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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5. 중각보왕삼매염불직지

제육(第六) 벽단공사설(闢斷空邪說)

제육(第六) 벽단공사설(闢斷空邪說)

단견(斷見) 공견(空見)의 삿된 견해(見解)를 물리쳐 배척(排斥)함


석가여래박가범(釋迦如來薄伽梵)의 일대성교(一代聖敎)는 저 선악(善惡)의 과보(果報)및 인연(因緣)의 모든 법(法)이 오로지 하나같이 근본(根本)이 되어 시종(始終)이 바뀌지 아니하는 올바른 가르침이 정교(正敎)가 됨이라

비록 백비(百非)를 초탈(超脫)하라는 글귀가 있음이나 어찌 반듯이 인연(因緣)의 법(法)을 별리(別離)하였겠는가 어찌하여 금시(今時)에 일등(一等)으로 사람의 선근(善根)을 절단(切斷)하는 극악(極惡)한 천제(闡提)인 오역(五逆)의 무리가 있어 불조(佛祖)가 사람들을 위하여 집착(執着)을 파(破)하고 의심(疑心)을 제거(除去)하여 끈끈하게 달라붙음을 풀고 결박(結縛)을 제거(除去)한 말씀을 인식(認識)하지못하고 타인(他人)의 정강이를 따라  뒤에 발꿈치를 굴러옮기여 망령(妄靈)되게 이마음을 제외(除外)한 바깥의 모든 행(行)은 모두 공(空)하다 말함이라


부처님도 없고 법(法)도 없으며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닌 것이라 말하고 그릇되게 착오(錯誤)하여 인식(認識)하고 망령(妄靈)되게  이진(眞)을 인식(認識)하여 이마음 바깥에서는 법(法)을 가(可)이 얻을 수 없다 말함이라

드디어 곧 인과(因果)를 발무(撥無)하고  죄복(罪福)을 배척(排斥)함이라 일체(一切)의 보살(菩薩)과 모든 부처님의 형상(形像)은 다만 이 낱개의 금(金)▪ 은(銀)▪ 동(銅) ▪철(鐵) ▪토괴(土塊)<흙덩이> ▪목두(木頭)<나무덩이>일뿐이며 일대장교(一大藏敎) 또한 다만 이 한 낱개의 나무 껍대기로써 문지르면 깨끗하지 못한 낡은 종이조각일 뿐 이라 본래(本來) 진실(眞實)이 아님이라 어찌 족(足)히 기대어 의지(依支)함이겠는가


말하여 저 일체(一切)의 선행(善行)공덕(功德)을 하나하나 쓸어버리지<소제(掃除)> 아니함이 없게 하며 모양에 집착(執着)한 것이다 라고 일축(一蹴)하기도 한다 일로(一路)에<한결같이> 타인(他人)의 단점(短點)을 말하고 자기(自己)의 장점(長點)만을 나타내며 혹(或) 간직하고 참구(參究)하는 화두(話頭)에 있어서도 그리하여 또 가이 고집(固執)하여 성품(性品)을 찾아서는 안된다 말하면서 사람으로 하여금 내외(內外)가 공(空)하여 쓸쓸하고 텅빈 계곡(溪谷)처럼 여기게 하고 나서는 곧 온갖 악(惡)함과 음(淫)노(怒)치(痴) 등(等)을 가만히 행(行)하면서 뒤집어서 반대(反對)로 말하기를 도(道)는 걸림이 없다 말하면서 자신(自身)을 속이고 남을 기만(欺瞞)함이라


안으로 마음이 썩어 문들어진 것이 차마 들을 수 없는 지경(地境)이라 비유(譬喩)하자면 사자(獅子)몸속의 벌래가 사자(獅子)몸의 고기를 스스로 먹는 것과 같음이라

이러한 등(等)의 견해(見解)는 이에 그 종류(種類)가 매우 다양(多樣)하여 천마파순(天魔波旬)이 지난날의 원한(怨恨)이 소멸(消滅)되지 아니함에 보복(報復)하고자 파견(派遣)하여온 자(者)들이 우리와 형체(形體)및 의복(衣服)을 동일(同一)하게 갖추어 착(着)하고 우리의 도법(道法)을 파괴(破壞)하여 남김이 없게 하고자함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슬프고 애통(哀痛)함이라>



만일 저들의 견해(見解)처럼 형상(形像)은 부처가 아니다 말한다면 어느 것이 부처님 인줄 알지 못하겠으며 종이와 먹이 경(經)이 아니라면 어느 것이 경(經)인줄 알지 못하겠다

만일(萬一)자기(自己)의 마음이 부처라 한다면 어느 물건(物件)인들 마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유독(唯獨) 너의 마음이 부처이다 하면서 사람들이 불상(佛像)과 경전(經典)을 부정(否定)하게 하는 것인가 또 마음이 이미 부처라면 어떠한 사람인들 마음이 없겠는가 그런데도 유독(唯獨) 너의 마음만이 부처다 말하면서 사람들이 불상(佛像)과 경전(經典)을 비난(非難)하게 하는 것인가


잘은 모르겠지만 중생(衆生)의 마음이 전체(全體)가 미혹(迷惑)에 처(處)해 있음으로 성인(聖人)의 형상(形像)과  경법(經法)을 빌리고 표현(表現)하여 사람들이 깨닫고 이해(理解)하여 성취(成就)하는바가 있게 하였으리라

이에 깨달아 이해(理解)한 것이 있다면 중생(衆生)과 부처의 진심(眞心)은 평등(平等)하여 일체(一切)의 처소(處所)에 두루함을 인식(認識)할 것이다

경(經)에서 말하기를 모든 부처님께서 공법(空法)을 말씀하신 것은 유(有)를 제도(制度)하고자 하는 까닭인데 만일 다시 공(空)에 집착(執着)한다면 어떤 부처님도 이것을 교화(敎化)하지 못하게 됨이라 하였고 또 말하기를 차라리 유(有)를 수미산(須彌山)처럼 말할지언정 무(無)는 개자(芥子)씨만큼이라도 거론(擧論)해서는 안된다 하였다


비록 공법(空法)을 증득(證得)하였다 해도 오히려 소승(小乘)에 막히는데 어떻게 대보살(大菩薩)들이 공(空)을 따라 유(有)로 들어가서 속(俗)의 가(假)를 증득(證得)하여 중생계(衆生界)에서 부처님처럼 중생(衆生)들을 제도(濟度)하시는 것과 같이 함이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소승(小乘)의 공견(空見)은 이에 대승보살(大乘菩薩)이 여이어 버리는 바라 부처님께서 공법(空法)은 이에 요의(了義)가 아님을 설(說)하심이라 또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공법(空法)은 이에 유(有)에 나아가 공(空)을 나타낸 것이다


공(空)이 유(有)를 여이지 않아야 진공(眞空)이라는 이름을 성취(成就)하는데

금시(今時)의 사람이 말하는 공(空)은 유(有)를 떠나야 바야흐로 공(空)를 되는 것이므로 공(空)이 단견(斷見)을 이루고 마는 것이라 이것은 매우 심히 두려운 견해(見解)로써 마치 함정(陷穽)에 빠져 영원(永遠)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음이라 영가대사(永嘉大師)가말하되 유(有)를 버리고 공(空)에 집착(執着)하는 병통(病痛) 또한 그러하여 이에 다시 수마(水魔)에 몸이 빠지는 환란(患亂)을 피(避)하여 화마(火魔)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과 같음이라하였는데 이것을 말한 것이다


선성비구 (善星比丘)는 법공(法空)을 허망(虛妄)하게 말하였고 보련향비구니(寶蓮香比丘尼)는 음욕(淫慾)을 사사(私事)로이 행(行)하여 산채로 지옥(地獄)에 떨어졌다 이 어찌 후(後)에 도(道)를 딱는 수행자(修行者)가 귀감(龜鑑)으로 삼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후(以後)의 사람이 이것으로 경계(警戒)하여 경책(警策)을 삼지 않고 다시 이에 이미 전복(顚覆)된 전철(前轍)을 밟으며 맹인(盲人)이 소경을 이끌어 인도(引導)하는것처럼 스승과 제자(弟子)가 스스로 전도(顚倒)됨에 빠져 잠겨 들어감을<몰닉(沒溺)함> 달갑게 여김이니 매우 안타깝고 불쌍한 일이라

또 효자(孝子)와 같은 경우(境遇)도 부모(父母)의 허물과 악(惡)을 들음에도 이에 저 생육(生育)의 은혜(恩惠)를 품(稟)받았기 때문에 오히려 용서(容恕)하여 견디어 내지 못함이어늘 더구나 우리는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의 아들로써 부처님의 형상(形狀)과 법언(法言)에 머물려 있음에 출세(出世)의 은혜(恩惠)를 저버리고 이에 방자(放恣)한뜻으로 경솔(輕率)하게 훼방(毁謗)하면서 안연(安然)함에 처(處)하여 성찰(省察)하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애통(哀痛)하고 상심(傷心)함이 되지 않겠는가

 

이 사람은 반듯이 오무간지옥(五無間地獄)의 큰 맹렬(猛烈)한 뜨거운 불꽃 속으로 향(向)하여 각각(各各) 금일(今日)에 잘못 이해(理解)한 과보(果報)를 스스로 받음이라 한 것이 어찌 허망(虛妄)한 말이겠는가

비록 덕산(德山)스님이나 단하(丹霞)스님이라 할지라도 또한 문수보살(文殊菩薩)등(等)과 같이 한때 사람을 위하여 집착(執着)을 타파(打破)하고 이치(理致)를 나타냈을 뿐이다

어떻게 이를 본받아서 후세(後世)를 이끌어 지도(指導)하겠는가 요즘의 후세(後世)사람들은 선인(先人)의 방편(方便)을 깨닫지 못하고 다시 저들이 뱉아 버린 침을 주워서 마시면서 한결같이 잘못 말하기를 불전(佛殿)을 꺽어버리고 목불(木佛)을 태워 버리는 것이 이것이 도(道)를 체구(體究)하는 행(行)이다 라고 주장(主張)하니 매우 깊이 전도(顚倒)되었다 말할만하다


만일 저들이 남긴 말대로 목불(木佛)을 태우고 불전(佛殿)을 꺽어 버려야만 올바른 도(道)라고 말한다면 요즘 천하(天下)의 석자(釋子)들은 문수사리보살(文殊舍利菩薩)처럼 칼을 차고 다니면서 부처가 있으면 부처님을 살해(殺害)하고 부처님이 없으면 불상(佛像)이라도 찍어버려야만 곧 도(道)가 될 것이며 다시는 모름지기 부처님께서 전(傳)하신 계정혜(戒定慧)등(等)의 학(學)으로써 정도(正道)를 성취(成就)하지 않아야함이겠는가


또 불법(佛法)문중(門中)에서 오래동안 안주(安住)하여 부처님의 법(法)을 선양(宣揚)할 수 있는 것은 경상(經像)과 형복(形服)<원정방포(圓頂方袍)>의 위의(威儀)에 완전(完全)히 의뢰(依賴)하여 승법(乘法)을 선행(善行)할뿐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이것을 버리고 무엇을 의거(依據)하여 오래동안 안주(安住)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까닭으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경전(經典)과 불상(佛像)을 지극(至極)히 공경(恭敬)하지 아니함도 오히려 큰 죄(罪)를 얻으리라 하시였거늘 하물며 경솔(輕率)하게 훼방(毁謗)함이겠는가 거역(拒逆)된 죄과(罪過)를 가이 알 것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에서 말하기를 제바달다 비구(比丘)는 옛날 선인(仙人)인 아사타가 되었을 때 그는 석가(釋迦)의 스승이 되었다

석가(釋迦)는 스스로 그 몸으로써 상좌(上座)가 되어 공양(供養)을 받들어 올렸다 내가 육도(六度)와 금색(金色)상호(相好)와 무외섭법(無畏攝法)과 내지(乃至)는 불공(不共) 의 신통도력(神通道力)을 구족(具足)하게하여 성불(成佛)도생(度生) 하는 등(等) 까지가 모두 제바달다 의 선지식(善知識)을 인유(因由)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석가(釋迦)부처님께서  과(果)를 이미 증득(證得)하고나자 그 도(道)를 서로 성취(成就)하고자 법공(法空)을 설(說)하지 아니하고 다만 이에 그 법(法)만을 역(逆)으로 찬탄(讚嘆)하여 부처님의 작은 발가락을 약간 훼손(毁損)하였을 뿐인데도 오히려 지옥(地獄)에서 장겁(長劫)의 고통(苦痛)을 면(免)하지못하였는데 하물며 후오백세(後五百歲)에 선근(善根)을 끊고 법공(法空)을 허망(虛妄)하게 말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고과(苦果)를 면(免)할 수 있겠는가 또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공(法空)은 대체(大體)로 사람들이 공(空)을

체득(體得)하여 악(惡)함을 단절(斷切)하게 한 것이다


어찌하여 부처님의 의도(意圖)를 깨닫지 못하고 반대(反對)로 공(空)에 막히고 침체(沈滯)하여 착함에서 퇴전(退轉)하는가 어찌 전도(顚倒)된 것이 아니겠는가 또 불선(不善)에서 오히려 걸림이 없다 말하면서 선법(善法)은 무엇이 장애(障礙)가 되어닦아 수행(修行)하지 않으려 하는지 알 수 없음이라 옛사람이 인과(因果)에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써 학자(學者)의 질문(質問)에 답변(答辯)하였다

그런데도 오백세(五百歲)동안이나 야호(野狐)<백여우>의 몸에 떨어져 백장노인(百丈老人)이 아니었다면 벗어나지 못하였을 것이다 하물며 이제 법공(法空)을 허망(虛妄)하게 설(說)하며 인과(因果)를 발무(撥無)함이겠는가


후세(後世)를 두려워하지 않고 방자(放恣)한 뜻으로 허망(虛妄)하게 담론(談論)하며 경전(經典)과 불상(佛像)을 훼방(毁謗)하는데 그칠 뿐 아니라 또 장차(將次)소식(素食)<채식(菜食)>의 사람을 소나 양(羊)에 비유(譬喩)하며 설법(說法)하는 사람을 공허(空虛)하고 잘못된 견해(見解)라고 질타(叱咤)하니 죄(罪)가 마땅히 지극(至極)하지 않겠는가

<죄(罪)가 어디에까지 이르겠는가> 지혜(智慧)와 견해(見解)는 사람의 눈과 같으며 도행(道行)은 사람의 발과 같음을 알지 못함이라 눈만 있고 발이 없다면 비록 본다 해도 행(行)하지 못하며 발만 있고 눈이 없으면 비록 가도 보질 못한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반듯이 구덩이에 떨어지고 가지 못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소(寶所)에 도달(到達)하겠는가 비록 능(能)히 도달(到達)하지는 못한다 해도 또한 옳고 잘못 된 것을 인지(認知)하리라

이미 구덩이에 빠지면 신명(身命)을 잃음이라 경(經)에서 말한바 오도(五道)는 맹인(盲人)과 같고 반야(般若)는 길잡이와 같아서 맹인(盲人)같기 때문에 반듯이 흉악(凶惡)한데 떨어지고 길잡이와 같기 때문에 반듯이 보소(寶所)에 도달(到達)하는 것이다 한 것과 같다


어떻게 도리어 경교(經敎)의 담론(談論)을 헛된 이해(理解)라 꾸짖겠는가.

그렇다면 이해(理解)와 행(行)이 각각 요체(要諦)이긴 함이나 설사(設使) 행(行)만 있고 해(解)가 없는 것 보다는 혜해(慧解)가 우수(優秀)한 것만 같지 못하다 -비유(譬喩)하면 나한(羅漢)응공(應供)이 코끼리 몸에 갓끈을 거는 것과 같다 그 의미(意味)는 요해(要解)하리라-

또 해(解)만 있고 행(行)은 없어도 보리(菩提)는 말할 수 있으나 행(行)만 있고 해(解)가 없으면 원승(圓乘)에 회합(會合)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알라 문수보살(文殊菩薩)은 해(解)가 심오(深奧)하여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 되었고 보현보살(普賢菩薩)은 행(行)이 위대(偉大)하여 군생(群生)의 어버이가 되었거늘 어찌 한 모퉁에 만 치우쳐서 집착(執着)함이겠는가

 

선종(禪宗)의 남악(南嶽) 스님도 오히려 한 물건(物件)이라도 할 것이 없지만

수증(修證)은 없지 아니하니 더럽혀 오염(汚染)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하여도(道)를 깨우치고 불문(佛門)에 들어가는 중요(重要)한 지취(旨趣)를 담았는데 하물며 요즘 사람들의 삿된 견해(見解)가 이와 같이 깊어서야 어찌 지극(至極)히 괴로운 처소(處所)에 신속(迅速)히 빠지지 않겠는가 능엄경(楞嚴經)에서 말하기를 스스로 이미 만족(滿足)하다 여긴다면 홀연(忽然)히 끝없는 큰 아만(我慢)이 일어난다 마음속으로 오히려 시방(十方)의 여래(如來)도 가볍게 여기는데 하물며 하위(下位)인 성문(聲聞)과 연각(緣覺)이겠는가 하였고

또 말하기를 -홀연(忽然)히 영원(永遠)한 단멸(斷滅)에 귀향(歸向)하여 인과(因果)를 부정(否定)하여 없다하고 한결같이 공(空)으로 돌아간다-


공심(空心)이 현전(現前)함에 마침네는 마음으로 길이 단멸(斷滅)의 알음알음를 내어 탑묘(塔墓)에 예배(禮拜)하지 않고 경전(經典)과 불상(佛像)도 꺾고 헐어버린다

그리고는 단월(檀越)에게 말하기를 이는 금동(金銅)이며 혹(或)은 흙과 나무이다 경전(經典)은 나뭇잎이며 혹(或)은 중첩(重疊)한 꽃이다 육신(肉身)의 진상(眞常)은 공경(恭敬)하지 않으면서 흙과 나무를 도리어 존중(尊重)하니 실(實)로 전도(顚倒)된 것이다 한다 깊이 믿어 신(信)하던 사람도 그가 헐고 부수며 땅속에 묻어버림을 따라 중생(衆生)을 그릇 오도(誤導)하며 무간지옥(無間地獄)으로 들어가서 정수(正受)를 잃어버리고 한정(限定)없이 빠져 떨어져 버림이라고 하였으니-<윤추(淪墜)추타(墜墮)함>-곧 세존(世尊)께서 법공(法空)을 허망(虛妄)하게 말한 사람과 얻지 못한것을 얻었다 말하고 증득(證得)하지 못한 것을 증득(證得)했다 말한 사람들에게 미리 지옥(地獄)에 들어가리라고 수기(授記)했음을 알 수 있음이라


밝게 살펴 성찰(省察)함이 이와 같거늘 요즘의 사람들이 어찌 부처님의 수기(授記)하신바를 도망(逃亡)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저 제바달다<조달>는 지옥(地獄)에 들어가도 괴로움이 없었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고하였지만- 제바달다는 마음으로 석가모니(釋迦牟尼)부처님의 도(道)를 역(逆)으로 찬탄(讚嘆)하려 함 인줄 알지 못 한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地獄)이 다만 괴로움이 없을 뿐 아니라 또한 삼선천(三禪天)의 즐거움과 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몸과 입으로 비방(誹謗)한 듯 하였기 때문에 지옥(地獄)속에 있어서 도리어 몸과 입으로 지은바대로 한량(限量)없는 괴로움을 받는 것이다 부처님의 스승도 오히려 그러함인데 하물며 요즘 사람들이 본을 받겠는가


사람들에게 경전(經典)이나 불상(佛像)에 존경(尊敬)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토목(土木)처럼 보게 하여 저들로 하여금 인과(因果)를 모르게 하고 죄(罪)와 복(福)을 가볍게 여기며 부처님의 교계(敎戒)를 멀리하고 오역행(五逆行)을 가까이 하게하고서도 이와 같은 악보(惡報)를 어찌 능(能)히 면(免)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