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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청화 큰스님 법문집/1. 다시 읽는 큰스님 법문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92

아미타불이 여러분의 참 이름입니다. 892

 

금타선사의 가르침(3)

 

 

여러분들께서 주의하셔야 할 것은 성인들이라는 것은 내내야 우주의 본래면목자리, 자성불성자리를 깨달은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나 마호멧이라든가 또는 소크라테스라든가 그런 성인들 마음은 절대로 두 마음이 아닙니다. 진리를 깨닫는 데 있어서 보다 더 깊고 옅은 것은 좀 차이가 있다하더라도 우주의 본래 진리자리, 바꾸어서 말하면 우리 마음의 본성자리불성을 깨달은 것은 결국 똑 같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분들이 그때그때 시대 상황따라서 조금씩 차이있게 표현했다 하더라도 기본적인 진리 내용은 조금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종교적인 이른바 국집주의(局執主義), 또는 교조주의(敎祖主義)를 떠나야 됩니다.

 

따라서 간디의 말처럼 참다운 기독교인은 동시에 참다운 힌두교인불교인이 될 것이고, 참다운 불교인은 동시에 참다운 기독교인이 되고 힌두교인이 된다고 봐야 됩니다. 그렇게 해서 여태까지 여러분들께서 집착을 한 그런 마음은 다 놓으시고, 우리 본래면목은 한도 끝도 없이 무량무변한 것이니까 무량무변한 그 자리로 다 돌려서 열린 마음으로 지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부처님 눈으로 보는 바로 그 자리가 우주의 실상을 바로 보는 자리입니다. 우리 중생들이 보는 것은 사실은 하나의 사견(私見)에 불과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우리 중생은 상대적인 견해를 면치를 못해요. 모든 존재의 본래 성품자리를 봐야 바른 견해가 되는 것인데 우리 중생들은 성품을 보지 못하고 상()만 봅니다. 그 상이란 것은 우선 나라는 상, 너라는 상입니다. 그 상은 원래 있는 것이 아니예요. 금강경에 있는 바와 같이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라, 꿈이 사실이 아니듯이 또는 거품이 사실이 아니듯이 우리가 느끼는 나라는 관념이라든가 또는 대상적으로 봐지는 너라는 것이라든가 좋다 궂다 예쁘다 밉다하는 그런 모든 것이 사실은 사실이 아닙니다.

 

부처님 말씀은 진어(眞語), 진리만을 말씀하시고 또는 여어(如語), 여법히 항시 법대로 말씀하신단 말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두가 비었다 하면 사실로 빈 것입니다. 우리 중생이 집착이 많으니까 집착을 떼라고 해서 방편으로 비었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일체(一切)다 유심조(唯心造), 모두가 다 마음뿐인 것이지 물질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닙니. 우리 중생의 가장 고약한 삿된 견해가 무엇인가 하면 물질이 우리 중생이 느낀 그대로 사실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질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때는 일체유심조라는, 모두가 마음뿐이라는 그 말씀이 잘못된 것이 되겠지요.

 

물질은 없는 것입니다. 현대물리학이 나오지 않을 때는 물질이 없다는 소식을 증명을 못했어. 밖에 산이 있으면 산이 분명히 있고 물이 있으면 물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물리학적으로 분석하고 분석해서 나가다 보면 결국은 모두가 비어버립니다. 분석해나가다 보면 결국은 나중에는 원자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원자는 무엇인가? 원자는 원자핵을 중심으로 해서 그 주위를 전자가 빙빙 돌고 있단 말입니다.

 

우리 지구가 태양을 도는 이치나 사람의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런 전자가 원자핵을 도는 이치나 이치는 다 똑같습니다. 그러면 물질의 가장 미세한 원자나 전자나 그런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일 분석해놓은 것을 보면 결국은 소립자素粒子, 하나의 우주에는 소립자라 하는 장에너지가 충만해 있습니다. 전자기장 또는 중력장강력장약력장그러면 그런 장()은 무엇인가? 장은 소립자를 말하는 것인데 소립자란 것은 다시 또 분석할 수 없는 가장 미세한 것입니다. 그런 것은 순간순간 일어났다 없어지고 일어났다 없어지고 서로 바꿔지고 그럽니다.

 

그래서 하이젠베르크가 말한 바와 같이 불확정성(不確定性)의 원리(原理), 끝에 가서는 결국은 무엇이 무엇인지 몰라 버린단 말입니다. 그 운동도 위치에 어떻게 측정할 수가 없습니다. 확정할 수가 없습니다. 확정할 수 없다는 것은 결국은 모두가 다 공이라는 것이나 똑같은 도리예요. 우주란 것은, 물질이란 것은 결국은 그야말로 본래 없는 것이란 것을 현대물리학도 증명했습니다. 그러면 물질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건 물리학은 모릅니다. 왜 모르는가 하면 물리학이란 것은 시간성공간성이 좀 있어야 어떻게 무엇이라고 이름지을 수가 있는 것인데 시간성도 공간성도 없으니까 이름지을 수가 없단 말입니다.

 

결국은 다 공입니다, 물질은 원래 없는 거란 말입니다. 없는 것을 우리 중생이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 앞서 오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내 마음이 지금 형체가 없지 않습니까? 없으나 내가 생각하니까 내 마음이 분명히 있단 말입니다. 내 마음이 분명히 있듯이 물질도 무엇인가는 있는데 결국은 모양이 없습니다. 모양이 없이 참말로 있는, 시간 공간성으로 있지 않고, 형이상학적으로 참말로 있는 그것이 말하자면 불성(佛性)입니다. 그렇다고 생각할 때는 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결국은 다 그와 같이 허망한 것이고 본래 없는 것인데 우주는 불성으로 꽉 차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는 부처님뿐입니다.

 

너를 보나 나를 보나 자기 아내를 보나 자기 아들을 보나 뭘 보나 다 부처라고 봐야 비로소 바로 보는 것입니다. 부처라고 보지 못하면 바로 못보는 것입니다. 이런 도리가 불교적인 술어로 말하면 대총상법문(大總相法門)이에요. 대총상법문이라, 불교 모두를 다 총합해서 하나의 진리로 포괄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우리 불자님들이 다른 것은 좀 모른다 하더라도 대총상법문을 알아버리면 항시 마음이 안심이 되고 편합니다. 우주는 사실을 바로 보면 다른 것이 없이 모두가 다 부처님 뿐입니다. 하나님 눈으로 보면 하나님뿐이고 부처님께서 보신다고 생각할 때는 모두가 다 부처님뿐입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좋아하고 싫어하고 그럴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중생의 사견 때문에, 삿되게 망상분별해서 스스로 괴로워 할 뿐입니다.

 

금타선사를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그런 도리를 극명하게 잘 밝히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생들은 과거숙세부터 업을 너무나 많이 지었습니다. 남 좋아하는 업, 남 싫어하는 업, 그런 업을 잔뜩 지어 놓으니까 다 없앨 수가 없습니다. 오랫동안 닦아야 한단 말입니다. 오랫동안 닦기 위해서는 깊은 삼매, 깊은 명상에 들어야 돼요, 그래야 찌꺼기가 녹아납니다. 그런데 깊은 명상에 들어가려면 철저한 계율이, 철저한 도덕률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렇게나 먹고 아무렇게나 이성관계해서는 안됩니다.

 

그러기에 부처님 가르침은 어느 때나 계율(戒律)과 선정(禪定)과 지혜(智慧)의 삼학도가 항시 근본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욕계(欲界)에 있습니다. 잘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전생에 얼마나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사람으로 태어나 이와같이 축복을 받고 있는가󰡑, 이러지만 지금의 우리 세계가 그렇게 높은 차원이 아니에요.

 

욕계가 있는가 하면 보다 더 차원높은 색계(色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보다 더 차원높은 무색계(無色界)가 있습니다. 욕계번뇌색계번뇌무색계 번뇌를 다 떼버려야 본성, 진여불성자리로 우리가 들어갑니다. 우리의 본래자리, 본래 고향자리는 부처의 자리아닙니까? 따라서 우리 고향에 가려면 싫든 좋든 간에 우리의 욕심을 털어버려야 돼요.

 

욕심 가운데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인가? 먹는 욕심, 이성 욕심입니다. 식욕(食慾)과 남녀 이성간의 음욕(淫慾)이란 말입니다. 우리 재가불자님들도 당연히 부부내외 관계가 되시겠지요. 그러나 서로를 꼭 도반으로 알으셔야 합니다. 어느 때인가 헤어질 것, 헤어질 때는 평소에 너무나 집착하게 되면 그야말로 이별에 있어서 슬픔도 더 깊어질 것이고 상처도 더 받을 것이고 충격도 더 크게 느끼실 것입니다. 서로 최선으로 친절을 다하고 하나의 동기(同期)로 해서 우리가 사귄다고 생각할 때는 어느때 이별이 온다 하더라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전에 제가 이른바 암중모색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공부의 차서 또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한 중요한 가르침을 타일러 주신 분이 금타선사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다 있는 것인데 너무나 번쇄하니까 사람들이 별로 참고로 하지 않았지요.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우리가 공부해 나가는 그런 차서에 대해서 별로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법희선열을 느끼지 못합니다. 법희선열(法喜禪悅)이라, 공부한 것은 틀림없이 그때그때 마음도 개운해지고 행복감도 느끼면서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공부는 그냥 아무런 공덕없는 것이 아니라 한 걸음 나가면 한걸음 나간만큼 우리 행복이나 기쁨도 커지는 것입니다.

 

그러는 것인데 그와같이 조금 기쁨이 오고 그만큼 마음이 열리면 󰡐공부가 상당히 되고 있구나󰡑이렇게 착각을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런 경계가 어느 누구에게나 다 올 수가 있는 것이고 그런 것이 한 두 번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그때그때 공부해 나가는 그런 위차(位次)를 모르면 안됩니다. 착각도 교만심입니다. 불교 전문술어로 증상만이라, 미처 공부가 안되었는데 되었다 하는 것, 어느 경계에 이르지 못하고 이르렀다고 하는 것 보고 증상만이라고 그래요. 증상만이 되면 그때는 공부가 다시 안됩니다 .

 

아만(我慢)이란 것은 굉장히 무서운 것이여요. 결국은 자기 스스로 󰡐무던히 공부가 되었다󰡑고 아만하면 이러니까 더 나갈 수가 없습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호법선신(護法善神)이 따릅니다. 여기 출가한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 출가한 분들은 출가하자마자 호법선신이 딱 지키고 있어요. 공부할 때는 호법선신도 더불어서 우리하고 같이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교만심을 낸다든가 이상한 짓을 하면 그때는 호법선신이 떠나버립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을 독실히 믿고 계신 우리 불자님들께서는 나의 행동을 지금 호법선신이 다 지키고 감시하고 있다, 이렇게 느끼셔야 돼요. 분명히 그러하니까 말입니다. 호법선신 뿐 아니라 무수한 귀신들이 이 공간속에 꽉 차있습니다. 우리 행동을 다 감시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금타선사를 우리가 위대한 분이라고 보는 것은 분명히 견성오도한 분이니까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어디에 있는가? 증거없이는 누구든 믿을 수가 없겠지요. 사실 우리는 자기 스승이라든가 자기 문증어른들을 정도이상으로 우상시 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허나 금타선사님은 천안통(天眼通)을 분명히 하신 분이고 숙명통(宿命通)을 분명히 하신 분이고 누진통(漏盡通)을 분명히 하신 분입니다. 우선 숙명통 하신 것은 직접 제가 듣지는 않았지만 그 어른의 여러 가지 기록으로 해서 알 수가 있고 또 천안통을 하신 것은 금강심론에 의해서는 분명히 다 증명이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천안통을 안했으면 우주를 하나의 체계로 아주 정밀하게 수치로 묶을 수가 없습니다.

 

태양의 내용은 어떻게 되고 금성의 내용은 어떻게 되고 또 우리 지구의 내용은 어떻게 되고 그런 것을 모두 다 수치로 표현을 했어요. 그리고 물질이란 것이 순수 생명으로부터 어떻게 해서 이루어지는가, 그런 것도 모두 다 수치로 표시를 하고, 삼천대천세계인 불교우주를 모두 수치화해서 증명했습니다. 현대물리학이 미처 증명을 못하는 그런 분야까지도 다 했어요.

 

전자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또는 양자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런 원자의 구성과 구성되는 이유도 다 말씀했단 말입니다. 아까 제가 소립자로 구성된 우주에는 말하자면 근본에 가서는 아주 순수한 물질 에너지가 충만해 있다는 말씀을 드렸지요. 그런 모든 장에너지를 통일시키는, 아인슈타인같은 위대한 분들이 말한 이른바 통일장(統一場)이라, 통일장을 찾으려고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찾을 수가 없어요.

 

즉 그런 단계는 인간의 시간공간 안에 있는 그런 견해로 해서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불교 우주관의 술어로 해서 금진(金塵), 금륜(金輪)이란 말이 있어요. 금진 금륜 이것은 일반물리학에는 없습니다. 불경(佛經)에는 있어요. 특히 금타선사께서는 그와같은 금진 금륜도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모든 에너지의 장을 통괄하는 이른바 통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금진이나 금륜 이것은 물질이라고 할 수 없지만 모든 존재의 가장 근원적인 미세한 근거란 말입니다. 따라서 금진이 어떻게 선회하는가, 어떻게 도는가에 따라서 이른바 전기가 되고 자기가 되고 합니다. 금강심론에 보면 좌선금진(左旋金塵)이 수진이요, 우선금진(右旋金塵)이 화진(火塵)이라, 그런데 수진이란 이것은 원자핵체를 말하는 것이고 화진이란 것은 하나의 전자를 말합니다.

 

그리고 불교우주관이 삼천대천세계인데 이 세계를 현대적인 체제로 풀이한다고 생각할 때는 이른바 80억 우주에요. 80억 우주란 것은 무엇인가 하면 이 태양계같은 우주의 80억배란 말입니다. 우리가 이 태양계만 생각해도 상당히 놀랄만큼의 크기가 아닙니까? 태양을 중심으로 해서 지구라든가 각 달이라든가 각 위성이 돌고 있는데 이런 태양계같은 즉 말하자면 하나의 작은 우주가 80억개가 있는데 80억 우주가 그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량무변(無量無邊)입니다. 천지우주란 것은 그와같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런 체계를 금타선사께서 다 세우셨습니다. 여기에 있는 수치는 이른바 불교말로 하면 태장계(胎藏界) 수치라, 형이상학적인 수치기 때문에 일반적인 그런 형이하학적인 물리학적인 수치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공부를 하시면 좀 난해한 것이 풀어지게 됩니다. 또 수묘게(數妙揭), 가사 수묘게란 것은 1부터 10까지의 그런 수치에 대해서 나온 하나의 원리를 풀이한 것입니다. 1은 어떠한 것이고 2는 어떠한 것이고 3은 어떠한 것이고 그와같이 각 수에 포함되어 있는 우주의 진리를 표현한 것입니다.

 

현대가 이른바 산업사회시대이고 물질과학이 발달되어 있어놔서 또 그런 분야를 생각할 때는 우주론적인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얼핏 윤곽만 얘기했습니다마는 역시 우리 공부인들한테 있어서는 수행론 문제가 가장 중요합니다. 내 스스로가 지금 현재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 어떻게 공부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또는 성불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