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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4. 고요한소리

자비관(1)

자비관

                            고요한 소리 http://www.calmvoice.org


Mettaa


The philosophy and Practice of

Universal Love


아차리야 붓다락키따 ·지음

강대자행·옮김


Acharya Buddharakkhita


(The Wheel No.365/366)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차  례


들어가는 말 … 5

필수 자비경 … 8

자비경의 배경 … 11

자비의 세 측면 … 15

자비의 윤리 … 18

자비의 심리학 … 23

자비관 … 28

자비가 주는 복 … 45

자비의 힘 … 48

부록 … 52

편집후기 … 60



 


지은이 붓다락키따 스님은 1956년 미얀마 양곤에서 열렸던 빠알리경의 완전결집을 이룩한 제6차 불교도회의의 결집진의 한 분이었다. 인도 태생인 그는 인도와 해외에서 많은 불교 활동을 펴고 있으며 저술과 역경에도 힘을 쏟고 있다.

또 명상의 대가로 국제적 명성을 누리고 있으며, 미국에 세운 불교수행명상협회 (Buddhayoga Meditation Society), 월간으로 편집 발행하고 있는  담마(Dhamma) 지 등은 그의 활동의 범위를 웅변하는 증거이다.

특히 인도의 불교부흥을 위해 힘쓰고 있는 그는 인도 방가로아의 마하보디협회 창설자 겸 회장이며, 그 외에도 다방면에 걸친 인도주의적 활동으로 큰 명망을 쌓고 있다. 그의 많은 저작활동 중 대표적인 것으로  법구경 의 영역본(BPS간행)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들어가는 말


빠알리어 메따(mettaa)는 자애, 우정, 선의, 동료애, 우호, 화합, 비공격적임, 비폭력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빠알리 주석가들은 메따를 남들의 이익과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것(parahita-parasukha-kaamanaa)이라고 정의한다. 본질적으로 메따는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이타적 태도이며 이런 점에서 이기주의에 바탕한 단순한 우호적임과 구별된다. 메따 덕분에 사람은 공격적이기를 거부하고 가지가지의 신랄함과 원한과 증오심을 버리게 되며, 그 대신 남들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우정과 친절미와 인정이 있는 마음을 키우게 된다. 참다운 메따에는 이기심이 끼여들 여지가 없다. 그것은 또한 마음속에 따뜻한 동료애와 동정심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며 그 같은 감정은 수행을 거듭함에 따라 끝없이 확대되어 모든 사회적, 종교적, 인종적, 정치적, 경제적 장벽을 무너뜨리게 된다. 참으로 메따야말로 보편적이고 비이기적이며 일체를 포용하는 사랑이다.


사람들에게는 메따의 수행자야말로 안녕과 안전을 축복해주는 감로의 병(甁)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목숨마저 버리듯이 메따는 역시 주기만 할 뿐 어떤 보답도 바라지 않는다. 자기의 이익을 채우려드는 것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성이다. 이 본성이 남의 이익과 행복을 늘려주려는 소망으로 승화될 때 자기 본위의 근원적 충동이 극복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의 이익을 전체의 이익과 동일시하게 됨으로써 그 마음은 보편적이 된다. 이러한 변화를 이룸으로써 사람은 자신의 안녕 또한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증진시키게 되는 것이다.


메따는 자식을 위해 온갖 고난을 감내하는 어머니의 그 한없이 인내하는 마음이며, 자식이 아무리 나쁜 짓을 저질러도 탓하지 않는 어머니의 그 끝없이 보호해주는 태도이다. 또한 벗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려는 친구의 그 마음가짐이다. 이 같은 메따의 특성들을 자비수행(mettaa-bhaavanaa), 즉 보편적 사랑에 대한 명상을 통해 충분히 갈고 닦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과 남들을 모두 지켜내고, 보호해주고, 치유할 수 있는 엄청난 내면적 힘을 반드시 얻게 된다.


메따의 더욱 심오한 뜻은 뒤로하더라도, 메따는 당장 우리가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실천하지 않으면 안될 필수적 덕목이다. 온갖 파괴적 성향들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같은 세상에서 아마도 유일하게 화합과 평화, 상호 이해를 가져올 수 있는 건설적인 수단이라면 그것은 바로 몸과 입과 마음으로 행하는 메따일 것이다. 메따야말로 모든 고등 종교의 근본교리를 이룰 뿐 아니라 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키려는 그 모든 인정 어린 행위의 기본 원리를 이루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작은 책은 이론과 실천 양면에서 메따의 여러 측면을 탐구해보려는 것이 그 목적이다. 메따의 교리적, 윤리적 측면은 부처님의 `보편적 사랑의 찬가'인, <까라니야메따경(Kara.niiya Mettaa Sutta)> 주1 의 연구를 통해 전개될 것이며, 이 주제와 관련하여 메따(지금부터는 자비 또는 경우에 따라 자애로 대신하겠다)를 다루고 있는 다른 간단한 경구(經句)들도 살펴보게 될 것이다. 보편적 사랑에 대한 명상, 즉 자비의 수행에 대한 설명은 상좌부(上座部, Theravada) 전통의 주된 명상교재인 <청정도론> 주2 , <해탈도론> 주3 , <무애해도> 주4 의 설명을 그대로 따랐으므로 자비관을 닦는데 실질적 지침이 될 것이다.


1. 필수 자비경


1. 완전한 평정 상태를 언뜻 맛보고서

   더욱 더 향상을 이루고자 애쓰는 사람은

   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고,

   말이 점잖으며, 온유하고, 거만하지 않아야 한다.


2. 만족할 줄 알아서, 남들이 공양하기 쉬워야 하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감관은 고요하고, 사려 깊을지니,

   속인들에겐 뻔뻔스러워서도 알랑대서도 안되리.


3. 또한 현자의 질책을 살 어떤 행동도 삼가야 할지라.

   (그런 다음에 이와 같은 생각을 기를 지니)

   모두가 탈없이 잘 지내기를,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4. 살아있는 생물이면 어떤 것이건

   하나 예외없이, 약한 것이건 강한 것이건,

   길건 크건 아니면 중간치건

   또는 짧건, 미세하건 또는 거대하건,


5. 눈에 보이는 것이건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이건,

   또 멀리 살건 가까이 살건,

   태어났건, 태어나려하고 있건,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6. 누구도 자기 동반을, 그것이 어디에 있든 간에

   속이거나 헐뜯는 일이 없게 하라.

   누구도 남들이 잘못되기를 바라지 말라.

   원한에서든, 증오에서든.


7.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하나뿐인 자식을

   목숨 바쳐 위해로부터 구해내듯

   만중생을 향한 일체 포용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지켜내라.


8. 전 우주를, 그 높은 곳, 그 깊은 곳, 그 넓은 곳

   끝까지 모두를 감싸는 사랑의 마음을 키워라.

   미움도 적의도 넘어선

   잔잔한 그 사랑을.


9. 서거나 걷거나 앉거나 누웠거나

   깨어있는 한 이 (자비의) 염을

   놓치지 않도록 전심전력하라.

   세상에서 말하는 `거룩한 경지'가 바로 그것이다.


10. 그릇된 생각에 더이상 매이지 않고,

   계행과 구경의 지견을 갖추었으며,

   모든 감관적 욕망을 이겨냈기에

   그는 다시 모태에 들지 않으리.


2. 자비경의 배경


부처님이 필수 자비경을 설하시게 된 동기는 아짜리야 붓다고샤가 쓴 주석서에 설명되어 있는데, 이 이야기는 부처님 시대부터 끊임없이 대물림해 내려오는 장로들의 구전(口傳)에 근거한 것이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에 어떤 비구 대중 5백 명 주5 이 부처님께 각자 기질에 맞는 특수한 명상기법을 지시받았다고 한다. 그런 다음 그들은 우기의 넉 달간을 안거(安倨)하면서 명상에 전념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들어갔다. 당시에는 우안거가 시작되기 한두 달 전 비구들이 방방곡곡에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모여들어 세존의 가르침을 직접 받은 다음 각기 정사나 숲 속의 거처 또는 토굴로 돌아가 정신적 해탈에 매진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그들 5백 명의 비구들도 부처님이 머물고 계시던 사왓티의 아나타삔디까가 지은 제따 숲속 정사[祇園精舍]로 가게 되었던 것이다.



각자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은 다음, 비구들은 적당한 거처를 찾아다니다 히말라야 산록에서 아름다운 작은 언덕을 발견했다. 주석서에 따르면, 그 언덕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는데 마치 반짝이는 푸른 수정과도 같았다. 서늘하고 울창한 녹색 숲을 장식처럼 두른 그 속에, 한 자락의 모래 깔린 땅이 마치 진주그물인양, 아니면 한 장의 은종이인양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시원한 물이 솟는 깨끗한 우물까지 갖춘 채로."



이 광경에 비구들은 넋을 잃었다. 부근에는 띄엄띄엄 마을이 있고 게다가 장이 서는 작은 읍내까지 있어 탁발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비구들은 이 목가적인 숲에서 하룻밤을 지샌 후 다음날 아침 탁발하러 장터로 갔다.



그 곳 주민들은 비구들을 보자 대단히 반가워했다. 사실 비구대중이 그처럼 궁벽한 히말라야의 오지까지 안거하러 오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 신심있는 마을 사람들은 비구들에게 공양을 올린 후, 부디 이곳에 계속 머물러만 준다면 그 모래땅에다 각자 앞으로 오두막을 한 채씩 지어드려, 밤낮을 거목의 묵은 가지 아래에서 명상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드리겠다고 청하여마지 않는 것이었다. 비구들이 이를 받아들이자 그 일대에 사는 신도들은 즉시 숲가에 조그만 오두막들을 짓고, 그 안에 나무침대와 의자 그리고 마실 물과 씻을 물을 담을 항아리까지 빈틈없이 마련해주었다.



비구들은 흐뭇한 마음으로 각기 오두막에 자리잡은 다음, 이번에는 주야로 명상하기에 알맞은 나무 그늘을 골랐다. 그런데 이 거대한 나무들에는 목신들이 살고 있었다. 아마 그들은 주택의 받침대로 이 나무들을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 목신들은 정진하는 비구들을 존경하여 온 가족이 기꺼이 그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처럼 수행자의 덕은 모든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았으며, 신령들은 특히 그랬기 때문에 비구들이 나무 아래에 앉자 집주인격인 신령들도 감히 그들 위에 머무르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목신들은 비구들이 기껏해야 하루나 이틀 묵어가리라 생각하고 기꺼이 불편을 참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여러 날이 가도 계속 비구들이 나무 아래 자리를 차지하고 있자, 그들이 도대체 언제쯤에나 떠날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마을을 방문한 왕족 때문에 관리들에게 집을 징발당한 마을 주민들이 언제쯤이면 집에 되돌아갈 수 있을까 궁금해하며 멀리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현상이었다.



이처럼 집을 빼앗긴 목신들은 마침내 자기들끼리 의논한 끝에 수행자들에게 무시무시한 형용을 나타내 보이고 끔찍한 소리를 내거나 메스꺼운 냄새를 피워 그들을 쫓아내기로 결의했다. 그들이 갖가지로 무서운 모습을 하고서 괴롭히자 수행자들은 새파랗게 질려 더이상 참선에 집중할 수 없게 되었다. 신령들이 계속 못 견디게 굴자 마침내 그들은 마음을 챙기려는 기본자세마저 흐트러져 버리고 머릿속은 무섭게 짓누르는 형상과 소리 냄새로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결국 비구들은 최연장 장로를 중심으로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각자가 겪은 경험들을 토로하게 되었다. 장로는 "스님네들, 우리 세존께 가서 이 문제를 여쭈어보도록 합시다. 우안거에는 초기와 후기, 둘이 있지 않소. 이곳을 떠나게 되어 초기 우안거를 깨뜨리게 된다 해도 세존을 뵌 다음, 후기 안거는 지낼 수 있지 않겠소."하고 제안했다. 비구들은 이에 동의하고 마을의 신도들에게는 알릴 사이도 없이 당장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이윽고 그들은 사왓티에 도착하여 세존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자신들의 끔찍한 체험을 말씀드린 뒤 다른 곳을 참선장소로 정해달라고 간청했다.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인도 전역을 훑어보셨지만 그들이 해탈을 이룰만한 장소는 오로지 그곳밖에 없음을 아시고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비구들이여,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라. 그곳에서 정진해야만 마음속의 때를 지울 수 있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신령들의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거든 이 경을 외우고 닦아라. 이는 명상의 주제일 뿐 아니라 호신주(護身呪, paritta)도 되니라." 그리고는 세존께서 `필수 자비경 - 보편적 사랑의 찬가'를 읊으시자, 비구들도 세존 앞에서 따라 외운 다음 다시 온 곳으로 되돌아갔다.



비구들이 자비경을 암송하며 그 깊은 의미를 음미하고 명상하면서 자신들의 숲속 거처에 다가가자, 목신들의 마음은 따뜻한 호의로 가득 차게 되어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 비구들을 깊은 공경심으로 맞아들였다. 그들은 비구들의 발우를 받아들고 비구들을 방으로 안내한 뒤 물과 음식을 대접하고는 다시 원래의 그들 모습으로 돌아가, 이제부터는 조금도 주저하거나 두려워할 것 없이 나무 아래에 앉아 명상에 전념해달라고 청했다.



과연 목신들은 3개월의 우기 동안 비구들을 여러 모로 돌봐주었을 뿐만 아니라 조금도 소음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주었다. 완벽한 고요를 누린 덕분에, 우기가 끝났을 때엔 모든 비구들이 정신적 완성의 극치에 이르게 되었다. 5백 명의 비구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아라한이 되었던 것이다.



진실로 자비경의 원래 지니고 있는 위력은 이처럼 대단한 것이다. 누구든지 신령들의 보호를 빌고 자비에 대해 명상하면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자비경을 외우면 자신을 모든 면에서 방호하게 될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사람들까지도 보호하게 되고 또 정신적 향상을 이루게 되는 바, 이런 사실은 누구든지 시험해보면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자비의 길을 따르는 이에게는 어떤 해도 닥쳐올 수 없는 것이다.


3. 자비의 세 측면


자비경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기 자비의 특징적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첫 부분(3~10행)이 다루고 있는 측면은 각자의 일상적 행위에 자비를 철저히 체계적으로 적용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이다. 두번째 부분(11~20행)은 삼매에 이르는, 다시 말해 정신통일에 의해 유발되는 더 높은 식(識)에 이르는, 탁월한 명상기법 또는 마음 계발법으로써 자비관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리고 세번째 부분(21~40행)은 보편적 사랑의 철학에 전적으로 귀의하여 이를 사람들에게, 전 사회에, 또 자신의 내면적 경험면에서 확대, 심화하는데 전심전력할 것을, 다시 말해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활동을 통해 자비를 실천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자비는 보시, 지계 등의 열 가지 공덕짓는 방법[十功德行] 주6 에 의해 쌓은 공덕을 `익히는' 특수요소로 간주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바라밀이라는 열 가지 주7 고상한 정신적 자질을 성숙하게 만드는 것도 바로 자비이다.



따라서 자비 수행을 거목의 성장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씨가 뿌려져서부터 향기로운 과일을 주렁주렁 맺어 그 향기를 널리 퍼뜨려 뭇 생물들이 그 맛있고 영양가 높은 시은물(施恩物)을 즐기기 위해 모여드는 커다란 과일 나무가 되기까지의 성장과정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씨가 싹트고 나무가 자라는 과정이 경의 첫 부분이라면 두 번째 부분에서는 그 나무가 튼튼하게 잘 자라나 뭇 시선을 끌만큼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으로 덮여 있는 모습이다.


다시 작용형태별로 보면 자비의 첫째 측면은, 우리들의 삶을 유익하고도 도량이 넓고 당당한 나무처럼 자라도록 해준다. 두번째, 명상으로서의 자비는 정신적 개화를 가져오며 그 결과 우리의 삶 전체가 만인에게 기쁨의 원천이 된다. 세번째 부분은 정신적 발전 과정이 결실을 맺는 것에 해당한다. 일체를 포용하는 정신적 사랑을 하게 되어 사회 전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뿐 아니라 그 자신은 저 높은 초월적 깨달음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무궁무진한 정신력과 통찰력을 매장하고 있는 광산과 같다. 이 내면의 무한한 잠재공덕은 오직 자비의 수행에 의해서만 충분히 캐어낼 수 있다. 경전에서 자비를, 휴면 상태의 공덕을 원숙케 만드는 `성숙시키는 힘'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만 봐도 분명하다.



<망갈라경> 주8 에서는 좋은 도반과 어울리는 등등에 의해서 향상적 인간관계로부터 놓은 다음, 과거의 공덕이 `결실을 보기'에 알맞은 환경을 선택할 것을 들고 있다. 결실을 보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자비가 하는 일이다. 단순히 나쁜 친구를 피해버리거나 교양있는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자비로 마음을 계발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의 공덕이 결실을 맺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4. 자비의 윤리


불교체계에서는 윤리란 바른 행위를 뜻한다. 즉 행복과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후회나 근심 또는 마음의 불안정을 일으키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나 윤리의 뜻은 여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윤리가 가져오는 즉각적인 심리적 이득에 불과하다. 올바른 행위는 또한 행복한 재생(再生)으로 이어져 구도자가 더욱 더 정신적 해방의 길을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뿐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향상(progress in dhamma)을 이루는 기반이기도 하다. 바꾸어 말하면 부처님의 성스러운 팔정도 중에서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正命)이 바로 최상의 의미에서 올바른 행위인 것이다.

불교의 윤리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이행해야 할 계(준수사항, caaritta)와 금해야 할 율(금지사항, vaaritta)의 둘이다. 이행해야 할 계(戒)는 자비경에 나오는 바로는 다음과 같다.


(그는) 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고

말이 점잖으며, 온유하고 거만하지 않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아서 남들이 공양하기 쉬어야 하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감관은 고요하고 사려 깊을지니,

속인들에겐 뻔뻔스러워서도 알랑대서도 안되리.


또 금해야 할 율(律)은 다음 게송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현자의 질책을 살

어떤 행동도 삼가야 할지라.


여기서 자세히 살펴보면, 몸과 입으로 짓는 자비행은 준수와 금지를 닦는 것이 되며, 그 결과로 얻어지는 내면의 행복과 이타적 충동은 구도자가 마음으로 짓는 자비행으로 나타나다. 이는 해당 게송의 결구에 나타나 있다.


모두가 탈없이 잘 지내기를,

모든 중생이 행복하기를!


자비의 윤리가 가져오는 것은 이처럼 주관적 평안이나 금생의 향상 그리고 내생의 행복한 재생에만 그치지 않고 더 적극적인 베풂도 포함한다. 즉 두려움이 사라지게 해주는 베풂[無畏施, abhayadaana]과 편안하게 해주는 베풂[安穩施, khemadaana]이 그것이다.



자비경이 우리에게 다른 개인이나 사회전체에 대해 취하도록 권장하는 행동양식과 성품을 분석해보면, 이 경이 정신건강 면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다. 이제 경의 내용을 하나하나 검토해 보자.



첫머리에 나오는 `유능함'이란 단순히 효율성이나 숙달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고, 남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겠다는 배려에서 일을 원만히 처리하는 것까지도 뜻한다. 그런데 유능한 사람은 교만해지기 쉬우므로 수행자는 `정직하고 고결해야'하는 한편, `말이 점잖으며 온유하고, 거만하지 않아야 한다.' 참으로 완벽하게 종합되고 평형을 이룬 성품이라 하겠다.



다음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남들이 공양하기 쉬워야 한다.' 검소함은 남들을 배려하는 측면에서 볼 때 매우 고상한 품성이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또 남에게 수범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필요물을 줄이면 줄인 그 만큼 사람도 순수해진다. 사람이 천하고 물질적이 될수록 필요로 하는 것도 늘어난다. 따라서 어떤 사회가 정신적으로 건강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는 그 사회 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어느 정도 줄여나가고 있는지, 다시 말해서 만족할 줄 아는 정도가 바로 그 수준이라 할 수 있다.



물질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생활을 하면 부족한 것이 자꾸 늘어날 뿐 아니라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도 한 특징이다. 이 불안한 마음은 지나치게 분주하고 지나치게 행동적이며 절도와 자제력을 잃은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자비가 진정 만인의 복리를 증장시키려는 것일진대, `진지한 인본주의'적 자세를 견지하여, 인연있는 일체 중생들의 안녕을 극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될 몇 가지의 선택된 의미있는 일에만 전념하는 차분함이 없어선 안될 것이다.



또 자비심의 발로로 검소한 생활을 할 경우엔 반드시 그 사람의 견해와 행위까지도 새롭게 정립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같은 쾌락추구와 소비지향 일변도의 경쟁사회라 해서 이 점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검소하게 사는 사람은 점잖으면서도 유능하고 능률적이며 또 감관을 제어하고 있어 절도가 있고 검약하며 자제한다. 이런 사람에겐 명상을 통한 정신계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힘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감관이 고요할' 것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자비로운 행위에는 `사려 깊은' 면, 다시 말해 실제적인 지혜도 포함된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온갖 형태의 인간관계에 맞추어 다양하게 자비행을 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영민하고도 현명한 사람이다. 수행자는 또한 정신수행을 빙자하여 독선적이 되기 쉽다. 실제로 그런 예를 흔히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독선은 자기가 남보다 낫거나 더 독실하다고 믿는 우월감의 발로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따라서 속인들에겐 뻔뻔스러워서도 알랑대서도 안 된다'는 말은, 참으로 자비로운 사람이라면 어떤 형태의 독선에도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지침일 것이다.



나아가 자비수행자는 `현자들이 사려 분별이 모자라거나 예의범절에 어긋난다고 책할만한 행동'은 설사 사회적 관습이 그러할지라도 `삼가도록' 충고하고 있다. 선(善)은 자신의 안녕뿐 아니라 남들의 안녕도 고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혼자 선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하고 남의 눈에도 선하게 비쳐져야만 한다. 모두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복리를 위해 구도자는 모범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이제 자비경의 나머지 부분에 그려져 있는, 정확한 명상기법을 통해 일체를 포용하는 자비로운 마음 닦는 일에 착수할 수 있다.



자비경은 일명 호신주라고도 하는데 능히 자신의 안녕을 지켜주고 모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며 사고와 불행으로부터 자신을 구제해줄 수 있는 신성한 문구라는 뜻에서이다.



앞의 얘기에서 비구들은 목신들의 적개심을 샀기 때문에 모처럼 만난 그 좋은 환경을 계속 누리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비구들이 돌아오는 길 내내 자비경을 독송하고 명상하여 그 가호를 받게 되자 그들이 도착할 즈음에는 목신들이 정다운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리게끔 되었던 것이다. 적개심이 환대심으로 바뀐 것이다.



호신주의 보호는 안으로도 밖으로도 작용한다. 안으로는, 자비가 마음을 깨끗하고 활발하게 만들다보니 자연히 잠자고 있는 가능성을 일깨우게 되고, 그 결과 정신면에서 인격상의 대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자비에 의해서 일대 변화가 일어나면, 우리의 진정한 적이요, 만가지 불행의 근원인 탐욕, 증오, 색욕, 질투 등등 마음을 오염시키는 요소들이 이제는 함부로 그 마음에 출몰하지 못하게 된다.



또 밖으로는, 자비는 염력으로써 어느 곳의 어떤 마음에 대해서도, 그것이 높은 수준의 마음이든 낮은 수준의 마음이든 관계없이 능히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자비에서 방사되는 파장은 사람을 진정시키고 또 그 마음으로부터 증오의 화살을 제거하며 심지어는 중병마저도 치유해줄 수가 있다. 불교 신봉국에서는 호신주를 외워 갖가지 병을 치유하거나 불행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처럼 자비는 진정한 치유력이기도 한 것이다. 안전장치까지 마련해주는 치유 주문(呪文), 그것이 자비가 호신주 역을 해내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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