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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행자의 편지/미타행자의 편지

능소화

 

 

그 옛날 입대 전 같은데 남도(南道)를 여행하면서 시골집 담에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꽃을 처음 보고 집 지으면 능소화는 꼭 심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처사 시절에는 능소화를 심을 여건이 못 되고 출가하여 인연 닿는 도량마다 능소화를 심을 수 있으면 심었는데 태안사, 송광사, 성륜사, 자성원 등에 심어놓았는데 들리는 말로는 다들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주선원 능소화도 개원하고 바로 육지 도반 절에 가서 작은 묘목 얻어다가 입구 돌에 기대어 심어놓고 무주선원을 방문하시는 분들께 화려한 꽃으로 반갑게 인사하라는 소임을 주었습니다. 도량에 심은 꽃나무들은 나름대로 의미는 다 있습니다. 차를 주차하고 내려오는 돌계단 양쪽으로 늘어지는 로즈메리를 심어놓았는데 지금은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정도로 커지었는데 방문하시는 분들 로즈메리 향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시라는 의미로 심어놓고 법당 앞 천리향은 부처님 전에 향 공양 의미로 수국과 모란은 꽃 공양 의미로 심어놓았습니다. 6월의 수국꽃 파티도 대단했고 마음으로 그리던 극락도량은 완결되었다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방문하신 분께 부탁하여 능소화 배경으로 한 컷 하였습니다. 새삼 내가 내 얼굴을 보면서 영락없는 고집 센 촌로(村老)의 얼굴입니다. 일명 꼰대입니다. 마음이야 그 옛날 군 복무 33개월 용맹정진하고 개구리복 입고 서울로 귀환할 때 마음이지만 몸과 얼굴은 그동안의 세월에 연륜이 드러납니다. 오후는 마당에서 살기에 얼굴은 그을렸고 풀 옷은 초심 때 한두 번 입어본 것이 전부인 것 같고 예나 지금이나 옷차림은 헐렁합니다.

 

새벽 자리 털고 일어나 3시부터 일과 시작하여 손수 공양 지어 부처님 전에 올리고 염불하고 자비관하고 오후는 마당 나가서 풀 뽑고 꽃나무 손보면서 풀 한 포기도 내가 뽑아야 뽑아지는 토굴살이, 현재 생활에 만족합니다. 밖으로 나다닐 일 없고 이름에 부러운 것 없고 큰 절에 부러운 것은 없습니다. 돌아보면 아직까지 병고(病苦)없이 버틴 것이 기적이고 사바세계에 인연이 얼마나 남았겠느냐하는 한 생각에 많은 망상이 쉬는 것 같습니다. 늘 그렇게 살 듯이 이 자리도 인연이 있어서 있는 것이고 있는 동안은 잘 가꾸고 살다가 인연이 다 하면 떠나는 것이고 얼마 남지 않은 생명, 시간 아끼어서 한 번이라도 더 부처님 명호 부르고 십 분만이라도 더 앉자 있다. 가야지 하는 마음입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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