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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94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94

 

금타선사의 가르침(5)

 

참선과 일반 차원낮은 공부와의 차이는 무엇인가? 화두를 하건 묵조를 하건 또는 염불을 하건 진여불성자리, 우리 생명의 본래 면목자리를 떠나지 않으면 다 참선입니다. 설사 󰡐이뭐꼬󰡑 󰡐이뭐꼬󰡑땀을 흘리면서 선방에서 애쓴다 하더라도 진여불성을 떠나면 그때는 참선이 못돼요. 본래의 자리를 안떠나면 󰡐똥막대기󰡑를 부르나 뭘 부르나 그때는 모두가 다 참선이란 말입니다. 이름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존재의 실상자리를 안 떠나면 돼요. 제법(諸法)이 실상(實相)이라. 모두가 다 바로 보면 그때는 실상 아님이 없지 않습니까?

 

참선은 그냥 애만 쓰고 아무런 소득도 없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깨달을 때에야 활연대오해서 다시없는 행복을 느끼겠습니다마는 깨달은 뒤에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공부해 나갈 때도 한 걸음 가면 한걸음 간 만큼, 우리 마음이 조금씩 열려 가면 열려간 만큼 마음도 개운하고 몸도 훨씬 좋아집니다. 사실 보통 명상공부를 한다 해도 잔병이 떨어지고 머리도 더 좋아지고 눈도 밝아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참선해서 약간 힘을 얻어 놓으면 밤새껏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이 별로 피로한 줄을 모르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란 것은 원래 근원자리가 바로 불성입니다. 무한의 공덕자리, 무한의 가능성이 거기에 포괄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불성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진 만큼 행복감이라든가 건강이나 그런 모든 것이 거기에 상응됩니다. 그래서 참선의 이름을 현공덕주라, 모든 공덕이 나타나는 그런 공부란 뜻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선할 때 그냥 고통만 생각하고 거기서 얻는 것은 나중에 깨달을 때 외에는 별로 없다, 그렇게 생각을 말으십시오. 이렇게 느끼고서 참선을 해야 될 것이고 또 참선할 때는 꼭 기본적인 준비가 있어야 됩니다. 누구나가 다 참선에 그냥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맨 처음부터 모든 준비를 다 갖추어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집안에서, 가령 밤에 염불도 하고 그러다가도 한 30분이나 1시간 그렇게 앉는 버릇을 붙이면 나중에는 더 앉기도 훨씬 쉽고 우리 마음도 그만큼 차근차근 정화되어 갑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평소에 갖는 습관성이 중요합니다. 참선하는 자세를 간단히 말하면 일상삼매(一相三昧) 일행삼매(一行三昧)입니다. 일상삼매란 것은 모든 것이 부처라는, 하나의 실상외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체존재 모두가 다 우리 중생이 잘못봐서 그런 것이지 정견으로 본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잔여불성뿐이고 대총상법문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일상삼매고 또 그렇게 보는 것을 끊임이 없어 생각 생각에 계속하는 것을 일행삼매라 그럽니다. 우리는 보통 그때그때 순간 생각은 더러 할 수 있지만 지속을 시키지 않지 않습니까? 기본이 좀 좋거나 환경이 괜찮을 때는 모르지만 시끄러운 데라든가 또는 기분이 언짢을 때는 그냥 그런 쪽으로 우리 마음이 달려가 버립니다. 따라서 우리가 모두 다 진여실상뿐이다, 불성뿐이다 하는 그런 일상삼매를 생각생각에 다른 생각이 없이 지속을 시키는 것이 일행삼매입니다.

 

육조 혜능스님이라든가 사조 도신스님, 또는 금타선사 가르침도 내내야 모두가 다 그런 쪽으로 포괄이 됩니다. 육조단경에서 부촉품(咐囑品)이라, 부촉품은 결론 같은 말씀입니다. 거기서 󰡒여러분들이 만약 부처님의 무량지혜를 알려고 하면 마땅히 일상삼매와 일행삼매를 공부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일상삼매는 천지우주가 모두가 다 진여불성이 아님이 없다는 말입니다. 진여란 것은 하나의 진리인 동시에 다른 것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참다운 도리가 아닙니까? 또 그 자리는 하나의 생명이기 때문에 불성 그래요.

 

그러니까 진여불성을 항시 놓치지 않아야 일상삼매입니다. 또는 그런 자리를 생각생각에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자리에 누울 때나 안놓치면 그때는 꿈속에도 공부가 되어 갑니다. 우리 범부들은 과거전생부터 업장을 많이 지어놓으니까 별스런 꿈을 다 꾸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잘 때까지도 강인하게 우리 의지를 진여불성에다 딱 매어놓고서, 일상삼매를 하고 또는 일행삼매를 해야 됩니다. 우리가 저절로 졸음이 오면 잘망정 빈틈없이 하다보면 결국은 꿈속에서도 부처님 공부쪽으로 우리 진여불성이 차근차근 정화가 되어갑니다.

 

금강심론은 장절마다 또는 구절마다 굉장히 소중한 법문입니다. 4절에 관음문자(觀音文字)란게 있어요. 관음문자란 무엇인가 하면 성자의 눈으로 모든 소리를 다 부처님 소리, 부처님의 청정한 범성(梵聲)으로 본 것입니다. 가사 사람 말소리라도 어떤 말소리를 하면 그 사람은 욕심이 많고 또 어떻게 말소리를 하면 그 사람은 진심(瞋心)이 많고 말입니다. 그 음성으로 사람의 성질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그런 도리가 관음문자에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한글로 해서는 여러 가지로 음을 다 표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아주 괴상한 소리라든가 한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다 관음문자의 구조로는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런 데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또 우리 불성공덕이 얼마만큼 위대한 것인, 우리가 진여불성을 견증하고 본다고 생각할 때 얼마만큼 위대한 것이 어떻게 빛나고 어떻위대하고 하는 것인가 하는 불성공덕을 간단히 다 여기에 말씀했습니다. 또는 모든 것을 모든 물질을 이렇게 분석해 들어가서 나중에 진여불성까지 딱 도달하는 그런 경구도, 다만 그것이 하나의 불교의 도리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물리화학적인 그런 도리와도 절충을 시켰습니. 그러기 때문에 현대적으로 따지기 좋아하고 분석을 좋아하는 사람도 그걸 보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차근차근 불성쪽으로 다가서게 됩니다.

 

우리들이 보통 책을 내는 경우는 이른바 결정설(決定說)이라, 조금도 오류가 없는 결정설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자가 내신 책결정설이라, 오류가 없단 말입니다. 따라서 어느 구절, 어느 장절을 펼치고 본다 하더라도 모두가 다 성불의 길로 우리 마음을 편달하는 귀중한 금옥같은 법문입니다. 각 경론의 정수를 뽑아놨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일반 책보듯 말으시고 정독을 하십시오.

 

가령 화엄경 정수는 어떤 것이고 법화경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어떤 것이고 또 능엄경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이고 그런 것을 다 여기에 뽑아놓았습니다. 이것은 도저히 천안통을 통하지 않은 사람은 어떻게 언급할 수가 없는 그런 소중한 법문입니다. 현대는 그야말로 우주시대 아닙니까? 따라서 우주론적인 그런 문제에 있어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그러기 때문에 일반 학자분들, 특히 불교학자분들께서 본인들이 느끼고 있는 애매모호한 점이라든가 또는 수행론에 대해서 생각하실 때 꼭 금강심론을 참고로 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꼭 삼매에 들어야 됩니다. 이치로 해서는 불성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근기 따라서 더 빠르고 더딘 차이는 있겠습니다만 상당한 시일동안 삼매에 들어야 됩니. 보통 사람 같으면 적어도 한 3년 그래도 삼매에 들 수 있는 그런 매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께서도 금생에 내가 성불해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할 때는 가정에서 내외분 같이 지내는 경우에도, 똑같이 앉아서 참선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또 출가한 스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생명이란 것이 언제 갈지를 모릅니다. 나이가 많다 그래서 빨리 가고 젊다고 해서 많은 시간이 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파거불행(破車不行) 노인불수(老人不修), 역시 게을러지는 몸뚱이 가지고서는 잘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께서는 주의하셔서 그야말로 아주 건전한 몸일 때에 열심히 수행하십시오. 가장 좋은 일, 가장 손해없는 일이 공부하는 일아닙니까? 그렇다고 장사도 말고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장사하더라도 고객을 다 부처로 보고, 하나의 물건을 팔더라도 다 부처로 봐야 합니다.

 

그렇게 하셔서 오늘 나누어 드리는 이 책을 보고 또 보고 하십시오. 성불의 길에 있어서 순서로 해서는 지금 나온 책 가운데는 이런 책이 없습니다. 근본선을 사선정, 사공정, 멸진정인데 이 아홉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선근, 사가행지(四加行地)를 밟아야 돼요. 근본선을 닦아나가는 것이 즉 말하자면 부처님 모든 팔만사천 법문 가운데서 최제일(最第日), 최상(最上), 최승() 최묘(最妙), 이렇게 부처님 스스로 찬탄을 하셨습니다. 제가 아함경에서 그런 대목을 조사해보니까 마흔 한군데나 있어요. 얼마나 부처님께서 그와같이 역설강조를 하셨으면 마흔 한군데나 있겠습니까?`

 

우리가 그걸 본다 하더라도 그런 것이 모두가 다 우리 행복과 직결됩니다. 몸도 건강해지고 호법선신 또한 더욱 더 환희심을 낼 것이고 말입니다. 다만 한 발이라도 우리 본래 성품, 우리 본래 주인공자리와 가까워지는 것이 우리가 금생에 나와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여기저기에 있는 금타선사의 법문을 모아서 정리해 책으로 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책을 머리말에 두시고 그와같이 의미있게 봐주셔야 여러분들한테 좋고 그래야 공덕이 되지 않겠습니까? 꼭 금생에 대오철저(大悟徹底)를 하셔서 최상의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 단속사지 당간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