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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참선의 바른 길

31. 여래선如來禪과 조사선祖師禪

31. 여래선如來禪과 조사선祖師禪

 

 

* 19873월 태안사 삼년 결사 중에 하신 소참법문입니다.

 

31.. 조사선과 여래선 소참법문.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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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선祖師禪에 관해서 그때그때 상당히 논쟁도 생기고 그 때문에 괜히 분별 시비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헌데 연혁이나 그 의의를 잘 모르면 부질없는 시비를 한단 말입니다. 사실은 조사선으로 선 상량商量, 상량이라고 하면은 헤아리는 것을 보고 상량이라고 합니다. 상업이라는 상[]자하고 헤아릴 양[]자 말입니다. 괜히 분별없는 상량 때문에 우리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부에 방해를 받습니다. 따라서 그런 의혹에 관해서 확실히 확인을 안 해본 것 때문에 상량商量만 하니까 그만치 그것 때문에 분별 시비를 하게 되겠죠.

 

그것은 당나라 이전에는 그런 조사선祖師禪에 대해서 말이 없던 것이 당나라 중엽 때 그 말씀이 되었습니다. 어떤데서 연유되었나 하면은 위산영우(潙山靈祐, 771~853) 스님, 앙산혜적(仰山慧寂, 807~883) 스님하고 위앙종潙仰宗을 개설한 분입니다. 달마達磨 스님부터 선종禪宗5파로 분리 되었지 않았습니까? 임제종臨濟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 위앙종潙仰宗 말입니다.

 

위산영우(潙山靈祐) 스님의 사제분이 되는 향엄지한(香嚴智閑, ?~898) 스님하고 두 분 가운데 그 말씀이 되었단 말입니다. 향엄지한香嚴智閑 스님은 사제분이 되고 위산潙山 스님은 사형분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같이 만나게 되어서 위산潙山 스님이 먼저 말씀을 했단 말입니다. 사제師弟 네가 공부를 잘하는데 지금 사제의 견처見處가 어떤가, 견처라는 것은 공부해서 얼마만큼 초견이 났는가. 바른 소견을 대라고 할 때 견처라 합니다. 사제지간에 견처가 어떤가 물어보니까 향엄香嚴스님 말이 그냥 무슨 선 기류에서 바로 대답하지 않고서 제가 근래에 얻은 견처를 말 몇 마디로 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복잡합니다만 우리 불가佛家에서 가난하다 빈곤하다, 그런 말은 돈이 없어 물질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개 번뇌가 적다고 할 때 가난하다 빈곤하다 말합니다. 그래서 향엄스님 말씀이 자기가 근대에 익힌 견처는 한마디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과거에는 그냥 빈곤한 것이 꽤 적빈赤貧이 되어서, 아주 가난해서 가난한 정도가 극도로 이르렀지만 근래에 와서는 가난이란 빈핍이라는 말도 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송곳을 구멍 뚫는 송곳을 땅에다 박을 틈도 없었지만은 근래에 와서는 송곳도 땅도 없습니다. 송곳은 자기의 주관을 비유하고 말입니다. 송곳을 박을 땅은 객관에 비유했겠지요. 과거에는 객관 주관이 어느 정도는 공부가 많이 되어서 사라졌다 하더라도 그때는 주관은 겨우 남아 있고 그러니까 송곳을 세울 땅이 없으니까 객관은 거의 끊어져서 소위 말하는 색, , , , , 이라는 색이나 소리나 냄새나 그런 곳에는 착하지 않았다는 그런 의미가 되겠습니다.

 

과거에는 그와 같이 송곳을 세울 땅도 없었지만 근래에 와서는 송곳도 땅도 없습니다. 송곳이란 자기의 주관도 없고 그야말로 객관이란 땅도 없다는, 즉 주객主客이 다 끊어져 버린 하나의 무분별의 경계를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 그대 사제는 공부 정도가 아직은 여러 번 얻었다 하더라도 조사선祖師禪을 꿈에도 못 보았구나.” 이와 같이 말씀 하셨단 말입니다.

 

헌데 조사 어록이나 그런데 보면 보통은 말씀들이 과장이 많이 되었습니다. 공부가 그만치 되었으니까 꿈에도 못 볼 기략을 다투고 그런 때는 상대편을 매몰차게 그런 말씀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대로 여래선, 조사선 그런 말씀은 그전에는 여래청정선如來淸淨禪 이라는 그런 말이 있었다 하더라도, 조사선祖師禪이란 말은 없었습니다. 그때 계기가 되어서 비로소 말씀이 이루어졌단 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서 후대에는 자꾸 양편이 똑같다. 또는 조사선祖師禪이 높다 해가지고서 상량商量이 되고 시비가 되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거기서 그 무엇을 본다고 생각할 때, 말로 표현도 하고 부처님 경전 내에 여러 가지 설화를 이끌어서 하는 설법은, 설명할 수 있을 것이고 문자를 떠나서 말로 표현도 못 하고 문자로 표현도 못 하고 생각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그런 경계를 조사선祖師禪이라고 한데서 문제가 되었겠지요. 그런데서 시비가 많이 되었지만 우리가 후대에 와서 생각해 본다고 할 때 여래선如來禪은 부처님께서 닦으신 선이라. 생활할 때는 그와 같이 편해서 볼 것이 아니라, 또한 두 분들로 해서 비로소 말씀이 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여러 스님이 이것저것 다 포함한 것이지, 꼭 무슨 조사선이 따로 있어가지고 그렇게 한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에, 구태여 갈라지게 말씀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구분 지을 필요가 없는 것인데 구분을 지어 왔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단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다시 생각할 때는 조사 어록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즉 집착할 착[]자 곧 즉[]자 집착하면 착즉着卽 즉 자자字字 창루瘡瘻, 글자 자[]자 두 자. 부스럼 창[]자 부스럼 루[]자 말입니다. 우리가 집착하면 아무리 좋은 말도 글자마다 문자마다 모두가 부스럼같이 우리 마음을 얽매게 하고 분별 시비하고 갈등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고, 통즉通卽 문문묘약文文妙藥 이라, 통할 통[]자 곧 즉[]자 통하면 그때는 글마다 공부하는데 약이 되는 것이고, 또는 감로 같은 법문이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런 뜻으로 본다고 할 때 사실은 보통에서 본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모두가 다 아무 일 없는 법문도 집착하면 그만치 말을 착하고, 문자에 착하면 공부에 장애되고 하나의 질곡桎梏이 되어서 큰 마당입니다만, 일체 만유에 관해서 다 선 아님이 없고 또는 천지 모든 것이 실상實相 아님이 없다는 그런 경계에 선다고 할 때는, 별로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석가모니께서 말씀하시고 정통正統 조사祖師가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집착하면 우리 공부에 대해서 별로 이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집착 하지 않으면 문문묘약文文妙藥이라. 글씨가 하나의 묘약이며 감로 법문 아님이 없는 것인데, 하물며 불조佛祖가 말씀하신 그런 법문이야 더욱더 감로 법문이 아닐 수가 없단 말입니다.

 

그런데서 집착하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지, 문자로 표현해서 조사선祖師禪이 높고 여래선如來禪이 낮다 하는 고하高下의 구분은 안 해야 됩니다. 시비의 고하 또는 자타가 없는 것, 이것이 불법이기 때문에 마땅히 참선하는 사람은 그와 같이 고하라든가 시비나 그런 선악이나 이런 구분은 일차 부정하고 떠나는 것입니다.

 

위산潙山 스님이 향엄香嚴 스님이 공부를 많이 하고 박학다식해서, 사람이란 박학다식 하면 자연적으로 거만함이 있게 마련입니다. 나이가 많아지면 나이 많은 유세로 권위의식을 갖기가 쉽고, 지위가 높으면 지위 때문에 권위나 아만我慢이 생기기 쉽고, 경력이 많은 사람은 경력 때문에 아만이 생기고 합니다만 특히 학식이 많으면 아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대중 가운데 그렇게 아만을 부리고 있으니까 위산 스님이 보면 저 스님이 분명히 범부凡夫인데, 아는 소리 하니까 괘씸하기도 하고 또 참다운 공부를 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위산 스님이 향엄 스님께 하는 말이 그대가 삼장三藏 십이부경十二部經에 있는 불조佛祖의 말씀을 떠나서 조사 어록이나 또는 부처님 경전이나 그런 말씀을 떠나서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말해봐라’!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이란 화두도 그때 처음 나왔습니다. 부모가 미처 낳기 전에 본래면목本來面目, 그러니까 아까 말씀대로 가장 요긴한 본래면목 말해보라 한 것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본래면목이 무엇인가?

 

역시 학식이 깊으니까 경으로 말하면 충분히 말할 수 있었겠지요. 더구나 삼장 십이부경을 떠나고 조사 어록을 떠나서 말해보라 했으니 말을 할 수가 있어야지요. 자기가 배운 것은 많았다 하더라도 말도 못 하고 꽉 막혔단 말입니다. 그래서 위산潙山 스님이 그대가 그래 가지고 무슨 공부를 했다고 여태까지 아만을 피우고 있느냐고 했단 말입니다. 대답할 길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그 자리에서 물러나서 노트도 했고 발췌도 해 놓은 걸망을 펴서 봐도 역시 그런 말 닿을 말이 없더란 말입니다. 부처님 경전을 떠나고 조사록 을 떠나서 할 말이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걸망을 수습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내가 이 길을 떠나 바로 못 깨달으면 죽어도 안 돌아오겠다는 비장한 결심으로 스승에게 하직하고 떠났습니다.

 

떠나서 남양혜충(南陽慧忠, 675~775) 국사, 남양혜충 국사 하면은 위대한 분이 아닙니까, 육조 혜능(慧能, 638~713) 스님한테 정통 법을 그분도 받으신 분입니다. 남양혜충 선사나 하택신회(荷澤神會, 684~758) 선사 또는 청원행사(靑原行思, 671~738) 선사 모두 그런 선사와 같이 육조 혜능 스님한테 정통법을 받은 5계 도인입니다. 그분이 남양혜충 국사인데 말입니다. 같은 도인도 말씀을 많이 한 분도 있고 말씀을 별로 안 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이분은 남에게 별로 말씀을 안 하신 분입니다. 혜능 스님이나 신수(神秀, 606706) 스님은 말씀을 많이 해서 중생교화를 많이 했습니다, 이분은 중생교화에 대해서 별로 뜻이 없단 말입니다.

 

위대한 도인이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백애산白崖山 당자곡黨子谷이란 산중에 들어가 40년 동안 한 번도 하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단 3년이 되고 아직까지 1년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만, 그래도 지루한 감이 있습니다만 40년 동안 한 번도 하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역시 위대한 도인들의 무서운 긍지를 흠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날 왕자가 그런 소문을 듣고 몇 번 불러도 안 가신단 말입니다. 나중에 40년이 지난 뒤에 중국 천자天子가 궁중으로 모시고 피정避靜도 하고 공양도 하고 법문도 하시도록 했단 말입니다.

 

향엄香嚴 스님은 혜충慧忠 국사가 지내시던 고 터 역시 도인이 지내시던 유적이라 흠모를 했겠지요. 그때 가서는 그 터가 폐허가 되었는데 말입니다. 그러한 위대한 도인이 지나간 자취라도 역사 세월이 흐르면 무상無常해서 폐허가 되는 수가 있습니다. 거기 가서 부스러진 기와 조각을 치우고 혼자 눈물을 흘리면서 그때 혼자 자기 신명을 걸고 정진하는 중이었단 말입니다. 하루는 기와 조각을 대밭에 던지니까 기와 조각이 대를 맞히는 소리, 기와 조각과 대가 부딪치는 그 소리, 이를 가리켜서 불가에서는 격죽擊竹이라 때릴 격[]자 대 죽[]자 말입니다. 그 격죽 소리를 듣고서 퍼뜩 깨달았단 말입니다.

 

도인들이 공부해서 깨닫는 그 순간만은 기이한 인연이 많습니다. 영운도화(靈雲桃花) 스님은 복숭아꽃을 보고 깨닫고 중국의 중봉명본(中峰明本, 1263~1323) 스님도 위대한 도인입니다. 고봉원묘(高峰原妙, 1238~1295) 선사禪師 그분의 제자가 아닙니까, 그분은 시냇가에 앉아서 맑은 시내물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그와 같이 애쓰고 공부할 때는 지루하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할 때가 많지만 깨닫는 순간은 순간이란 말입니다.

 

보통은 돈오문頓悟門 이라고 하는 돈오頓悟의 길이 따로 있다고 믿습니다만, 사실은 돈오하기 전에는 과거 전생에 또는 금생에 무수무량의 난행문難行門을 거쳐 왔단 것입니다. 깨달은 뒤에는 자기 법사님인 위산潙山 스님이 계시는 곳을 향하여 9배를 드렸단 말입니다. 그래서 향엄격죽香嚴擊竹이라,’ 이것도 역시 화두에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설화가 되겠습니다만 아무튼 어떤 권위의식, 아만심我慢心 이것은 우리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바른 정심正心이 없으면 바른 정[]자 믿을 심[]자 말입니다. 바른 믿음이 없으면 아만심이 생기기 쉽고 조금 뭐 안 되면 그때는 비하卑下가 많이 생깁니다. 아만이나 비하 이것은 상대가 되는 말이지만 우리 공부에는 굉장히 큰 마장입니다.

 

조금 뭐가 안 되고 실패가 되고 공부가 조금 침체하면 비하卑下가 많이 생긴다 말이에요. 조금 뭐가 안 되고 누가 칭찬하고 학식이나 많고 지혜가 있고 하면 우쭐되거나 권위의식을 갖는다 말입니다. 정심正心을 얻으면 불자고不自高, 아니 불[]자 스스로 자[]자 높을 고[]자 말입니다. 자기 스스로 높은 척하지는 못합니다. ‘불자고不自高 불자비不自卑,’ 스스로 자[]자 낮을 비[]자 스스로 비하卑下 하지 않는다 말입니다. 어찌 그런가 하면은 과불공덕果佛功德 분호불수分毫不殊.’ 부처님께서 성취하는 그런 부처님의 공덕이 우리 중생과 분호불수라,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석가모니께서 삼명육통三明六通을 다하고 무량부사의無量不思議 신통을 다 하셨는데 그런 것이 석가모니 당시에는 별로 없다. 석가모니와 우리는 별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앞으로 우리가 실망도 하겠습니다만 석가모니와 우리는 조금도 차이가 없단 말입니다. 석가모니가 그와 같이 했다면 우리도 역시 우리 닦음에 따라 우리 자성 개발에 따라서 그와 같이 부사의不思議 신통을 한단 말입니다. 그와 같이 부처님께서나 정통 조사가 닦아 가지고 일체종지一切種智를 얻은 그런 지혜가 있다고 하면, 나한테도 분명히 있는 것이니까 개발을 못 함을 한탄할 뿐이지 나한테 그런 것이 안 된다고 안 할 필요가 없단 말입니다.

 

따라서 그와 같이 공부가 좀 되었다 하더라도 부처님 같은 무량 신통이 안 나오면 아직은 멀었다 말입니다. 그러기에 아만심을 못 내는 것입니다. 과불공덕果佛功德을 부처님께서 하신 무량 신통을 안 믿으면 그때는 석가모니도 별것이 아니다. 석가모니도 마음이 툭 트여서 조금 시원하겠지, 시원하면 석가모니한테 가겠지. 자기가 조금 마음이 트이고 몸이 가볍고 이것저것 다 알듯 말 듯 하면 그때는 석가모니와 자기를 같이 취급한다 말입니다. 과불공덕果佛功德을 안 믿으면 그와 같이 아만심이 생기기 쉽습니다.

 

허나 우리가 공부가 조금 되었다 하더라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하시던 무량신통 지혜 이것이 못 나온 때는 결국 공부는 멀었다 말입니다. 또한 동시에 과불공덕果佛功德을 확실히 믿어버리면 비록 현재 내가 보잘 것이 없지만 내내 잠재해 있는 힘은 석가모니와 똑같거니 자기 비하卑下나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 말입니다. 오직 할 것은 부지런히 공부 할 뿐이라 말입니다. 그래서 정심이라는 것은 즉 바른 믿음이란 것은 분명히 석가모니나 역대 조사나 그런 분들과 나를 똑같이 본다 말입니다.

 

그러나 단위는 똑같다 하더라도 현실은 역시 아직은 번뇌에 때문에 발휘를 못 했으니까 정진을 부지런히 해야겠지요. 이와 같이 정신을 가지고 여래선이나 조사선을 가지고 부질없는 분별 시비를 할 필요가 없고, 될수록 시비是非를 떠나서 신구의身口意 삼함三緘이라, 가끔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몸으로 될수록 부질없는 활동을 적게 하고 입으로 말 삼가고 뜻으로 부처님한테 나아가는 화두면 화두 염불이면 염불 자기가 하고 있는 공부, 내내 헤아리지 않고 신구의 삼함이라, 딱 봉하고서 공부하는 것이 우리 수좌首座의 갈 길이라 생각합니다. 몇 말씀 드렸습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나무석가모니불南無釋迦牟尼佛!

나무마하반야바라밀南無摩訶般若波羅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