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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99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99

 

 

다 아시는 바와 같이 우리 승가의 화합의 기조는 육화경(六和敬)입중오사(入衆五事)란 말입니다. 육화경(六和敬)입중오사(入衆五事)가운데 우리 출세간 수행자의 화합 규칙 기준이 있습니다. 입중오사는 가끔 말씀드립니다마는 이것은 오부율(五部律), 율장(律藏)사분율(四分律), 오분율(五分律), 십송율(十誦律), 마하승기율(摩訶僧祇律)그런 율장이 있습니다마는 실은 옛날의 선객들은 다 율장을 공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분들은 자칫하면 이렇게 계()를 막 받아 와 가지고 강원(講院)도 안 거치고 나온 분도 있고 강원을 거친다고 하더라도 이 근래에는 율장을 따로 안 배운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승가 행실에 관해서 아주 모호한 일이 많단 말입니다. 임제(臨濟) 스님이나 그런 분들도 어떤 때는 선기(禪機) 발동해서 업어치기도 했지만 그런 분들은 굉장히 율장(律藏), 논장(論藏), 경장(經藏) 다 공부하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상에서 선기 발랄해서 그런 일을 했단 말입니다. 그런데 율장도 안 배우고 마음의 지견도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그런 본을 내서는 큰 탈이지요. 그러면 결국은 승가의 화합을 깨뜨릴 뿐만 아니라 자기공부도 안 되는 것입니다. 입중오사(入衆五事) 이것은 일()에 하심(下心)이란 말입니다. 그다음에는 자심(慈心)이라 우리가 일체중생이 평등하거니 마땅히 권위의식을 가지고 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이 많다고 권위의식을 부릴 것입니까, 좀 구참이라고 부릴 것입니까, 사미가 먼저 깨달아 버릴는지 그건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쇼카왕 때도 십 칠세 되는 사미(沙彌)가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다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자심(慈心)이라 역시 나이 많고 구참 스님들은 자심(慈心)으로 아래 분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공경(恭敬)이라 역시 늦게 오신 분들이라든가 나이 젊으신 분들은 비록 승가의 차서(次序)로 법랍은 있다 하더라도 역시 한 살만도 더 먹었다면 응당 거기에 상응된 공경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지차제(知次第)라 알 지[]자 차례 차[]자 차례 제[]자 자기 차서(次序)를 안단 말입니다. 내가 이 회중(會中) 가운데 어떤 위치에 있는가 차서(次序)를 모르면 그마만치 자기 법도를 넘어 버린단 말입니다. 법도를 넘으면 그마만치 남의 빈축을 삽니다. 그다음에는 불설여사(不說餘事). 아니 불[]자 말씀 설[]자 남을 여[]자 일 사[]자 공부하는 것 이외에 딴말은 말아야 한단 말입니다. 자꾸만 딴말을 하면 자기도 공부도 안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공부라는 것은 내내야 우리는 상수(上首) 수좌(首座)니까 산심(散心)을 거두고 정심(正心)에 들어가야 합니다. 산란스런 마음을 거두기 위해서는 자꾸만 개념 활동을 많이 하고 남의 말만 하면 그마만치 공부는 안 됩니다.

 

일심지(一心支)라 한 일[]자 마음 심[]자 지탱할 지[], 일심지에 들어가야 삼매에 들어갑니다. 이른바 무간수(無間修)라 없을 무[]자 사이 간[]자 닦을 수[], 사이 없이 닦아나가야 삼매에 든단 말입니다. 삼매에 못 들면 그때는 법을 못 증() 하는 것입니다. 물론 도인 기준 되어서 일언지하(一言之下)에 철저하게 깨달은 분들도 없지 않아 있는 것이지마는 보통은 다 오랫동안 닦아서 구구순숙(久久純熟)이라 오랫동안 닦아서 삼매에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습기를 녹이고 증()한단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될수록 공부하는 말, 우리 살림에 꼭 필요한 말 외에는 될수록 말이 적어야만 산심(散心)을 거둡니다.

 

산심(散心)을 거두고 정심(定心)에 들어가서 법의 진상을 체험하는 것이 우리 수좌가 할 일 아닙니까. 그러기에 지관타좌(只管打坐) 신심탈락(身心脫落)이란 말입니다. 덮어놓고 앉아라, 지관타좌란 말입니다. 오랫동안 앉다보면 그때는 신심탈락이라 그때는 몸과 마음이 쑥 빠집니다. 이 몸뚱이, 사대(四大), 오온(五蘊) 분별 시비하는 마음, 응심(凝心)이 간 곳이 없단 말입니다. 그래 버려야 지견(智見)도 그때는 바른 지견이 나옵니다.

 

사대 오온이 텅 빈 것을 못 맞닿아 놓으면 내내야 거기서 맴돌아 버리는 것이지 바른 지견이 못나오는 것입니다. 사대 오온을 훤히 뚫어서 마치 밑이 없는 독같이 딱 빠져버려서 나라는 관념이 이렇게 사라져버려야 비로소 바른 지견이 나오는 것이니 그렇게 하려면 아까 말씀처럼 지관타좌(只管打坐)라 오로지 앉아야 하거든요. 따지고 분별하면 그렇게 못 되는 것입니다. 앉다 보면 마치 흐린 물을 가만두면 앙금이 가라앉아서 바닥이 보이듯이 앉다 보면 차근차근 사대 오온은 떨어진단 말입니다.

 

그러기에 조주(趙州) 스님께서도 십 년 이십 년 닦아서 못 통하면 내 목을 베어가라 그런 말씀도 안 하셨습니까. 그리고 육화경(六和敬), 아까 말씀드린 입중오사(入衆五事)는 일()에 하심(下心)하고, ()에 자심(慈心)으로 해서 자비심 부리고, ()에 공경심을 내고, ()에 자기 차서(次序)를 알고, ()에 필요 없는 공부에 유익되는 말 아닌 그런 실언(失言) 같은 걸 하지 말고 제가 볼 때는 사실은 경 말씀도 실언인 것입니다. 실언을 자꾸만 하면 자기도 공부 손해되고 남도 방해를 치는 것입니다.

 

육화경은 대체로 아시는 분은 아시지 않습니까마는 신화동주(身和同住)라 자기 몸은 역시 대중과 더불어서 자기가 자는 처소가 특별히 좋으면 안 됩니다. 저 같은 사람도 혼자 저쪽 조선당(祖禪堂)에 있으니까 항시 가책을 받습니다만 억지로 맡겨주어서 그냥 있습니다마는 항시 송구한 마음이 있습니다. 또는 구화무쟁(口和無諍)이라 자기 입으로는 항시 청정한 말, 우리 공부에 유익한 말, 또는 상()을 떠난 체()에 입각한 말, 그런 말만하고서 부질없는 말은 않는단 말입니다. 그래야 피차 옥신각신 서로 다툼이 안 됩니다.

 

그다음에는 의화동사(意和同事), 자기 뜻은 같은 일을 생각한다 말입니다. 같이 한집에 살면서 생각하는 각도가 달라버리면 그때는 화합이 못됩니다. 그다음에는 계화동준(戒和同遵)이라 경계할 계[]. 계를 같이 지켜야지 한 편은 지키고 한 편은 안 지키면 또 화합이 안 됩니다. 한 편은 애쓰고 안간힘을 쓰고 한 편은 치고 갔다 왔다 하면 그때는 화합이 안 됩니다.

 

그다음에는 견화동해(見和同解), 볼 견[]. 우리 견해가 같이 정도를 지향해야 합니다. 엉뚱하게 세간에서 배운 습기나 있어 따지고 그런 것이나 말하면 그때는 안 되는 것입니다. 마땅히 부처님께서, 불조(佛祖)가 말씀하신 청정행법(淸淨行法) 외에는 말 안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도 손해 안 보고 분위기도 그마만치 혼탁이 안 된단 말입니다. 견화동해라 우리가 불법에 대한 견해를 같이 똑바로 같이 정당하게 해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이화동균(利和同均)이라 우리가 승가에서 수입이 있으면 같이 똑같이 써야지 어느 한 사람은 더 많이 쓰고 한 사람은 못쓰고 또 못 먹고 못 먹는다거나 그러면 또 불화가 생깁니다. 이상 든 바와 같이 입증오사나 또는 육화경을 잘 지킨다면 그때는 화합이 안 될 까닭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