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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2. 잡아함경

64. 우다나경(優陀那經) 65. 수경(受經 : 觀察經)

잡아함경 64. 우다나경(優陀那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동쪽 동산 녹자모강당(鹿子母講堂)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해질 무렵에 선정에서 깨어나 강당을 나와 강당 그늘에 있는 대중 앞에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그 때 세존께서 우다나(優陀那)1) 게송으로 찬탄하셨다.

법(法)에는 나[我]가 없고

또한 내 것[我所]도 없네.

나가 이미 없는데

내 것이 또 어디서 생겨나랴?

만일 비구가 여기서 벗어나면

그는 곧 하분결(下分結)2)을 끊으리라.

 

이 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법에는 나가 없고 내 것 또한 없다. 나가 이미 없는데 내 것이 어디서 생겨나랴? 만일 비구가 여기서 벗어나면 그는 곧 하분결을 끊으리라'는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색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 수·상·행·식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헤아린다. 그러나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색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지 않고, '수·상·행·식은 나다. 나와 다르다. 나와 나 아닌 것이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보지도 않는다. 또한 아는 자도 아니요, 보는 자도 아니다.

이 색은 무상한 것이요, 수·상·행·식도 무상한 것이다. 색은 괴로운 것이요, 수·상·행·식도 괴로운 것이다. 색에는 나가 없고, 수·상·행·식에도 나는 없다. 이 색은 꼭 있어야 할 것이 아니요, 수·상·행·식도 꼭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다. 색은 무너지는 것이요, 수·상·행·식도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나가 아니요, 내 것도 아니며, 나와 내 것은 꼭 있어야 할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탈하면 곧 5하분결(下分結)을 끊을 것이다.

 

그 때 그 비구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5하분결을 끊은 뒤에는, 어떻게 번뇌가 다하고 번뇌가 없어져 마음이 해탈하고 지혜로 해탈하며, 현세에서 스스로 알고 원만히 증득하여 머무르며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알게 됩니까?

부처님께서는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범부와 무식한 중생들은 두려움이 없는 곳에서 두려워하는 마음을 내어 두려워한다. 어리석은 범부와 무식한 중생들은 '나도 없고 내 것도 없으며, 그 두 가지는 꼭 생겨야 할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 두려움을 낸다.

네 가지를 반연(攀緣)해 식(識)이 머무나니,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식은 색에 머물러 색을 반연하고 색을 사랑하고 즐거워하고는 늘어나고, 나아가고, 넓어지고, 커지고, 자란다. 식은 수·상·행에 머물러 반연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고는 늘어나고, 나아가고, 넓어지고, 커지고, 자란다.

비구야, 식은 여기에서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머무르기도 하며,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늘어나고 나아가고 넓어지고 커지고 자란다. 비구야, 만일 '그 외에 다른 법이 있어서, 식이 거기에서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머무르기도 하며, 생겨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며, 늘어나고 나아가고 넓어지고 커지고 자란다'고 말한다면, 그런 일은 말로만 있을 뿐이니, 그것에 대해 묻고 나면 알지 못하여 어리석음만 더욱 커질 것이다. 왜냐 하면 그것은 경계(境界)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까닭인가?

 

비구야, 색의 경계에 대한 탐욕을 떠나고 나면 색에 대해 뜻이 일으킨 얽맴[縛]도 끊어진다. 색에 대해 뜻이 일으킨 얽매임이 끊어지고 나면 식의 반연(攀緣)도 또한 끊어져, 식(識)은 다시는 머무르지 않게 되고, 늘어나거나 나아가거나 넓어지거나 커지거나 자라는 일이 없게 된다.

수·상·행의 경계에 대한 탐욕을 떠나고 나면 수·상·행에 대해 뜻이 일으킨 얽매임도 끊어진다. 수·상·행에 대해 뜻이 일으킨 얽매임이 끊어지고 나면 반연도 또한 끊어져, 식은 머무를 곳이 없어 다시는 늘어나거나 나아가거나 넓어지거나 커지거나 자라는 일이 없게 된다.

식이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에 자라지 못하고, 늘어나고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활동하는 바가 없으며, 활동하는 바가 없기 때문에 곧 머무르고, 머무르기 때문에 족한 줄을 알며, 족한 줄을 알기 때문에 해탈하고, 해탈하기 때문에 모든 세간에서 전혀 취할 것이 없게 되며, 취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게 되고, 집착할 것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열반을 깨닫는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은 이미 마쳐 후세의 몸을 받지 않는다'라고 스스로 아느니라.

 

비구야, 그러면 나는 '식이 동방·남방·서방·북방·4유·상·하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탐욕을 없애고 법을 보았고, 열반을 얻어 번뇌가 완전히 다하였으며, 고요하고 맑고 시원하다'고 말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생멸(生滅)과 불락(不樂)과

또 분별(分別)에 세 가지와

탐착을 평등하게 관찰한 것과

우다나(優陀那)에 대하여 설하셨다.

 

 

잡아함경 65. 수경(受經 : 觀察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고 익혀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해야 하느니라. 왜냐 하면 비구가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고 익혀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면 사실 그대로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실 그대로 관찰하는가? '이것은 색(色)이다. 이것은 색의 발생이다. 이것은 색의 소멸이다. 수·상·행도 마찬가지이며, 이것은 식이다. 이것은 식의 발생이다. 이것은 식의 소멸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색의 발생[色集]이며, 수(受)·상(想)·행(行)·식(識)의 발생[集]인가? 어리석고 무식한 범부들은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 '이것은 수의 발생[受集]이다. 이것은 수의 소멸[受滅]이다. 이것은 수에 맛들임[受味]이다. 이것은 수의 재앙[受患]이다. 이것은 수에서 벗어남[受離]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하지 못한다. 사실 그대로 관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수를 즐거워하고 집착하여 취함[取]이 생기고, 취함을 인연하여 존재[有]가 있게 되며, 존재를 인연하여 태어남이 있게 되고, 태어남을 인연하여 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있게 되며, 이와 같이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集]으로부터 생긴다. 이것을 색의 발생이라 하고, 이것을 수·상·행·식의 발생이라 하느니라.

 

어떤 것이 색의 소멸[色滅]이며, 수(受)·상(想)·행(行)·식(識)의 소멸[滅]인가?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들을 받으면 '이것은 수의 발생이다. 이것은 수의 소멸이다. 이것은 수에 맛들임이다. 이것은 수의 재앙이다. 이것은 수에서 벗어남이다'라고 사실 그대로 관찰한다. 사실 그대로 관찰하기 때문에 수에 대한 즐거움과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취함이 소멸하며, 취함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며,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이 소멸하고, 이와 같이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다 소멸하게 된다. 이것을 색의 소멸이라 하고, 수·상·행·식의 소멸이라 하느니라.

그러므로 비구는 항상 방편을 써서 선정을 닦고 익혀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해야 한다. 비구가 선정에 머물러 안으로 그 마음을 고요히 하고 방편을 부지런히 닦는다면 사실 그대로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관찰경(觀察經)에서 설하신 내용과 마찬가지로, 분별(分別)·종종분별(種種分別)·지(知)·광지(廣知)·종종지(種種知)·친근(親近)·친근수습(親近修習)·입(入)·촉(觸)·증(證)의 23)경도 또한 이와 같이 자세히 설명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