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908
- 청화 큰스님의 1985년 4월 8일 초파일 법문입니다. -
오늘은 우리가 연등(燃燈)을 켭니다. 왜 켜는 것인가? 인류 역사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분의 생일을 기념한다 해도 좋습니다. 우리 인간의 본바탕을 밝히고 우주의 본 생명을 밝힌 부처님의 가르침을 우리가 기린다 해도 좋습니다. 허나 우리 마음의 어둠을 몰아내는 부처님의 광명으로 해서, 진리의 광명으로 해서 우리 무지를 몰아내는 이러한 것이 가장 소중한 오늘의 의의입니다. 불을 왜 켜는 것인가? 광명으로 해서 우리 마음의 광명인 아까 말씀처럼 바른 행동, 바른 생각, 바른 지혜 이걸로 해서 우리의 어두운 무지(無智)를, 어둠을 몰아내고, 삼독심(三毒心)을 몰아낸다 말입니다.
우리는 등을 켤 때는 내 남편이 잘되면 좋겠다, 또는 자기 가정 행복을 기원한다, 이것도 좋습니다. 허나 그런 문제는 사소한 문제입니다. 흐린 물이 내려올 적에 흐린 물을 막으려면 상류를 먼저 맑게 해야 합니다. 하류에서 아무리 맑게 하려 해도 상류가 흐리면 하류도 흐리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근원이 마음인지라 우리 마음에서 어둠만 몰아내면 행복은 절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아무리 남편의 행복을 바라고 자기 자손들의 행운을 바란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에 어둠이 깔리면 그때는 행복은 못 옵니다. 어둠만 몰아내면, 계행 지키고 또는 우리 마음을 고요히 해서 부처님의 지혜를 비추어보고 내 마음이 부처구나! 내 본성이 부처구나! 이것을 분명히 느끼고서 우선 근본 뿌리를 북돋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겸허해야 합니다. 우리가 안다는 것은 가령 박사학위가 한 댓 개가 있다 하더라도, 참다운 지혜를 모르고 우리 불성을 못 느끼면 그건 무지입니다. 학식은 있으나 참다운 지혜에는 무지입니다. 우리는 겸허히 자기가 안다. 하더라도 영원적인 진리 앞에서는 내가 무지다.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년경~B.C 399년경)도 자기 무지(無智)를 아는 것이 참다운 지혜의 입문이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기 무지를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참다운 불성(佛性)의 지혜를 모릅니다.
참다운 불성의 지혜를 모르는 자기 무지, 이것을 먼저 우리는 겸허하니 느끼고서 그와 동시에 방금 말씀처럼 바른 광명스러운 우리 생각, 광명스러운 행동, 우리가 부처님을 한번 부르는 그 마음, 그 마음이 우리 마음에 광명을 주는 것입니다. 부처님을 한번 부르면 벌써 귀신들은 훤히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염불하고 참선하면 벌써 우리 집안은 그대로 벌써 광명에 비춰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말을 안 한다 하더라도, 한 말이 없다 하더라도, 우리 행동이 바르고 우리 생각이 바르면 우리 불교를 광명으로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한테 설사 물질을 베푼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이 어두우면은 어두운 그 마음이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을 때, 아까 말씀처럼 근원을 다스리는, 근원을 다스리면 마치 뿌리를 북돋우는 나무 이파리 모양으로 그냥 바로 무성해 옵니다. 그러나 중생들은 이파리나 가지만 생각하지 뿌리는 그냥 외면합니다. 탐욕심 버리는 그러한 계행, 우리의 마음을 가장 고요하게 하는 그러한 참선 염불입니다.
거기다 참다운 지혜, 비록 내가 안 보이고, 나는 여태는 몰랐다 하더라도 내 근본이나 우주의 본질은 일체 공덕을 갖춘 부처구나 이렇게 딱 믿는단 말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아까 말씀처럼 계율을 지키고, 또는 참선 염불하고 또는 지혜를 닦는단 말입니다. 전단 향나무는 향나무가 한군데 있으면 40리를 사방으로 다 향내를 풍긴다 합니다. 「이랑」이라는 그런 독초는 나무 한 그루가 그 독초의 냄새 때문에 악취가 그때는 몇 십리 간다고 합니다.
나무도 그렇거든 우리 사람의 나쁜 행동은 눈에는 안 보여도 몇 십리, 몇 백리까지 나쁜 행동이 그냥 분위기로 해서 그것이 전파되는 것입니다. 가령 미국에 누가 있다 합시다. 그 사람을 미워하면, 미워하는 악령(惡靈)이 전파 이상으로 빨리 가서 그 사람한테 해를 끼치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있는 그 누군가를 우리가 축복한다 그러면은 축복하는 그런 선령(善靈)이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그때는 그 선령이 미국까지 가서 축복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처님의 부사의(不思議)한 도리(道理), 이것은 전자, 원자역학이나 그런 것이 다 발전되어서 우리가 유추합니다만 아무튼 전파나 그런 어떤 자기파 이상으로 그와 같이 심심미묘(甚深微妙)한 속도나 역량이 있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벌써 나를 오염시키고 우주를 오염시킵니다.
다시 생각하면, 한 생각의 좋은 생각이 벌써 나를 정화시키고 우주를 정화시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 생각, 자기 행동, 이것이 자기 몸과 자기 마음을 그때는 그르치게 만드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 가정을 망치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부디 오늘 광명의 날, 이처럼 가장 훌륭한 기념일, 이날 우리는 기념에서 획기적으로, 당장에 바로 아까 제가 말씀처럼 광명스러운 길인, 우리 행동 바르게 하고 말 바르게 하고, 우리생각을 항시 부처님, 내 본인의 부처한테다가 안주를 시키고 생활하는 그러한 부처님 참다운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등을 켤 때도 아까 말씀처럼 내 광명, 내 불성을 밝히는 그런 불, 우주를 밝히는 그런 불, 바로 밝히면 바로 등 하나가 우주를 밝힙니다. 부처님 법문은 원융무애(圓融無碍)입니다. 하나와 전체가 같이 융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가 잘되면 그때는 우주가 다 그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소중한 등은 부처님의 탄신을 기념하고 동시에 우리 자성(自性)한테 갖춰있는 삼독심을 몰아내는 그런 불, 우리 가정의 행복을 밝히는 그런 불, 우리 국가 민족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그런 복지의 불, 세계 인류를 영원히 평화로 이끄는 불, 그런 불을 켜시면서 더욱 더 행복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오늘 법어(法語)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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