게 해주는(도과를 얻었음을 입증해주는, 증명해주는) 열 가지 능력에 관한 경이다.
상응부 (Samyutta Nikaaya)
12. 『인연 상응(Nidaana Samyutta)』
제24경: 사리뿟따는 고(苦, dukkha)가 자신에 의해 생기는가 남에 의해 생기는가 하는 양자택일의 답을 거부하고, 감각 접촉을 통한 고의 연기적 발생(감각 접촉을 통하여 괴로움이 조건지어져 발생한다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제25경: 고(dukkha)에 대해 말한 것처럼 낙(樂, sukha)에 대해서도 위와 똑같이 말하고 있다.
제31경: 존재는 네 가지 자양분에서 비롯하여 연기적으로 발생한다는 점을 설하는 경이다.
제32경: 「깔라라 숫따」. 부처님의 질문에 대한 사리뿟따의 답변이다. 그는 생의 원인이 소멸되었고 그 결과인 재생도 소멸되었음을 알고서 아라한과를 증득했음을 공언할 수 있는 지견이 열렸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아라한과의 증득을 공언하는 정형구인 "생은 소멸되었고…(khinajaati)"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부처님께서 태어남[生], 형성 과정[有], 그리고 느낌[受]에 이르기까지의 연기의 다른 고리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서도 더 질문을 하시자 이에 답변하고 있다. 사리뿟따는 이 느낌에 대한 관조[受隨觀]을 통하여 아라한과를 증득하는 출발점에 들어설 수 있었다고 한다. 세 가지 느낌[苦, 樂, 不苦不樂의 三受]에서 무상과 고를 알아차리기 때문에 그에게는 쾌락적 만족(nandi)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22. 『온 상응(Khandha Samyutta)』
제1경: "비록 몸이 아플지라도 그 때문에 마음까지 아파서는 안된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사리뿟따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제2경: 먼 지역으로 떠나는 비구들이 외도들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를 사리뿟따가 가르쳐 준다. 그는 오취온의 욕망을 떨쳐내는 것이 불법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122-123: 오취온에 대해 반조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설하고 있다. 계행이 바르고 배움이 많은 비구가 오온의 무상·고·무아를 관조한다면 예류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에든 비구가 이와 같이 관조해 나아가면 그는 다음 단계의 더 높은 경지에 들 수 있을 것이다. 아라한도 역시 오온을 이렇게 관조해야 하며, 그로써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누릴 수 있고,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알아차림을 지닐 수 있다.
제126경: 무지와 지혜해 대해 말하고 있다.
28. 『사리뿟따 상응』
제1-9경: 사리뿟따는 이 아홉 경에서 자신은 초선에서부터 상수멸(想受滅)에 이르기까지의 아홉 단계의 선정을 모두 닦았으며, 그 과정에서 '나라'는 생각은 아예 없었노라고 말한다.
제10경: 언젠가 사리뿟따는 라자가하에서 탁발을 다녀온 후 담 밑에서 공양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해맑은 얼굴'이라는 뜻을 가진 수찌무키라는 이름의 여수행자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기를, 외도 수행자들이 그러듯이 당신도 식사를 할 때 어느 한 방향을 정해 앉느냐고 물었다. 사리뿟따는 그녀가 그릇된 생활 방식[邪命]을 염두에 두고 질문을 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그는 그런 것은 아예 따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올바른 방식으로 탁발을 다니며 이렇게 얻은 음식을 올바르게 먹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깊은 감명을 받은 수찌무키는 그때부터 마을마다 거리마다 큰 소리로 이렇게 외치고 다녔다. "불법 수행자들은 올바르게 음식을 취합니다! 그들은 나무랄 데 없이 음식을 취합니다! 불법 수행자들에게 음식공양을 올리십시오!"
35. 『육처 상응 (Sa.laayatana Samyutta)』
제232경: 우리를 존재에 묶어두는 족쇄는 감각도 감각 대상도 아니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욕망이다.
38. 『잠부카다까 상응 (Jambukhaadaka Samyutta)』
사리뿟따는 외도 은둔수행자였던 그의 조카 잠부카다까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제1-2경: 그는 열반이나 아라한과 모두 탐진치가 제거된 상태라고 정의한다.
제3-16경: 사리뿟따는 진리를 밝힌 사람들에 관한 질문, 고귀한 삶의 목적에 관한 질문, 참된 위안을 찾아낸 사람들에 관한 질문 등에 대답하고 있다. 그는 느낌, 무지, 번뇌, 개아(個我) 등을 설명하고 불법을 이해하고 수행하는데 있어서 어려운 점에 대해 말한다.
48. 『근[根](인드리야) 상응 (Indriya Samyutta)』
제44경18): 다섯 가지 정신적 기능[五根; 信 進 念 定 慧]이 열반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사리뿟따는 부처님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체험에 의해서 알게 되었노라고 부처님께 대답하고 있다.
제48-50경19): 다섯 가지 정신적 기능에 대하여 설하고 있다.20)
55. 『예류 상응 (Sotaapatti Samyutta)』
제4경 등: 예류도의 조건(sotaapattiyanga)이 되는 네 가지 요소21)에 관하여 설하고 있다.
덧붙이는 말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의 사리에 관한 기록
보팔의 산치 언덕에는 10기(基)의 사리탑이 있는데 그것은 아직까지 인도에 남아있는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탑들은 그 축조 형태나 조각 양식으로 보아 불교 예술 전성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인정되며 탑의 이곳 저곳에 쓰여진 글자로 미루어 그 시기는 아쇼카 왕 시대인 기원전 삼 세기 중반쯤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 중에는 보존상태가 좋은 것도 있지만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흙무더기나 돌무더기로 되어버린 것도 있다.
1851년에 알렉산더 커닝햄 경이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의 성스러운 유골을 발굴한 것은 바로 이들 탑 중의 하나인 그 유명한 제 삼 사리탑에서였다. 비슷한 시기에 산치에서 10km쯤 떨어진 사타다라에 있는 사리탑에서도 이 두 훌륭한 아라한의 사리가 더 발굴되었다.
커닝햄은 산치 언덕의 사리탑 한가운데에 버팀목을 박다가 길이 150cm가 넘는 넓은 석판이 남북으로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석판 밑에는 회색 사암으로 된 두 개의 상자가 있었는데 그 뚜껑에 각각 브라흐미 문자로 된 짧은 명문이 있었다. 남쪽의 상자 뚜껑에는 '사리뿟따의 사리(Saariputtasa)'라는 뜻의 글이 있었고 북쪽의 것에는 '마하목갈라나의 사리(Mahaa-Mogallaanasa)'라고 되어 있었다.
남쪽의 상자 안에는 넓이가 15cm에 높이가 7cm가 좀 넘는 동석(凍石)으로 된 넓고 납작한 함이 들어있었다. 겉면은 단단하고 반들반들 닦여 있었고 선반작업으로 세공한 그 함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었다. 함의 둘레에는 다비식에 쓰였던 것 같은 백단향 나무조각이 놓여있었고 함 속에는 유골 하나와 여러 가지 보석들이 함께 있었다. 이 사리뿟따 존자의 유골은 길이가 3cm가 채 안되었다.
북쪽 상자 안에도 동석으로 된 함이 있었는데 사리뿟따의 것보다 약간 작았고 겉면도 덜 단단했다. 그 안에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사리가 두 개 있었는데 그 중 큰 것은 길이가 1.5cm가 채 못되었다.
동석으로 된 두 개의 이들 함 뚜껑 안쪽에는 먹물로 글자가 하나씩 써 있는데 남쪽 것에는 사리뿟따를 가리키는 'Sa'가, 북쪽 것에는 마하목갈라나를 가리키는 'Ma'가 써있었다. 커닝햄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리뿟따와 마하목갈라나는 부처님의 상수제자로서 흔히 그분의 오른쪽 제자, 왼쪽 제자라고 불리었다. 그들이 죽은 후 그 유골도 생전에 그들이 차지했던 위치대로 부처님의 오른쪽과 왼쪽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22) 관례상 부처님께서 동쪽을 향하여 앉으셨다는 사실을 미루어보면 이 말은 옳다.
커닝햄은 사타다라에서 '불교 기념물(Buddha Bhita)'이라 불리던 탑들에 주목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하나에서 엷은색 반점 무늬의 동석함 두 개를 발굴했다. 산치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두 함에는 각각 '사리뿟따의 것', '마하목갈라나의 것'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이 사리탑은 도굴되었던 흔적이 있으나 유골은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아주 유능한 고고학자였던 커닝햄은 그가 발굴했던 모든 사리탑에 관하여 세밀한 기록을 남겨놓았다. 커닝햄에게 특히 감사할 일은 이 사리의 주인을 확실하게 밝혀주었다는 점이다.
이 두 군데 사리탑에서 나온 사리들은 영국으로 옮겨져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에 안치되었다. 그러나 커닝햄이 서술해 놓은 함의 생김새와 현재 사리들이 모셔져있는 함의 생김새가 다소 일치하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커닝햄 자신이나 다른 누군가가 산치의 사리를 사타다라에서 발굴된 함 속에 옮겨 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산치에서 발굴된 동석함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 성스러운 사리들은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에 보존되어 왔는데 1939년 마하보디협회(Maha-Bodhi Society)가 그것을 인도에 돌려달라고 영국정부에 요청했다. 이 청원이 즉각 받아들여졌으나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사리의 안전수송이 어려워 연기되어 오다가 1947년 2월 24일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에서 사리들은 마하 보디협회 대표들의 손에 전해져 본디 묻혀있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사리들은 인도로 돌아가기 전에 먼저 스리랑카로 보내졌다. 스리랑카 국민들은 기쁨에 넘쳐 지극한 공경심으로 사리를 친견하였다. 1947년에 콜롬보 박물관에서 두 달 반 동안 대중에게 공개되었는데 2백만 명 이상이 참가하는 기록을 세웠다. 불자들은 물론 힌두교도, 기독교도, 회교도들도 이 사리 친견의 행렬에 참석했다.23)
이 사리를 산치에 재봉안하기 위해 조성되는 예배처에 안치하기 전에 사리가 두번째 옮겨진 곳은 캘커타였다. 인도 마하보디협회 본부가 있는 캘커타 다르마라지까 사원에서 대중들의 친견행사가 있었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같은 신심 어린 경배의 장면이 벌어졌다. 두 주일 동안 매일 아침부터 저녁 늦도록 길게 늘어선 친견 행렬이 끊일 줄을 몰랐다. 친견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은 힌두교도였지만 그 중에는 회교도들도 꽤 많았다. 공경심 어린 그들의 지극한 경배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인도가 낳은 이 위대한 두 아들의 사리에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아주 먼 지방에서도 찾아왔던 것이다.
그 다음 미얀마 정부로부터 사리친견 행사를 열고 싶다는 청원이 들어왔고 그 요청은 즉시 받아들여졌다. 사리친견 행사는 미얀마 고대의 종교적 열정과 온갖 화려함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국민에게 사리친견의 기회를 고루 베풀기 위해서 이 행사는 만달레이로부터 양곤에 이르기까지 이라와디 강을 따라 내려오는 강변축제의 형식으로 행해졌다. 사리를 봉송하는 배는 미얀마 전통 방식으로 장식된 여러 척의 작은 배들의 호위를 받았다. 사리가 강가의 마을에 도착할 때마다 사람들은 행렬을 지어 그 마을의 가장 중요한 탑으로 사리를 옮겨 모시고 친견행사를 가졌다. 이와 동시에 법회도 열어 이웃 마을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설법과 독경을 들으러 모여들었고 이 의식은 대개 밤을 지새우며 계속되곤 했다.
이어서 사리는 네팔과 라다크 정부의 요청으로 친견행사를 위해 또다시 옮겨졌다.
사리가 다시 인도로 돌아온 후, 미얀마 정부는 이 성스러운 사리의 일부를 모셔가야겠다고 청원했다. 인도 마하보디협회는 이에 동의했고 미얀마의 총리가 직접 사리를 받으러 캘커타로 갔다. 1950년 10월 20일 사리의 일부가 성대한 의식과 함께 총리에게 전해졌다. 미얀마로 가져온 사리는 후에 양곤 근처 제6차 불전 결집의 사적지에 세워진 세계 평화탑 속에 봉안되었다. 사리를 봉안하고 탑의 상륜부를 얹는 다양한 의식절차가 1952년 3월 5일부터 11일까지 정성스럽게 진행되었다.
다른 일부의 사리는 스리랑카에 전해졌는데 그곳 마하보디협회는 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새로운 탑을 건립하였다. 필자가 이 책을 쓰고 있을 때, 사리는 그 탑이 완성될 때까지 콜롬보의 마하 보디협회 사원에 모셔져 있었다.
남은 사리는 1952년 11월 30일에 산치에 새로 축조한 쩨띠야기리 예배처에 여법한 절차를 거쳐 봉안되었다. 신심 깊은 순례자들이 세계 곳곳으로부터 찾아와 경배하는 이 사리는 바로 거기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장 훌륭하게 열매를 맺었던 이 두 분의 삶이 어떠했는가를 영원히 일깨워주고 있다.
[주 해]
1) 쭌다경(Cunda Sutta; 念處相應 Satipa.t.thaana Samyutta)과 그 주석서에 의하면 그가 태어난 곳은 날라까 아니면 날라가마 중에 한곳일 것이다. 아마도 이 곳은 그 유명한 날란다와 꽤 가까웠던 것 같다. 브라만이었던 사리뿟따의 아버지의 이름은 와간따(Vaganta)였다(『법구경』 주석서 75행). ∥원문으로∥
2) Ye dhammaa hetuppabhavaa
tesam hetum tathaagato aaha,
tesa~n ca yo nirodho
evamvaadi mahaasama.no.
이 게송은 후에 불교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넓게 유포된 게송이 되었으며 사리뿟따와 불법의 첫 만남과 동시에 그의 위대한 스승인 아라한 앗사지를 기억하게 하는 귀중한 게송이 되었다. 인연법에 딱 들어맞는 게송이 없던 시기에 설해진 이 게송은 오늘의 철학적 사고로 음미해 보아도 초기 불교도들의 마음에 가히 혁명적인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남전대장경 『율장』 大品 : "제법은 인연에서 생겨나고/ 여래는 그 인연을 말씀하신다/ 제법의 소멸 역시/ 대사문은 이 같이 말씀하신다." ; "사물은 그 원인이 있어서 생겨난다. 그 원인과 그 멸각을, 석존은 말씀하신다").
3)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4) 「디가나카경(『중부』 74)」.
5) 사무애해(四無碍解, pa.tisambhidaa-~naa.na) : 자유자재하며 거리낌없는 이해능력 및 언어적 표현능력으로 다음의 네 가지가 있다. 1.법무애해는 온갖 교법에 통달한 것. 2.의무애해는 온갖 교법의 요의를 아는 것. 3.사무애해는 여러 가지 말을 알아 통달하지 못함이 없는 것. 4.변무애해는 온갖 교법을 알아 근기에 따른 설법에 자유자재한 것.∥원문으로∥
6) 라꾼띠까는 '난쟁이'란 말인데, 이 분이 키가 아주 작아서 붙여진 별명임.
7)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사리뿟따의 게송을 다루고 있는 『장로게』 주석서에도 나온다.
8) 『숫따니빠따』 316
9) 자만(maana)과 들뜸(uddhacca)은 아라한의 경지에 가서나 소멸이 되는 다섯 가지 족쇄(samyojana) 중의 두 가지이다. 근심(kukkucca)은 불환의 경지(anaagaamii)에서 이미 사라지는 것이다.∥원문으로∥
10) 이 경의 주석서를 보면 물론 부처님들께서는 그러한 일을 스스로 다 알고 계시면서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깨우쳐주기 위해 짐짓 그런 질문을 하신다.
11) 나냐몰리 스님의 번역판은 「분별의 길」 (PTS,1982)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부분은 그 스님의 선집인 「호흡관」(BPS,1964)에 실려있다.
12) 『앗타살리니』 PTS본 16-17쪽, 『The Expositor』, 1:20-21 참조.
13) 불교경전에서 덕을 바탕으로 가장 이상적인 세속통치를 하는 왕.
14) 사천왕은 욕계(sensual realm)의 가장 낮은 하늘을 주재하는 천신들이다. 네 구역을 각 천신이 하나씩 맡아 통솔하고 있다.∥원문으로∥
15) 욱까쩰라경의 주석서에 의함.
16) 『밀린다왕문경』 204, 호너 역, 「밀린다왕의 질문」 1:295.
17)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경의 번호는 모두 미얀마에서 1957년에 거행된 6차 결집본을 근간으로 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PTS 본과 경의 수가 다른 경우가 있다. 이는 PTS 본에서는 중간에 같은 경이 반복되어서 나오는 것을 생략하여 번호를 매겼기 때문이다. 두 본의 경 번호가 차이날 때에는 주에서 밝히겠음.
18) PTS 본에서는 44.5.4번 경임. p.S.v.221 참조.
19) PTS 본 44.5.10 p. S.v.226
20) 이 부분은 「지혜의 길」(BPS 법륜 65, 66)에 영역되어 있음.
21) 첫째, 부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 둘째, 불법에 대한 확고한 믿음. 셋째, 승가에 대한 확고한 믿음. 넷째, 고귀한 자들이 좋아하는 계율을 구족함.
22) 「Bhilsa Topes」, p.300 참조.
23) 「산치의 볼거리」, p.2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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