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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경전,법문자료/5. 중각보왕삼매염불직지

제오(第五)도량존상염불정관(道場尊像念佛正觀)

제오(第五)도량존상염불정관(道場尊像念佛正觀)

도장(道場)의 존상(尊像)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여 바로 관(觀)하는


대저 관혜삼매(觀慧三昧)란것은 응당(應當)히 이 관혜(觀慧)의 지취(旨趣)로써 저 극락세계(極樂世界)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를 관(觀)함이니 이 마음 이 순숙(純熟)함을 좇아 마음과 경계(境界)의 이치(理致)가 한결같아 그리하여 곧바로 저 극락국토(極樂國土)에 왕생(往生)하게 하는 것이다


도장(道場)의 정관(正觀)이란 것은 저것에서 비록 관혜(觀慧)의 지취(旨趣)를 달관(達觀)하기는 했으나 그리하여 육근(六根)의 상대(相對)하는 바의 대상(對象)이 오히려 육진(六塵)의 경계(境界)에 머물고 있음으로 하여 혹(或) 퇴전(退轉)할수도 있는 까닭으로 저 도장(道場)의 성(聖)스러운 불상(佛像)이나 내지(乃至) 장엄(莊嚴)한 공양구(供養具)에 이르기까지 곧 극락세계(極樂世界)의 의보(依報)및 정보(正報)와 더불어 일체(一體)를 그리하여 관(觀)하는 것이다 수행인(修行人)이 비록 아직 사바세계(裟婆世界)를 여이지 않았다고는 하나 이에 이 마음으로 관(觀)함이 한결같은 까닭으로 이미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한 것과  같음에 저  수명(壽命)에 임(臨)하여 목숨을 마치는 때에 감응(感應)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수행인(修行人)이 참회(懺悔)의 행사(行事)를 하며  청정(淸淨)한 도장(道場)에서 공양(供養)하는 일을 장엄(莊嚴)스럽게 하는 경우와 같음에 저 하나의 향(香) 하나의 꽃에 이르기까지 어찌 저 삼제(三諦)의 이치(理致)에  상즉(相卽)하지 않겠는가 만일 이 삼체(三諦)의 이치(理致)로써 일마다 정념(正念)으로 관찰(觀察)하여 하여금 수승(殊勝)한 행(行)에 귀결점(歸結點)이 있게 하지 못한다면 대승원돈(大乘圓頓)의 도(道)를 열어서 나타내지 못한다


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 청정(淸淨)한 국토(國土)의 무량(無量)한 하나하나 의 장엄(莊嚴)한 도구(道具)<설비(設備)>와 같은 경우도 모두 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 이 처음 보살행(菩薩行)을 수행(修行)하실 때의 인행(因行)을 좇아  감득(感得)하신 것이다 인행(因行)이 이미 성립(成立)됨으로 과보(果報)의 국토(國土)가 앞에 나타나서 이러한 까닭으로 장엄(莊嚴)한 도구<설비(設備)>는  수승(殊勝)하고 오묘(奧妙)하여 다함이 없음이라  내가 이제 과(果)를 관(觀)함에 인행(因行)을 알 수 있음이라


그리하여 곧 삼매도장(三昧道場)의 낱낱의<하나하나의>  장엄(莊嚴)과 저 극락세계(極樂世界)의 인과(因果)가 더불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앎이라

제각기 성취(成就)한 대삼매(大三昧)와 모든 법문(法門)이 원융(圓融)하고 미묘(微妙)함을 나타내는 것과 극락국토(極樂國土)가 평등(平等)하여 차별(差別)이 없는 것이 어찌 또한 같지 않겠는가 또한 스스로 저 장엄(莊嚴)한 공양구(供養具)에 나아가 묘신상(妙身相)을 삼아야 하니 신상(身相)과 공양(供養)하는 일은 피차(彼此)가 아니며 일(一)과 다(多)가아니다


의보(依報)정보(正報)가 서로 융합(融合)하여 나타난 법계(法界)의 이치(理致)는 마치 모든 부처님의 국토(國土)처럼 불가사의(不可思議)한 것이다

어찌 나무와 돌로 이루어진 경계(境界)라 보아서야 되겠는가 그르므로 혹(或)은 경계(境界) 혹(或)은 마음 혹(或)은 몸 혹(或)은 국토(國土)가 동일(同一)한 수용(受用)으로 자재(自在)하여 걸림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경(經)에서 말하기를 바라밀(波羅蜜)에서 생겨난 온갖 보개(寶蓋)이며 일체(一切) 경계(境界)의 깨끗한 이해(理解)에서 생겨난 온갖 화장(華帳)-<화려(華麗)한 휘장(揮帳)>--이며 무생법인(無生法忍)에서 생겨난 온갖 옷<의복(衣服)>이며 금강법(金剛法)에 들어가 걸림 없는 마음에서 생겨난 온갖 영망(鈴網)<방울과 그물>이며 온갖 법(法)이 허깨비와 같음을 아는 마음에서 생겨난 일체(一切)의 견고(堅固)한 향(香)이며 부처님 경계(境界)에 두루한 여래좌(如來座)의 마음에서 생겨난 온갖 보중묘화(寶衆妙座)이며 부처님께 공양(供養)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 마음에서 생겨난 일체(一切)의 온갖 보당(寶幢)이며 모든 법(法)이 꿈같음을 알고 기뻐하는 마음에서 생겨난 일체(一切)의 부처님이 머무는 처소(處所)인 보배궁전<보궁전(寶宮殿)>이며 집착(執着)없는 선근(善根)에서 생겨난 온갖 보연화운(寶蓮華雲)등(等)이라


하였거니와 이로써 이를 관(觀)하건데 극락세계(極樂世界)의 의보(依報)와 정보(正報)의 경계(境界)가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인행(因行)으로 성취(成就)된 것으로 지금 그 과보(果報)를 감득(感得)할 수 있음을 곧바로 알 수 있음이라 우리의 이 도장(道場)이 이미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할 인(因)이요

비록 수승(殊勝)함과 하열(下劣)함이 마치 바다와 물방울의 차이(差異)처럼 동일(同一)하지 않기는 하지만 그리하여 이에 그 기분(氣分)이야 어찌 한가지로 체(體)와 더불어 같이 않겠는가 이 뜻을 인(因)하는 까닭으로 곧 도장(道場)가운데 육근(六根)으로 상대(相對)하는바 향화(香華)▪ 등촉(燈燭) ▪수승(殊勝)한 번개(幡盖)▪ 보개(寶蓋)▪ 일체(一切)의공양구(供養具) 내지(乃至) ▪의복(衣服)▪와구(臥具)▪음식(飮食)▪의약(醫藥)▪ 모든 수용구(受用具) 일색(一色)▪일향(一香)및 일미진(一微塵)도 삼매(三昧)가 아닌 것이 없으며 법문(法門) 아님이 없다


모두다 사람으로 하여금 오묘(奧妙)한 이해(理解)를 발(發)하게하여 마음을 깨닫게 하고 성인(聖人)을 증득(證得)하게 하는 것들이다 비록 음성(音聲)을 듣지 못한다 해도 또한 염불삼매(念佛三昧)의 모든 큰 법문(法門)을 표현(表現)하며 일체중생(一切衆生)과 부처님의 몸이 경계(境界)와 지혜(智慧)에 걸림이 없는데 나아가며 또한 나와 동행(同行)하여 진실(眞實)한 법(法)의 반려(伴侶)를 삼거늘 수행인(修行人)이 감(敢)히 경솔(輕率)하게 보아서 오묘(奧妙)한 깨우침을 발(發)하여 저 국토(國土)에 왕생(往生)하지 못한데서야 되겠는가


경(經)에서 말하기를 선정(禪定)으로 마음을 닦아 지니면 항상(恒常) 한결같은 인연(因緣)이며 지혜(智慧)로 경계(境界)를 요달(了達)하면 삼매(三昧)와 동일(同一)하다 하였는데 의미(意味)가 또한 이와같다

이렇게 관(觀)함을 능(能)히 짓는다면 육근(六根) 육경(六境)이 한가지로 일치(一致)하거늘 어찌 다만 나의 삼업(三業)만을 닦아 수행(修行)하겠는가

또 지옥(地獄)의 괴로운 도구(道具)인 ▪칼 ▪지팡이 ▪검(劍) ▪불<화(火)> 같은 경우(境遇)도 저가 먼저 지은 악(惡)한 인(因)으로 하여 과(果)에 지배됨이니 이 모두가 요동(搖動)하며 뱀 개 벌래 새 등(等)이 되어 뼈를 뚫고 몸 안에 들어와서 모든 괴로운 일을 짓는 것이다


어찌 하물며 도장(道場)안의 온갖 장엄(莊嚴)한 도구(道具)는 의보(依報)와 정보(正報) 가 동일(同一)한 근원(根源)이며 모두가 해탈(解脫)의 법(法)으로 서 나와 함께 삼매(三昧)를 성취(成就)하는 것이 아니 겠는가 또 도량의 장엄(莊嚴)한 형체(形體)는 모두 이물(異物)<상이(相異)한 물(物)> 인데도 오히려 사람들에게 오묘(奧妙)한 이해(理解)를 발(發)하게한다 하물며 지금 봉안(奉安)한 존상(尊像)은 공경(恭敬)히 공양(供養)하며 마음의 의지(意志)를 극진(極盡)히 하여 부모(父母)처럼 생각하다면 어찌 나를 해탈(解脫)하게하여

안양국(安養國)에 신속(迅速)히 왕생(往生)하게 하지 않겠는가


또한 부처님<아미타불(阿彌陀佛)>과 두 보살<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의 상(像)을 도장(道場)에 안치(安置)한다면 단적(端的)히 마주 대(對)하여 참회(懺悔)하는 주(主)가 되며 나머지 상(像)은 반(伴)이 되어 이를 총체적(總體的)으로 정보(正報)라 하고 나머지 모든 장엄(莊嚴)한 도구(道具)는 다 의보(依報)라 이름한다

이는 주반(主伴)의 의보(依報) 정보(正報)가 저 극락(極樂)의 의보(依報) 정보(正報)과 비록 거칠고 오묘(奧妙)함이 동일(同一)하지 않지만 그 상주(像主)가 소유(所有)한 신통(神通)과 원력(願力)은 부처님의 진신(眞身)과 동일(同一)하다 그를 두들기면 신령(神靈)하고 그 에게 구(求)하면 감응(感應)하시니 무슨 차별(差別)의 상이(相異)함이 있겠는가

이미 차별(差別)됨이 없다면 이 불상(佛像)이 어떻게 흙▪ 아교(阿膠) ▪나무 ▪칠 ▪채색(彩色) ▪금(金)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짓고 서방극락(西方極樂)의 대원상호(大圓相好)인 진신불(眞身佛)이라는 관(觀)을 짓지 않겠는가

 

만일 불상(佛像)중에서 진신(眞身)을 보지 못한다면 이에 그 마음이 한결같지 아니함에 삼매(三昧)를 성취(成就)하기 어려워서 오묘(奧妙)한 깨달음이 심오(深奧)하지 못하고 잃은 것이 매우 심(甚)하다고 하겠다

대체(大體)로 지금 보는 불보살(佛菩薩)의 상(像)은 저 진신(眞身)과 실제(實際)로 두 가지 이치(理致)가 없는 것이다 다만 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이 대자대비(大慈大悲)가 두루하여 상이(相異)함이 없는 몸에는 근기(根機)를 따라 응현(應現)하실 뿐이다


진신(眞身)을 보이고 화신(化身)을 보이며 혹(或)은 형상(形像)을 보이기도 하시나 우리가 또한 눈의 장애(障礙)가 매우 깊어 한 법(法)가운데서 보는 것이 스스로 상이(相異)함으로 부처님의 진신(眞身)을 상(像)이라 말 할 뿐이나 곧 이 불상(佛像)이 어떻게 실상(實像)임을 깨달아 알겠는가 비유(譬喩)하며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삼배구품(三輩九品)을 접인(接引) 하는 부처님이 그 품위(品位)를 따라서 보내는 것이 수승(殊勝)함으로부터 하열(下劣)에 이르며 각각(各各)동일(同一)하지 않은 것과 도 같다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보는 불상(佛像)이 실제(實際)로 또한 나의 보는 것에 해당(該當)한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어찌 부처님의 자비(慈悲)가 두루하지 아니하여 나에게 상(像)으로서만 보이셨겠는가 비록 그렇게 보아서 생각하는 것이 동일(同一)하지는 아니함이나 모두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한 몸인 것이다 또 경전(經典)에서 말씀한 참회(懺悔)하면 저 눈의 장애(障礙)가 점점 엷어져서 부처님의 연화좌대(蓮華坐臺)를 보고 장애(障礙)가 엷어질 때 부처님께서 허공계(虛空界)에 두루하신 것을 점점(漸漸)보게 됨이라 한 것과 같다


저것으로 여기에 비교(比較)하여 가령(假令) 내가 참회(懺悔)하고 발원(發願)하여 왕생(往生)을 구(求)하는 마음이 이치(理致)와 상응(相應)한다면 먼저 불상(佛像)과 화신(化身)을 보고 뒤에는 부처님의 진신(眞身)을 뵈옵게 되는 것이다

또 화엄(華嚴)회상(會上)에서 부처님의 몸은 본래(本來)하나이나 대보살(大菩薩)의 무리들은 부처님이 광대(廣大)하여 한량(限量)없는 천관(天冠)으로 노사나불(盧舍那佛)께서 몸의 장엄(莊嚴)한 것을 보고 삼승(三乘)은 부처님이 왕궁(王宮)에 강생(降生)한 늙은 비구(比丘)의 몸으로 보고 우리들은 범부(凡夫)이기 때문에 부처님을 흙 나무 금동(金銅)로 이루어진 몸만을 볼뿐이다 한 것과 도 같다 그러하지 아니하다면 무엇 때문에 보현관경(普賢觀經)에서 다만 안죄(眼罪)만 참회(懺悔)하여도 부처님을 보게 된다 하였겠는가


이로써 부처님은 본래(本來) 하나의 몸이나 실제(實際)로 보는 사람이 혹(或)은 진신(眞身)으로 혹(或)은 불상(佛像)으로 스스로 상이(相異)하게 볼뿐이다

또 옛날 어떤 사람은 나무로 어머니를 조각(彫刻)하여 조성(造成)하였다

어머니의 몸은 본래(本來) 나무였으나 다른 사람이 어머니에게 찾아 구(求)하고 빌리기를 혹(或)은 주고 혹(或)은 인색(吝嗇)하게하면 나무로 조성(造成)된 어머니도 또한 기뻐하고 성난 얼굴빛을 드러내며 실제(實際)어머니와 동일(同一)하게 이적(異蹟)을 나타내었다 저 세간(世間)에서 효도(孝道)의 뜻에 감응(感應)하는 것도 오히려 이와 같았는데 하물며 한량(限量)없는 대원(大願)과 육신통(六神通)의 부처님은 진신(眞身)에 상즉(相卽)한 보배로운 상(像)인데 나무로 된 어머니에게도 미치지 못한다 말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고금(古今)에 조상(造像)의 징험(徵驗)이 한둘이 아니었으니 혹(或)은 광명(光明)을 놓았고 혹(或)은 서응(瑞應)을 보이기도 하였으며 내지(乃至)는 사리(舍利)가 용출(聳出)하였고 물에 빠지거나 불에 타도 파괴(破壞)되지 않았다는 여러 가지 영험(靈驗)으로 전기(傳記)에 두루 실려있어 자세(仔細)히 진술(陳述)하지 못할 정도(程度)이다 그러하다면 우리 도장(道場)의 상(像)의 주인(主人)도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의 진실(眞實)한 색신(色身)이거늘 다만 우리가 장애(障礙)됨으로 하여 이는 상(像)이다 말 할 뿐이다


비록 저가 바로 상(像)이다 말한다 해도 또한 앞의 상관(像觀)에 능(能)히 들어가 상(像)을 따라 진신(眞身)을 본다면 어찌 동체(同體)의 오묘(奧妙)함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경(經)에서 말하기를 부처님의 청정(淸淨)한 몸이 일체(一切)의 처소(處所)에 두루 하신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일체(一切)의 모든 법(法)이 부처님의 법(法)아닌 것이 없다 하였는데 왜 하필(何必) 이 상(像)만이 부처가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이 질문(質問)하였다 모든 모양(模樣)을 떠나면 곧 부처<불(佛)>라고 한다 이와같이 부처님의 몸도 부정(不定)하는데 더구나 이 상(像)과 진실(眞實)한 부처님이 동일(同一)하겠는가 대답(對答)하겠다

가령(假令)모양(模樣)이 부처님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상(像)에만 그칠 뿐이겠는가 노사나(盧舍那)부처님의 보신(報身)을 떠나도 또한 부처님이 아니리라 가령(假令) 일체(一切)가 부처님이 아니라면 즉 일체(一切)가 부처님이다 어찌 부처가 아니겠는가


만일 이 의미(意味)를 알았다면 내가 지금 봉안(奉安)한 존상(尊像)이 원해(願海)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아 알 수 있으리라 큰 신통(神通)과 방편(方便)을 갖추어 능(能)히 섭수(攝受)하며 소유(所有)한 일체방편(一切方便)인 무외(無畏)등(等)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과 대자대비(大慈大悲)상락아정(常樂我淨) 상호(相好)광명(光明)이 아미타(阿彌陀)의 진신(眞身)과 평등(平等)하여 차별(差別)됨이 없다

우리는 그 가운데에서 참회(懺悔)의 행사(行事)를 걸인(乞人)이 제왕(帝王)과 가까이 할 수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 항상(恒常)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품고 외경(畏敬)과 사랑을 함께 품어 섭수(攝受)하시기를 목마르게 앙모(仰慕)하며 예토(穢土)의 생사(生死)에서 벗어나기를 구(求)해야 한다


하물며 역겁(歷劫)토록  만나기가 어려운데도 지금 이미 만남이겠는가 어찌 경솔(輕率)히 하고 소홀(疎忽)히 하여 수승(殊勝)한 행(行)이 진보(進步)하지 못하게 하고 스스로 장애(障礙)와 어려움을 짓겠는가

또 저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생각해보았더니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에 상신(像身)을 드리워서 보이시고 우리들의 참회(懺悔)를 받아 들이어셨다 이미 참회(懺悔)함을 받아들였다면 일체(一切)의 무거운 중죄(重罪)가 결정(決定)코 소멸(消滅)하고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왕생(往生)하게 됨이라 이 마음은 환희(歡喜)를 얻고 홀연(忽然)히 천지(天地)가 확 트여 쾌청(快晴)하듯 법안(法眼)을 성취(成就)하고 저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눈으로 보는 듯 하리라

그러므로 진신(眞身)과 상신(像身)이 일치(一致)한다는 말이 매우 뜻깊은 것임을 알고 학자(學者)는 그 정성(精誠)을 극진(極盡)히 하여 절대(絶對)로 다른 이해(理解)를 지어서는 않이 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