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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초기경전/4. 고요한소리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1)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


The Four Sublime States

(Brahma Vihaara)


Nyanaponika Mahathera


(The Wheel Publication No.6)

Buddhist Publication Society

Kandy, Sri Lanka


냐나뽀니까 스님 지음

강 대 자 행 옮김


차례

1. 들어가는 말

2.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 - 경전에 나오는 기본 글귀

3.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

   3.1. 사랑(慈, mettaa)

   3.2. 동정(悲, karunaa)

   3.3. 환희(喜, muditaa)

   3.4. 평온(捨, upekkhaa)

4. 주해


1. 들어가는 말


부처님께서 설하신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은 다음과 같다.


사랑 또는 자애[慈]

동정[悲]

환희 [喜] *주1

평온[捨]


불교 경전어인 빠알리어로는 이 네 가지를 `브라흐마 위하라(Brahma Vihaara)'라고 한다. 이 용어를 번역하면, 대단히 훌륭한 마음상태, 고결한 마음상태, 또는 거룩한 마음상태란 뜻이 된다. 또 다르게는 `범천 *주2(브라흐마)과 같은 거주처[梵住處], 신과 같은 삶, 또는 신성한 거주처'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 네가지 마음가짐이야말로 중생을 대하는데 있어 올바른 자세일 뿐만 아니라, 가장 이상적인 자세이기도 하기에 `훌륭하다' 또는 `거룩하다'고 일컫는 것이다. 실제로 이 네가지 마음가짐은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온갖 상황들을 원만하게 해결해준다. 실로 이러한 마음씨들이야말로 일체의 긴장을 풀어주는 훌륭한 완화제이며, 사회적 갈등을 해소시키는 훌륭한 중재자이며, 생존경쟁에서 입은 상처를 치료해주는 훌륭한 치유자이다. 사회적 장벽을 헐어내는 평등의 구현자이며, 조화로운 공동사회의 건설자이다. 까마득히 잊혀진 채 잠자고 있는 관용정신을 긴 잠에서 일깨워내는 자이며, 오래 전에 포기해버렸던 기쁨과 희망을 소생시키는 자이다. 또 자기중심주의의 거센 힘에 맞서 인간의 우애를 증진시키는 주도이기도 하다.


이 마음씨들은 미워하는 마음씨와는 양립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증오를 모른다는 저 `범천'과 매우 흡사하다고 하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반적으로 신이 성을 낸다든지, 진노한다든지, 질투한다든지, `정의로운 분노'를 나타낸다는 식의 표현을 신앙심 깊은 신도들까지도 예사로 입에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성낼 줄 모르는 신'이라고 하는 저 범천의 개념은 얼마나 유익한 것인가. 행동과 명상을 통해 이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을 열심히 닦는 사람은 범천과 같은 사람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음가짐들이 마음의 주류를 이루게 되면 다음 생(生)에는 천상의 범천세계에 태어나게 된다. 그래서 이 마음씨들을 `신과 같다' `범천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또 이들을 두고 거주처라 부르는 까닭은, 이  마음씨들이, 언제나 우리 마음이 거기서 편안을 누릴 수 있는 마음의 상주처가 되어야 하며 어쩌다 잠시 들렀다가 곧 잊어버리고 마는 그런 뜨내기 처소로 남아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우리 마음은 이 거룩한 마음씨들로 충만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평생 내내 이들 마음씨는 우리의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가 되어야 하며, 모든 일상활동 속에서도 이 네 가지 정신적 태도와 관련된 일일 때는 어떻게 해서든 그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지켜'[正念]나가야 한다. 저 자애의 경(mettaa sutta) *주3에 나오듯,


"서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앉아있을 때나

그리고 누워있을 때나,

피곤이 가신 한은 언제나

이 자애의 염을 확립하도록 하라.

이 염이 곧 신성한 주처라 일컫는 것이니라."

`사랑' `동정' `환희' `평온'의 네 가지 마음가짐은 또 `가없는 마음상태[無量心, appama~n~naa]'라고도 한다. 그것은 이 마음씨들이 완성되어 그 본성을 충분히 발현하게 되면, 작용하는 범위가 어떤 대상들에 국한되는 법이 없이 모든 존재에 두루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마음씨들은 결코 배타적일 수 없으며, 치우칠 수 없으며, 선택적 편애나 편견 때문에 구애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저 범주처의 가없는 무량함을 성취한 마음이 어떻게 국가적, 인종적, 종교적 또는 계급적 증오를 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네 가지 훌륭한 자질을 한량없고 막힘 없이 쓸 수 있게 되려면 우리는 이러한 자질과 대단히 친숙해져 아주 자연스러운 사이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만일 억지로 애를 써서 일일이 이런 자질을 적용시키려 든다면 한없이 적용시켜 나가기도 힘들뿐더러 끝내는 어느 정도로든 또 어떤 형태로든 편파성을 띠게 될 가능서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경우, 이 네 가지 자질과 친숙해지기 위해선 이들을 단순히 행동원칙이나 숙고의 대상으로 삼는데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체계적인 명상의 주제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와 같은 명상을 `범주처 계발(Brahmavihaara-bhaavanaa)' 즉 `거룩한 마음을 닦는 명상 수행'이라 부른다. 이 수행을 하는 실제적인 목적은 이들 네 가지 거룩한 마음씨에 힘입어 선(禪, jhaana) *주4이라는 고도의 정신집중 단계를 성취하는 데 있다.


자애나 동정, 환희에 대해 명상을 할 경우에는 모두가 네가지 선[四禪] *주5가운데 제 삼선까지를 성취할 수 있는데 반해, 평온을 주된 요소로 명상을 하면 제 사선(四禪)까지 도달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끊임없는 선정수행만이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훌륭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첫째는, 이 네 가지 자질을 마음속 깊이까지 배이게하여 쉽게 무너지지 않으리만큼 안정된 자연스런 태도로 정착시키는 일이다. 둘째는, 이 네 가지 마음가짐의 원속성인 무량한 성질을 이끌어내고 확실하게하여 일체를 포용하는 포괄성으로 작용하게끔 만드는 일인데, 특히 이 일은 선정수행만이 해낼 수 있다. 사실 불경에서 사무량심 닦는 법을 상세히 설명할 때도 그 주안점은 이들 거룩한 마음상태의 가없이 큰 성질을 점차적으로 펼쳐 나가는 데 두고 있다. 즉 이들 거룩한 마음을 선택된 특정인물이나 장소에만 적용하도록 제약을 가하는 모든 장벽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려 나가는 것이다.


선정수행을 할 때 `사랑' 등 네 가지 마음씨를 기울일 대상인물의 선택은, 쉬운 대상부터 시작해서 점차 힘이 드는 대상에로 나아간다.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해 명상할 경우, 자기 자신의 안녕을 바라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를 기준점으로 삼아 점차적으로 사랑을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내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해지고 싶듯이 `저' 사람도 또는 `모든 중생'도 똑같이 행복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를!"하는 식이다. 그리고는 그 사랑의 생각을 자기가 평소에 사랑하면서 존경하는 사람, 예를 들어 은사 같은 분에게로 향하게 한다. 그 다음에는 애지중지하는 사람에게, 다음에는 그렇고 그런 사이의 사람에게로….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적대하는 사람 (만일 그런 사람이 있다면)이나, 미워하는 사람에게까지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이성이나 죽은 사람은 택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사랑의 생각을 미운 사람에게까지 쏟아붓는 힘든 일을 잘 해낼 수 있게 되면 그 다음엔 이들 네 가지 형의 사람들 사이에 `차별의 벽을 헐어내야' 한다. 그래서 조금도 차이를 두지 않고 그들 모두에게 똑같이 자기의 사랑을 뻗쳐야 한다. 공부가 이 단계에까지 가면 수행자는 이미 높은 정신집중단계에 도달하여 있을 것이다. 즉 정신적인 상사영사(相似影像) *주6이 나타남과 더불어 근접삼매(upacarasamaadhi) *주7에 도달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초선(初禪)이라는 `본 삼매 (appanaa-samaadhi)'에 이르게 된다. 이런 식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공간적인 확장의 경우에도 수행자는 처음엔 자기의 바로 주변(가족 등등)에서부터 시작한다. 다음엔 이웃집들, 거리전체, 시내, 지방, 나라전체 등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또 `방향을 따라 생각을 펼쳐 나가는 방법(disaa-pharana)'을 취할 경우, 처음엔 동쪽으로, 다음엔 서쪽, 북쪽, 남쪽, 각 간방(間方), 하늘위, 땅밑의 순으로 사랑의 생각을 펼친다.


똑같은 실천방식을 `동정' `환희' `평온'을 주제로 한 명상계발에도 적용시킨다. 다만 대상인물을 고르는 순서에서만 적절한 변경을 가하면 된다. 자세한 수행법은 이 들어가는 말 끝 부분에 붙인 경을 읽으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범주처선(梵住處禪)이 얻고자 하는 궁극적 목표는, 모든 현상의 참 성품이 무상하며[無常], 괴로움으로 변하기 마련이며[苦], 실체가 없는 것[無我] *주8임을 여실(如實)히 꿰뚫어보는 통찰력 즉 해탈을 실현시키는 `관(觀, vipassanaa)' *주9을 위해 확고한 기반 이 될 수 있는 마음상태를 이루는데에 있다. 사실 `거룩한 마음가짐(無量心)'을 연(緣)으로 하여 선(禪)을 성취한 마음은 순결하고 고요하고 확고하고 침착하며, 조잡한 이기심을 벗어난 마음일 것이다. 그런 마음이 되어야만 해탈 이라는 최종적 과업, 위빠싸나[觀]에 의해서만 마무리될 수 있는 그 과업을 수행할 준비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이다.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의 궁극목표는 이 정도로 간략히 살펴보는데 그치고 거룩한 마음씨들 자체의 의의를 살피고자 했던 본래의 의도로 되돌아가기로 하자.


앞서 한 얘기로 이미 짐작하였겠지만,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을 계발하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첫째는 일상의 실제행위와 사고를 그런 방향으로 돌리도록 애쓰는 방법이고, 둘째는 선정을 목표로 체계적인 수행을 하는 방법이다. 이 두 길은 상호보완 관계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체계적으로 명상수행을 하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다가 사랑·동정·환희·평온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 마주칠 때마다 이들이 자동적으로 발현되게끔 만들 수 있다. 또 실제로 생각과 말과 행동 속에 이들 네 가지 고귀한 자질을 관철해내기가 힘겹도록 만드는 저 수없는 인생사(人生事)의 도발을 견뎌낼 수 있게끔 우리 마음을 더욱 강하고 침착하게 만드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한편 우리의 실제 행위가 이들 거룩한 마음으로 더욱 더 잘 통제되면 그만큼 마음도 화내거나 긴장하거나 짜증스러워지는 일이 줄어들게 된다. 이런 좋지 않은 마음은 비록 여운일지라도 미세하게나마 우리의 명상시간에까지 개입해서 들뜸 *주10이라는 장애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상념이 명상하는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을 꾸준히 좁혀 나가야만 비로소 지속적인 명상의 진전이 가능해지고 따라서 그 최고의 목적을 실현할 기회도 생길 수 있다.


또 거룩한 마음가짐이 주는 축복과 그 반대 성질의 마음가짐이 주는 위험에 대해서 거듭 숙고해보는 것도 선정수행의 성공적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어떤 것을 두고 오랜 시간에 걸쳐 재삼 숙고하다보면 자연히 그 일에 마음이 기울어져 의욕도 생겨나게 마련이다." 다음 이어지는 글을 독자들에게 마련해드리는 것도 주로 이런 의도에서다. 이 글을 거듭 음미해보는 동안 독자들이 `범천의 주처'라는 숭고한 고지를 향하여 굳게 마음을 정해서 탐·진·치 삼독심으로부터 최종적으로 해탈하는 길을 나아갈 준비가 되기를 기원하여 마지않는다.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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