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필독!초기경전/4. 고요한소리

부처님. 그 분(3)

  불전에 나오는 여인들


부처님 당시의 인도에서는 바라문교의 영향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별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때로는 남성의 예속물로서 천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당시 여성들 중에도 철학적 문제와 같은 지적 분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는 예가 더러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성들의 지위가 현저히 상승된 것은 역시 부처님의 덕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과 큰 도량으로 언제나 여성들을 자상하고 정중하게 대하셨으며 그들에게도 똑같이 청정 그리고 성스러움에 이르는 고귀한 길을 가르쳐 주셨다.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집안에 계신 친구요, 아내는 남편에게 최상의 벗이다.”72)


암바빨리는 평판이 좋지 못한 여자였지만 부처님께서는 그 여인의 공양 초대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여인이 올리는 음식을 다 드신 다음, 보답으로 법의 선물(법공양)을 주셨다. 그 가르침을 받고 깊이 신심을 일으킨 여인은 지금까지의 불성실했던 세속 생활을 청산하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그리고 매우 열심히 정진한 끝에 드디어 성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부처님이 그 크신 자비심으로 여인들을 도와주신 예로서 끼사고따미의 얘기를 빠뜨릴 수는 없다. 불교의 지혜와 자비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감명깊은 일화이기 때문이다.



사와티 태생인 끼사고따미는 고따마족이었고 따라서 부처님과는 친척이 되는 셈이다. 너무나 몸이 야위고 연약해서 사람들이 끼사(말라깽이)고따미라고 불렀다. 여인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과 결혼해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아기는 걸음마도 하기 전에 갑자기 병에 걸려 죽어버렸다. 아기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을 안겨주었다. 오직 하나뿐인 외아들을 향한 한없는 모정 때문에 어머니는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슬픔에 가슴이 메어져 정신이 나간 여인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기를 살려낼 약을 구하러 미친 듯이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그러나 사와티 성의 어떤 의사도 죽은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헤매던 끝에 마침내 부처님 앞에까지 이르게 된 여인은 죽은 아기를 세존의 발아래 내려놓으면서 자기 아들의 생명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대비주(大悲主)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누이여! 좋은 영약이 있느니라. 내가 그대의 고통을 치유해 줄 테니 가서 겨자씨를 얻어 오너라. 그러나 고따미여! 겨자씨를 얻을 때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서 얻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라.”


그러자 고따미는 곧 마을로 쫓아가서 겨자씨를 구하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동정심에서 모두 겨자씨를 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 많은 집 중에 어디에도 사람이 죽지 않았던 집은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헤매던 고따미는 마침내 죽는다는 게 얼마나 보편적인 사실인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세상의 그 모든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들이 덧없다는 것을, 또 모든 만남은 이별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생명은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슬픔에서 벗어나게 된 여인은 죽은 아기를 시체 안치장에 안치한 후 사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이 법,

이는 마을의 법도 도시의 법도 아니네.

이 씨족의 법도, 저 씨족만의 법도 아니네.

온 세상 아니 천상세계마저도

이 법에선 벗어날 수 없네.”73)


부처님의 지도하에 끼사고따미는 무상이야말로 모든 조건 지어진 존재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첫 번째 성위인 예류과를 성취했다.

이 밖에도 부처님께서 삶의 간난신고로 고통받는 여인들을 위로하고 도와주신 예는 수없이 많다.


 환자를 보살피시다


병든 사람들에 대한 부처님의 자비심 또한 각별하셨다. 한 번은 뿌띠가따 띠싸라는 비구가 궤양에 걸려 더러운 침대에 누워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부처님이 보셨다. 그 즉시 스승께서는 따뜻한 물을 준비하시어 아난다 존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손수 이 병든 비구를 씻어주고 자상하게 병구환을 해주셨다. 그런 다음 법을 설하시어 이 병자가 죽기 전에 아라한과를 성취하도록 도와주셨다. 띠싸 아라한이 입적하자, 장례식을 법에 맞추어 거행한 다음 부처님은 탑을 세워 그의 유골을 안치하도록 조치하셨다.74) 그 외에도 여러 번 스승께서는 병든 비구들을 몸소 돌보아 주셨으며 제자들에게도 다음과 같이 촉구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를 시중들 듯 그 마음으로 환자를 시중들도록 하라.”75)


이렇듯 부처님의 사랑은 너무나 커서 측량할 길이 없고 너무나 넓어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제자들에게도 이러한 사랑의 마음을 간곡히 가르치셨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자식을 그것도

하나뿐인 자식을

다치지 않도록 보호하듯이

너희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빠짐없이 감싸는 생각을

온전히 지키도록 하라.76)


부처님의 가르침이 언제나 자비로 넘치고 있듯 부처님의 행동도 한결같이 자비심으로 가득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눈을 뜨게 하고, 환희에 젖게 만들며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편력하는 동안 부처님은 무지로 말미암아 삿된 견해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신을 섬기기 위해 짐승을 도살하는 광경을 수없이 목격하셨다. 이들에게 부처님은 타이르셨다.


“생명이란 

누구나 뺏을 수는 있지만,

줄 수는 없는 것.

모든 생물은 제 목숨을 사랑하여 지키려 애쓰네.

목숨은 경이롭고, 소중하고, 즐거웁다네,

비록 하찮아 보이는 미물에게도.”77)


실로 당시는, 사람들이 신에게 자비를 구한답시고 무자비한 짓을 서슴지 않던 시절로, 제멋대로 신을 상정하고는 그 제단에 무고한 동물들을 희생으로 올림으로써 오히려 신을 모독하는 끔찍한 짓거리를 자행, 전 인도를 피로 얼룩지게 만들던 시절이었으며, 고행자와 바라문들의 그릇된 의례 의식 때문에 인간은 재앙을, 동물들은 단말마의 고통을 겪어야만 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절에 자비의 화신인 부처님이 나타나서 일찍이 모든 깨달은 분들이 가셨던 그 옛길, 사랑과 이해로 충만한 정의로운 그 길을 다시 찾아내어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평온과 침착


득과 실, 호평과 악평, 찬탄과 비난, 고통과 행복78) 등등의 온갖 생의 우여곡절이 부침하는 와중에 처해서도 부처님은 조금도 흔들리는 일이 없으셨다. 단단한 바위처럼 그분은 요지부동이셨다. 행복한 일이 생겼다 해서 의기양양해 하지도 않았고, 불행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의기소침해 하지도 않았다. 물론 언쟁이나 적개심을 조장하는 일은 더욱이나 없으셨다.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과 더불어 싸우지 않노라. 세상이 나를 두고 싸우려들 뿐이노라. 법을 설하는 자는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싸우지 않노라.”79)


또 제자들을 이런 말씀으로 훈계하고 계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여래를 헐뜯고, 법을 헐뜯고, 승단을 헐뜯는다 해서 그 때문에 난처해하거나 적대심, 악의 따위를 품어서는 안 되느니라. 비구들이여! 너희들이 그 때문에 못마땅해 하거나 성을 내면 정신적 향상에 방해를 입을 뿐 아니라, 그들의 말이 어디까지 옳고 어디까지 그른지 판단할 수 없게 되고 만다. 너희들은 그런 때에 사실이 아닌 것은 해명함으로써 모든 것을 분명히 밝혀주도록 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또한 남들이 여래를 추켜올리고, 법을 추켜올리고, 승단을 추켜올려 말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우쭐해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너희들의 내면의 성숙에 큰 장애가 될 뿐이다. 그런 때는 옳은 말은 옳다고 인정하고 그 옳은 까닭을 설명해줘야 한다.”80)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반대자나 적대자에게까지도 불친절한 언사를 쓰신 경우는 한 번도 없으셨다. 부처님과 그 법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부처님은 결코 그들을 적으로 보지 않으셨다. 남들이 격렬한 어조로 비난해 올지라도 부처님은 성을 내시거나 혐오감을 품거나, 불친절한 말을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전장에서 코끼리가

날아오는 화살을 견뎌내듯

그처럼 나는

남들의 비방과 적대적 안색을 참아내리라.”81)


 데와다따


부처님의 위와 같은 인욕정신은 데와다따와의 관계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데와다따는 부처님의 사촌으로 승단에 들어와 범부의 신통력을 얻은 사람이었다. 뒷날 그는 승단의 지도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게 되면서 부처님과 두 수제자 사리뿌따, 마하 목갈라나에 대해 시기심과 악의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데와다따는 마가다 국 빔비사라 왕의 아들인 젊은 아자따사뚜 왕자에게 접근하여 교묘히 비위를 맞추어 가면서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이 웰루와나 정사에서 왕을 비롯한 많은 대중들에게 법문을 설하시고 계실 때 데와다따가 부처님에게 다가와 인사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이제 연로하시어 기력도 쇠잔해지셨습니다. 스승님은 모든 근심, 걱정을 벗어나 은거생활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승단은 제가 이끌어 가겠습니다.”


부처님이 이 제안을 거부하시자, 데와다따는 당황하여 화를 내면서 부처님에게 증오와 악심을 품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그 길로 그는 못된 흉계를 품고 아자따사뚜 왕자를 찾아가 왕자의 감춰진 야심에 불을 붙이는 말을 했다.


“왕자님이여! 부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차지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죽기 전에 언제 지배자가 되어 보겠습니까? 나는 세존을 죽이고 승단의 지도자가 되겠습니다.”


아자따사뚜가 아버지인 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자, 데와다따는 불한당들을 매수하여 부처님을 해치려 했다. 그러나 그 일이 실패하자 다시, 부처님이 라자가하에 있는 기자꾸따 언덕을 오르고 계시는 기회를 틈타 그 자신이 직접 바위를 세차게 던져 굴렸다. 바위는 굴러내리다 둘로 쪼개지면서 조그만 파편이 부처님에게 튕겨 발에 가벼운 상처를 내었다.


그 후에 다시 데와다따는 코끼리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만든 다음, 부처님을 향해 내몰았다. 그러나 이 짐승은 부처님의 자애의 힘에 눌려 부처님 발 앞에 꿇어 엎드려 버렸다.


다시 데와다따는 승단 내에 분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렇게 일으킨 불화도 길게 끌어지지를 않았다. 모든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자, 데와다따는 실의에 빠져 물러났다. 얼마 안 되어 그는 병이 들었고 병상에서 자신의 어리석었던 짓을 뉘우친 끝에 부처님을 친견하기를 소망했다. 그러나 이 소망은 실현되지 못했다. 들 것에 실려 부처님께 가던 중 운명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기 전 그는 참회의 말을 하면서 부처님에게서 귀의처를 구해마지 않았다.82)


 마지막 나날들


세존의 입멸을 그린 『대반열반경』83)은 부처님 생애의 마지막 몇달 동안에 일어났던 사건들을 빠짐없이 소상하고 실감나게 기록하고 있다.


이제 세존께서는 팔십의 고령에 다다르셨고, 그의 두 수제자 사리뿌따와 마하 목갈라나는 이미 석달 전에 입적했다. 고따미 빠자빠띠, 야소다라, 라훌라도 이미 이 세상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때 부처님은 웨살리에 계셨다. 우기가 닥쳐오고 있었으므로 많은 비구대중과 더불어 우기를 나기 위해 벨루와로 가셨다. 거기서 중병이 부처님을 엄습하여 심한 통증을 일으켰으나 세존께서는 침착한 가운데 정념을 유지하며 이를 견디셨다. 바로 죽음의 문턱에까지 이르렀지만 승가대중에게 유훈도 남기지 않고 입적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엄청난 의지력으로 병과 싸워 이겨내심으로써 생명의 가닥을 이어 나가셨다. 점차 병환이 호전되어 마침내 완전히 회복되자 그는 시자인 아난다 존자를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고 나이도 찼다. 내 여행은 이제 막이 내려지고 있다. 내 수명은 다 되어 이제 여든에 접어들었다. 아난다야! 낡은 수레를 굴리려면, 가외로 신경을 많이 써야 되는 것처럼 여래의 육체도 의지력을 많이 기울여야 간신히 지탱할 수 있다. 여래의 육신이 편안하려면 여래가 바깥 경계에 마음을 써서 속세의 희로애락을 같이 나누어야 하는 이 고된 일을 그만두고 무상정(無相定)84)에 들어 거기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아난다여! 따라서 그대 자신을 자기의 섬으로 삼을지니라. 그대 자신을 자기의 의지처로 삼을지니라. 남을 의지처로 기대서는 안되느니라. 법을 섬으로 삼고 굳게 붙들지니라. 법을 의지처로 삼고 굳게 붙들지니라. 다른 어떤 피난처에도 의지하려 들어서는 안되느니라. 아난다야! 지금도, 내가 간 다음에도, 누구든지 자신을 섬으로 삼아야 할지며,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야 할지며, 어떤 바깥 피난처에도 의지하려 들어서는 안되느니라. 아난다야! 이렇게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내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이 될 것이니라! 다만 그들은 모름지기 향상하려는 의욕으로 충만해 있어야 하느니라.”


벨루와를 떠나 부처님께서는 마하와나로 여행을 하셨고, 거기에서 웨살리 근처에 머물고 있는 승려들을 모두 모이게 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내가 깨친 대로 법을 그대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대들은 법에 정통하도록 노력해서 이를 닦고, 이에 대해 명상하고, 널리 이를 펴도록 하라. 이 세상에 대한 연민에서, 신들과 인간들의 선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부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법문을 마치셨다.

“내 나이 이제 가득 차서 생은 바야흐로 끝나려 한다.

나는 너희들을 떠난다, 오로지 나 자신에 의지하여 나는 가노라!

비구들이여! 부디 방일하지 말고 힘써 마음 챙기며 계율을 잘 지켜라!

결의를 굳건히 다져라! 네 자신의 마음을 빈틈없이 지켜보라!

이 교법과 계율85)을 싫증내지 않고 단단히 붙드는 사람은 생의 바다를 건너가 비탄을 끝내게 될 것이다.”


이제 병에 지쳐, 허약해진 몸으로 세존께서는 힘들게 여행을 계속하셨다. 아난다 존자와 수많은 대중들이 그분을 수종했다. 이렇듯 길고 피곤한 마지막 여행 중에서도 부처님은 남을 보살피는 마음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마지막 공양을 올린 대장장이 쭌다에게 법문을 설하여 제도하시고, 또 도중에 만난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 뿌꾸사를 위해서도 가던 길을 멈추고 일일이 질문에 대답하여 제도함으로써 그를 부처님과 법과 승단을 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발심시켜 주셨다.


세존께서는 드디어 꾸시나라 (또는 꾸시나가라)의 말라 족들의 살라나무 숲에 도달하셨다. 바로 그의 길고 먼 여행의 종착지였다. 이곳이 마지막 휴식처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계신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피곤하구나. 아난다여, 눕고 싶다. 저 두 그루 살라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하여 자리를 펴다오.”


그러고서는 정념(正念)과 정지(正知)를 이루신 채 한 다리를 다른 다리에 포개고 오른쪽 옆구리를 바닥에 대고 자리에 누우셨다. 다시 아난다 존자에게 일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크거나 작거나 본분을 다하는 사람, 법다이 처신하여 올곧게 삶을 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값진 경의로 여래를 올바로 존경하고, 예배하고, 경모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아난다여! 그대는 크거나 작거나 본분을 다하도록 성실하라. 법다이 처신하여 올곧게 살도록 하라. 아난다여, 이와 같이 노력할지니라.”


 마지막 귀의자


그때 마침 수밧다라는 떠돌이 고행자가 꾸시나라에 있던 중 부처님의 입적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평소에 고뇌하던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부처님께 여쭈어보려고 급히 살라나무 동산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는 부처님이 가시는 마지막 순간을 번거롭게 해드리기를 원치 않아서 친견 기회를 좀처럼 허락해 주지 않았다. 그들 간에 오고 가는 얘기를 등 너머로 들으신 세존께서는 수밧다가 순수한 구도심에 차있으며, 몇 마디만 일러 주어도 깨달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바로 아시고는 아난다 존자에게 그를 들여보내라고 이르셨다.


수밧다의 의문은 다른 여러 사상유파의 지도자들, 즉 뿌라나 까사빠, 니간타 나따뿌따 등등이 과연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했는가 하는 문제였다. 세존께서는 그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밧다여! 어떤 교법과 계율이든지 그 안에 팔정도가 없으면 어떤 성위(聖位)도, 그것이 첫 번째 성위이든 두 번째 성위이든 또는 세 번째이든, 네 번째이든 그 어느 단계의 성위도 바르게 얻은 사람이 있을 수 없노라. 수밧다여! 어떤 교법이나 계율이라도 팔정도가 거기에 있으면 그 교단에는 첫 번째 단계의 진정한 성인도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단계86)의 진정한 성인도 반드시 있는 법이니라. 나의 이 교법과 계율에는 팔정도가 있으며, 또한 그 모든 단계의 성위를 각기 바르게 이룬 사람들이 있느니라. 다른 스승들의 가르침에는 팔정도도 진정한 성인도 찾아볼 수 없느니라. 수밧다여! 이 교단에서는 수행자들이 올바른 삶을 누릴 수 있느니라. 그 덕으로 이 세상에 아라한이 끊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니라.”87)


세존의 이와 같은 말씀을 듣자 수밧다는 신심이 우러나 부처님과 법과 승단에 귀의하였다. 뿐만 아니라 승단에 들어오기를 원하였고, 부처님은 아난다 존자에게 그를 받아들이도록 이르셨다. 이리하여 수밧다는 부처님께서 손수 귀의시킨 마지막 개종자이자, 마지막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애써 노력한 결과 오래지 않아서 최고의 성위인 아라한위를 성취했다.


마지막 정경88)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대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른다. ‘스승의 말씀은 끝났다. 우리는 이제 스승 없이 지내야 한다.’ 그러나 아난다여!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느니라.”


“내가 간 후에는 내가 설한 법과 내가 정한 율을 너희들의 스승으로 삼도록 하여라.”


“비구들이여! 어떤 형제들은 마음속에 붓다나, 법이나, 길(magga)이나, 길을 나아가는 방법(paṭipadā)에 대해서 의심이 남아 있을 수도 있다. 비구들이여, 마음 놓고 물어라. 다음에 이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탓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즉 ‘그때는 스승을 마주 대하고 있으면서도 세존께 여쭙지 못하고 말았다’고.”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잠잠히 침묵을 지켰다. 두 번, 세 번, 부처님은 비구들에게 똑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셨고 비구들 역시 똑같이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세존이시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저는 실로 여기 모인 비구들 가운데 붓다와 법과 길과 길을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의심이나 의혹을 가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고 믿습니다.”


세존께서도 아난다 존자의 말을 승인하시면서, 덧붙여서 여기 모인 모든 대중은 수행이 가장 뒤쳐진 사람까지도 반드시 구경의 해탈을 장차 얻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고서는 잠시 후 세존께서는 지금도 또 미래에도 당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싶어 하는 이 대중들에게 마지막 유훈을 남기셨다.


“그럼 잘 들어라, 비구들이여!

내 너희들에게 간곡히 이르노라.

모든 형성된 것은 영원하지 않다[諸行壞法].

방일하지 말고 힘써 정진하라.

(Vayadhammā saṃkhārā, appamādena sampādetha)”

이것이 부처님의 유훈(遺訓)이셨다.89)


그러고서 부처님께서는 아홉 단계의 선에 차례대로 드셨다. 먼저 네 가지 색계선에, 다음에는 네 가지 무색계선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상멸처정(受想滅處定)에 드신 것이다. 그런 다음 거꾸로 이 모든 단계를 거슬러 내려와 초선에 이르신 다음 다시 제4선에까지 올라가셨다. 평온에 기인하여 정념(正念)의 청정을 이룸을 특징으로 하는 제4선에 다시 드시자 거기서 곧바로 반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은 마침내 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90)을 실현하신 것이다.


역사기록을 아무리 찾아봐도 부처님처럼 카스트, 계급, 또는 신앙에 관계없이 일체 중생의 행복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치신 분은 달리 또 찾아볼 수 없다. 깨달은 그 시간부터 생을 마친 그 순간까지 그 분은 인류를 향상․성숙시키기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온 힘을 쏟으셨다. 그분은 공익을 위한 노력을 잠시도 늦춘 적이 없었고,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본 적이 없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항상 건강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정신적으로는 언제나 또렷이 깨어 있어 활기에 넘치셨다.


이제 부처님께서 반열반에 드신 지 2,500여년이 지났지만 그 분의 사랑과 지혜의 메시지는 인류의 운명에 결정적 영향을 끼치면서 순수한 그대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부처님의 사리탑 앞에는 매일같이 꽃이 숲을 이루며 바쳐지고 있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일같이 ‘나는 부처님께 귀의합니다(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를 거듭 외우고 있다. 그 분의 위대함은 약한 불빛을 흡수해 버리는 태양과도 같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광명을 발하고 있고, 그 분의 법은 여전히 세파에 지친 순례자들을 열반의 안전과 평화 속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저자에 관하여


삐야다시 스님은 스리랑카 태생으로 출가 전에 날란다 대학과 스리랑카 대학에서 수학했다. 20세에 득도, 스리랑카의 저명한 고승인 와지라냐나 상가 나야까(Vajiranyana Saṅgha Nayaka) 스님 밑에서 불법을 닦았음.


  현재는 스리랑카 지도급 승려로서 힘있는 설법과 라디오 전파를 통한 포교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동서양을 널리 여행하면서 불법의 메시지를 전하는 한편, 여러 국제 종교회의와 문화적인 모임에 남방불교 대표자로 참여하고 있다. 또한 스리랑카 불자출판협회(Buddhist Publication Society, BPS) 간행시리즈의 싱할리어 본(本) 출판물 「Dams-ak」의 편집자이기도 하다.


  저서안내

The Book of Protection:Parittā Recitals in English Translation (BPS)

The Seven Factors of Enlightenment (Wh. 1)

Dependent Origination (Wh. 15)

The Psychological Aspect of Buddhism (Wh. 179)

Buddhism : A Living Message (BPS)

Four Sacred Shrines (BL. B 8)

The Threefold Division of the Noble Eightfold Path (BL. B 32)

Buddhist Observance and Practices (BL. B 48)

The Story of Mahinda, Sanghamitta and Sri Maha Bodhi (BL. B 57)

--------------------------------------------------------------------------------

1) 쟈와할랄 네루, 『인도의 발견』 켈커타 판 143쪽. ∥원문으로∥

2) 같은 책 137쪽.

3)〔역주〕리스 데이비즈(Dr. T. W. Rhys Davids) : 영국의 언어학자.  19세기말부터 20세기 전반에 걸쳐 부인과 더불어 빠알리어와 근본불교 연구에 큰 기여를 했음. 특히 빠알리성전협회(Pāli Text Society. 약자로 P.T.S.)를 창설, 초대 회장직(1881~1922)을 맡아서 빠알리경의 로마자(字) 표기 영역사업을 헌신적으로 전개, 서방세계에 근본 불교를 소개 보급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음. 『장부(Dīgha Nikāya)』의 영역 등 많은 저술이 있으며, 특히 빠알리-영어사전(Pali-English Dict, 1921)은 오늘날에도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불후의 대작이다.

4) 여기에서 종교(religion)라는 말은 흔히 이해되고 있는 서구적인 의  미에서가 아니라 ‘삶의 방식(way of life)’이란 뜻으로 씀.

5) 산스크리트어로는 Gautama(성) Siddhartha(이름).∥원문으로∥

6)〔역주〕아쇼카 황제 : 인도를 최초로 통일시킨 영주(英主). 보리수잎․일곱『미래의 종교, 불교������ 주해 5) 참조.

7)〔역주〕커닝엄(Cunningham, 1814~1893) : 영국 웨스트민트 출생. 인도 고고학의 아버지라 불림. 원래 엔지니어였으나 1831년 이후 인도 고고학에 전념. 1834~1854년까지 마니칼라, 사르나트, 비슬라 등의 유적을 발굴. 유적지 발굴을 통하여 불교역사의 재발견을 이룸. 만년에는 화폐학연구에 전념하다가 런던에서 죽음. 논문은「캐시미르 사원에 대한 일련의 저작」외 24권의 고고학 보고서가 있으며 인도역사가들에게는 귀중한 문헌이다.

8) 에드윈 아놀드, 『아시아의 빛』 보스톤 1914.

9) 같은 책.

10)〔역주〕부처님의 아들 이름인 라훌라(Rāhula)는 빠알리어로 장애라는 뜻이다.∥원문으로∥

11)『증지부』 i권, 38경, 146쪽.

12) 보살[菩薩  Bodhisatta, 산스크리트어로는 Bodhisattva) : 원시경전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의 부처님을 부를 때만 보살이란 말을 쓴다. 깨달음이라는 이상, 또는 사성제에 관한 지혜[보리 Bodhi]를 추구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란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말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깨달음[正等覺  sammāsambodhi]이란 큰 목적을 향해 매진하고 있는 구도자에게 특별히 적용된다. 보살은 열 가지 수행의 극치[십바라밀(pārami : 완성)]를 닦는다. 이 십바라밀은 성불을 추구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적 덕목으로서 자비에서 비롯되고 시종 이해성 있는 예지나 아니면 민첩한 영민성이라는 그 기본 색조를 띠고 있으며 갈애와 삿된 견해 그리고 자만에서 벗어나 있는 극히 높은 수준의 자질로서, 구체적으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보시(布施 dāna), 지계(持戒 sīla), 출리(出離 nekkhamma), 지혜(智慧 paññā), 정진(精進 viriya), 인욕(忍辱 khanti), 진실(眞實 sacca), 결의(決意 adhiṭṭhāna), 자애(慈愛 mettā), 평온(平穩 upekkhā). 이상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십바라밀은 대승불교의 그것과는 다름.

13) 자세한 내용은『중부』36경 참조.


14) 이 나무는 후에 보리수 즉 깨달음의 나무, 또는 지혜의 나무라 불리게 됨.

15)〔역주〕출입식념 : 정신 집중과 4선(四禪)에 도달하는 훈련 중 가   장 중요한 것의 하나. 「염처경」(『중부』10경, 『장부』22경)과     「출입식념경」(『중부』118경) 등 참조.∥원문으로∥

16)『중부』36경, 「마하 사짜까 경」.

17) 다른 경에서는 네 번째 번뇌로, 그릇된 견해[見漏 diṭṭhāsava]를 추가하고 있는 경우도 있음.

18) 더 이상 심신(心身)이 연속되지 않는다는 말. 다시 태어남, 즉 윤회가 끝났다는 뜻.

19)『중부』36경.

20)〔역주〕『법구경』153, 154게. 이 두 게송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신 직후 깨친 감회를 읊으신 것이다. 여기서 집은 몸을 의미하고, 집짓는 이는 갈애를, 서까래는 때[坵 kilesa]를, 마룻대는 무지[無明]를 의미한다.∥원문으로∥

21)〔역주〕오월 보름날 : 남방 전통에서는 부처님의 탄신일과 성도일 및 열반일을 오월 보름에 지키고 있다.

22) 여섯 감수계[六入] : 다섯 개의 육체적 감각기관 즉 눈․귀․코․혀․몸과 의식을 말함.

23)『감흥어(Udāna)』1장, 삐야다시 스님의『연기법(Dependent Origi-

    nation)』(The Wheel No.15, BPS 간행) 참조.

24) 이때는 승단이 아직 구성되지 않았었음.

25) 율장『대품(大品)』∥원문으로∥

26)『중부』 26경.

27)〔역주〕불안(佛眼 Buddhacakkhu) : 부처가 갖추게 되는 완전한 직관 능력. 오안(五眼)의 하나. 남방전통에서 말하는 오안은 다음과 같다. 1. 육안, 2. 천안, 3. 혜안, 4. 불안, 5. 보안(普眼 samanta cakkhu-두루 빠짐없이 살피는 눈)

28)『중부』26경, 「성구경(聖求經)」 169쪽.

29) 이시빠따나(Isipatana) : 선인들이 잘 모이는 곳이란 뜻으로 오늘날의 사르나트.

30) 사성제에 대한 개괄적 설명은 저자의『부처님의 옛 길(The Buddha's Ancient Path)』참조.  보다 자세한 설명은 냐나몰리 스님의『세 주요 법문(Three Cardinal Discourses)』(The Wheel No.17 BPS 발행)과 프란시스 스토리의 『사성제』(법륜․열다섯, 고요한소리 발행, The Wheel No. 34, 35 BPS 발행)’, 냐나띨로까 스님의 『붓다의 말씀(The Word of The Buddha)』(김재성 역, 고요한소리 발행) 참조.∥원문으로∥

31)『상응부』V권,「전법륜경」420쪽.

32)『상응부』V권, 437쪽.

33)『중부』22경, 「뱀의 비유의 경」140쪽.

34)『숫따니빠따』558게, 『중부』92경, 율장 i 245, 『장노게송집』828게.

35) 아쇼카 황제는 이 성스러운 지점을 순례하고서 많은 건조물을 세웠는데, 그 중에서도 기운찬 사자 네 마리를 새긴 대접받침[柱枓]의 석주는 그 대표적인 것이다. 이 대접받침은 법륜을 떠받치고 있어 불법의 흥륭을 상징하는데, 지금은 사르나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며, 오늘날 인도의 공식적 국가 상징으로 쓰이고 있다. 그리고 이 날을 기리는 법륜제(法輪祭)가 지금도 스리랑카에서 봉행되고 있다. 쟈와할랄 네루는 이렇게 적고 있다. “베나레스 근처 사르나트에서 나는 부처님이 첫 법문을 설하고 계시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경에 나오는 말씀들이 2500년의 세월을 가로질러 곧장 나의 귀에 먼 메아리처럼 다가오는 것 같았다. 명문에 새겨진 아쇼카의 석주는 그 장엄한 언어로 나에게 한 인간, 황제였지만 황제 이상으로 위대했던 한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인도의 발견』 44쪽에서)∥원문으로∥

36) 우기(vassa) : 인도에서는 7월에서 10월까지 석달 동안 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계속 와서 우기를 이룸. 인도의 계절을 대강 세 절기로 구별하여 11월~2월은 건량기(乾凉期), 3월~6월은 건서기(乾暑期), 7월~10월은 습서기(濕暑期) 즉 우기라 부름. 와사(vassa)는 또한 우안거(雨安居)를 뜻함.

37) 율장『대품������의「건도부(楗度部)」

38) 현재 베나레스 북동 120마일 떨어진 우따라 쁘라데쉬 지방. 당시 말라인들의 말라국은 둘로 나뉘어, 꾸시나라는 그중 한쪽의 수도였다.

39) 인도의 그 많은 리쉬(예지자) 중 최대의 리쉬이신 부처님이 공원의 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셔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시고, 사슴동산(녹야원)의 나무 아래에서 법륜을 굴리셨으며, 마지막으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는 점을 살펴볼 때 누구나 특별한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부처님은 그 생애의 대부분을 숲과 마을의 공지에서 보내셨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셨던 그 보리수의 남쪽 가지를 아쇼카 황제의 딸이며 아라한인 장로니(長老尼) 상가미따가 스리랑카의 아누라다뿌라에 갖다 심어 지금도 잎이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이 보리수가 기록상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이다.

40)〔역주〕예류과(預流果 sotāpattiphala) : 최초의 성과(聖果). 유신견,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불법에 대한 의심의 세 족쇄를 끊었기에 다시는 악도에 떨어지지 않으며 일곱생 내에는 성불하게 된다.∥원문으로∥

41)〔역주〕제따와나 정사 : 기수급고독원에 지은 절. 원래 제타 태자의 동산이었으나 아나타삔디까 장자가 이 땅을 사서 부처님께 바치고, 태자는 또 그 숲을 바쳤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이름을 합하여 기수(제따의 숲) 급고독원 (급고독의 동산 즉 아나타삔디까의 동산)이라 함.

42)〔역주〕쌍신변(雙身變) : 부처님이 외도를 항복받기 위해 보이신 신통의 하나. 일련의 대우(對偶)신통으로 상체에서 물줄기를 내뿜는 동시에 하체에서는 불꽃을 내뿜고, 또 그 반대도 현출하며 한쪽으로는 불을 다른 쪽으로는 물을 내뿜기도 하고, 전신의 구멍에서 6가지 광채를 발해 위로는 범천을, 아래로는 철위산 끝까지 비추는 등 부처만이 보일 수 있는 신통.

43)〔역주〕남방전통에 의하면 부처님이 성불하신지 7년째 되던 해에 외도들의 도전에 응해 사와티에서 중인환시리(衆人環視裏)에 쌍신변을 보이신 후 그 끝맺음으로 옛 부처님들의 선례에 따라 단 세 걸음에 삼십삼천에 오르셨다. 거기서 그 해의 우기가 다할 때까지 머물면서 생모 마하마야를 위해 천신들에게 법을 설하셨다 함. 다른 전거에 의하면 마하마야가 다시 태어난 곳은 도솔천이며 이름은 마야천자(Mayadevaputta)로 법문을 듣기 위해 삼십삼천에 왔었다고 한다.

44) 이 법문의 전문(全文)은 『증지부』 iv, 354와 『감흥어』34쪽에 나온다. 『법구경』주석서 i 287과 『장노게송집』66 게송에도 간략히 언급되어 있다. 원래 메기야 존자는 석가족의 왕족출신이라고 한다. 이 이야기와 관련있는 『법구경』의 33, 34 게송은 다음과 같다.


    “안정되지 않고 변덕부리는 마음은

     지키기 어렵고 제어하기 어렵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을 바룬다.

     활 만드는 사람이 화살을 곧게 하듯”

    “물에서 잡혀나와

     땅위에 던져진 물고기처럼

     이 마음은 몸부림친다.

     (따라서)‘마라의 영역’(열정)은 떠나버려야 한다.”

45)『법구경』 147게.∥원문으로∥

46)〔역주〕죽음의 염[死隨念  Maranānussati] : 죽음의 위험이 언제나 우리를 넘보고 있음을 상기하거나, 그 죽음의 공포에 자신이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숙고하며, 혹은 남들의 죽음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되돌아보는 등의 공부. 그 밖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이 공부를 하면 죽음을 맞아서도 당황하지 않고 공포에 떨지 않으며, 살아서 불사의 경지를 못 이루면, 죽어서 좋은 내생을 맞는다고 한다. 부처님께서 주인공의 수명을 내다보시고 죽음의 염 공부를 지시해 주신 것임.


  * 소녀와 부처님간의 문답은 다음과 같다.

    1. 어디서 왔느냐. 모르옵니다.

    2. 어디로 가느냐. 모르옵니다.

    3. 모르느냐. 압니다.

    4. 아느냐. 모릅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소녀가 불경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소녀에게 설명토록 시켰다. 1.은 전생을 묻는 것으로 알고 한 대답이며, 2.는 내생을 묻는 것으로, 3.은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느냐는 질문으로, 4.는 그 때가 언제냐는 질문으로 알고 드린 대답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녀가 죽을 시간은 바로 그 날, 집으로 돌아가는 그 직후였다.

47)『법구경』174게.

48) 이 흥미있는 이야기의 질문과 대답에 관한 서술은『법구경』주석서 3권 170쪽 또는 벌링겜 지음『불교이야기(Buddhist Legends)』제3부 14쪽을 참조. 이 책 56쪽의 역주 46) 참조.

49)〔역주〕위사카(Visākhā) : 앙가국의 장자집에 태어나 사위성의 장자 녹자에게 시집간 위사까가 180만금을 내고 목갈라나 존자의 감독 하에 지어 승단에 바친 정사. 남편 녹자가 아내를 칭찬하여 어머님과 같다고 했기 때문에 세상에서 녹자모라 불렀다.

50) 십바라밀 : 이 책의 16쪽의 주 12) 참조.∥원문으로∥

51)『중부』 26경, 「성구경(聖求經)」171쪽.

52) 아라한이라는 말은 번뇌를 완전히 소멸시켜 버린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부처님은 우빠까에게 친히 밝히셨듯이 세상에서 최초의 아라한이시다.(이 책의 34쪽 참조)

53)『상응부』 iii, 66쪽.


54)『장부』16경, 「대반열반경」100쪽.

55)『증지부』I권 65경, 188쪽. 그 밖에도 『증지부』Ⅰ권 66경, 『증지부』Ⅱ권, 193경 「밧디야 경」 참조. 이 중요한 경의 완역은 소마 스님 영역, 『깔라마(Kālāma) 경』(The Wheel, No.8 BPS,  법륜․둘『구도의 마음, 자유』)을 참조.∥원문으로∥

56)『중부』38경, 265쪽.

57)『법구경』276게.

58)『장부』16경, 100쪽.

59)〔역주〕가야 강 : 부처님 당시에 대표적인 성수로 손꼽히던 강.

60)『중부』7경, 「와투빠마 경」39쪽. (The Wheel No.61, 62에 번역되어 있음.)∥원문으로∥

61)〔역주〕카스트(caste) : 인도의 독특한 봉쇄적 신분계급. 카스트라는 용어의 어원은 라틴어의 castus(純血)와 포르투갈어의 casta(血統)로부터 만들어진 말이라 함. 인도에서는 베다시대 이래로 출생에 의해 사회적 신분과 직업 등 일체를 카스트에 따라 구분하여 규정함으로써 특이한 사회계급제도를 구성하고 있다. 고대사회에서는 브라흐마나(바라문 : 사제), 찰제리 : 왕후, 무사), 바이사(비사 : 농공상 서민), 수드라(수타라 : 노예)의 4성의 구별이 있었지만, 점차로 가지를 쳐서 부(副)카스트가 생기고 잡종계급도 생겨 종교적, 역사적, 사회적으로 복잡한 모습을 나타내게 되고 종족, 종교, 직업 등에 따라서도 가지를 쳐서 현재에는 그 세분된 수가 2천 내지 3천에 이른다고 한다. 다른 카스트 사이에는 식사와 결혼이 금지되고, 극히 복잡하고 엄격한 풍습과 계율을 지킨다. 현대에는 바라문 계급은 그 특성을 고집하고, 크샤트리아는 서북 인도의 라지푸트족 및 지주계급 등에 그 모습을 전하고, 바이샤는 일반 상업자에 의해 대표되고 있다. 또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최하층 계급으로서 불가촉천민(파리아)이 있는 바, 인도 독립 후로는 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아 이 불가촉천민의 출신자로서 지도적 역할을 떠맡고 있는 사람도 많다. 카스트제도는 현재 인도공화국의 헌법에 의해 부정되고 있지만 농촌에서는 아직도 실제문제로 남아 있어 인도민족의 근대화를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가 되고 있으며, 이 카스트 문제의 해결이 인도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번영의 관건이 되어 있다. (일본 나까무라 하지메 지음, 『불교어 대사전』에서 인용)

62)『숫따니빠따』455, 456 게송, 챠머(Chalmer)의 영역(英譯)(하바드 오리엔탈 시리즈).


63)『숫따니빠따』, 「와살라 경」 142 게송, 60쪽. (〔역주〕빠알리어로 와살라는 천민이라는 뜻임)

64) 말랄라세케라․쟈야띨레케 공저, 『불교와 인종문제』(유네스코, 1959)

65)『쟈따까』 485, 「짠다낀나라 쟈따까」∥원문으로∥

66) 율장 『대품』. 승려가 되는 절차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삐야다시 스님과 J. F 딕슨의 『테라와다 불교의 수계절차(The Ordination In Theravada Buddhism)』(The Wheel No.56)을 참조.

67)〔역주〕5부경 : 경장(經藏 sutta pitaka)을 이루는 다섯 니까야[五部 Pañca Nikāya) : 장부(長部 Dīgha Nikāya), 중부(中部 Majjhima Nikāya), 상응부(相應部 Samyutta Nikāya), 증지부(增支部  Anguttara Nikāya), 소부(小部 Khuddaka Nikāya) 자세한 것은 보리수잎․일곱, 주 2) 참조.

68)『중부』 62경, 424~425쪽. The Wheel, No.33에 완역되어 있음.

69)〔역주〕자애[慈]의 원어 mettā는 친구 사이의 우정(friendship)을 의미하며, 친구의 우정과 같은, 동등한 입장의 평등한 사랑을 말함.

70) 사무량심 : 보리수잎․다섯, 『거룩한 마음가짐 ― 사무량심』, The Wheel, No.6(BPS) 참조.∥원문으로∥

71)〔역주〕무상상(無常想 anicca saññā) : 변화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상념하는 것.

72)『상응부』

73)『장로니게』 주석서. (영역『장로니게송집 (Psalms Of The Sisters)』107쪽 참조.)

74) 알렉산더 커닝엄 장군은 그의 고고학적 보고서(1862~1863)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기원정사의 북동쪽에 부처님께서 병든 비구의 손과 발을 닦아 주었다는 지점에 탑이 세워져 있었다. (……) 기원정사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곳에 이 탑의 유적이 지금도 벽 돌더미 가운데 남아있다.” 커닝엄 장군이 만든 사와티(현재 사헤트-마헤트) 지도에는 이 탑의 위치가 H로 표시되어 있다.『인도의 고고학적 개관(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심라 1871) 341쪽 참조.

75) 율장 『대품』. 또한 영역(PTS판)『계율의 서 (Book Of Discipline)』 Part IV, 431쪽 참조.∥원문으로∥

76)『숫따니빠따』,「자(慈)경」149 게송. 챠머의 영역.

77) 아놀드, 『아시아의 빛』.

78) 이것들을 여덟가지 세간법(Attha loka-dhamma)이라고 한다. 사람의 마음을 능히 흔든다 하여 여덟가지 바람[八風 : 利, 衰, 毁, 譽, 稱, 譏, 苦, 樂]이라고도 부른다.

79)『상응부』iii, 138쪽

80)『장부』ⅰ, 1경, 2~3쪽.「범동경」(梵動經 또는 梵網經 Brahmajāla Sutta)∥원문으로∥

81)『법구경』320게.

82)『법구경』주석서 1권, 147쪽.

83)『장부』16경, 「대반열반경」. The Wheel No.67~69에 『부처님의 마지막 나날들(Last Days Of The Buddha)』로 영역되고 있음.

84)〔역주〕무상정(無相定 Animitta samādhi) : 감관의 제어를 이룬 사람이 대상[六境]의 일반적 외형을 취하지 않고 일체 차별상을 여읨으로써 누리는 삼매.

85)〔역주〕교법과 계율 : 교법(敎法 Dhamma)과 계율(戒律 Vinaya)은 부처님의 가르침의 전 체계를 가리키며, 부처님 당시의 불교를 뜻한다. 법은 가르침 즉 경을, 계율은 수행자에게 권고하신 여러 가지 규범을 가리킨다.∥원문으로∥

86) 이 네 단계는 예류(預流 sotāpatti : 흐름에 들어섬), 일래(一來 또는 一還 sakadāgāmī : 한번 돌아옴), 불환(不還 anāgāmī : 돌아오지 않음), 아라한(阿羅漢, 應供 arahatta : 성위의 마지막 단계)을 가리킴. 아라한위는 모든 속박을 끊어 버리고 번뇌를 근절시킨 경지임.

87) 팔정도에 대해서 T. W. 리스 데이비즈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세상의 대 종교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살펴 보았지만 그 누구에게서도 부처님의 팔정도를 능가하는 포괄성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나는 팔정도에 따라 나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이 매우 보람스럽다.”

88) 따옴표 안의 구절들은 『장부』ⅱ권, 「대반열반경」에서 뽑아서 약간 바꾸었음.

89)〔역주〕『장부』 ⅱ권, 「대반열반경」156쪽.

90)〔역주〕무여의열반(無餘依涅槃 anupādisesa parinibbāna) : 유여의열반(有餘依涅槃)과 구별되는 말. 유여의열반은 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서 모든 번뇌를 여의어 열반은 성취했으나 육신을 아직 여의지 않은 데 대하여, 무여의 열반은 육신마저 끊어진 자리인 완전한 열반을 말함.∥원문으로∥



'필독!초기경전 > 4. 고요한소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도의 마음, 자유 ― 칼라마경 ―  (0) 2009.11.17
영원한 올챙이  (0) 2009.11.10
부처님. 그 분(2)  (0) 2009.11.05
부처님. 그 분(1)  (0) 2009.11.05
염신경(2)  (0) 2009.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