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3. 청화 큰스님 법문집/5. 일반법문

1.무주당 청화 대종사 영결식

 

 

 

 

涅槃頌


此世他世間

去來不相關

蒙恩大千界

報恩恨細澗


이 세상 저 세상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생명의 본체에다 마음을 두어야합니다. 생명의 본체, 이것이 불성이고 법신이고 또 진여불성이라.

부처님께서 마르고 닳도록 말씀하신 법신, 진여, 불성, 또는 실상, 실재, 또는 주인공,

이런 말씀이 모두가 다 하나의 도리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두어야 참다운 대승불교가 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열반이고 바로 극락입니다.



大韓佛敎曹溪宗 元老議員 無住堂 淸華 大宗師 行狀


삶과 죽음이 가장 큰 일인데 덧없는 세월은 빨리 가버리니

짧은 시간도 한껏 아끼며 방심하고 게으르지 말라


큰 스님께서는 1923년 11월 6일(음) 전남 무안군 운남면 연리에서 부친 진주 姜氏 大奉

淸信士와 모친 밀양 朴氏 良女 淸信女 사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스님의 속명은 강호성

이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태어난 큰 스님께서는 광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을 하셨습니다. 학생시절 민족의 자각의식을 깨우치면서 민족의 독립과 해방에 관심을 보이셨던 큰스님은 교육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귀국한 뒤 고향인 무안군에서 고등공립학교(현 망운중학교)를 세우셨습니다.

교육의 선각자이셨던 큰스님은 평소에 동양철학에 깊이 심취했고 진보적 의식을 갖고 계셨습니다. 큰스님은 해방을 그 누구보다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해방공간에서 민족간의 좌우대립을 목격한 스님은 평소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출가를 결심하셨습니다. 그때가 바로 24세 때입니다. 1947년 큰스님은 속세를 등지고 전남 장성 백양사 운문암을 찾아가 당시 송만암 대종사의 상좌이신 벽산당 금타 대화상을 은사로 출가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은사인 금타 대화상의 수행가풍을 그대로 이으셨습니다.

하루 한 끼 공양(一種食)과 장좌불와(長坐不臥), 청빈(淸貧), 통불교(統佛敎) 사상을 평생의 신조로 삼아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출가 후 40여 년의 깊고 깊은 수선안거에 들어가셨습니다. 무안 혜운사, 구례 사성암, 지리산 벽송사, 백장암, 남해 부소대, 두륜산 진불암, 상원암, 남미륵암, 장흥 금선암, 월출산 상견성암 등 전국 제방선원과 토굴에서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탁마장양(琢磨長養)하셨습니다.

그 중 사성암의 혹독한 고행은 세간에 알려질 정도의 두타행이셨습니다. 큰스님은 동안거 결제정진을 위해 암주보살에게 방세를 주어 아랫마을로 보내시고 홀로 三冬 한철을 공부하셨습니다. 당시 스님께서는 “안 자고 안 눕고 하루 한 끼만 먹고 공부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암주보살이 절 안에 놔 둔 고양이 때문에 밤중에 가끔씩 사성암에 올라가면 큰스님께서는 껌껌한 바위 웅덩이에서 찬 샘물을 큰 양동이에 받아 아주 천천히 머리에서부터 붓고 계셨다고 했습니다. 당시에 큰스님께서는 수행처 앞에 근고청중(謹告淸衆. 삼가청정대중에게 알림) 푯말을 내걸으셨다고 합니다. 생사사대(生死事大, 삶과 죽음이 가장 큰 일인데), 무상신속(無常迅速, 덧없는 세월은 빨리 가버리니) 촌음가석(寸陰可惜, 짧은 시간도 한껏 아끼며) 신물방일(愼勿放逸, 방심하고 게으르지 말라)고 써놓으셨다고 합니다. 1970년 초반 진불암 토굴에서 용맹정진하던 중 주야불문하고 의단(疑團)이 독로(獨露)하더니 홀연히 심안(心眼)이 활개(豁開)하여 오도송(悟道頌)을 읊으셨습니다.



迷故三界城   미혹한 까닭에 삼계가 성이나

悟故十方空   깨달으니 시방이 공하네

本來無東西   본래 동서가 본래 없나니

何處有南北   어느 곳에 남북이 있으리오



큰스님 탁발수행은 1983년 태안사에 주석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늦깎이로 출가한 스님인지라 이미 60세가 넘으신 나이셨습니다. 83년10월 큰스님은 20여 명의 도반과 함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태안사에서 95년 까지 주석하시면서 3년 결사정진을 감행하고 중창불사를 완결하셨습니다. 수행과 불사는 따로가 아니라는 것을 손수 보여주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재가불자들을 위한 참선수행을 위해 정중당(淨衆堂)을 개설하셨습니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결정이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수행에는 출재가가 따로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1992년 겨울, 큰스님께서는 또 한 번 대중들을 놀라게 하는 수행력을 보여주셨습니다. 한국 불교 역사상 최초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 분의 대중스님들과 함께 3년 결사정진에 드신 것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삼보사에서 결사정진하시면서 많은 미국인들에게 감화를 주셨습니다.

하루는 미국인 노파가 큰스님을 찾아왔습니다. 큰스님을(great master)을 만난 그 노파는 눈물을 철철 흘리며 감격해했습니다. 그냥 기뻐서 운 그 노파에 대해 큰스님은, “말은 통하지 않더라도 마음은 하나여서 다 통하기 때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스님의 감화를 입은 미국인들은 자신의 사유지를 자유롭게 통행하게 해주었고 종도 자유롭게 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사유재산을 최우선시 하는 미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큰스님께서는 95년 1월 동안거 중에 사부대중을 위한 7일간의 ‘순선안심탁마법회’를 열어 참다운 선수행의 진리를 설파해 미국의 언론으로부터 큰 반향을 얻기도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출가하신이래 한 번도 수선안거를 어기신 일이 없으셨습니다. 천하의 선승으로 알려지신 큰스님께서는 교학이나 외전에 있어서도 대단한 박학이셨습니다. 교학에 대해 어떤 참구가 와도 시원시원하게 답변을 하실 정도였습니다.

큰스님께서 제창하신 행법(行法)은 투철한 계율과 정혜쌍수를 기본정신으로 한 염불선(念佛禪)이었습니다. 큰스님께서 제창하신 염불선은 경우에 따라 정통선(正統禪), 자성선(自性禪)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는 은법사이신 금타 대화상께서 창도하신 보리방편문이라는 행법(行法)을 전수받으시고 이를 법계일심(法界一心)의 한 생명사상으로 승화시킨 행법입니다.


큰스님은 또 일관된 도량신조(道場信條)를 견지하셨습니다. 가장 청정한 도량, 가장 엄정한 계율, 초인적인 용맹정진의 휘호를 손수 쓰셔서 도량에 내걸으셨습니다. 큰스님 수행도량의 사부대중은 이 삼대신조를 기준으로 정진하였기에 세상의 귀감이 되는 수행공동체를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큰스님의 평생화두는 ‘중도실상(中道實相)’ 이었습니다. 큰스님은 “선이란 우리 마음을 중도실상인 생명의 본질에 머물게 해 산란하지 않는 수행법이다. 중도실상에 입각하면 회통이 된다. 중도실상의 안목을 가지고 바른생활을 해야만 바른 깨달음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출가하신 이후 무안 혜운사, 구례 사성암, 지리산 벽송사, 백장암, 남해 부소대, 두륜산 진불암, 상원암, 남미륵암, 장흥 금선암, 월출산 상견성암, 동리산 태안사, 내장산 벽련선원, 미국 금강선원, 광주 추강사, 칠현산 칠장사등 제방선원과 토굴에서 56년 동안 일일일식(一日一食)과 장좌불와 등 용맹정진으로 오로지 수행에만 초지일관하셨으니, 그 위법망구(爲法亡軀)의 두타고행(頭陀苦行)은 가히 본분납자(本分衲子)의 귀감(龜鑑)이요, 계율(戒律)이 청정함은 인천(人天)의 사표(師表)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일생을 청정한 계행과 철저한 두타행으로 수행 정진해 오신 스님은 입적하실 때 까지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전남 곡성 성륜사와 서울 도봉산 광륜사에서 정기법회를 열어 후학들을 제접해 오셨습니다.

2003년 11월 12일 오후 10시 30분, 곡성 성륜사 조선당에서 문도들을 모아놓고 “철저한 수행과 계율을 지킬 것”을 당부한 후 임종게(臨終偈)를 수서(手書)하시되


此世他世間    이 세상 저 세상

去來不相關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蒙恩大千界    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

報恩恨細澗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할 뿐이네


하시고, 편안히 열반에 드시니 세수는 80세가 되시고 법랍(法臘)은 56년 이십니다.





『육조단경』에서 자성이라는 말이 몇 군데나 있는가 한번 헤아려 보니까, 일백 군데가 넘어요.

우리중생들이 모두가 다 자성에 귀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성은 바로 불성인데,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성청정심입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 우리 인간의 본래 면목이 바로 자성이고 자성청정심입니다.

또한 우주의 본래성품이 바로 자성입니다. 사람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일체존재 모두가 다 본래 성품이 자성입니다.

자성은  바로 불성인데 진여불성을 의미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생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냐 하면. 자기의 본래면목을 모르고 함부로 행동하지 말고. 본래의 자리 곧 자성자리로 귀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계율만큼 합리적인 도덕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불교를 말할 때, 우리는 그 교리가 주로 한문으로만 표현되고. 내용도 이래저래 갈래가 많아서 굉장히 난해하고 어려워 들어가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불문에 몸담아 온 나는 불교가 어렵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부처님 법의 요체는 불자 여러분들이 대체로 아는 바와 같이 청정한 계율, 참선염불 하는 선정과 또 인간의 본질과 우주만유의 근본성품인 본체를 아는 지혜, 이 세 가지입니다. 이 세 가지야 말로 우리 마음과 몸을 편하게 하고, 사람과의 관계나 모든 것을 순탄하게 합니다. 우리 인간이 지켜야 할 도덕률 가운데 부처님이 설하신 계율같이 합리적인 것은 없습니다. 계율은 우리 사회생활에서 꼭 지켜야 할 우주의 질서입니다. 유교의 인의예지신이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십계명, 그러한 세계 종교의 우수한 도덕률도 다 불교의 계율에 들어 있습니다.

계율만 제대로 지키면 자연적으로 우리의 마음도 편해지고 주위도 편해집니다. 우리가 참선염불을 해서 깊은 명상에 들어가려 하더라도 계율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명상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흉내만 낼 뿐이지 마음이 정화가 안 됩니다. 명상이라는 것은 마음의 정화를 도모하는 것인데, 계율이 밑받침 안 되면 명상을 해서 이루는 마음정화는 올 수가 없지요.

참다운 지혜는 반야의 지혜입니다. 세속적인 분별지혜, 차별적인 지혜, 이런 것은 우리 인간 의식의 범위 내에서 분별하는 것이지, 초월적인 모든 존재 본질의 지혜는 못 됩니다. 따라서 좀 재주가 있고 학문적인 수련이 깊어서 분별적인 지혜는 어느 정도 익힌다 하더라도, 이른바 분별을 떠난 현상적인 문제라든가 초월적인 문제를 통틀어서 제일의 것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반야바라밀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른바 무위법입니다. 또는 무루법이라고도 합니다. 무위법은 인연 사이의 모양이 아닌, 그 모양을 지양한 생명 자체의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것을 다른 종교의 교조가 전혀 모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부처님처럼 명확히 구분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가령, 우리가 어느 누구에게 물질이라든가 여러 가지 것을 보시도 하고, 봉사활동을 한다고 합시다. 하지만 유위법의 범위 내에서는 ‘나’라는 관념과 ‘너’라는 관념을 떠날 수가 없고, 내가 물질을 많이 보시한다, 적게 보시한다는 그러한 상(相)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해탈이라는 불교의 궁극적인 도리, 동시에 우리 인간의 본래적인 도리에 대해서는 상당히 미흡합니다. 상을 떠나는 행위, 이것은 그 생각으로나 행위로나 참다운 자유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보시한다 하더라도 상을 떠나서 행해야 그것이 도업이 됩니다.

우리 불자들은 도업과 세간에서 착한 일을 해서 쌓는 선업에 대한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중생이 하는 것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선업입니다. 욕계, 천상, 무색계와 같은 곳에 가는 것은 선업으로 가능합니다. 그러나 선업만으로는 우리의 번뇌를 모조리 소멸시켜서 영생해탈로 나아가게 할 수 없습니다.

욕계를 초월하고, 색계를 초월하고, 또 무색계를 초월하고, 천상도 다 초월해서 정말로 대자유인, 참다운 자기인 대아, 진아의 존재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도업을 쌓아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참다운 해탈을 이루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해탈은커녕, 아직 선업도 못 닦은 이가 많은 것을 볼 때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더라도 절대로 비관할 것이 없습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 세속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인간의 몸으로 욕계의 굴레 가운데 있더라도 우리의 불성자체는 조금도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달마대사와 같은 도인들과 비교하더라도, 우리 마음자리만은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똑같습니다.

불지에 오른 유마거사의 말씀을 모은『유마경』가운데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 상수제자인 사리불 목건련을 위시해서 32아라한에게 유마거사가 설한 법문입니다.

둘이 아닌 그런 수승한 법에 들어가는 법문입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둘이나 셋이나 이원론도 삼원론도 아니고 오직 일원론이라는 말입니다. 일원론은 나나 너나 달마, 석가 우리 모두가 본체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도 없다는 것이지요. 다만 현상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아니, 나 같은 중생과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 왜 차이가 없다는 것일까 하고 의심을 품는 분도 계시겠지요. 차이가 있는 모양에서 의심을 품을 수는 있습니다. 불교 말로 구체화하면 나라는 상, 너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또는 우리 수명이나 시간이 짧다고 하는 상을 다 떠나버린 경지에서 본다고 할 것 같으면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상을 어떻게 여읠 것인가. 상을 여의는 법문이 바로 유마거사의 입불이법문입니다. 천지우주 모두가 다 하나라는 것입니다. 중생과 성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성자는 모든 것을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데, 중생들은 천차만별로 모든 것을 업장이라는 안경을 쓰고 본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중생은 평생 분별합니다.

요즘같이 정보가 홍수처럼 몰려들 때는 상당히 편리한 점도 있으나, 우리 불자들의 수행에는 걸림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데, 정보화시대의 정보라는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합니까. 컴퓨터는 문명의 이기임에는 틀림없어 물질적인 편리함을 줄 수는 있어도, 우리 생명 자체에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인류가 차근차근 발전되어 간다고 사람들이 말을 합니다. 사는 모양은 좀 발달돼 가겠지요.

그러나 정작 우리 마음으로 봐서는 발달은커녕 점점 퇴화한다고 봐야합니다. 50억 인구가 사는 지구상에 참다운 성자가 몇이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할 때 참으로 한심스럽습니다.

불자들은 겉을 꾸미는데 집착하지 말고, 속절있게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상에 끄달려 행하는 모든 것은  부처님 법을 자기 것으로 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이른바 상을 떠나버린 모두를 하나의 생명으로 본다는 것은, 그냥 하나의 생명으로 본다는 것이 아니라 우주만유의 본체인 불심(佛心)을 깨닫는 것을 뜻합니다.

상으로 보아서는 제아무리 많은 현상이 있다고 하더라도 근본자리에서는 모두가 다 하나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근본자리와 현상의 것을 물과 물결의 비유로 설명합니다. 근본자리는 물에, 현상적인 문제는 바람 따라 일어나는 파도에 빗댄 것입니다. 우리는 본질은 보지 못한 채 업장의 현상만 볼 뿐, 나의 본질도 너의 본질도 못 보고, 만유의 본질을 보지 못 합니다.

우리 인간뿐 아니라 식물, 동물, 모든 두두물물의 본바탕이 바로 불심이고, 일체 존재의 본질이기에 불성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법성, 실상, 도, 열반, 여래장 등도 같은 뜻입니다.

표현은 비록 다르더라도 근본은 똑같습니다. 모두가 하나라는 것은 불심자리, 불성자리에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성자는 그 자리가 하나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생은 아직 그 자리가 보이지도 않습니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부처님 같은 성자들의 가르침이 있기에 마음의 본질이 불심임을 믿음으로 아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국은 여러모로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습니다. 고민도 많이 하고, 더러는 비극적인 일들도 많이 생깁니다. 저 또한 참 마음이 아픕니다. 특히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보시를 해 주신 그런 분들에게는 더욱더 가슴 아프고, 죄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원인이 어디 있는 걸까요.

경제학자, 철학자들이 나름대로 분석을 내놓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이 자기의 본바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도 알 턱이 없습니다.

세속적인 말로 철학의 빈곤입니다. 철학이 없습니다. 칸트, 니체 이런 것에 박식하다고 철학이 아닙니다. 일체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철학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불경을 통달할 정도로 외우더라도 그 본질자리를 알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나라경제나 개인경제나 모두 거품을 걷으라고들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중생 모두가 거품을 가지고 삽니다. 아무리 금붙이를 많이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림자에 금붙이를 붙인 것입니다. 마음 찾기에는 하등 도움이 안 됩니다. 일체 물질이 사실은 텅텅 빈 것입니다.『반야심경』 에 왜 ‘색즉시공’이라 했을까요. 물질 그대로가 공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같이 물질을 분석해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당체즉공이고, 삼계유심이라, 중생이 생사 윤회하는 모든 세계인 삼계에 오직 마음뿐이란 말입니다. 마음이란 것은 순수 생명입니다. 순수 생명 외에 다른 것은 모두가 헛것이라는 겁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도리가 모두 이런 도립니다.

초월적인 본래의 자리에 가지 않고서는 절대로 해탈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는 일체법이 모두 공이라고 설했습니다. 중생이 보는 모든 것은 꿈이요, 허깨비요, 그림자요, 또는 아지랑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이렇게 말씀을 드려도 여러분은 여실히 이해가 안 갈 것입니다.

내 몸뚱이가 모두 비었거니, 내 집이나 재산도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내가 맡아 있을 뿐이라고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죽어서도 가지고 갈 것같이 집착을 보이지요.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보세요. 그것처럼 편하고, 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세계가 순식간에 극락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성자의 안목에서 본다면 당체즉공이기 때문에 이 세계 그대로가 모두 공입니다. 공의 알맹이가 무엇인가, 그 실체가 무엇인가, 바로 불성이란 말입니다. 광명 찬란한 불성이 우주에 충만해 있습니다.

지금은 모양으로 살지만 몇 억겁 뒤에는 우주의 법에 따라 모두 파괴 소멸됩니다. 따라서 그러한 참담한 재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정진해, 그 전에 해탈의 자리에 올라야 합니다.

다행히 부처님 법은 대자대비한 법이기 때문에 우리 중생이 차근차근 공부해서 모두 천상에 올라간 후에 파괴가 됩니다. 기독교의 ‘최후의 심판’과 같이 비극적인 최후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파괴가 된 다음에는 다 텅텅 빈 공무변이라, 거기에는 마음만 있는, 식만 존재하는 중생만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주가 텅 빈 데서 모양이 이뤄집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니라 부처님 말씀입니다.

위대한 철인도 학자도 결국은 부처님 법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현대물리학도 점차로 증명해 가고 있어요. 불교는 가장 투철한 과학인 동시에 가장 궁극적인 철학, 영생해탈의 종교입니다. 해탈의 길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세간 법을 지양하고 제법이 비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을 가다듬어서 내 행복을 위해서나, 우리 민족의 웅비를 위해서나, 지금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난국 극복을 위해서나, 어렵고 힘들수록 부처님 가르침을 지극하게 따라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은 마음 법뿐 아니라 우리 몸에도 제일 좋은 묘방입니다.



중도실상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모두가 다 포함된 자리입니다.


내가 3년 결사를 발원하고 미국에 건너와 이렇게 1년여 살고 있자니 많은 사람들이 물어요.

어떻게 미국에 오게 됐냐는 겁니다. 달마스님께서는 공부가 다 성취된 뒤에 동토지방을  제도할 원력으로 동쪽으로 오셨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나이도 많고 미숙한 채로 미국 불교의 발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해서 왔습니다.

미국에서 한국 불교가 아직 제대로 정착을 못했다는 판단이 서고, 미국의 각국 불교들이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서로 화합도 안 되어 있는 것도 같아서 융합적인 차원에서 누군가가 조절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또한 미국은 선진국으로, 세계의 석학들이 많이 모이고 문화교류가 활발한 곳이기 때문에 불교의 진면목을 세계에 알리는데 효과적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곳 미국도 그렇고, 어느 사회나 개인에게 있어서 발생하기 쉬운 갈등과 분열은 부처님 가르침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생들이 현상적으로 경험하는 문제들은 모두가 실체가 아닙니다. 자기 몸뚱이나 관념, 심지어 대상물 모두가 실제가 아닙니다.

『반야심경』이 가르치는 대로 ‘오온개공(五蘊皆空)’입니다. 오온에는 인간이라든가 모든 것이 다 들어가는데, 오온은 본래로 실존이 아니요 가상인 것이고 허망상인 것이기 때문에 공(空)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중생이 인식하는 모두가 허망한 것이요, 잘못 보는 것으로서 실재가 아닙니다.

진리는 반야바라밀인 중도실상(中道實相)입니다. 그래서 중도실상의 생명관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대화도 하고 행동해야 분열과 갈등이 없어집니다. 또 모든 일을 진리의 조명 아래서 올바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도실상은 어디에도 안 치우치고 모두가 다 포함된 자리입니다. 우리 중생이 보듯이 허망무상한 상만 있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텅 비어서 없다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도 치우침이 없이 모두를 다 초월한 자리이며, 모든 성자들이 체험하는 참다운 생명자리입니다. 일체 가상을 떠나서 인생과 우주의 본래 생명의 실상자리가 바로 중도실상 자리입니다.

중도실상 자리를 아직 체험하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은 사실상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업장이 무거운 사람은 도저히 자기 분상에서 납득이 안 되니까 아예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수희찬탄(隨喜讚嘆)하는 마음으로 바로 수용하는 마음이 되면 납득하게 됩니다.

‘부처님이나 도인들은 가장 정직하고 총명하고 바로 깨달은 분인데, 그 분들이 옳다고 했으니 그대로 옳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전폭적으로 믿으십시오. 그리고 염불이나 주력이나 화두나 자신의 근기에 맞추어, 다른 생각을 않고서 지속적으로 공부하십시오. 그렇게 공부하다 보면 하루하루 한 만큼 업장이 녹아짐에 따라서 중도실상의 경계가 점차로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철학을 좋아했습니다. 출가하기 전에 동서양 철학서적을 이것저것 섭렵했습니다. 동양철학을 넘보면서 물론 불교서적을 만났지요. 경전도 보고 불교입문서도 보면서 나름대로 불교의 윤곽이랄까요, 겉을 잡았었습니다. 그 후 우리 집안의 6촌 동생이 절에 있으면서 공부하기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그 즉시 “아 그러느냐” 하면서 따라 나섰습니다.

절에 가서 공부도 하고 수양도 좀 하려고 마음먹었었는데, 워낙 위대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에 그냥 미련 없이 그대로 출가 했습니다. 바로 은사 이신 금타 스님 이셨습니다. 그 어른은 실로 모든 점에서 자기 개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없으셔서 진정 진리의 불덩이 같이만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어른의 법문에서 제가 기독교나 현대과학에 있어서 막혔던 문제가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다 풀리니까요.

오랫동안의 회의가 풀리니까 젊은 사람으로서는 환희용약이 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수행이 철저하셔서 ‘스님의 방법을 취하면 꼭 성불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서게 되니 다른 길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40여 년을 은사 스님처럼 수행했습니다. 세상에서 얘기하는 일종식(一種食)하고 장좌불와(長坐不臥) 하는 방식이었지요. 젊어서는 고집을 부리고 장좌불와 한다고 했고 근 30년을 토굴생활도 했습니다. 사실상 그렇게 철저한 셈은 아니었습니다만 아무튼 원칙을 그렇게 세우고 살았습니다.

하루에 한 끼니만 먹으면 그렇게 편해요. 그리고 토굴생활을 하다보니까 혼자 여러 끼니 해 먹기도 귀찮스럽고 하루 한 끼니만 먹으면 몸이 굉장히 가볍습니다. 몸이 가볍다는 것은  그만치 피 순환이 잘된다는 것이고 또 피 순환이 왕성하니까 병균이 못 침범하겠지요.

사실은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하루 한 끼니 드셨습니다. 그러니까 승가생활에서 아침에 배고플 때는 죽을 먹어도 무방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원칙은 일종식이지요. 저도 역시 원칙은 지켰으나, 어디에 초청되면 애써 대접하는데 안 먹으면 미안스러우니까 더러 먹기도 했습니다.

또 젊어서는 어거지로 상을 내서 잠도 안자고 앉아서 버텼지요. 그러나 지금은 몸뚱이도 쇠약해지고, 이제는 앉으나 서나 공부에 망상도 별로 나올 때가 아니고 해서 될수록 안 눕는 쪽으로 원칙은 세워놓고 고집은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피로하면 눕기도 하는 편이기 때문에 장좌불와는 아니지요.

이런 수행이 나에게는 다분히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부에 힘을 얻어야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앉아 있으면 조금도 몸에 부담이 없고 마음이 절로 고요해지고, 가만히 있으면 있는 만큼 더 맑아지니 말입니다. 혼침도 미처 참지 못하고 망상만 피우고 그럴 때는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니까 지장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철두철미하게 바르게 살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에는 나 같이 토굴생활을 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권고할 생각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그 사람 근기에 따라서 수행 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기본적인 출가 수행자의 청규가 오후에는 먹지 말아야 하고, 병자가 아닌 한에는 한 번 일어나면 취침시간까지 앉아서 공부할 것이지 자리에 눕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재가불자들도 적어도 한 달에 여섯 날은 오후 불식 하라고 권합니다. ‘6재일’이라 해서, 한 달 가운데 스스로 정해서 여섯 날은 출가한 셈치고 생활규범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날만은 내외간에도 잠자리에 들지 않고 고기도 안 먹고 허튼 말도 않고 하루 한 끼만 먹고 오로지 부처님 공부만 하라는 것입니다.

하루 한 끼만 먹게 되면 사람들이 ‘컨디션’이라고 하는 몸 분위기가 대단히 좋아집니다. 가벼워지는 것이지요. 적게 먹으면 먹는 양에 비해서 체내 흡수가 많아지게 되고 피도 맑아집니다. 많이 먹으면 배설을 많이 하니까 흡수하는 비율은 적어집니다. 그리고 최초의 인간은 음식을 안 먹었습니다.

광명을 몸으로 하였으니, 광명은 불생불멸의 생명이기 때문에 먹을 필요가 없지요. 부처님 말씀에 보면 최초의 인간은 식식(識食)이라, 마음으로 음식을 삼았다는 뜻입니다. 환희심 나는 행복(法喜禪悅)을 음식으로 하고, 법(法)을 음식으로 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부처님 법에 대해서 환희심으로 충만하다면 그때는 안 먹어도 마음이 충만하지만, 마음이 답답하고 막히고 남 미워할 때는 필요 없이 자꾸 먹게 되지 않습니까.

은사이신 금타 스님은 번뇌를 녹여서 성자가 될 때 중도실상의 생명을 체험할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른의 가르침을 잡고 선방에도 몇 철 다녔습니다만, 워낙 위대한 분을 스승으로 모신 터라, 달리 스승을 찾을 생각을 내지 않고 토굴생활을 했습니다.

40대는 모범적인 선방을 만들어 사람을 길러보려고 토굴에서 나와 봤지만 그것이 잘 안 됩니다. 안 되는 것은 내 역량 부족도 있고 인연이 아직 성숙되지 않아서였겠지요. 그래서 다시 토굴로 들어가고 또 나와 보고, 그러다가 60살 넘어서 온전히 나왔습니다.

우리가 수행하면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생명 자체를 중도실상의 생명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금타 스님께서 쓰신 『금강심론(金剛心論)』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어요.

“중생의 육안은 번뇌에 때 묻은 오염된 육안이기 때문에 금진의 세계를 알려고 할 때는 중생의 욕계번뇌를 없애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천안통이 나온다.”

욕계번뇌의 뿌리를 뽑으면 천안통이 나오는 것입니다. 아직 나도 번뇌의 뿌리가 뽑히려면 천리만리입니다. 평생 동안 노력해야지요. 번뇌의 뿌리가 뽑히면 발이 하늘로 뜬다는 말씀이 경론에 있습니다. 전혀 무게를 못 느낀다고 합니다.

실로 무게가 있지 않은 것인데 ‘나’ 라는 관념, 번뇌 때문에 상(相)을 내고 무게를 느끼는 것입니다. 관념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창조 합니다. 우리가 길을 갈 때는 먼저 길목을 알아야 합니다. 실천에 앞서서 이론이 있어야지, 이론 없이 실천만 있으면 맹종이 되는 것이고 빗나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꼭 이론이 앞서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밝혀 놓으시고 무수한 성자가 탄탄대로를 닦아놓으신 그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인데, 길목도 연구하지 않고서 동서를 헤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편안하게 되어 있는 길, 환한 길을 인도 하는 것이 안심법문(安心法門)입니다. 억지로 이것인가 저것인가 상대적인 의심을 해서는 마음만 피곤할 뿐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꿈같다고 했으면 분명히 꿈같다고 보려고 하고 그림자를 그림자로 여겨서, 집착을 뿌리치면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쁜 하고 공부가 잘 풀리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 이대로 있다고 인정하고 공부하는 것과, 이 몸뚱이가 본래 비었다고 여기며 공부하는 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근본 정통선을 익혀야만 참다운 선정의 힘을 얻을 수가 있고 도력도 나오는 것입니다. 정통선으로 해서 사선정(四禪定) 사공정(四空定) 멸진정(滅盡定)까지 못 나간다면 우리 자성이 갖추고 있는 무량공덕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원래 우리 자성 가운데는 삼명육통(三明六通)등 무량공덕이 갖춰져 있는데, 삼매로써 습기를 녹여야 무량공덕이 나옵니다.

불교가 다시 옛날 도인들처럼 화광삼매(火光三昧)에 들어서 자기 스스로 불을 내어 자기 몸을 태우는 정도의 도력이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현대 물질사회에 젖은 사람들이 따르게 될 것이고, 제도하기도 쉽습니다.

부처님 육성과도 같은『아함경』을 보면 여러 군데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불교란 결국 기도를 하든지, 우리 마음이 일념이 되고 업장이 녹아서 삼매에 들어야 합니다.

불교나 기독교나 바른 깨달음, 바른 계시를 받으려면 꼭 그래야만 합니다. 어느 누구나 성자가 되려면 깊은 삼매에 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없이 성자가 되려고 하니까 무리가 생기고 폐단이 생기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나도 과연 성불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 한계를 의식하며 자신 없어 합니다.

잘못된 생각이지요. 누구나가 삼명육통을 할 수 있고, 위대한 공덕이 있는 성자와 내가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보는 것이 불법입니다. 달마조사와 내가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겉에 형상은 다르다 하더라도 근본 성품은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보아야지요.

다만 우리가 닦고 안 닦고, 또는 얼마만큼 닦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선근이 깊지 못하면 자꾸만 후퇴합니다. 닦다가도 조금만 피로하면 ‘편히 살 것인데 괜시리 사서 고생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다른 스님들은 편하게 승려생활을 잘 하는데 무슨 필요로 그렇게 까다롭고 옹색하게 하느냐고 해요. 삼매정진을 무시한다면 옳은 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 제자들 가운데는 내가 잘 돌봐주고 인자 하다고 하면서도 너무 계행이 철저해서 시봉하고 싶어도 스스로 포기하고 지키지 못했다는 말을 해요.

그리고 ‘무애행(無碍行)‘ 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걸림 없네 하면서 짓는 파계는 무애행이 아닙니다. 수행의 적일뿐입니다. 진정한 무애행은 법기에 끄달리지 않는 것입니다. 계행을 지키고도 걸림이 없는 것, 그것이 무애행입니다.



永訣辭


큰스님 本願따라 幻으로 오시옵소서



별안간에 圓寂의 訃音을 接하니

日月이 無光하고 대지가 빛을 잃었습니다.

生時的的 不隨生하고 死去堂堂 不隨死하여

生死去來가 無干涉이라.

正體堂堂 在目前이 스님의 本來面目이라.

스님의 오심은 本願으로 오신지라

오셔도 오심이 없어 如月印天江이요,

가심은 根源에 合함이라

가셔도 가심이 없어 似波 登大海 이오나

生死心이 未絶한 저희들로는 蒼慌亡措할 따름입니다.

큰스님 本願따라 幻으로 오시어

80平生을 禪風振作과 敎化布敎의 크신 佛事는

宗徒들의 가슴에 깊이 남을 것입니다.

더욱 臨終偈 此世他世間 去來不相關 蒙恩大千界 報恩恨細澗

四句를 남기시니 크신 敎訓 더욱 切感합니다.

큰스님의 法體는 저희 곁에 없으나

三千大天世界를 悠悠自適하시며

衆生의迷妄을 사르시기에

全宗徒들은 平常心을 잃지 않고

혜안을 밝히려 精進하고 있습니다.

淸華 큰스님!

청산은 푸르고 綠水는 잔잔하온데

큰스님은 何處에 머무시나이까?

本願을 不忘하고

速還娑婆하사

再明大事하사

普利群生하옵소서

蒼忙中에도 큰스님의德을 흠모,

삼가 옷깃을 여미고 香을 사릅니다.


불기 2547년 11월16일

大韓佛敎曹溪宗 元老會議 議長 靑雲 道源 焚香




弔辭


寂滅의 세계에서 편히 쉬소서


無住堂 淸華 큰스님!

어제까지 滿山을 붉게 물들이던 단풍이

오늘은 落葉으로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諸行은 無常이라

무릇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하고 변해서

마침내 空寂處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本分宗師는 이 도리를 사무치게 깨달아 알고

生死에 집착하지 않는다 했으니

오늘 큰스님께서 圓寂을 보이신 것은

沙羅雙樹에서 般涅槃에 들던 부처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부처님은 歸寂에 즈음해

눈물을 흘리는 阿難에게 이르기를

‘태어난 모든 것은 죽음을 피할 수 없으니

슬퍼할 일이 아니라‘ 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聲聞弟子들은

부처님의 열반을 당하여 장마비 같은 눈물을 뿌려

恒河를 크게 불어나게 했으니

이는 스승에 대한 감사와 그리움이

그만큼 간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큰스님을 永訣하는 諸方의 사부대중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生死가 無常한 것인 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평소 큰스님에게서 받은 자비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와

아쉬움의 마음이 슬픔이 되어 흐르는 눈물입니다.


청화 큰스님!

스님께서는 일찍이 백양사 운문암 금타 화상의 문하로 출가한 이래

半百年이 넘게 오로지 수행과 교화에만

헌신해 오신 宗門의 큰 스승이었습니다.

특히 20여 년 전 부터는

九山門의 하나인 동리산 태안사에서

甘露의 門을 열고 사부대중을 제접하셨으니

이로부터 邪魔外道는 입이 막히고,

迷倫衆生은 눈을 열게 되었습니다.

실로 큰스님의 法床아래서 煩惱의 불을 끄고,

業障을 닦아낸 자의 수는

동리산의 참나무보다 그 수효가 많았습니다.

평생을 한결같이

자비로 德化를 베푸신 큰스님의 法力과 功德은

80세납을 거꾸로 헤아린다 해도 다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희들은

큰스님을 永訣하며 어떤 것보다

단 한 가지의 追憶으로 온 몸에 훈훈함을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언제나 한결같았던 謙遜하신 모습입니다.

스님께서는 승속간애 누구를 만나도

항상 下心과 謙遜으로 대했습니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끝내는 마주하는 이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感服하여

저절로 무릎을 꺾게 하였습니다.



古人이 이르기를

‘무릇 수행자가 공부가 얼마나 되었는지 측정하는 데는

그 하심의 정도로 알아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에 거짓이 없다면 큰스님이야말로

저『법화경』常不輕菩薩의 가르침을 몸소 보인

化身이라 할 것입니다.


청화 큰스님,

대저 佛門의 大宗師는

살 때도 철저히 자기의 實相을 보여주어야 하고

죽어서도 그 本體를 숨김없이 드러낸다고 했습니다.

이제 큰스님께서는 이런저런 인연을 뒤로 하시고

常寂光明이 고요하게 빛나는 圓通佛法의 세계로 떠나시려 하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큰스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이 더 필요한 중생들은

갈 바를 몰라 右往左去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희들에게 큰스님께서는

마지막 자비를 베푸사

生死去來의 眞相이 어떠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일러주시기를 청하나이다.

竹影歸階塵不動이요

月穿潭底水無痕이라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어나지 않고

달빛이 물밑을 뚫어도 수면에는 흔적 하나 보이지 않도다.

無住堂 淸華 큰스님,

부디 寂滅의 세계에서 편히 쉬시옵소서.


불기 2547년 11월 16일

大韓佛敎曹溪宗 總務院長 法長 焚香




追悼辭


큰스님, 길잡이를 잃은 탄식의 소리를 듣고 계신지요



오늘은 청화 큰스님께서 열반을 보인지

닷새 되는 날이니,

이제 큰스님을 영결하는 자리에

후학 현산은 삼가 일주향을 올립니다.

큰스님을 처음 뵈온 건 사십여 년 전,

임실 도통암에서 하룻밤을 같이 지낸 적이 있사온데,

일종식하며 밤새 장좌 하시고

정진 하시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평생을 그 모습 그대로 장좌불와 하시고 일종식하며

수행으로 일관된 삶을 살으신,

근자에 보기 드문 큰스님 이십니다.


자비롭게 온화한 미소,

만 중생을 이익케 하시려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우바새 우바니들이 항상 구름처럼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표표히

피안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시다니요.

큰스님께서는 큰스님의 가르침과 모범을

따르고 배우던 사부대중의

길잡이를 잃은 탄식의 소리를 들으시는지요.


청화 큰스님!

산은 푸르고 물소리 여전한데 큰스님 어디로 가시나이까?

가시는 듯 다시 오셔서

중생과 함께할 보살의 서원을 어기지 마시고

남은 불사에 힘을 더해 주시고

고난과 시련에 빠진 온갖 중생을 이익케 하시고

안락케 하소서.

삼계라 높고 낮은 수많은 진리여!

나는 말하리, 오직 이 마음의 진리뿐이라고.

이 마음 접어두고 깨쳐야 할

그 진리는 어디에고 없다고.


불기 2547년 11월 16일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화엄사 선원장 현산 분향




追悼辭



다시 이 땅에 法體를 나투시어 중생을 護持하소서



큰스님!

惺惺하신 큰스님의 淸音이 지금도 이 제자의 가슴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데

저희들만 남겨둔 채 홀연히 涅槃에 드시니, 저희들은 큰스님께서

法身以前의 末後一句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肉身이 곧 法身이나 온 우주는 큰스님을 잃은 슬픔에 잠겨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라만상이 生住異滅하는 것은

우주의 참다운 法則이며 큰스님께서 증득하신 眞如 淸淨自性에는

生과 死가 따로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저희 사부대중들은

자비스러운 큰스님의 法體를 뵈올 수 없고 음성을 들을 수 없어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落葉과 같이 가슴이 메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출가 이전에도 후학들의 교육을 위하여

사재를 헌납하시어 학교를 세우시고

눈푸른 납자로서 염불선을 주창하시어

禪門의 宗匠으로 이 땅에 부처님의 慧命을 구현하신

出格丈夫이셨고 大善知識이셨습니다.

출가하신 이후 法體를 감추시는 날까지

전국제방에서 일종식으로 일관하시면서

오직 生과 死를 뛰어넘는 자유를 위하여 혼신의 삶을 사셨습니다.

큰스님! 큰스님께서 이 땅에 남기신 그 공덕과 업적을

후학들이 어찌 잠깐인들 잊을 수 있겠습니까?

평소 큰스님을 뵈올 적마다 자비스러운 모습은

저희 제자들뿐만 아니라 山川草木들도 머리를 숙였습니다.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迷倫을 벗어난 사부대중이 그 얼마이며

無生의 智慧를 얻어 돌아간 생명이 그 얼마입니까?

큰스님께서 남기신 크나큰 法輪으로 인하여 佛日이 더욱 빛나게 되었습니다.

迷妄의 弟子들이 있는 곳이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항상 찾아 가시어

욕망과 무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참으로 오늘을 산 위대한 禪僧이시며

一切萬物에 집착을 보이지 않으신 無位眞人 그 자체입니다.

출가 이후 40여 년을 一衣一鉢로 長坐不臥 하시면서

시공을 초월한 정진 일념으로 사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사부대중의 큰 스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차 한 잔을 남기시고 寂滅의 世界에서 不滅의 法身을 빚어내셨습니다.

큰스님!

이 자리에 모인 사부대중을 위해

큰스님의 自性淸淨의 本來面目을 한번 示現 하소서.

온 우주가 귀와 가슴을 열고 큰스님의 法語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 이 땅에 法體를 나투시어 衆生을 護持하소서.


불기 2547년 11월 16일

재가제자 상정 임창욱 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