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선원에 3박 4일 객승으로 있다가 가시는 분하시는 말씀이 무주선원은 백화도량(百花道場), 백 가지 꽃이 피는 도량이라고 하였습니다. 꽃나무 숫자는 세어보지는 않았는데 다양한 종류 꽃, 나무들이 있어 나름 총림(叢林)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단 제주도는 따뜻하여 노지에서 월동 되는 품종이 다양합니다. 수국 정도도 중부지방에서는 노지 월동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주선원 개원 후 많은 꽃나무를 심었지만 다 산 것은 아닙니다. 경험상 추운 해는 이 자리가 영하 3도까지 떨어지는데 병솔나무, 카나리아야자는 견디지 못하고 얼어 죽었습니다. 해마다 천사 나팔꽃과 재스민은 겨울에 뿌리만 살았다가 봄에 살아나는 형편이고 바람에 약한 아이들도 퇴출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에는 잘 견디다가 나무가 커가며 바람을 못 견디고 살구나무, 러시아 오가피, 서부 해당화가 넘어지어서 베어내었고 한 번 넘어진 아이는 세워놓아도 다음 바람 불 적에 또 넘어가고 하여 한 번 넘어진 아이는 미련 없이 베어냅니다.
사람도 업이 가지가지 이지만 꽃, 나무들도 업이 가지가지입니다. 도량에 양극을 달리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수국(水菊)은 물을 엄청 좋아하고 저먼 아이리스는 물을 극혐하는 수준입니다. 보통 나무 이름에 물 수[水]자 들어가면 물을 좋아하는 아이지요 수국이 겨울나면서 봄에 가지 죽은 것이 많이 보이는 것이 겨울 가뭄에 말라죽은 것입니다. 겨울에도 가물면 물을 주어야 하는 아이 여름에는 물 호수를 들고 살아야 하고 주인장을 가장 괴롭히는 아이입니다.
반대로 저먼 아이리스는 물을 극혐하는 수준. 비가 3~4일 연속으로 비가 내리면 잘 자라다도 뿌리가 녹아버리는 아이입니다. 특히 무주선원 땅은 진흙이라 배수가 잘 안되어 고전하는데 작년에 피트모스를 넣고 심어도 별 효과는 없는 것 같습니다. 꽃나무도 열 체질이 있고 냉체질이 있습니다. 도량에 여름은 더워서 견디지 못하고 휴면으로 들어갔다가 추워지면서 싱싱하게 올라오는 열 체질 아이들 수선화, 꽃무릇, 상사화 등입니다. 작년보다는 좀 늦는데 수선화가 꽃봉오리가 올라왔습니다.
생명의 논리는 식물이나 동물이나 다 똑같습니다. 꽃 나무를 길러보면 식물도 살려고 엄청 노력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식물과 동물이 다른 점은 식물은 이동을 못 한다는 것뿐이라고 하고 과학자들도 사람의 감정을 식물이 다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하는 말이 농사를 지으면 철학자가 된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문제아 학생들을 “원예치료” 해서 농시를 짓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연과 접하고 식물을 만지다 보면 인욕도 배우고 기다림도 배우고 자연히 세상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지요. 다양한 업의 꽃, 나무들이 한 도량에 모여서 총림을 이루고 나름 존재감을 보이며 열심히 사는 꽃나무를 바라보며 사바세계에서도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많은 시비를 놓을 수 있고 동백꽃이나 능소화꽃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도 갈 적에 깔끔하게 가야 하는데 하는 원(願)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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