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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4. 고요한소리

부처님. 그 분(1)

부처님, 그 분


-생애와 가르침-            출처: 고요한 소리 http://www.calmvoice.org


THE BUDDHA

A SHORT STUDY OF HIS LIFE AND TEACHING


PIYADASSI THERA


삐야다시 스님 지음

정원 스님 옮김


(The Wheel Publication No. 5 A/B)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일러두기


1. 주(註)에 표기된 경(經) 이름 다음의 로마 숫자와 아라비아   숫자는 빠알리어본 경전(영국 빠알리성전협회-P.T.S. 간행)  의 권수와 쪽수를 각각 나타내며,『법구경������이나 『숫따니  빠따』뒤의 숫자는 게송 번호임.

2. 여기 나오는 고유명사는 모두 빠알리어 음을 취했음.

3. 아랫단의 주는 원주(原註)이며, 역주(譯註)는 [역주]라고   표시하였음.


부처님, 그 분


그 분 세존 응공 정등각께 귀의합니다.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부처님은 조금도 멀리계시는 것 같지가 않다. 그분의 목소리는 지금도 우리들의 귓전에 속삭이듯 일러주고 있다. 삶의 투쟁에서 도망치지 말고 냉철한 눈으로 맞서라고. 그리하여 이생에서 보다 큰 향상과 성숙을 위한 기회를 찾으라고.


인격이야말로 예나 다름없이 지금도 값진 것이다. 더욱이 부처님처럼 인류의 뇌리에 깊은 감동으로 아로새겨져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무언가 생기가 약동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만드는 분으로 참으로 경이로운 분임에 틀림이 없다.


바르트(Barth)가 ‘그 분이야말로 고요하고 부드러운 위엄을 지닌 분으로, 살아 숨쉬는 그 모두에 대한 자비심과 고통받고 있는 모두에 대해 한없는 연민을 지닌 분이다. 그리고 모든 편견에서 벗어나 완전한 도덕적 자유를 성취한 분으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귀감이다.’1)라고 말하였듯이.”


������그 분의 메시지는, 형이상학적인 미묘한 문제에 익숙해진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낯익은, 그러면서도 항상 새롭기만한 근원적 메시지로서, 지성인들의 창조적 상상력을 사로잡았을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깊은 귀의를 받았었다.”2)


불교는 인도의 바라나시(베나레스)시(市) 근처의 사르나트에서 탄생하였다. 처음에는 겨우 다섯의 제자와 더불어 시작됐지만 해가 지나면서 수많은 나라로 전파되었고 오늘날에는 6억이 넘는 인류가 신봉하는 대종교가 되었다. 이렇듯 불교가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본래 지니고 있는 가치와 합리적 정신에 호소하는 설득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밖에도 불교의 발전을 도운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법을 전하는 사람들이 불교를 폄에 있어서 결코 삿된 방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는 점도 그 요인 중의 하나이다. 그들이 사용한 유일한 무기는 바로 보편적인 사랑[慈]과 연민[悲]이었다.


또 다른 나라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신앙을 깨뜨리지 않고 평화롭게 전해졌다는 점 또한 한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종교사상 유례가 드문 대대적 전교사업을 펴면서도 무력이나 강제적 수법, 그 밖에 어떤 비난받을 방법도 쓴 적이 없었던 것이다. 강제에 의한 개종은 불교도들에게는 낯선 얘기이며, 부처님이나 그 제자들이 지극히 못마땅하게 여겼던 일이었다. 불교가 다른 종교를 헐뜯는 일은 일찍이 없었다. 그처럼 평화로웠기 때문에 불교는 문명세계의 다양한 문화권 속으로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


리스 데이비즈 박사3)는 말한다.


“내가 알기로는, 불교의 긴 역사를 통틀어 불교도들이 아무리 장기간에 걸쳐 득세를 한 곳일지라도 타 종교인을 박해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탄생


이 위대한 종교4), 불교의 창시자인 부처님께서는 2500여년 전에 살았었고, 고따마 싯닷타(Gotama Sidd-


hattha)5)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그 분의 아버지, 숫도다나(Suddhodana)는 크샤트리아(무사)계급에 속한 왕으로 현재 네팔 국경지역 근처의 까삘라와투[迦毘羅城]에서 샤카[釋迦] 족의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고따마 가문 출신이었으므로 고따마 숫도다나라고 불리었고 그의 비(妃)는 이웃 꼴리야 족의 공주 마하마야였다.


오월 보름날, 때는 봄철, 나무는 잎과 꽃․열매가 무성하고 사람과 새․짐승들이 모두 즐거움에 젖어 있을 때였다. 그때 마하마야 왕비는 당시의 풍습에 따라 아기를 낳기 위해서 성대하게 꾸민 마차를 타고 까삘라와투를 떠나 친정인 데바다하로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행은 중도에 끝나 버렸다. 왕비는 두 도시 사이에 위치한 아름다운 룸비니 동산에 이르자 꽃이 만발한 무우수 아래서 아들을 낳았다.


룸비니(현 지명은 룸민데이)는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백마일 거리에 있으며 눈 덮인 히말라야의 영봉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 그로부터 316년 후 아쇼카 황제6)는 싯닷타 왕자가 태어난 성지임을 표시하는 거대한 석주를 세웠다. 석주에는 아쇼카 문자 93자로 된 다섯 줄의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석가족의 성자, 붓다, 여기서 탄생하셨도다.’

(hida budhe jāte Sākyamuni)


이 거대한 석주는 지금도 볼 수 있다. 서기 7세기 중엽 중국의 구법승 현장 법사가 여기에 왔을 때는 석주는 이미 벼락으로 부러져 있었지만 ‘어제 깎은 듯 생생하다’고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잊혀져 오던 룸비니 동산은 1896년 저명한 고고학자 커닝엄 장군7)에 의해 발굴, 확인됨으로써 룸비니의 전설이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왕자가 태어난 지 닷새째 되던 날, 왕은 여덟 명의 현자를 청하여 아기의 이름을 짓고 또 왕자의 앞날을 점쳐 달라고 부탁했다. 현자들은 왕자에게 ‘목적을 달성한 사람’이란 뜻으로 싯닷타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바라문들은 심사숙고한 후 일곱 명은 두 손가락을 펴보이면서 말했다.


“오! 왕이시여! 이 왕자가 왕위에 오르게 되면, 전 세계의 통치자인 전륜성왕(轉輪聖王 Cakravarti)이 되어 온 세계를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세속을 떠나 출가한다면 왕자님은 정등각자(正等覺者)가 되어 사람들을 무지에서 구해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현명하고 젊은 콘단냐만은 왕자를 바라본 후 오직 한 손가락만 펴보이면서 말했다.


“오! 왕이시여! 이 왕자는 언젠가는 진리를 찾아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정등각자가 될 것입니다.”


왕자가 태어난 지 이레 만에 어머니 마하 마야 왕비가 세상을 떠났다. 아기는 이모 고따미 빠자빠띠에 의해 양육되었다. 이들이 아기에게 쏟은 정성은 극진하여 아기는 온갖 호강을 다 누리며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왕은 왕자로서 받아야 할 교육에도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 왕자는 갖가지 학문에 능통하게 되었고 무술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뛰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싯닷타 왕자는 어린 시절부터 가끔 깊은 명상에 빠져들곤 하였다.


네 가지 충격적인 체험


왕자가 장성하자 부왕은 아들이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어 왕실의 훌륭한 후계자가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현자 콘단냐의 충격적인 예언이 항상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정말 어느 날엔가 왕자가 훌쩍 집을 떠나 고행자의 떠돌이 생활로 뛰어들까봐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관습대로 왕자를 열여섯 살 어린 나이에 꼴리야 성의 수빠붓다 왕과 빠미따 왕비의 외동딸이며 왕자의 외사촌인 아름다운 야소다라 공주와 결혼시켰다. 공주는 왕자와 동갑이었다.


왕자의 생활은 참으로 호사스러웠다. 기록에 의하면 왕자는 인도의 세 계절에 맞는 궁전을 각기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세속생활의 즐거움이라면 무엇 하나 빠진 것이 없는 가운데 춤과 노래, 사치와 쾌락에 파묻혀 괴로움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아들을 쾌락 속에 묻히게 하여 세속에 붙잡아 두려는 부왕의 노력도 결국에는 허사였다. 호기심어린 아들의 눈으로부터 인생의 모든 고(苦)를 감추려는 숫도다나 왕의 노력은 오히려 싯닷타 왕자의 탐구심만 키워 주어 결과적으로 진리와 깨달음을 구하려는 결의를 더욱 굳혀 줄 따름이었다. 철이 들면서 왕자는 차츰 세상의 비애에 대하여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느 날 왕자가 마부 찬나를 데리고 왕실 정원으로 놀러가다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노쇠한 한 늙은이가 기력이 완전히 쇠잔하여 슬픈 목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왕자님, 도와주세요. 나를 일으켜 세워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 집에도 못가고 죽을 것 같아요.”8)


이것이 왕자가 경험한 최초의 충격이었다. 또 두 번째는 가죽과 뼈만 앙상하게 남은 버림받은 한 사내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병 때문에 전신의 기력이 탈진되어 인간다운 우아함이나 기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비참한 모습이었다.9) 세 번째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화장터로 가면서 비통해 하는 어느 친족들의 장례행렬을 만난 것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런 비참한 광경들에 왕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마부의 말에 의하면 그 자신도,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도, 그 밖의 모든 친척들도, 아니 그 누구도 예외없이 늙고, 병들고, 죽기 마련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런 일이 있은 지 며칠 되지 않아 왕자는 한 출가 사문과 마주치게 되었다. 사문은 시선을 아래로 한 채 앞만 바라보며 신중한 걸음걸이로 고요하고도 침착하게, 초연하고도 걸림없는 당당한 자세로 걷고 있었다. 왕자는 사문의 평온한 모습에 깊이 감동되었다.


찬나는 이 사문이, 생의 수수께끼를 풀어줄 진리를 찾아서 청정한 삶을 살고자 집을 떠나 세속을 등진 사람이라고 일러주었다. 순간 왕자의 마음속에 출가에 대한 깊은 생각들이 섬광처럼 떠올랐다. 왕자는 깊은 사색에 잠긴 채 궁중으로 발길을 돌렸다. 고뇌와 번민에 싸여 답답하기만 하던 마음속에 마침내 한 가닥 서광이 비쳐든 것이다. 궁궐 밖 세상을 접하면 접할수록 이 세상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왕자는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궁궐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야소다라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에게 장애(Rāhula)10)가 생겼구나’ 라고 말하면서 왕자는 궁궐로 들어갔다.


위대한 출가


그날 밤, 달빛은 교교하고 사위는 적막에 잠긴 가운데(그 날은 유월 보름날 저녁이었다) 왕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생의 절정, 젊은 시절은 늙음으로 끝나고, 인간의 감관은 가장 필요할 때에 그를 저버린다. 혈기 왕성하고 건장하던 사람도 병이 나면 정력과 건강을 상실하고 만다. 결국 예기치 못했던 죽음이 갑자기 다가와 이 짧은 일생에 종지부를 찍어버린다. 분명 이 늙음과 병듦으로부터, 이 만족할 수 없는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그러자 젊음과 건강 그리고 수명에 대해 지니고 있던 교만심(mada)이 그에게서 사라졌다. 이 세 가지 마취(교만)가 헛되고 위험한 것임을 알게 되자 그는 자기 자신과 처자, 그리고 고통받는 일체 중생을 위해, 늙고 병들고 고통받고 죽는 것으로부터 궁극적 해방을 기어이 찾아내어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충동에 사로잡혔다.11)


그가 대각(大覺) 성불로 완성되는 구도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은 이와 같은 깊은 자비심 때문이었다. 위대한 출가를 결심하게 만든 것도, 또 안락한 가정생활이라는 황금새장을 열어젖히게 만든 것도 이 자비심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기를 품에 안고 잠들어 있는 모습에 마지막 눈길을 보내면서도 그 결심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자비심 때문이었다.


꽃다운 젊은 시절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사랑하는 아내 야소다라가 그의 하나뿐인 아들 라훌라를 낳은 그 밤에, 그는 아내와 아들․아버지 그리고 권력과 영광이 약속되어 있는 왕좌를 모두 떨쳐버리고 떠나갔다.


이제 수행자의 옷차림을 한 보살12)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삶의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숲속의 고독한 생활로 들어섰다. 굴레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평안, 즉 열반을 향한 구도의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이리하여 위대한 출가는 이루어졌다.


그는 처음에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뿌따라는 유명한 두 현자에게 각기 가르침을 구했다. 그들은 선정의 대가들인 만큼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다 배우면 높은 선정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리라고 보살은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선정을 닦았고 마침내 그 선정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바라던 최상의 깨달음은 아니었다. 이 두 스승이 가르치는 지식과 선정의 경지를 보살은 만족할 수가 없었다. 보살은 그의 목표가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느꼈다. 두 현자는 제각기 보살이 그들과 같이 머물기를 바랐다. 후계자가 되어 그들의 교단을 이끌어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수행자 고따마는 이것을 정중히 거절하고 인사를 드린 후 그때껏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구극의 진리를 찾아서 떠나갔다.


편력 끝에 그는 마침내 가야 지방의 네란자라 강변에 있는 우루웰라에 도착했다. 그곳의 조용하고, 울창한 숲과 맑은 강물이 마음에 들었다. 부근에는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어서 탁발하기에도 안성마춤이었다. 이곳이야말로 깨달음을 추구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장소로 여겨져 여기에 머물기로 작정했다. 그가 워낙 결연한 각오로 정진에 힘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보고 감복한 다섯 수행자들이 같이 정진하고 싶어 동참해 왔다. 그들의 이름은 꼰단냐, 밧디야, 와빠, 마하나마, 아싸지였다.


  고행


당시 인도에서는 심신을 정화하고 궁극적인 해탈을 얻으려면 극심한 고행이 필요하다고 믿는 수행자들이 많이 있었고, 그 점은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행자 고따마는 이 생각이 옳은지 그 진실성을 확인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곳 우루웰라의 숲에서 고따마는 마음이 육체의 속박을 벗어나 해탈의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게 되기를 희구하면서 자신의 육체를 조복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자신과의 싸움은 그야말로 처절한 것이었다. 나무 잎사귀와 뿌리만으로 연명하였을 뿐 아니라 그 양마저도 극도로 줄여 나갔다. 옷은 쓰레기더미에서 주운 헝겊으로 기워 만든 누더기를 걸쳤으며, 잠은 시체들 옆이나 가시덤불 위에서 잤다. 이 같은 극도의 자기학대로 몸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쇠잔해 갔다. ‘나는 고행을 철저히 했다.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만큼 열심히 했다. 나의 사지는 말라 시들어버린 갈대처럼 되었다. ……’ 후일 부처님은 지난날의 고행담을 이와 같이 감명깊게 제자들에게 들려주셨다.13)


6년이란 긴 세월을 격렬하게 투쟁한 끝에 거의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원대한 목표에는 단 한 발짝도 더 다가서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고행이 얼마나 헛된 짓인가를 체험을 통해 명백하게 확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그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고, 다시 분발하여 원래의 목표를 향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처럼 극도로 쇠잔한 몸으로는 어떤 길도 더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그래서 고행과 극단적인 단식을 그만두고 다시 정상적으로 음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의 쇠약해진 몸은 이전의 건강을 되찾았고, 고갈되었던 기력도 곧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의 다섯 동료들은 실망한 나머지 그의 곁을 떠나가 버렸다. 그들은 고따마가 정진을 포기하고 사치스런 생활로 되돌아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보살은 이런 일에 조금도 동요되지 않았다. 자신의 청정함과 정진의 힘을 확고히 믿고 있었기에 스승의 지도나 도반의 도움없이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최후의 시도를 해보기로 결심했다.


대각(大覺)을 이루시기 바로 전날 오전, 보살이 좌선을 하고 있을 때 부유한 장자의 딸인 수자따가 우유죽을 드렸다. 이 수행자가 신인지 인간인지 알 수 없었던 수자따는 “존귀한 분이시여, 당신의 큰 뜻이 부디 성취되어지이다.”고 기원했다. 이것이 보살이 깨치기 전에 드신 마지막 음식이었다.


  마침내 깨치시다


가야(현재 붓다가야)의 네란자라 강 둑 위에 있는 한 나무14) 아래에 결가부좌를 하고 앉은 보살은 불퇴전의 결심으로 정진에 마지막 힘을 쏟고 있었다.������이 몸이 가죽과 힘줄, 뼈만 남고 피와 살은 다 말라서 죽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등각(正等覺)을 얻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겠노라.’ 보살의 노력은 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것이었고, 보살의 헌신은 이처럼 시들 줄 모르는 것이었으며, 진리를 깨치어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결의는 이처럼 단호한 것이었다.


보살은 출입식념(出入息念 anāpānasati)15)에 전념하여 초선(初禪)에 들어가 거기에 머물렀다. 다시 차례대로 제2선 제3선 그리고 제4선에 들어가 머물렀다. 이와 같이 마음에서 모든 때를 닦아내어 평온한 마음을 이룬 다음, 이 마음을 과거 생(生)을 기억하는 지혜[宿命智 pubbenivāsānussatiñāṇa]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이 보살이 초저녁(오후 6시~10시)에 성취한 첫 번째 지혜였다. 다시 보살은 온갖 형태의 중생이 각기 지은 업에 따라 좋은 상태로 또는 나쁜 상태로 태어나고 죽는 것을 아는 지혜[死生智 cuti-upapātañāṇa]쪽으로 기울였다. 이것이 한밤중(10시~새벽2시)에 성취한 두 번째 지혜였다. 다시 그는 번뇌를 소멸시키는 지혜[漏盡智 āsava-

kkhayañāṇa]쪽으로 기울였다.16)


그는 여실히 깨달았다. 즉 ‘이것이 고(苦)다. 이것이 고의 일어남[集]이다. 이것이 고의 멸(滅)이다. 이것이 고의 멸에 이르는 길[道]이다.’ 그는 여실히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이다. 이것이 번뇌의 멸에 이르는 길이다.’


이렇게 알고 이렇게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은 번뇌로부터 해탈하였다. 그 번뇌란 감각적 쾌락의 번뇌[欲漏 kāmāsava], 존재하려는 욕망의 번뇌[有漏 bhavāsava], 무지의 번뇌[無明漏 avijjāsava]의 세 가지 번뇌였다.17) 그의 마음이 해탈했을 때 해탈했음을 아는 지혜[解脫知見]가 생겼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다. “태어남은 소진되었다. 청정한 삶[梵行 brahma cariyam]은 완성되었고 할 일은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이런 상태에 이르지 않는다.”18) 이것이 새벽녘(새벽2시~6시)에 성취한 세 번째 지혜였다. 이 세 가지 지혜를 삼명(三明)이라 한다.19)


다시 보살은 승리의 게송을 읊었다.


“‘집[個體] 짓는 이’를 찾아내려고,

그러나 찾지 못한 채

수많은 태어남의 윤회 속을 줄곧 서둘러 왔었네.

태어남은 언제나 실로 괴로운 것.

오, 집 짓는 이여, 드디어 너를 찾아냈도다.

너는 다시는 집 짓지 못하리.

너의 모든 서까래 부서지고

마룻대[上梁] 또한 부러졌도다.

이제 내 마음은

형성되어지지 않은 것(=열반)을 이루었네.

온갖 갈애 다 끝내어 버렸네.”20)


이렇게 보살 고따마는 5월 보름날(탄생한 날과 같은) 21), 서른 다섯의 나이에, 영원한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런 진리[四聖諦]를 완전히 파악함으로써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시어, 일체 중생의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의사, 대의왕(大醫王), 붓다가 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다른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과 구별되는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그 분이 사람이라는 점, 즉, 신이라든가 초자연적 존재와 어떤 관련도 전혀 맺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신도 아니고 신의 화신(化身)도 아니며 어떤 신화적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오직 한 사람일 뿐이었다. 하지만 비범한 사람, 초인적 사람이었다. 그 분은 자신이 성취한 모든 것을 인간의 지성과 노력의 결과로 돌렸다. 그 분은 직접 체험을 통해 인간이 그 어떤 존재보다도 절대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어떤 스승으로부터, 그것이 사람이든 신이든 간에 일체 도움을 받지 않고 오직 자신의 꾸준한 정진에 의해서 보살은 최고의 정신적, 지적 성취를 달성했다. 청정의 극치에 이른 것이며 인간성이 구현할 수 있는 최선의 자질을 완성해 낸 것이다. 문자 그대로 지혜와 자비의 구현자였고, 이 지혜와 자비는 그 후 부처님의 가르침에 있어서 두 가지 기본 지침이 되었다.


부처님은 결코 계시 종교에서처럼 영혼을 구제하는 구세주로 자처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인간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으며, 이러한 가능성을 계발하여 현실화시키는 길은 오직 인간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을 뿐이라는 것을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과 깨달음을 통해 실증해 보이셨다. 이처럼 부처님은 깨달음과 해탈이라는 지상의 과제가 전적으로 인간의 노력이 가 닿는 범위 안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셨던 것이다.


사실,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과 관계없이 해탈을 성취할 수 있다는 것, 더구나 각자가 자신의 책임 하에 스스로 취하는 행위에 의해서만 고(苦)로부터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분은 인류 역사상 부처님이 처음이셨다.


  아무리 해탈을 구걸하고 빌어 봐야 그 누구도 이를 성취시켜 줄 수는 없다. 타인이 우리들에게 도움의 손을 뻗친다 해야 기껏 이런저런 지시나 가르침을 주는 등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최상의 자유는 오로지 자기 능력을 최대로 발현하여 진리에 눈뜸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을 뿐이며 인간이든, 신이든, 그 어떤 초월자에게 기도하고 간청한다고 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향해서도 각자가 자신에게 일어난 짐스러운 일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려 들지 말고 연구, 분석을 통해 그 해결의 길을 스스로 찾음으로써 자기가 지닌 내면의 힘과 훌륭한 자질을 계발하는 계기로 삼도록 노력하라고 일깨워 주셨다.


연기(緣起)


깨달은 직후 일주일 간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 앉으셔서 해탈의 무상법열(無上法悅)을 누리고 계셨다. 이레가 되던 날 초저녁 부처님은 삼매(Samādhi)에서 나와 연기(緣起)에 관해 순서대로 관하셨다.[順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즉 무지[無明]가 있음을 연(緣)으로 하여 의지에 의한 형성작용 또는 업지음[行]이 있고, 이 의지의 형성작용이 있음을 연(緣)으로 하여서 (재생) 식(識)이 있고, 식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명색(名色:심신의 결합)이 있고, 명색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入]22)이 있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접촉[觸]이 있고, 접촉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느낌[受]이 있고, 느낌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갈애[愛]가 있고, 갈애가 있음을 연으로 하여 집착[取]이 있고, 집착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생성과정[有]이 있다. 생성과정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늙음[老], 죽음[死], 슬픔[愁], 비탄[悲], 괴로움[苦], 근심[憂], 절망[惱]이 있게 된다. 이처럼 해서 이 모든 고의 무더기[苦蘊]가 생겨난다.”


그날 한밤중[中夜]에 부처님은 역(逆)으로 연기를 관하셨다.[逆觀]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무지가 완전히 멸하면 의지의 형성작용이 멸하고, 의지의 형성작용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멸하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멸하면 접촉이 멸하고, 접촉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면 갈애가 멸하고, 갈애가 멸하면 집착이 멸하고, 집착이 멸하면 생성과정이 멸하고, 생성과정이 멸하면 태어남이 멸하고, 태어남이 멸하면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괴로움, 근심, 절망이 멸하게 된다. 이리하여 이 모든 고의 무더기가 멸하게 된다.”


그날 새벽녘에 부처님께서는 연기를 순(順)으로 또 역(逆)으로 관하셨다.[順逆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 즉 무지가 있음을 연(緣)으로 하여 의지의 형성작용이 있고, 이 의지의 형성작용이 있음을 연(緣)으로 하여서 식(識)이 있고, 식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명색이 있고, 명색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入]이 있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접촉[觸]이 있고, 접촉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느낌[受]이 있고, 느낌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갈애[愛]가 있고, 갈애가 있음을 연으로 하여 집착[取]이 있고, 집착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생성과정[有]이 있다. 생성과정을 연으로 하여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이 있음을 연으로 하여 늙음[老], 죽음[死], 슬픔[愁], 비탄[悲], 괴로움[苦], 근심[憂], 절망[惱]이 있게 된다.


이리하여 이 모든 고의 무더기가 생겨난다. 무지가 완전히 멸하면 의지의 형성작용이 멸하고, 의지의 형성작용이 멸하면 식이 멸하고,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멸하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멸하면 접촉이 멸하고, 접촉이 멸하면 느낌이 멸하고, 느낌이 멸하면 갈애가 멸하고, 갈애가 멸하면 집착이 멸하고, 집착이 멸하면 생성과정이 멸하고, 생성과정이 멸하면 태어남이 멸하고, 태어남이 멸하면 늙음, 죽음, 슬픔, 비탄, 괴로움, 근심, 절망이 멸하게 된다. 이리하여 이 모든 고의 무더기가 멸한다.”23)


이렇게 부처님께서는 보리수 근처에서 자리를 여섯 번 옮기며 여섯 주일을 홀로 머무셨다. 여섯 주일이 끝날 무렵, 따빠수와 발리까라는 두 상인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떡과 꿀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부처님과 법24)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제자로 거두어 주십시오.”25)


이리하여 그들은 첫 재가신도(upāsaka)가 되었다.


법의 바퀴를 굴리시다[初轉法輪]


세존께서 보리수 근처에 홀로 계실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깨달은 이 법(法 Dhamma)은 심오하여 알아차리기도 이해하기도 힘들며,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만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좋아하여 그 즐거움에만 탐닉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이 진리, 즉 연기법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리라. 또한 모든 조건 지어진 것[行]의 정지(靜止), 일체의 생성요인(upadhi)의 방기(放棄), 갈애의 소진, 탐욕을 멀리함[離慾 virāga], 멸진(滅盡 nirodha), 열반을 알아차리기는 어려우리라. 설혹 내가 법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번거롭고 피곤할 것인가.”26)


이와 같은 생각을 하자 부처님께서는 법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불안(佛眼)27)으로 세계를 둘러보니, 사람들 가운데에는 눈이 엷게 가려진 사람도 두텁게 가려진 사람도 있고, 근기가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있고, 선량한 자질을 가진 사람, 나쁜 자질을 가진 사람, 가르치기 쉬운 사람, 어려운 사람, 현재의 그릇된 행동 때문에 위험에 당면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두루 섞여 있는 것이 여실하게 보였다.


이리하여 마침내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장중한 말씀으로 법을 기꺼이 설하실 뜻을 천명하셨다.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도다. 귀 있는 자들은 기대할지니라. ;

Apārutā tesaṁ amatassa dvārā Ye sotavanto pamuñcantu saddhaṁ”28)


누구부터 법을 가르칠까 생각해 보니, 옛날 스승이었던 알라라 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뿌따가 생각났다. 그들이 현명하고 식견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안으로 살펴보니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전에 동료였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기로 마음을 정하셨다. 그들은 아직도 소득없는 극단적인 고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들이 베나레스의 이시빠따나29)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있는 것을 아시고 세존께서는 베나레스까지 약 150마일의 도보 여행을 시작하셨다.


가야를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노상에서 우빠까라는 수행자와 마주쳤는데, 그 사람은 세존의 거룩하신 모습에 감동한 나머지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


“당신의 스승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때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나에겐 스승이 없고,

지상에도 천상에도 나와 동등한 존재도 없도다.

나는 비길 데 없는 스승이며, 아라한이며,

나 혼자만이 가장 높이 깨달았도다.

모든 번뇌를 끄고

열반의 고요를 이루었도다.

나는 법의 바퀴[法輪]를 굴리러

까아시의 도성(베나레스)으로 가노라.

무지가 군림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는

불사(不死)의 북을 울릴 것이니라.


“벗이여! 당신은 일체의 승리자라는 말이군요.”하고 우빠까는 말했다. 이에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번뇌의 멸진을 이룬 사람들, 실로 그들이야말로 바로 나와 같은 승리자이노라. 일체의 악을 나는 정복했노라. 그래서 나는 승리자로다.”


우빠까는 머리를 흔들고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럴는지도 모르지요.”


그러고는 딴 길로 떠나가 버렸다.


부처님은 길을 따라 여행을 계속하시어 마침내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도착하셨다.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멀리서 본 다섯 고행자들은 서로 수군거렸다.


“벗들이여! 저기 고행자 고따마가 오고 있소. 그는 고행을 포기하고 호사스런 생활로 되돌아간 사람이오. 그가 오면 아무런 인사도 하지 맙시다.”


그러나 부처님이 가까이 다가가시자 그들은 부처님의 위엄에 눌리어 자신들의 애당초 생각을 지킬 수 없었다. 한 사람은 마중 나가 발우와 가사를 받아 들었고, 다른 사람은 자리를 준비하고, 또 다른 사람은 씻을 물을 가져다 드렸다. 마련해 드린 자리에 부처님께서 앉으시자, 다섯 고행자들은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전처럼 동등한 입장에서 ‘벗이여(āvuso)!’ 하고 인사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여래(如來)를 벗이라는 말로 불러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여래는 (해야 할 일을) 해 마친 사람[應供:아라한]이며, 위없는 높은 깨달음을 성취한 사람[無上正等覺者]이니라. 잘 들어라! 비구들이여, 불사(不死)는 성취되었도다. 나 이제 그대들에게 가르쳐줄 것이다. 그대들에게 법을 설해 주겠노라. 나의 가르침을 따르면, 그대들은 바로 이 생에서 그대들 스스로의 힘으로 출가수행의 목적인 무상(無上)의 청정을 깨닫고 실현하게 될 것이니라.”


그러자 다섯 사문은 “벗, 고따마여! 당신은 이전에 그처럼 금욕과 고행, 그리고 자기학대를 격렬하게 할 때도 초인적 눈과 지혜를 얻지 못했소. 이제 고행을 포기하고 사치와 방종에 빠진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초인의 눈과 지혜를 얻었다는 말이오.” 하고 반문했다.


그러자 부처님은 대답하셨다.


“여래는 정진을 그만 두고 사치와 풍요의 생활로 돌아선 적이 없노라. 여래는 해 마친 사람이며 지고한 각자이니라. 잘 들으라, 비구들이여. 불사(不死)는 성취되었노라. 내가 그대들을 가르치겠노라. 법을 그대들에게 설해 주겠노라.”


두 번째도, 비구들은 부처님께 똑같은 말을 하였고, 부처님도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세 번째도 비구들은 똑같은 반문을 하였다. 부처님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태도를 바꾸려 들지 않았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일찍이 내가 그대들에게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지 말해보라.”


이와 같이 간절하신 부처님 말씀에 감복한 다섯 고행자들은 비로소 승복하게 되었다.


“아닙니다. 그런 적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상의 현자, 자신을 조어(調御)하신 분께서는 참을성과 친절로, 지혜와 방편으로 다섯 고행자의 마음을 조복시켰다. 부처님의 말씀에 감복하고 확신을 갖게 된 사문들은 드디어 가르침을 받아들일 자세를 갖추게 된 것이다.


중도(中道)


그 날, 서기전 528년 7월 보름날 저녁, 해가 지면서 때 맞춰 달이 막 떠오르고 있어, 그림자가 드리워진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서 부처님은 그들에게 법을 설하기 시작하셨다.


“비구들이여, 이 두 가지 극단은 출가자들이 가까이 해서는 안 되느니라.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감각적 쾌락에 빠지는 일이니 이는 저열하고, 천박하며, 세속적이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익됨이 없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고행이니 이는 고통스럽고, 성스럽지 못하며 이익됨도 없다.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들 극단을 피해서 중도를 깨달았느니 이는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가져오며 적정과 신통지, 깨달음 그리고 열반으로 이끈다. 비구들이여! 그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여덟가지 길[八支聖道]이다. 즉,


정견(正見 : 바른 견해)

정사(正思 : 바른 생각)

정어(正語 : 바른 말)

정업(正業 : 바른 행위)

정명(正命 : 바른 생활수단)

정정진(正精進 : 바른 노력)

정념(正念 : 바른 마음챙김)

정정(正定 : 바른 정)이다.”


다시 부처님은 그들에게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다. 고(苦), 고의 일어남[苦集], 고의 멸[苦滅], 고의 멸에 이르는 길[苦滅道]의 네 가지 성스런 진리가 바로 그것이다.30)


이렇게 지고하신 부처님께서는 진리를 선포하심으로써 마침내 법의 바퀴(Dhamma-cakka)를 굴리기 시작하셨다. 이 첫 법문, 녹야원의 메시지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다. 땅 위를 걷는 모든 생물의 발자국이 코끼리의 훨씬 큰 발자국에 담길 수 있는 것과 같이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포괄된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각 항목을 설명하시면서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비구들이여!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법들에 관해서 눈[眼 cakkhu]이, 지(智 ñāṇa)가, 혜(慧 paññā)가, 명(明 vijjā)이, 광(光 āloka)이 나의 내면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관한 나의 통찰지혜[知見 ñāṇadassana]가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것으로 밝혀지기 전에는 나는 결코 자신이 비할 바 없는 지고의 깨달음[無上正等覺]을 얻었다고 선언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런 진리에 관한 나의 지견이 움직일 수 없는 확실한 것으로 분명해지자 그때 비로소 나는 비할 바 없는 지고의 깨달음을 얻었음을 선언했던 것이다. 그러자 다시 나의 내면에 지견이 솟아났다. 즉 내 마음의 해탈[心解脫]이 확고부동하며(akuppā me ceto vimutti), 금생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더 이상의 몸받음[再生]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31)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다섯 비구는 환희에 차서 세존의 말씀을 찬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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