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불자님들이시여, 우리는 본래 부처입니다. 본래 부처니까 우리한테는 석가모니와 똑같은 원효(元曉) 스님과 똑같은 그런 역량을 분명히 갖추고 있습니다. 인간이 갈 길은 오직 불성을 개발함으로써 만이 인간의 참다운 행복이 있습니다. 어떠한 길도 역시 우리 본바탕, 우리 생명의 근원인 불성을 개발 못 할 때는 참다운 행복은 없습니다.
행복한 것 같지만 우리를 불행으로 이끌어 가고 맙니다. 이런 가르침을 우리는 받고 있습니다. 내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나 내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나 우리 국가의, 국가 민족의 행복을 위해서나 세계 인류복지를 위해서나 어떤 면으로 보나 최상의 길은 무엇인가, 이것은 나한테 있는 내 본바탕에 있는 불성(佛性)을 깨닫는 길입니다.
허나 우리는 삼독심(三毒心)이나 탐욕을 부리는 탐욕심, 또는 조금 마음이 안 내키면 마음을 우리가 혼란스럽게 해서 마음을 동요시켜 흥분하고 불룩거리고 하는 그런 진심(嗔心), 성내는 마음, 또 한 가지는 자기 본질이 부처임을 인식 못하는 어리석은 마음입니다. 중요한 학설을 모르고 또는 중요한 무슨 교리를 모른다 하더라도 자기 본질이 자기 본바탕이 부처임을 아는 그 사람은 지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지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식은 없다 하더라도 자기 본바탕이, 내가 지금 못 보지만은 내 본바탕이 부처다, 이와 같이 느끼는 분들은 벌써 지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본바탕을 불성이라고 못 보는 그런 어리석은 마음, 자기 분수 이상의 탐욕심, 또는 기분 내키지 않으면 그때는 성내는 마음, 진심 그리고 자기 본바탕이 부처임을 인식 못 하는 마음 이 마음 이것이 삼독심입니다.
이 마음 때문에 본래 부처건만 우린 부처가 못되고, 지옥(地獄)으로, 조금 나으면 아귀(餓鬼)로, 또는 축생(畜生)으로, 또는 사람으로, 그와 같이 윤회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런 삼독심(三毒心)을 우리가 못 거두면 우리 윤회는 영원히 계속됩니다. 몇 만생 몇 천생을 지나도 우리는 역시 그와 같이 지옥으로, 아귀로 왔다 갔다, 갔다 왔다 하는 것입니다.
세 가지 독심의 그 반대가 불교의 삼학도(三學道)란 말입니다. 계행(戒行)을 지켜서 우리 행동을 바르게 하고, 언어를 바르게 하고, 또한 동시에 우리 마음을 항시 고요히 통일하고, 우리 마음을 다스려서 그때는 우리 마음의 바닥을 비춰본다 말입니다. 또한 동시에 불교의 참다운 지혜로 해서 비록 내가 안 보일망정, 내 본바탕이나 우주의 바탕은 부처구나, 일체 공덕을 가진 부처구나, 이와 같이 우리가 인식한다. 이것이 삼학도(三學道)입니다.
자기 언행을 바르게 하는 그런 계율(戒律), 또는 그런 마음을 고요히 해서 자기 본바탕, 불성을 비춰보는 그러한 선정(禪定) 즉 정신통일, 거기에다 비록 자기가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지금 안 보인다 하더라도 내 본바탕은 부처구나 이와 같이 느끼는 그 지혜(智慧), 이것이 삼학도(三學道)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중생은 우리 업장을 녹여 삼독심(三毒心)을 차근차근 힘을 줄이게 해가지고서 본래 고향인, 본래 우리 생명의 근원인 부처로 돌아가서 영생의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시 어두움과 광명의 양면을 생각합니다. 우리 마음의 어두움은 앞에 말씀처럼 탐욕심이나 또는 성내는 마음이나 또는 어리석은 마음 이것이 우리 마음의 어두움입니다. 어두움이 깔려있을 때는 판단을 잘 못합니다. 한번 성내보십시오, 바로 보는가. 탐욕을 내보십시오, 바로 보는가. 탐욕과 성냄과 또는 내 본바탕이 부처구나 이렇게 못 느끼면 우리 판단은 흐려집니다. 판단이 흐려짐에 따라서 우리는 개인적으로 보나, 가정적으로 보나, 국가 민족으로 보나, 우리는 바른 생활을 못하고 불행에 빠지고 맙니다.
우리 사회 혼란도 역시 그러한 탐욕심, 또한 성내는 마음, 또는 내 본질이 부처구나, 그렇게 느끼지 못하는 마음, 그런 마음 때문에 그런 삼독심 때문에 사회, 개인, 국가, 인류 모두가 다 불행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고불변(千古不變)의 진리입니다. 제 말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말씀 또는 무수한 도인들이 다 증명한 말씀입니다.
이러한 어두운 마음 때문에 탐욕심이라 하는, 또는 성내는 마음이라 하는, 내 본질이 부처라는 것을 모르는 그 마음,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방금 말씀처럼 바른 판단도 못하고 우리 생활은 불행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떠한 것이 어둠을 몰아내는 밝은 생활인가, 광명의 생활인가? 이것이 아까 제가 말씀처럼 계율을 지켜서 살생도 않고, 말도 바른말, 행도 바른 행, 생활도 바른생활, 이렇게 하면서 내 본바탕이 부처구나 하는 것을 분명히 느끼는 지혜, 그런 지혜를 우리가 자아내기 위해서 그때는 마음을 항상 고요히 한단 말입니다. 이런 소위 삼학도, 이렇게 지키면 이러한 것은 광명이 되어서 우리 마음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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